아시아 신진 큐레이터들의 작은 플랫폼이 둥지를 틀었다.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국제문화교류 인력양성 프로그램 ‘넥스트 아카데미(NEXT Academy)’의 일환으로, 큐레이팅 그룹 미팅룸이 기획한 ‘미팅 인 아시아’(4. 6-25)가 개최됐다. 초대된 9명의 한중일 ‘젊은’ 강사들은 매주 아시아 권역 미술의 주요 이슈를 심층적으로 강의하는 한편, 비슷한 또래의 참여자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소통하며 서로의 리서치와 네트워킹을 도왔다. 아시아를 무대로 한 국제교류의 초석을 다지는 만남, ‘미팅 인 아시아’의 현장을 기획 연재로 소개한다.
전시기획에 있어 특정 지역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국가 교류전에는, 해당 권역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위치 선정의 가능성을 가늠함과 동시에 그 지역적 상황을 자연스럽게 체화하고 있는 대표 작가를 소개하는 형태가 있을 것이다. 1989년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열렸던 “대지의 마법사들(Magiciens de la Terre)”은 유럽 미술계에 비서구권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한 대규모 전시다. 당시 현지인을 대상으로한 중국미술 강의도 함께 이루어져 ‘아시아’가 갖는 의미에 대한 논의를 미술계에 본격적으로 제기한 전시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비서구권의 미술 담론과 해석을 향한 식민주의적 시각을 드러낸 형식적 구색 맞추기였다는 비판적 입장과 더불어,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가 아시아 내부로부터의 주체적 담론 형성과 아시아인 관점의 연구 및 토론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었음은 부정하기 힘들다.
본격적인 국제 교류 전시가 시작된 1990년대에도 아시아를 둘러싼 논의는 계속되는데, 아시아 7개국 큐레이터들이 공동 기획한 “언더컨스트럭션(Under Construction: New Dimensions of Asian Art)”(2002, 일본 오페라갤러리)과 “움직이는 도시들(Cities on the Move: Urban Chaos and Global Change, East Asia Art, Architecture and Films Now)”(1997-2000, 후 한루,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기획, 런던 해이워드갤러리 외) 전시가 그 맥락을 이어나갔다. 두 전시 모두 당시 서구 편향적이었던 미술계의 관심을 아시아 국가로 돌리자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전자가 아시아 국가의 전시 기획자들 간의 협업을 통해 오랜 리서치와 지역성을 반영한 네트워크 형성을 전제한 기획이었다면, 후자는 아시아 지역의 작가와 작품뿐만 아니라 건축, 영화까지 아우르는 예술문화 현상 및 해당 도시를 서구권에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전시였다. 2000년 홍콩에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Asia Art Archive, 이하 AAA)가 설립되고 이러한 움직임들은 본격적으로 아카이브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지속해서 논의되고 있는 ‘아시아’에 대한 화두는 다양하고 구체적인 의제들에 의해 공론화되고 수많은 전시와 심포지엄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 미팅룸과 ㈜예술경영지원센터가 함께 진행한 국제문화교류 인력양성사업 ‘미팅 인 아시아(Meeting in Asia)’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아시아 각국 전시기획자들의 의견과 그들만의 방법론을 공유하기 위해, 아시아 지역의 국제교류 전시기획 사례와 정보를 나누는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필자는 올해 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한 “미묘한 삼각관계(The Subtle Triangle)”(2015) 전의 배경과 구성, 진행 과정을 소개함으로써, 한중일 교류사의 현주소와 의의 그리고 한계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중일의 지역적 특수성은 아시아 내에서도 특기할 만하다. 한중일은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휴전 지역의 인접 국가라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정치적, 사회적 관계의 위기가 불거질 때마다 문화예술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하나의 공동체로 시사하려는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있어 왔다. 이는 1990년대 아시아 국가 간의 교류가 본격화되고 ‘아시아 비엔날레 시대’를 알리는 것으로 이어지며, 외교적인 성과로서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1999)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미묘한 삼각관계”전 역시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서 시작된 기획이지만, ‘국가 대항전’의 성격을 지양하고 아름답고 희망적인 미래보다는 과거로부터 형성된 현재를 직시하고자했다. 또한 이러한 일련의 과거의 역사가 어떻게 현재를 구축하고 미래를 보여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에 더 중점을 두었다.
하지만 국가 교류 전시에서 ‘국가’와 ‘교류’가 갖는 의미는 외교적 상황과 정치 사회적 맥락에서 해석되었으며, 전시가 공개된 이후에는 전시 자체뿐만 아니라 전시 작품까지도 정치적으로 소비되며 해석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새로운 비판적 접근방식을 모색하기 위한 기획의 취지가 무색하게 교류전시에서 과거의 연결고리에서 벗어난 새로운 담론형성이 쉽지 않으며 ‘동시대성’을 취득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이러한 필자의 자전적 비판과 고백은 ‘미팅 인 아시아’의 다른 참가자들의 경험과 공유되며 다양한 비평적 질문들을 도출하고 프로그램이 종료될 때까지 많은 대화로 이어지게 되었다.
제10회 상하이 비엔날레 공동 큐레이터이자 현 홍콩 파라사이트(Para/Site) 큐레이터인 프레야 추(Freya Chou)는 ‘아시아권 비엔날레를 중심으로 살펴본 아시아 미술의 가능성과 과제’라는 타이틀 아래 아시아 비엔날레의 양상과 지역성이라는 주제, 국제행사로서의 비엔날레의 의미를 강의했다. 그는 대형 미술기획전인 비엔날레라는 제도가 정착하기 위해 지역과의 소통과 사전 연구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동시에 ‘검열’, ‘정치적 미술’, ‘지역과 미술’ 등 최근 아시아 비엔날레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주제를 언급했고, 문제와 한계를 둘러싼 되풀이되는 질문을 통해 의미를 모색하고자 했다. 그는 대만과 중국에서의 비엔날레에서 경험한 지역적 특수성과 ‘아시아’라는 추상적 개념 안에서, ‘아시아적’인 ‘아시아인에 의한’ 이상의 의미를 도출하고 자신만의 답을 찾기 위해 고민했다고 말한다. 어떠한 고정된 답을 갖기에는 주제가 갖는 의미가 가변적이기 때문에 작가, 큐레이터, 전시가 스스로 그 의미를 자유롭게 형성하도록, 재창안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프레야 추와는 다른 경험을 통해 국제교류의 의미를 듣고자 초청한 잉 곽은 영국 맨체스터 중국아트센터의 전임 큐레이터이자 ‘아시아 트라이니얼 맨체스터(Asia Triennial Manchester, 이하 ATM)’의 기획자로 현재 홍콩에서 활동하고 있는 독립기획자이다. 그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영국에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일련의 전시기획과 다양한 프로그램 사례를 바탕으로 그가 오랜 기간 고민해왔던 ‘아시아 정체성’에 대한 본인의 경험을 들려주는 시간을 가졌다. 잉 곽의 경우, 중국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아트센터를 영국 맨체스터라는 도시에 정착시키고 자리 잡게 하기 위해 3년간 진행한 관람객 분석과 오랜 리서치를 공개하였다.
‘Making links with the City’라는 주제 아래 중국아트센터와 ATM의 사례를 소개하고, 여전히 존재하는 ‘아시아’를 둘러싼 인식의 차이와 현대미술에서 ‘권역’이 갖는 의미를 되짚어보고, 그 장소적 특성에 따른 추상적 개념의 변화상에 주목하였다. 그의 관심은 서구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중국미술에서 시작하여, 이후에는 서구세계의 특성으로, 그리고 최근에는 그 중간 지점에 위치한 ‘홍콩’이라는 도시의 장소성으로 점차 확장되었다. 국가보다 도시를 대상으로 한 탐색과 경험을 통해서는 서로의 이해관계를 파악하기 용이하며, 특히 ‘교류’에 방점을 찍었을 때 구체적인 로드맵을 구상해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도시 간의 교류를 통해 많은 공통된 문제의식과 고민을 나눌 수 있고 적극적인 대화로 이어질 수 있다.
‘미팅 인 아시아’를 통해 우리는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진행한 기획전에 대해, 그 이면에 있었던 문제점과 과제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국제교류 전시는 기존의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는 탈식민주의적 태도와, 동질성과 그 차이를 드러냄으로써 다름을 이해하는 과정이 선행될 때 새로운 해석이 가능해진다. 단일한 해석을 피하고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차이에 주목하며 예술적 논의와 실천이 이어진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각도의 새로운 연구와 자생적 담론이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미팅 인 아시아’와 같은 공론의 장이 장소를 옮겨가며 재맥락화되고 이러한 움직임들이 아카이브 된다면, 차후 자생적 담론이 도출될 수 있다. 또한 다자적 관계 설정을 토대로 단순한 지정학적 공동체를 벗어난 새로운 연대가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올해 말 개관을 앞둔 광주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2019년 홍콩에 개관 예정인 M+ 시각문화박물관 역시 서구 중심이었던 미술계의 지형도 변화와 아시아 문화예술 담론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함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아시아 전시기획자들의 다양한 전략과 제안이 더욱 활발하게 공론화되고 실현될 머지않은 그 날을 기대해본다.
참고문헌
홍이지, “미묘한 삼각관계” 기획의 글, 서울시립미술관, 2015
프레야 추, ‘About Two Years’: Taipei Biennial 2010 Index(Catalogue), Taipei Fine Arts Museum, 2011
잉 곽, ‘Making links with the city’, 강의 자료, 2015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교에서 큐레이팅을 공부하였다. 디지털 매체 연구와 동시대 미술의 조건에 대해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 현재 미팅룸에서 큐레이팅팀 디렉터로 활동하며 전시 기획뿐만 아니라 글쓰기와 연구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