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행사

글로벌 현대예술 전문가 심화 아카데미

posted 2014.02.11

지난 11월 9일, 홍익대 동아시아예술문화연구소(소장 전영백)가 주관한 ‘글로벌 현대예술 전문가 심화 아카데미’ 첫 번째 강좌가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이성자기념관에서 열렸다. 서구에서 보는 동아시아 시각예술, 한-일 미술 국제교류, 한-중 미술 국제교류, 국내기반 한국미술의 해외진출 전략 등을 주제로 한 총4회의 아카데미 강좌는 현재 2회(3-4월)를 남겨두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외 전시기획자 및 학예연구원, 갤러리스트, 미술평론가 등이 참여한 아카데미에서는 최근 강화된 국제문화교류 정책을 둘러싼 심층적인 분석과 진단이 이루어졌다.




또 다른 세계와의 대화

“서구에서 보는 동아시아 시각예술”이라는 주제로 영국 테이트모던 이숙경 큐레이터, 두산갤러리 김종호 디렉터, 아시아문화개발원 이영철 전시예술감독이 강연을 맡은 첫 강좌는 전체 아카데미의 총론에 가까웠다. 적어도 미술에 있어서 1990년대부터 ‘세계화(globalization)’로 본격적 시작을 알린 국제교류 화두는 ‘대안적 세계화(alter globalization)’라는 동시대 담론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부정적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대안적 세계화의 견지에서 또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은 보다 다층적인 협력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최근의 국제교류 붐은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구체적으로 사회적 관계와 실천에 주목하는 경향을 따른다. 이숙경 큐레이터, 김종호 디렉터, 이영철 전시감독의 첫 회 강연은 그러한 국제교류의 변화하는 양상에 주목하고 있다.


이영철(아시아문화개발원 전시예술감독)의 강연 모습이영철(아시아문화개발원 전시예술감독)의 강연 모습

‘이숙경 큐레이터와 함께하는 기획콘서트’는 참여자들의 전시기획 경험과 사례를 중심으로 한 토론의 장이었으며, 이는 국제교류 아카데미를 시작하면서 참여자들의 관심과 쟁점을 공유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청중에서 나온 의견들을 요약해볼 때, 대다수가 적어도 동아시아 국가 및 그 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서구의 시각을 상당히 의식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그것을 충족시킬만한 큐레이팅 방식과 소통의 전략은 무엇인가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였다. 한 예로, 영국에서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 한 작가는 동양사상에 기반하고 있는 자신의 작업에 대한 타자들과의 소통 방식을 모색하고 있었으며, 그 연속선에서 한 미술평론가는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이해하는 서구의 편중된 시각으로 ‘정신성’에 대한 화두를 꺼내기도 했다. 이는 국제교류에 있어서 여전히 국가 정체성을 중요한 조건으로 규정하고 있는 안팎의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이숙경은 2007년 테이트 리버풀에서 기획했던 전시 《The Real Thing: Contemporary Art from China》를 예로 들면서, 타문화를 소개하고 접근하는 보다 새로운 방식을 제안했다. 당시 아이 웨이웨이를 비롯한 10여 명의 중국작가가 참여한 이 전시는 서구에 잘 알려진 차이 궈 창, 황용핑 등 디아스포라 작가들에 의한 중국 현대미술과는 차별성을 둔 것으로, 3년간의 리서치를 통해 중국에 살고 있는 젊은 작가들(참여작가 중 아이 웨이웨이를 제외하고 모두 1970년대 출생)만을 참여작가 리스트에 올렸다. 이숙경은 이 전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결국 국가 정체성에 앞서 지금 중요한 것은 하나의 문화권 안에서 작가 개인의 작품과 예술적 실천임을 강조했다. 그러한 작가에 대한 개별적인 관심이 결국 그가 속한 지역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지며, 이는 큐레이터를 비롯한 기획자들의 새로운 리서치를 통해서 상호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요컨대 모더니즘이 이룩한 거장(master)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시각으로 미술사를 끊임없이 재조명 하듯, 국가 정체성에 대한 편견은 실제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예술적 실천들에 주목하면서 보다 유연해 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편 김종호는 ‘국제교류 네트워크의 새로운 지형’이라는 주제로 한국 현대미술이 당면한 최근의 상황을 국제미술계 흐름에서 진단하고 국제교류 네트워크의 현주소를 소개했다. “현대미술을 주도하는 자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강연에서, 그는 국내미술계의 고질적인 폐쇄성과 콘텐츠의 부족을 자각하면서 이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들을 국제미술계의 동향에서 분석했다. 앞선 강연에서 이숙경이 강조했던 것과 같이, 김종호는 다양한 리서치를 통한 문화적․정신적 콘텐츠를 구축해야 할 것과 폐쇄성을 극복하기 위해 국내외 예술적 실천들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비평적 토대를 마련해야 함을 밝혔다. 또한 행정 편의에 맞춰진 국가 미술정책, 국공립미술관의 자율적 전시기획력의 부재, 국내 미술시장에 대한 낮은 신뢰도, 저널리즘의 담론 생성 미비, 국내 전문 인력의 국제적 경쟁력 부족 등은 국내 미술계의 체질 개선을 위한 시급한 과제로 제시됐다. 자칫 반복되는 원론적 분석에 그칠 수 있었으나, 각 항목마다 적절한 해외 사례들을 소개함으로써 참여자들이 간접적으로나마 경험의 폭을 넓혀 문제의식을 공유하기에는 충분했다.


김종호(두산갤러리 총괄디렉터)의 강연 모습김종호(두산갤러리 총괄디렉터)의 강연 모습

끝으로 ‘무엇이 문제인가, 현상 진단: 창작, 기획, 운영시스템’이라는 주제로 1990년대 이후 최근까지의 국제교류 현상을 진단한 이영철의 강연이 이어졌다. 이영철은 이미 1990년대 초반에 박모(박이소)와 함께 한국과 미국을 잇는 문화예술의 교통로를 마련했다. 뉴욕 퀸즈미술관과 국내 금호미술관 순회전으로 이어진 《태평양을 건너서》(1993~94)와 《제2회 광주비엔날레: 지구의 여백》(1997)에 공동기획자 및 예술감독으로 참여했던 이영철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세계화의 흐름을 감지했던 국제교류의 다양한 이슈들이 시의성 있게 지속되지 못한 원인을 미술정책 및 전시기획력에 두고 이를 진단했다. 이영철은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도시와 영상, 공장미술제,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백남준아트센터 개관 등에 참여해 국내에 새로운 전시 패러다임을 소개한 전시기획자로서의 역할이 컸다. 그는 1990년대 이후, 서구 미술계와의 온도차를 좁히기 위해 국내에서 서구의 문화연구를 통한 지식인들의 관심을 유발하는데 주력했다면, 이제 과거를 발판 삼아 보다 전문적인 진단과 처방이 필요한 때임을 역설했다.


세 개의 연속 강연에서 강조된 바와 같이, ‘또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은 세계화, 포스트콜로니얼리즘, 디아스포라, 대안적 세계화 등 끊임없이 생성되는 동시대 국제관계 및 타문화 담론들 속에서 중요한 화두로 다뤄져왔다. 1990년대부터 그러한 동시대미술의 지형을 나름 인식해왔던 국내 미술계에 최근 정부 차원의 국제교류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이미 세계는 서로의 문턱을 넘나들며 대화하고 있으며, 누구나 또 다른 세계에 말을 걸기 위해서는 그 문턱을 넘어야한다. 때문에 이번 <글로벌 현대예술 전문가 심화 아카데미>는 국제교류 정책의 일환으로 세계와 유연하게 대화할 수 있는 국내 미술전문가를 양성한다는데 의의가 있다. 잘 알다시피 이는 많은 시간과 재원이 필요한 일이기에 일관성 있는 정책과 전문적인 프로그램으로 지속․발전해갈 수 있기를 바란다.


글로벌 현대예술 전문가 심화 아카데미

일시: 2013.11.09. / 서구에서 보는 동아시아 시각예술
         2013.12.14. / 한-일 미술 국제교류
         2014.03.08. / 한-중 미술 국제교류
         2014.04.12. / 국내기반 한국미술의 해외 진출 전략
장소: 이성자기념관
주관: 홍익대학교 동아시아예술문화연구소
주최: 예술경영지원센터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글로벌 현대 예술 전문가 심화 아카데미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국제문화교류 전문인력 양성 사업인 'NEXT(Next Expert Training)'의 지원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안소연 / 미술평론가

홍익대학교 조소과 및 동대학원 예술학과 석사 졸업, 동대학원 미술비평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KBS <디지털 미술관> 방송작가로 근무했으며, 현재 홍익대학교 및 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자코메티의 초현실주의 오브제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재조명: 1930년대 초기 작품을 중심으로」(『현대미술사학』 제27집, 2010)가 있으며, 2012년 [아트인컬처] 주관 ‘뉴비전 평론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