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6일 ‘프로젝트 비아(Project VIA, 이하 비아)’의 2013년 사업을 갈무리하는 결과 공유 컨퍼런스가 대림미술관 D라운지에서 개최됐다. 시니어급 큐레이터의 지원이 부재했던 탓일까. 좀처럼 보기 힘든 ‘현장의 얼굴’들이 한꺼번에 등장해 이색풍경을 이뤘다. 약간은 상기된 분위기 속에서 유럽, 미주, 아시아, 핀란드, 미국, 영국 등 여섯 권역의 리서치 사례 발표와 단체 역량 강화 지원 프로그램 결과 발표가 차례로 이어졌고 마지막으로 ‘네트워킹, 그 이후'라는 주제로 종합토론이 열렸다. 5시간이 넘는 긴 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 종료 시점까지 자리를 뜨는 사람을 통 찾아볼 수 없었다. 이 프로그램이 현장 큐레이터들에게 ‘가뭄 속 단비’였음을 분명하게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큐레이터를 끌어당기는 비아의 매력은 아마도 큐레이토리얼 스터디에 대한 실용적인 이해가 밑바탕이 됐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과거, 일본 도쿄원더사이트(Tokyo Wonder Site)에 입주하고 있는 한 작가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레지던시 입주 기간 동안, 심지어 오픈스튜디오에서 조차 눈에 띄는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 놀랐던 기억이 있다. 기왕의 지원 제도가 항상 기획의도와, 예상되는 결과와, 기대 효과의 수미일관성을 부담스럽게 강요한다면, 비아의 경우, 실질적인 기획 능력이 있다고 생각되는(국․공립 소속 기획자를 제외한) 5년차 이상의 경력 기획자를 공모대상자로 한정해, 거의 ‘무목적'적으로 큐레이토리얼 스터디를 지원한다. 그러니까, ‘과정’이 의도이자 목적이자 결과라는 점이 여타 지원 사업과 비아의 분명한 차별점이다. 덕분에 프로젝트 참가자들은 높은 자유도 속에서 좀 더 자발적이고 창의적으로 조사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리서치 공유 발표를 들으며 그런 생각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먼저 이미혜 작가의 전시 아이디어를 리서치 방법론 삼아, 개인의 사소하고 직접적인 정보를 수집해 영국 아트씬을 매핑해보려 했던 김인선의 리서치 프로젝트는 참신한 접근 방법이 돋보였다. 또 ‘퍼블릭'에 관한 다양한 사례를 찾아서 미주로 여행을 떠난 김진주는 예정되지 않았던 남미까지 커버하며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일정 동안 무려 8개 이상의 기관을 소화해 내는 괴력을 과시했다. 아트 컨설턴트라는 자신의 직업적 관심의 일환으로 미술시장의 새로운 중심, 아랍에미리트에 다녀온 송희정의 관점은 신선했고, 핀란드를 방문해 다양한 협업적 프로덕션의 사례를 내밀하게 인터뷰한 양유진의 연구 성과는 알차보였다. NARS(New York Art Residency & Studio Foundation)과 RU(Residency Unlimited)을 견학한 이여운은 뉴욕미술의 힘이 결국 ‘네트워킹’에 의한 협력 관계에서 비롯됐다는 흥미로운 가설을 내놓았으며, 영국에 다녀온 심소미의 경우 전문 큐레이터답게 스스로의 리서치 여행을 적절히 ‘큐레이팅’하며, 당장 전시가 가능할 정도의 구체적인 사례를 수집해 왔다. 특히 ‘모바일 홈(Mobile Home)’ 프로젝트 리서치의 경우 결과물을 홈페이지 구축을 통해 공유할 예정이라고 밝혀 더욱 기대를 모았다. 참가자들은 공통적으로 비아의 지원이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반면, 제한적인 리서치 기간이 여행의 가장 아쉬운 점이라며 다 같이 입을 모았다. 필자 개인적으론, 다만 짧은 브리핑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필자는 앞서 비아의 덕목이 목적 없는 지원이라고 했는데, 사실 빠뜨린 대전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네트워킹, 그 이후'라는 컨퍼런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국제교류' 혹은 ‘네트워킹'이다. 앞서 언급한 모든 참가자는 협력 기관을 견학하고 관계자를 만났고, 새로운 작가와 기관을 발굴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사실, 비아의 공모 요강에는 “한국 미술의 국제화를 선도할 글로벌 기획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목적)”을 명시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왜, 어떻게 국제 네트워크를 만들어야만 하는가? 네트워크가 생겼다면 그 다음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마지막 종합토론에서 오갔다. 크게 봤을 때, 네트워킹은 마케팅이며 전략이기 때문에 수요자에 맞춰 공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실용적 입장의 의견이 제기됐으며, 생각이나 전시를 통해 자연스럽게 생기는 네트워크가 더욱 중요하다는 좀 더 원론적인 의견과 대립각을 이뤘다. (모르겠을 땐 역시 ‘둘 다’가 짱이라는 필자의 지론을 소심하게 괄호에 펼쳐본다.) 또 중장기적 안목으로 연구를 위한 리서치와 단기간에 홍보효과를 노리는 네트워킹을 분리해서 생각해야할 필요가 있는데, 비아의 경우 리서치에 좀 더 포커스가 맞춰져있지 않나, 하는 진단과 함께, 네트워킹을 위해서는 오히려 해외 큐레이터를 한국에 불러들이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나왔다. 한편, 비아의 프로젝트 결과물이 좀 더 적극적으로 공유되고 담론되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컨퍼런스에 참석한 모두가 공감했다.
본격적인 네트워킹이 가동된 것은 모든 컨퍼런스가 끝난 ‘이후'였던 것 같다. 예술경영지원센터 측에서 저녁식사를 제공함에 따라, 큐레이터들은 좀 더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관심사와 정보를 공유하고 토론했다. 프로젝트 참여자들에게 발제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청중의 모습도, 명함을 서로 나누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큐레이터란 말의 유래는 ‘뼈를 맞추는 사람'에서부터 왔다고 한다. 그러니까 부분을 조합해 전체상을 만든다는 뜻이다. 뼈 조각을 하나라도 더 찾으려는 현장 큐레이터의 노력들을 보면서 ‘네트워킹이 참, 별거구나’하고 혼자 뇌까렸다. 본 행사는 이렇게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고 총평하며 후기를 마칠까 한다.
경기창작센터와 경기도미술관의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를 거쳐 현재 월간 <퍼블릭아트>에서 기자로 재직 중이다. 비평 모임 ‘유능사’의 일원으로 웹진 <똑똑 커뮤니티와 아트(www.communityart.co.kr)>를) 편집․운영하고 있다. 이것저것 호기심이 많지만 파이팅은 그다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