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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트 Tate 심포지엄 ‘역사를 재고하며: 아시아 태평양 근현대 미술에서의 전통’

posted 2013.12.03

테이트 모던의 ‘테이트 아시아-태평양 미술연구소(Tate Research Centre: Asia-Pacific)’는 지난 10월 21일 ‘역사를 재고하며: 아시아 태평양 근현대 미술에서의 전통(Negotiating Histories: Traditions in Modern and Contemporary Asia-Pacific Art)’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아시아 근현대 미술의 역사와 전통의 의미를 재고해보고자 하는 이 심포지엄에는 한국, 중국, 일본, 싱가포르 및 영국, 미국 등에서 모인 총 10명의 연구자 및 큐레이터들이 발제자로 참여했다.




역사를 재고하며, 역사를 넘어서다

심포지엄 포스터_테이트 모던 스타 오디토리엄심포지엄 포스터_테이트 모던 스타 오디토리엄

심포지엄은 총 3부로 구성되었다. 1부에서는 ‘전통의 해석(Interpreting Traditions)‘이라는 타이틀로 일본과 중국 미술에서 전통의 해석 문제를 다룬 포괄적 논의들이, 2부에서는 ‘미디어의 재고(Rethinking Media)’를 주제로 비디오아트, 공예, 수묵화 등의 특정 매체와 전통의 문제를 다룬 보다 구체적인 논의들이 한중일 미술을 중심으로 다루어졌다. 3부 '현재의 맥락화(Contextualising the Present)'에서는 전통이라는 문제를 현재 시점에서 어떻게 맥락화할 것인가를 동남아시아와 중국 미술 및 큐레이팅 현장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 발표가 진행되었다. 연구자들의 발제 외에도 한중일 작가 세 팀의 영상작품 스크리닝과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 작가인 코키 타나카(Koki Tanaka)와 미술사 연구자이자 큐레이터인 밍 티앰포(Ming Tiampo)의 대담도 포함되어 다채롭게 구성된 행사였다.


이번 심포지엄을 주최한 테이트 아시아-태평양 미술연구소는 현재 테이트가 운영하고 있는 6개의 리서치 센터 중 하나다. 테이트는 영국 낭만주의 미술, 모더니즘, 미술관의 미래 등 근현대 미술에 걸친 다양한 주제에 관한 리서치 센터를 운영 중이며, 이 연구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테이트 아시아-태평양 미술연구소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근현대 미술에 관한 리서치, 자료수집, 출판, 작품소장, 전시 및 연구 활동의 지원을 목표로 2012년에 설립되었다. 설립 이후 처음 개최한 이번 대규모 행사는 센터의 운영방향 및 비전, 향후 행보 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중국 현대미술의 약진 돋보인 심포지엄


이번 심포지엄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중국미술 관련 연구발표가 5건으로 총 10건의 발표 중 절반을 차지하며 여전한 강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현재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큐레이터 외에도 독일과 영국 연구자들의 발표가 두루 포함되면서 중국 현대미술에 대한 글로벌한 관심의 정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 미술 관련 연구는 3건, 한국과 동남아시아 미술과 관련된 논의는 각 1건씩 발표되었다. 중국과 일본 미술에 발표가 집중된 만큼 두 나라의 현대미술 연구의 현황과 차이, 관심사 등을 자연스럽게 비교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따라서 파트별 주제와 순서에 따라 내용을 살펴보는 방식 외에 국가별 연구 현황을 묶어 살펴보는 것도 이번 심포지엄을 읽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중심으로 주목해볼 만한 발표의 내용을 정리해본다.


중국 미술과 관련한 대표적 논의들을 먼저 살펴보자. 큐레이터 캐롤 잉후아 루(Carol Yinghua Lu)는 최근 중국 현대미술의 전시 경향이나 미술사 서술이 특정 미술 운동을 부각시키거나 영웅적인 작가상을 만들어냄으로써 단선적 미술사를 서술하는 것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다양성과 우연성 같은 요소들이 포함된 다층적 역사서술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노팅엄 대학의 폴 글래즈톤(Paul Gladston)은 1970년대 이후 중국 현대미술이 전통적 요소와 서구 모더니즘 및 포스트모더니즘과의 혼성성을 뚜렷하게 드러내는데도 불구하고 서구의 영향을 부정하며 중국성만을 강조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면서, 중국 미술비평에 대한 보다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제안했다. 두 사람의 발표뿐 아니라 중국 미술에 관한 논의 중 상당수는 중국 현대미술이 중국적 전통과 서구미술의 영향, 개인성과 집단적 이데올로기 등 다양한 맥락들이 얽혀 있음을 외면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규정된 전통 개념만을 중국미술의 지향점으로 강요하는 현실을 비판했다. 공통적으로 다양성과 혼성성에 관한 논의를 차단하는 중국 내 상황을 지적하고, 다른 관점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었다.




테이트 모던에서 아시아를 논하다.


왼쪽에서부터 니시 쿠라, 유코 기쿠치, 우정아, 앤 아다치, 마크 고드프레이_2부 디스커션왼쪽에서부터 니시 쿠라, 유코 기쿠치, 우정아, 앤 아다치, 마크 고드프레이_2부 디스커션

일본 미술과 관련해서는 MoMA의 리서치 프로그램 CMAP의 코디네이터 앤 아다치(Ann Adachi)의 발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아다치는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 비디오가 신생매체였을 무렵, 일본과 미국의 비디오 아트가 동일한 출발점에서 시작되었음을 먼저 밝힌다. 그러나 미국은 비디오 아트를 대학과 미술관의 연구 영역에 포함시키고 아카이브를 설립하여 보존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한 반면, 일본은 기관 차원의 적극적 대응이 부재한 결과 현재 비디오 아트 역사의 주도권을 미국이 갖게 되었음을 지적했다. 이 연구는 문화의 보존과 주도권 확보에 있어 국가와 기관의 노력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보여주는 것으로, 수많은 아시아 현대미술관들보다 발 빠르게 아시아 리서치 센터를 설립한 영국의 테이트 모던 심포지엄에서 발표되었다는 점이 인상 깊다. 또한 단순히 과거 일본과 미국의 비디오 아트 역사에 국한되는 논의가 아니라 현재 아시아 미술계 전반에 시사점을 던지는 내용이었다.


마지막으로 한국과 동남아시아 미술 관련 발표를 간단히 살펴보면, 한국의 포항공대 우정아 교수는 최정화 작가가 1980년대에 플라스틱이라는 매체를 사용하게 된 계기가 전통보다는 당대 현실을 다루기 위해서였으나,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로 20년이 지난 현재에는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작품이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매체로 인식되게 된 변화를 발표 주제로 삼았다. 싱가포르 내셔널 아트 갤러리의 큐레이터 아델 탄(Adele Tan)은 동남아시아 미술에 있어 전통은 예술가의 미학적 전략 도구이면서 미술사학자나 큐레이터들에게는 서구미술과는 다른 동남아시아 미술의 차이를 보여주는 장치로 사용되고 있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2013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 작가 코키 타나카(Koki Tanaka)와 미술사가, 큐레이터인 밍 티앰포(Ming Tiampo)의 대담2013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 작가 코키 타나카(Koki Tanaka)와 미술사가, 큐레이터인 밍 티앰포(Ming Tiampo)의 대담

심포지엄 타이틀인 ‘역사를 재고하며(Negotiating Histories)’는 역사를 다룬다는 일반적 의미와 더불어 역사를 넘어선다는 중의적 의미를 갖는다. 전통과 모더니티의 긴장 관계를 통해 형성되어온 아시아 근현대미술이 처한 공통적 상황을 포괄할 수 있는 주제이자 테이트 아시아-태평양 미술연구소의 첫 행보로서 아시아 미술 전반을 아우르기에 적합한 주제였다. 아시아 연구자들에게는 이미 많이 다뤄진 익숙한 내용이기는 했으나 보다 다양하고 심도 있는 주제들은 향후 리서치 센터의 다양한 실험 속에서 다루어질 것으로 기대해본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발표의 내용보다도 오히려 테이트 아시아-태평양 미술연구소라는 타이틀 아래 아시아와 유럽, 미국 등 전 세계에서 모여든 아시아 미술 연구자와 큐레이터들이 네트워크 플랫폼을 구축하는 현장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테이트 아시아-태평양 미술연구소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주목해봐야 할 지점은, 다양한 형식으로 축적될 연구 성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축적된 네트워크를 통해 향후 이 리서치 센터가 아시아미술에 어떤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인가에 있다고 할 것이다.


[사진제공]이태훈

전유신 / 독립큐레이터

전유신은 성신여대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과정 졸업 및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3년부터 이응노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아르코미술관 등에서 큐레이터로 일했으며, 현재는 독립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 전시기획으로는 아르코미술관에서의《인터뷰(Interview & Artists as an Interviewer)》,《비디오+캐스트(Video+Cast)》 등이 있으며, 최근 「한국현대미술과 글로컬리즘(glocalism)」, 「양혜규와 마르그리트 뒤라스, 여성적 글쓰기」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