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더이트로는 대안공안의 현황 진단과 새로운 모색들을 탐구하며 다양한 공간의 새로운 시도들을 살펴보았다. 2월 더아트로에서는 예술가와 예술 활동을 매개로 하는 공간과 그러한 공간들에 대한 디스커션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작가들의 상호교류의 장이자 실험실 역할을 자처하는 대림미술관의 프로젝트 스페이스 '구슬모아 당구장' 을 뉴욕 'MoMAP.S.1'과의 비교를 통해 그 역할과 기대를 제시한 전문가의 의견과 도쿄 퍼포먼스 아트마켓 디스커션 프로그램에서 다룬 특별한 미술관과 아트센터들의 사례탐구 리뷰를 소개한다.
-"예술"을 통해"세계"를 반영하는 공간-특별한 미술관, 아트센터들의 사례 탐구
일본 퍼포먼스 아트의 주요한 흐름을 소개하고 국제적인 퍼포밍 아트 전문가들의 교류의 장을 지향하고 있는 티팜(TPAM in Yokohama 2013)에 다녀왔다. 1995년부터 시작된 이 행사는 작품의 쇼케이스 뿐 아니라 다양한 네트워크 프로그램과 미팅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2011년부터는 도쿄 퍼포먼스 아트마켓(TPAM)에서 도쿄 퍼포먼스 아트미팅(TPAM)으로 행사의 의미를 네트워킹과 교류로 포커스를 맞추고 그 장소를 요코하마로 이동하여 개최하고 있다. 필자가 참석한 토론 프로그램은 9일간의 행사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2월 17일)에 열렸는데 ‘“예술”을 통해 “세계”를 반영하는 공간(Spaces that Reflect “the World” through “Art” ? Activities of Unique Museums and Art Centers)’이라는 조금 ‘거창한’ 제목으로 미술관과 아트센터들의 퍼포먼스 프로그램 현황, 그리고 각 공간들이 담고자 하는 예술의 비전 등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이번 토론 프로그램은 특정한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그 작가의 예술적, 정신적 유산과 현대예술이 결합된 활동을 소개하는 특정한 예술가를 다루는 미술관(마루키갤러리, 백남준아트센터)과 시각예술을 포함한 다 장르의 예술을 소개하는 새로운 형식의 복합문화공간(빈자보드 센터 포 컨템포러리 아트Winzavod Center for Contemporary Art, 아트센터 타만 이스마일 마루키 The art center Taman Ismail Maruki(TIM))가 지향하는 예술의 비전, 디지털 미디어 환경과 인간, 그리고 예술을 다루는 쿨트라 디지털 인 멕시코 시티 (Cultura Digital in Mexico City)를 소개하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그중 가장 흥미로웠던 발제는 큐레이터 유키노리 오카무라(Yukinori Okamura)가 소개한 2012년 마루키갤러리에서 열린 침↑폼의 전시와 퍼포먼스에 대한 것이었다. 마루키갤러리(Maruki Gallery for the Hiroshima Panels)는 이리 마루키(Iri Maruki)와 토시 마루키(Toshi Maruki) 부부가 30년간 그린 ‘히로시마 판넬(Horoshima Panels)’을 영구적으로 소장하고 전시하는 공간이다. ’히로시마 판넬‘은 히로시마 출신의 부부가 1945년 원폭이 터지고 삼일 후 히로시마에 와서 그 피해 상황을 눈으로 보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삼십년간 그린 15개의 판넬이다. 이 공간은 이로써 원폭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그로인해 예술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공간으로 유명하다. 이런 강력한 역사적 정치적 맥락을 가진 공간에서 최근 일본의 논쟁적인 작가 ’침↑폼 (Chim↑Pom)의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큐레이터에 따르면 이 전시는 침↑폼 작가 중 한명이 3.11 사태 이후 후쿠시마 원전 복구를 위한 아르바이트를 통해 번 돈이 일부 예산으로 사용되었으며, 그 원전에서 일한 영상 역시 전시에서 소개되었다.
침↑폼은 몇 년 전 히로시마의 원폭 피해 건물 하늘 위에 “Pika!(일본어로 ‘반짝’이라는 단어)" 라는 단어를 새긴 사진을 히로시마에 전시함으로써 원폭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의 질타를 받았었다. 당시 원폭을 어린아이 장난처럼 다루는 전후 세대의 철없음으로 여겨졌던 그들의 예술 활동은 3.11 이후 과연 누가 핵의 위험함을 잊었던가 라는 질문을 야기시켰다. 히로시마 전시 전에 그들은 일본의 전설적인 작가 타로 오카모토(Taro Okamoto)가 그린 시부야 역의 벽화 <내일의 신화(Myth of Tomorrow)>의 귀퉁이에 후쿠시마 원전 1호 그림을 삽입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작가들의 현재인식과 표현이 마루키 갤러리의 역사적 맥락과 만나면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그 질문들을 통한 반성은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필자가 발제한 백남준아트센터에 대한 사례는 선구적인 작가의 정신적 ‘유산’이 현대 예술과 만나는 지점에 대한 탐구였다. 직접적으로 정치적이지 않지만 시대의 아방가르드 정신을 담보하는 작가 백남준의 음악, 설치, 사운드, 해프닝, 퍼포먼스, 전자 텔레비전에 대한 관심들은 기존의 예술언어를 거부하고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였으며 그러한 정신적 유산은 백남준아트센터가 언제나 ‘현재적’이고 ‘진행중’인 새로운 예술을 소개하는 밑거름이 된다. 이러한 역학 관계 안에서 백남준아트센터는 단순히 한 작가의 이름을 기념하는 공간을 넘어 미술관을 베이스로 하는 퍼포먼스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는 플랫폼으로서의 입지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세 번째 발제인 안나 벨라예프(Anna Belyaeva)는 ‘빈자보드 센터 포 컨템포러리 아트(Winzavod Center for Contemporary Art)의 퍼포먼스 큐레이터로서, 빈자보드에서 행하는 퍼포머스 프로젝트인 ’플랫폼(Platform)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했다. 빈자보드는 와인 저장고라는 뜻으로 모스크바의 대규모 와인 저장고를 개조해 만든 예술센터이다. 2011년 10월부터 시작된 플랫폼 프로젝트는 씨어터/댄스/음악/미디어 아트 학교들과 결합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디렉터와 배우들, 극작가들, 안무가들, 작곡가들에게 장르 크로스의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현재 러시아 현대 퍼포먼스를 제작하고 소개하는데 있어 가장 어려운 점은 검열의 문제 그리고 세관과 관련된 일들이라고 한다. 아직은 문화적으로 고전 예술에 비해 명성을 얻지 못하고 있는 러시아 현대 예술의 현 주소와 문화인력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자카르타 예술위원회의 프로그램 디렉터 데위 노비아미(Dewi Noviami)는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 국가, 자카르타 도시가 갖고 있는 인구밀집, 종교, 지형적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발제를 시작했다. 자카르타 예술위원회는 자카르타 예술 활동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아트센터 타만 이스마일 마루키(the art center Taman Ismail Maruki(TIM)를 운영하는 조직으로 음악, 필름, 극장, 시각예술, 댄스, 문학 6개의 위원회로 구성되어 있다. 인도네시아의 유명한 작곡가 이스마일 마루키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이 복합 문화공간에서는 거의 매일 상영과 전시, 워크숍, 공연 등이 이뤄지고 있으며 예술위원회는 아트센터를 지원하고 자카르타를 새로운 문화 도시로 만드는데 노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미디어 아트센터라고 할수 있는 멕시코 시티 디지털 센터(Centro de Cultura Digital in Mexico City)의 프로그램 어드바이저 마리아나 아르테가(Mariana Artega)는 최근 진행했던 커뮤니티 프로젝트를 실례로 디지털 센터의 지향점에 대해 설명했다. 생긴지 1년을 겨우 넘긴 이 문화 공간은 정부가 지원하는 거대한 프로젝트로 첨단 디지털 기술이 아닌디지털 환경에 놓인 인간의 삶에 대해 탐구하는 기관을 지향한다.
결론적으로 서로 다른 성격과 규모,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문화공간들을 한 주제 안에서 포섭하여 논쟁을 끌어들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논의의 제목과 같이 서로 다른 정치경제적 상황, 지리적 상황에 놓인 문화기관들이 예술을 통해 세계를 어떻게 표현하고 관객에게 발신하고 있는지 참고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이러한 레퍼런스들이 TPAM에 참석한 많은 문화기획자들에게 새로운 기획과 상호교류의 단초가 된다면 그 또한 이 토론의 주요한 성과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