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행사

Curating in Asia 01

posted 2012.12.21

2012년 12월5일 컨퍼런스가 대림미술관 D라운지에서 개최되었다. 더아트로의 첫 오프라인 행사인 는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어온 국제적인 프로젝트를 공유하고 아시아 현대미술의 이슈를 논의하는 자리로 해외 큐레이터 5인, 국내 큐레이터 5인, 신진 큐레이터 5인을 중심으로 참가 등록자들과 토론그룹을 구성하여 동시대 키워드를 토론하는 열린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네트워크 활성화를 지향하며 기획된 이번 프로젝트는 일회성 컨퍼런스와 차별화된 한 달간의 사전 리서치 랩과 초청기간 동안의 워크숍, 컨퍼런스를 병행 구성하여 사전 협업구조를 통해 보다 심층적이고 입체적인 담론 형식 및 중장기 프로젝트의 협력 방안도 논의하였다. 더아트로는 12월 한 해를 마무리하며 아시아-퍼시픽 지역의 큐레이터들이 모여 아시아에서의 큐레이팅에 대해 뜨겁개 논의했던 5일간의 워크샵, 컨퍼런스를 모더레이터와 신진 큐레이터 자격으로 참여한 3인의 필자를 통해 기획에서 커퍼런스 진행까지의 현장을 소개한다.




파일럿 프로젝트로 거듭나는 큐레이터들의 만남-의 끝의 시작


“축하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멋진 시간 함께 해서 좋았어요.” 모리 미술관 큐레이터 나츠미 아라키(Natsumi Araki) 나츠미  아라키(Natsumi  Araki) 는 헤어지면서 이렇게 전했다. ‘축하해요’라는 말은 프로젝트를 기획한 사람이 받는 가장 기분 좋은 인사이다. 그리고 엄청난 한파와 폭설 속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며 느꼈던 긴장이 모두 풀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Curating in Asia] 컨퍼런스, 대림미술관 D라운지(2012.12.5)
[Curating in Asia] 컨퍼런스, 대림미술관 D라운지(2012.12.5)

해외 큐레이터들은 한결같이 한국 큐레이터들의 선정기준에 관해 궁금해 했다. 나름대로 한국 미술계에 대한 관심이 있던 해외 큐레이터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안공간 루프의 서진석 대표를 제외하고 그들이 만나게 된 한국 큐레이터들은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큐레이터들끼리도 사립미술관협회나 한국박물관협회의 행사가 아닌 다음에야 이렇게 한자리에서 함께 프로젝트를 할 기회가 없던 차였다. 게다가 기관 큐레이터를 중심으로 뽑았기 때문에 해외 큐레이터들이 국제행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이들은 아니었다. 기업의 후원을 받으며 그 성격을 잘 지키면서도 전시 자체의 완성도와의 밸런스를 잘 맞추는 코리아나 미술관의 배명지 큐레이터, 과학과 예술이라는 융복합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개발해 오고 있는 사비나 미술관의 강재현 큐레이터, 그리고 다양한 현대미술실험을 해오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이수연 큐레이터 모두 각 기관에서 기관의 성격을 분명하게 가지고 가면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는 큐레이터들이었지만, 현실적인 상황에서 그들이 국제무대에서 해외 큐레이터들과의 협업을 진행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좀 더 섬세하게 들여다본다면 기관의 큐레이터들이야말로 지속적인 네크워크를 구축하기에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독립큐레이터들에 비할 때 기관 큐레이터들은 우선 전시를 할 수 있는 공간과 스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보다 안정적인 협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기관 큐레이터들의 국제교류활동이 저조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Curating in Asia]는 본격적으로 기관을 기반으로 하는 협업을 만들어볼 만한 좋은 기회였다.


[Curating in Asia]가 그동안의 컨퍼런스 기획과 차별되는 지점은 신진큐레이터들과의 네트워크 구축이었다. 현장에 있다 보면 큐레이터가 되고 싶다는 후배들이 많다. 하지만, 실제 큐레이터의 업무가 어떻게 되는지, 어떤 큐레이터들이 기관에 있는지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신진큐레이터 5명, 해외 큐레이터 5명, 그리고 국내 큐레이터 5명의 초청하여, 신진 큐레이터 1인이 해외 큐레이터 1인, 그리고 국내 큐레이터 1인의 프로젝트들을 리서치하고, 함께 리뷰하는 시간을 갖도록 했다. 해외 큐레이터들의 프로젝트를 사전에 리뷰한다는 것도 좋았지만, 국내 큐레이터들의 프로젝트를 기획의도에서부터 함께 들을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상당히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외에도 신진 큐레이터들은 해외 큐레이터들의 입국에서 출국까지 1대1로 함께 다니면서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궁금증이라던가 해외 동향들을 곁에서 들을 수 있도록 했다. 해외 큐레이터들 역시 신진큐레이터들과의 만남이 신선했으며, 선배 큐레이터로서 조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좋았다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어쩌면 이번 프로젝트의 최대 수혜자는 이제 막 큐레이터의 현장에 발을 딛는 신진 큐레이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팀웍이 상당했다.



Curating in Asia 워크숍 Day1, 토탈미술관(2012.12.3)
Curating in Asia 워크숍 Day1, 토탈미술관(2012.12.3)

Curating in Asia 워크숍 Day2, 예술가의 집(2012.12.4)
Curating in Asia 워크숍 Day2, 예술가의 집(2012.12.4)

프로젝트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따뜻한 여운이 남는 것은 해외 큐레이터들의 적극적인 참여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참여의사를 밝혔음은 물론이고 신진 큐레이터나 국내 큐레이터, 그리고 한국의 미술현장에 대해 큰 관심과 호기심을 보이고 모든 일정에 적극적이었다. 아침 10시부터 시작하여 저녁까지 빡빡하게 이어지는 일정에 자유시간이 거의 없었으니 먼 길을 찾은 큐레이터의 입장에서는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웃으며 모든 시간을 함께 해 주었던 해외 참가자들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이 프로젝트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도의 히말라야에서 [e-크리에이티비티 카니발] (Carnival of e-Creativity. CeC)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샹카 바루아(Shankar Barua). 그의 열정적인 프로젝트 기획은 모든 참가자들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미팅 포인츠] (Meeting Points)를 통해서 중동의 작가들을 소개하고, 이와 관련된 다양한 담론들을 펼쳐 보이고, 그 담론의 널리 전하는 비엔날레 프로젝트를 기획한 타렉 아부 엘 페투(Tarek Abu El Petouh)의 아이디어와 추진력 역시 흥미로웠다. 이처럼 새로운 형식의 도입과 실험적인 프로젝트로 흥미를 끄는 큐레이터들이 있었는가 하면, 싱가폴미술관의 관장이자 내년 싱가폴 비엔날레를 책임지고 있는 탄 분 후이(Tan Boon Hui), 모리미술관에 있으면서 자신의 색깔이 분명한 전시들을 꼼꼼히 기획하면서 해외 네트워크를 견실하게 구축해가고 있는 나츠미 아라키(Natsumi Araki) 나츠미  아라키(Natsumi  Araki) 와 호주 ACMI의 전 수석 큐레이터였으며, 최근에는 독립기획자로 활동하며 미디어아트, 퍼포밍 아트에 관한 프로젝트를 기획중인 알렉시오 카발라로(Alessio Cavallaro)의 프레젠테이션은 기관에 있으면서 어떻게 큐레이터로서의 비전을 실현해 내고, 기관의 미션과 균형을 이룰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볼만한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그러나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경험 중 하나를 꼽으라면 아마도 공개 컨퍼런스에서의 그룹토론시간이었다. 이 역시 일반적인 질의응답시간에서 숙연해지는(?) 분위기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것이었다. 가급적 발표자의 시간을 줄이고, 참석한 관객들과 발제자들이 함께 자리를 하여 토론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보자는 기획이었다. 물론 토론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이 과연 우리의 기획에 응해 줄 것인지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흰 눈이 펑펑 내리는 (예쁘지만)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늦은 오후까지 남아서 참가자들과 그룹 토론에 임하는 관객들의 얼굴에는 진지함이 가득했다. 발표자들에게 개별적으로 자기소개를 하고,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예상보다 토론도 활기차게 이루어졌다. 그동안 우리 청중들이 그렇게 조용했던 것은 지금까지 그들에게 제대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청중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는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6~10명으로 이루어진 그룹 토론 자리를 통해 컨퍼런스를 찾았던 청중들의 관심사를 알 수 있었으며, 단상에서 발표하던 발표자들에게 좀 더 개인적인 질문을 펼칠 수 있었다.



[Curating in Asia] 컨퍼런스 그룹토의 모습 1
[Curating in Asia] 컨퍼런스 그룹토의 모습 1

[Curating in Asia] 컨퍼런스 그룹토의 모습 2
[Curating in Asia] 컨퍼런스 그룹토의 모습 2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그래서 과연 [Curating in Asia] 제목에서 말하는 ‘아시아에서 큐레이터로 일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결론을 기대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한국현대미술의 글로컬리즘에 관한 컨퍼런스라는 거창한 부제를 보고 글로컬리즘에 대한 해답을 원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다. 글로컬리즘이니, 아시아성이니 하는 이야기들은 이미 많은 학회나 모임들에서 논의 되었던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정답을 기대하기 어려운 학술적인 논의라고 생각한다. 이번 큐레이터들의 모임은 학술적인 답을 찾자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독특한 지형 안에서 어떻게 현대미술과 관객이 소통하게 하고 있느냐에 대한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1차 프로젝트가 끝난 지금도 ‘글로컬리즘’이라던가 ‘아시아성’에 대한 명확한 답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한 용어를 규정하는 일이 큐레이터의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시아의 각 지역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우리가 얻은 교훈은 우리가 만나는 관객은 유럽을 비롯한 서구의 관객들과는 참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교육환경, 삶의 환경 등등. 이렇게 다른 배경을 가진 관객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다른 전략이 필요하고, 다른 소통의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 그것이 바로 아시아에서의 큐레이터들이 가지고 있는 특이점이자 어쩌면 큰 장점이기도 할 것 같다.


마지막 일정으로 인천아트 플랫폼을 방문하기 위해 들렀던 날 저녁. 차이나타운의 한 중국집에서 함께 했던 시간들을 리뷰했다. 그리고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그저 공허한 수다에 머무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 뭔가 다음 프로젝트를 위한 아이디어를 나누었다. 그저 만나 서로를 알게 된 것 그 이상, 앞으로 함께 할 수 있는 파일럿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모두 동의했다. 프로젝트의 결과보고를 앞둔 지금도 신진 큐레이터들과 진행팀, 한국큐레이터들은 카카오톡으로 가끔 연락을 주고 받는다. 큰 비용이 들지 않아도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나왔고, 그 중 한 두 개는 곧 진행될 예정이다. [Curating in Asia]는 끝났지만, 그 끝에서 파일럿 프로젝트를 기획하면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다음 시작에 설레고 있다.

신보슬 / 토탈미술관 큐레이터

이화여대 철학과, 홍익대 미학과 석사를 거쳐 현재 동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1997년 미술현장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으면, 지금까지 다양한 형식의 전시 및 프로젝트를 기획해왔다. 2000년 아트센터 나비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미디어아트 분야의 전문성을 띤 큐레이터로 활동을 시작했다. 2004년에는 제4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 비엔날레(《디지털 호모루덴스》) 전시팀장, 2005년 의정부 디지털아트페스티벌(《디지털 플레이그라운드》) 큐레이터를 맡았으며, 2005년 독일 베를린의 《트렌스미디알레(transmediale)》, 런던 골드스미스에서의 《창조적 진화(Creative Evolution)》, 인도 델리에서의 제1회 CeC&CaC 등 국내외 미디어아트 관련 학술행사 및 전시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독일 뷔템베르크 쿤스트페어라인 슈트트가르트에서 개최된 《On_Difference》(2005),《Re-designing the East》(2010, 독일, 인도, 헝가리, 체코, 태국 공동기획), 《Acts of Voicing》(2012, 독일, 프랑스, 인도, 홍콩 등 10개국 큐레이터 공동기획)과 같은 국제전시에 공동 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미디어아트뿐 아니라 현대미술 전방위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