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예술분야 기획, 매개인력의 해외 리서치를 지원하는 ‘프로젝트 비아’의 결과공유 워크숍 ‘비아 살롱’이 지난 12월 14일 개최되었다. 이번 비아살롱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 프로젝트비아가 2017년 지원한 각 프로그램 참여자들의 리서치 결과 발표를 통해 해외 미술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이 기사는 비아살롱의 두 번째 세션 ‘미술시장과 아트페어’에서 활발하게 논의된 상하이 아트페어와 아트바젤, 그리고 아시아 미술시장의 현황을 담았다.
‘미술작품 판매를 위한 대규모 전시행사’를 일컫는 아트페어는 국내에서 1970년대에 시작됐지만,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었다. 어느덧 국내에서 아트페어가 새로운 작품판매 방식으로 자리를 잡은 지도 약 15년에 접어든다. 작품판매 금액을 기준으로 보면, 여전히 전통적 작품판매 방식인 화랑전시를 통한 판매가 전체의 60%, 아트페어는 16%를 차지한다. 하지만 판매 작품수로 따지면, 전체 작품판매에서 화랑에서의 판매는 약 27%, 아트페어를 통한 판매는 무려 37%에 이른다. (‘2016 미술시장 실태조사’, 예술경영지원센터 발간)
〈프로젝트 비아 공개세미나: 비아살롱〉의 2부 프로그램인 ‘미술시장과 아트페어’는 이처럼 중요한 작품판매 창구로 자리 잡은 아트페어를 중심으로 현 미술시장의 상황을 진단하는 자리였다. 김종헌 ArtDotz 대표는 최근 아시아 미술시장의 신흥강자로 떠오른 상하이 아트페어를 소개했고, 주은영 AMC LAB 이사는 최고의 아트페어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아트바젤의 성공전략을 발표했다. 마지막 강연자는 하우저 앤 워스(Hauser&Wirth) 갤러리의 시니어 디렉터 리신 차이(Lihsin Tsai)로 그는 글로벌 갤러리의 관점에서 본 아시아 미술시장에 대한 생생한 견해를 들려줬다.
아시아 미술을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사이트 아트 레이더(Art Radar)는 2017년 11월 상하이에서 열린 두 개의 주요 아트페어가 끝난 직후, ‘상하이 아트페어가 전 세계 갤러리를 끌어들이며, 상하이는 동아시아 미술허브로서의 명성을 이어나갔다’라고 헤드라인을 뽑았다. 여기서 두 개의 주요 아트페어란 웨스트 번드 아트 & 디자인(West Bund Art & Design, 이하 웨스트 번드 아트페어)과 아트021 상하이 컨템포러리 아트페어(Art021 Shanghai Contemporary Art Fair, 이하 021 아트페어)를 말한다. 웨스트 번드 아트페어는 2014년에 시작되어 올해 4회를 맞았으며, 17개국에서 70개의 갤러리가 참여했다. 021 아트페어는 2013년에 만들어졌고, 11개국에서 104개의 갤러리가 참여했다. 두 아트페어는 마치 경쟁하듯 미술허브로서의 잠재력을 뽐내고 있는데, 우선 참여 갤러리의 면면이 그러하다. 웨스트 번드 아트페어의 경우 아라리오를 비롯해서 하우저 앤 워스, 페이스(Pace), 페로탱(Perrotin), 펄램(Pearl Lam), 화이트 큐브(White Cube), 데이비드 즈위너(David Zwirner) 갤러리 등이 참여했으며, 021 아트페어에는 국제, 아라리오를 비롯하여 가고시안(Gagosian), 크린징어(Krinzinger), 말보로(Marlborough Fine Art), 페로탱 갤러리 등 세계 정상급 갤러리들이 참여했다.
김종헌 대표는 이같이 상하이 아트페어가 짧은 시간 내에 세계적인 갤러리들을 끌어 모을 수 있었던 원동력을 단순히 아트페어라는 단일 행사에서만 찾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우선 상하이 미술시장의 발전은 중국의 경제성장과 긴밀하게 연동된다. 2016년 기준, 상하이의 인구는 2,173만 명이며, 이 중 백만장자는 16만 6천명으로 세계 6위에 해당한다. 상하이 인구의 경제력상승과 함께 2000년대 이후 상하이 레드타운(Shanghai Red Town) 및 M50 등의 복합예술단지가 활성화된 것 등이 상하이 미술시장의 급성장을 떠받치고 있다. 김 대표는 상하이 미술시장의 성장에 중국정부의 정책이 끼친 영향력을 빼놓지 않았다. 상하이 시는 웨스트 번드 지역을 문화특구로 만들기 위해 웨스트 번드 아트페어를 설립했고, 롱뮤지엄(Long Museum), 유즈 뮤지엄(Yuz Museum), 상하이 파워 스테이션(Shanghai Power Station), 탱크 상하이(Tank Shanghai) 등을 유치했으며, 상하이 자유무역항 정책도 추진 중이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 속에, 시작한지 불과 5년 남짓한 상하이의 두 아트페어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김 대표는 “크리스티와 소더비라는 양대 국제 경매회사가 분점을 낸 곳이 홍콩이고, 미국과 유럽의 주요 글로벌 갤러리들이 아시아 분점을 내는 곳 역시 홍콩”이라며 상하이는 애초에 다른 노선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5월에 해당하는 봄의 홍콩이 글로벌 아트 비즈니스의 달이라면, 가을의 상하이는 중국 내륙의 관문 격으로 해외의 크리에이터들과 미술관 관계자들을 상하이로 불러들여, 갤러리, 미술관, 지역 작가들의 협업을 보여주는 교류의 달”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그는 웨스트 번드 아트페어와 021 아트페어를 ’다섯 세력 모형 분석(Porter’s Five Forces Model)’을 적용해서 분석했다. 다섯 세력이란 1) 참여자간의 경쟁 2) 공급자의 힘 3) 콜렉터의 힘 4) 대체 가능 여부 5) 진입장벽 이다. 첫째, 두 페어는 라이벌이면서도 각자의 독창성을 갖고 있는데, 웨스트 번드 페어의 경우 초대받은 유수의 갤러리만 참여하는 단순한 구조를 갖고 있다면 021 아트페어는 브랜드 정체성 면에서 젊은 감각의 브랜드 홍보 및 마케팅의 분업 시스템이 돋보인다. 둘째, 웨스트 번드 아트페어의 경우 공급자인 갤러리들이 2016년에 참여한 후, 참여 갤러리 100%가 2017년에 재참여했으며, 021 아트페어의 경우, 매년 200여개 이상의 갤러리들이 참가신청서를 제출하고 있다. 셋째, 콜렉터의 힘은 단연 작품구매 기록으로 드러나는데, 웨스트 번드 아트페어에서는 리손 갤러리(Lisson)의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의 작품, Spire(2014)가 약 백만 파운드(약 14억 6천만 원)에 판매되었고, 021 아트페어에서는 런던 말보로 갤러리가 내놓은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작품(“Study from the Human Body – Figure in Movement”,1982)이 2천만 위안(약 33억 원)에 판매되었다. 넷째와 다섯째 항목에 있어서 김 대표는 두 아트페어 모두 단기간에 성장한 저력을 보여준 데다 옥션, 미술관, 갤러리들간의 협업이 일궈낸 산물이기에 타 행사에 의해 쉽사리 대체되기 어렵고, 두 페어 모두 중국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기에 신생 아트페어가 들어올 확률도 낮다고 평가했다.
두 번째 강연자인 주은영 이사는 아트페어가 단순한 작품판매의 채널이 아니며 갤러리의 비즈니스 모델까지 변화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만큼 아트페어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인터내셔널 페어 리포트 2016’(International Fair Report 2016, The Art Newspaper 발간)에 따르면, 지난 15년간, 전 세계적으로도 아트페어는 급증했다. 북아메리카, 중앙아메리카에서는 2005년 49건이던 아트페어가 2015년 105건으로 2배가 되었고, 유럽과 러시아의 경우 51건에서 128건으로, 아시아와 호주 역시 3건에서 21건으로 비약적으로 늘었다. 마찬가지로 국내에서도 아트페어는 2008년 29개에서 2015년에는 41개로 늘었다.(‘미술시장 실태조사‘)
갤러리 AMC Lab을 운영하고 있기도 한 주 이사는 “이제 갤러리들에게 아트페어는 단순히 작품 판매 채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규 고객을 개발하고, 국제 미술계의 주요 플레이어들과 교류하며, 자신들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자신들의 작가를 홍보하는 장이다”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아트바젤은 “갤러리들의 꿈”이자, 아트페어가 가진 최고의 잠재력이 실현되는 장이다. 2017년에 48회째를 맞은 아트바젤에는 35개국, 291개의 갤러리가 참여했는데, “세계 유수의 갤러리들이 가장 좋은 작품들은 아트바젤에서 선보이기 위해 보관하고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트바젤은 갤러리들이 가장 좋은 작품들과 기획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곳”이다. 일례로 데이비드 즈위너 갤러리의 경우 총 1억 달러(약 1,000억 원)어치의 작업을 선보였다고 한다. 주 이사는 “세계 최고 갤러리들이 베스트 작품들을 선보이며 총력을 다 하고 있기 때문에 아트바젤은 그 해 미술시장에서 가장 핫 한 작가가 누구인지, 미술시장 트렌드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알려주는 바로미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술시장 트렌드의 척도로써의 역할 외에도 주 이사가 꼽는 아트바젤이 세계 1위 아트페어인 비결은 탁월한 기획 프로그램이다. 최정상 갤러리들로 채워지는 메인 부스인 갤러리즈 섹터 외에도, 2000년부터 시작된 언리미티드 섹터(Unlimited Sector)는 미술관 급 규모의 작품을 선보여 작가들의 좋은 홍보자리가 된다. 길이가 2.4킬로미터 규모의 대형전시장에 펼쳐진 언리미티드 섹터에는 대형 설치작업, 비디오, 월 페인팅, 사진, 퍼포먼스 등 전통적인 아트페어 전시장에서 만나보기 어려운 작업들이 전시된다. 또한 큐레이팅이 강화된 피쳐스(Features) 섹터, 신진작가를 소개하는 스테이트먼츠(Statements), 에디션 위주의 작업을 선보이는 에디션, 공공미술 전시인 파쿠르 등의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아트바젤의 모델을 대다수 아트페어는 따라가고 있다.
한편 바젤, 홍콩, 마이애미로 이어지는 3대 아트바젤에 모두 참여하고 있는 하우저 앤 워스 갤러리의 시니어 디렉터인 리신 차이는 아시아 미술시장을 글로벌 갤러리의 시각에서 진단했다. 한국의 경우 지금껏 ’한국미술의 해외 진출‘이라는 단선적인 이슈에 관심이 모아졌던 것이 사실이지만, 매년 미술시장 보고서를 내는 유럽순수예술재단(The European Fine Art Fair, TEFAF)의 아트 마켓 리포트(Art Market Report)에서도 세계미술시장을 크게 아메리카, 유럽, 아시아라는 3개의 범주로 보고할 정도로 아시아는 주요 세계미술시장이다. 1992년 취리히에 첫 갤러리를 연 이래로 런던, 소머셋, 뉴욕, LA, 취리히, 그슈타드 등 총 8개의 도시에 분점을 가지고 있는 하우저 앤 워스는 2018년 봄, 홍콩에 아시아의 첫 분점을 낼 것이라 밝혀 이목을 집중시켰다. 리신 차이는 강연 중 하우저 앤 워스 홍콩 분점이 들어서게 될 H Queens’ Complex 건물 사진을 보여주며 같은 건물에 페이스 갤러리 등 유수의 갤러리들이 함께 입점해있다고 소개했다.
리신 차이는 “우리는 항상 아시아와 일하고 싶어 했다”고 말문을 연 뒤, “우리는 상하이와 베이징에 이미 사무실을 냈다. 다음 단계는 홍콩 갤러리를 오픈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는 중국 작가들과 일하고 있으며, 중국 정부로부터도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고 말해 중국 시장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실제로 하우저 앤 워스는 웨스트 번드 아트페어에 연속 4회 참여하고 있으며 021 아트페어에도 참여했다. 베이징 태생이기도 한 리신차이는 홍콩 분점의 공동 디렉터로 일하게 될 예정이다.
상하이, 베이징, 홍콩에 대해 그는 “상하이는 국제적인 도시다. 사업하기 좋고, 활기가 넘친다. 우리는 상하이 미술시장에 익숙하다. 2019년에는 퐁피두센터가 오픈할 예정이기도 하다. 특히 사립미술관이 많으며, 많은 갤러리들이 상하이에 있다. 베이징은 수도이면서 문화와 정치의 중심이다. 다만 베이징에서는 상하이에서보다 좀 더 정치적으로 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홍콩에서는 아트바젤 기간에 평소보다 많은 비즈니스 미팅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관계자들은 하루는 미팅하고 하루는 아트페어장으로 가는 패턴을 보인다.”고 전했다. 리신 차이는 인도네시아를 언급하며, “인도네시아 컬렉터들은 25년 이상, 장기적으로 인도네시아 작가를 지원하며 넓은 작가군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그들은 정말 국제적이다.”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아트페어에 대해 그는 “아트페어를 하나의 거대한 현상으로 본다”며, “사람들은 모든 걸 다 보고 싶어 한다. 예를 들어 아트바젤 뿐만 아니라 프리즈 기간에 테이트 모던, 로얄 아카데미 등은 정말 좋은 전시를 한다. 바젤의 경우도 더 많은 쇼와 프로젝트를 하려고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한국 미술시장에 대한 소감을 묻자, “아라리오와 국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한 뒤, “한국 컬렉터들은 서양미술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고 귀띔했다.
<프로젝트 비아> 해외 아트마켓 리서치 결과 보고서 다운로드
- 스위스 아트바젤과 상하이 아트페어 리서치 _주은영(AMC LAB 어소시에잇 디렉터)
- 국제 아트페어와 미술시장의 지각변동(프리즈/아티시마/상하이 아트페어) _최수연(박여숙화랑)
- 마이스(MICE) 도시전략로서의 아트페어(바젤/파리/상하이) _최재원(갤러리 수)
정필주는 예술사회학을 기반으로 전시기획, 평론활동을 한다. ‘다이얼로그 프로젝트’(일년만미슬관), ’시각난장 234‘(장안평 중고자동차매매단지) 등을 기획했다. 도시재생과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서울시 문화예술 불공정상담센터 코디네이터로도 일하며, 1인 예술기획사 예문공 대표이다. 예술인복지/여성미술/문화예술 디지털화에 관한 다수의 논문과 기고글이 있다.https://artkoreablog.word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