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8일부터 11일까지 3일 간 문화관광체육부(장관 도종환)와 (재)예술경영지원센터(대표 김도일, 이하 센터)는 국제 컨퍼런스 “미술품 감정- 전문성과 협업”을 개최하였다. 미국감정가협회(Appraiser Association of America, AAA), 네덜란드 AiA(Authentication in Art)와 협력하여 관련 해외전문가를 초청함으로써 미술품 시가 감정, 진위 감정, 과학적 분석, 예술 법 등에 대하여 전문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였다.
첫째날, 시가감정을 주제로 미국감정가협회 이사 린다 셀빈(Linda Selvin)과 수잔 브런디지(Susan Brundage)가 미국감정평가실무기준(USPAP, Uniform Standards of Professional Appraisal Practice)과 미국감정가협회 윤리강령(Code of Ethics)을 소개하고, 현재 미국에서 이루어지는 시가 감정에 대해 강의하였다. 광범위한 리서치를 진행하다 보면 시장 트렌드와 작가, 작품의 평균 가격을 알게 되기 때문에, 평소답지 않은 시가가 형성될 경우 이를 즉각 알아보는 전문적 시각을 발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시가 감정가는 분석 결과, 의견, 결론을 타당하게 작성하여, 감정 의뢰인에게 감정 결과에 대해 의미 있고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는 방식으로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예술법이 주제였던 오후 워크숍에서는 예술중재재판소(CAfA, Court of Arbitration for Art)의 설립에 기여한 윌리엄 샤론 변호사(William Charron, Pryor Cashman LLP)와 크리스티(Christie’s) 자산감정평가 부서에서 7년 간 근무한 메건 노 변호사(Megan Noh, Cahill Cossu Noh & Robinson LLP)의 발표가 있었다. 진위감정가의 법적 책임과 소송에서의 한계, 예술중재재판소 및 진위감정가의 역할을 논하였는데, 무엇보다 작가의 명예 훼손, 작품의 거짓 정보 등에 관하여 최근에 있었던 미국의 판례들을 공유함으로써 현장 이슈에 대한 감각을 전해주었다.
둘째날, 밀코 덴 레이우(Milko den Leeuw, 네덜란드 AiA 대표)가 작품의 진위를 감정할 때 동원하는 여러 과학적 방법들을 발표하였다. 예컨대 작품의 재료가 해당 작가의 평소 쓰던 재료와 동일한가, 당시 주로 쓰이던 알료들과 성분이 일치하는가, 카달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é)에 부합하는가 등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만일 작가가 해당 피사체를 집중적으로 그리던 시기보다 늦은 시기로 서명되어 있거나, 캔버스의 섬유 연대를 측정하였을 때 서명 시기와 몇 년의 오차가 발생하거나, 광학 현미경을 사용하였을 때 그림을 마구 널어놓은 듯 나란한 균열들이 발견된다면 위작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로레알 유네스코 심사위원이었기도 한 예한느 라가이 교수(Jehane Ragai, 카이로 아메리칸대학 화학과)1) 의 케이스 스터디가 진행되었다.
한편 오후에는 테이트 미술관(TATE)에서 영국 소장품 보존가로 근무하며, 작품 매입과 순회 전시를 위한 상태보고서 작성에 전문성을 갖추어 이후 전문 소프트웨어까지 개발한 아니카 에릭슨 대표(Annika Erikson, Articheck)의 발표가 있었다. AiA 테크니컬 아트 히스토리 워크그룹(Technical Art History Workgroup)2) 일원인 올리버 스파펜스 AiA 콩그레스 기획자(Oliver Spapens, 네덜란드 AiA)의 카달로그 레조네 관련 발표도 이어졌다.
마지막 날인 10일에는 본 행사를 전문가 대상으로 한 워크샵에서 일반인 대상 컨퍼런스로 확대하여 보다 많은 관중에게 전문성 함양과 담론 형성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예컨대, 아니카 에릭슨은 ‘포렌식(Forensic) 분석과 표준화된 디지털 시스템에 기반한 작품 상태조사서를 활용하면, 미술품의 소장 기록과 이동 경로 등을 쉽고 빠르게 확인할 수 있고 법적으로 신뢰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위작의 시장 진입, 작품 조작, 사기 등을 예방하게 된다’는 내용을 발표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올리버 스파펜스는 역사 상 가장 오랜 논쟁을 남긴 더 플라우(The Plough) 위작 사건을 함께 살펴봄으로써, 비주류 예술가 집단을 포함한 동시대 미술에서 위작에 관한 논란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으며 반드시 예방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또한 김윤섭(한국미술연구소)는 시가 감정 방법의 한국 사례를 소개하기도 하였다.
미술품 감정만큼 언뜻 낯설게 들리지만, 미술 현장에 발을 들일수록 절실하게 요청하게 되는 전문 분야도 많지 않다. 단순한 안목에 따른 판단을 넘어선 시가 및 진위 감정이야말로 사람들의 신뢰를 받으며, 이 신뢰야말로 미술시장 활성화의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워크숍 각 세션 이후 진행된 라운드 테이블과 컨퍼런스 중간중간 진행된 Q&A 시간마다 열띤 논의가 오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센터의 미술품 감정기반 구축사업이 올해를 넘어 내년에도 국내 미술시장에 어떠한 활력을 불어넣을지 기대된다.
1)자세한 내용은 예한느 라가이의 저서 번역본을 통해 알아볼 수 있다. 『과학자와 위조범 - 위조 미술품의 과학적 식별에 대한 이해』
2)이 워크그룹은 올해 저서를 발간하였다. 『Technical Art History - A Handbook of Scientific Techniques for the Examination of Works of Art』
국제 컨퍼런스 ‘미술품 감정 - 전문성과 협업’ 3일 간의 스케치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