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수영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연구사)
10주년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10주년을 앞두고 우리가 심각하게 10이라는 숫자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완전히 자유로울 수도 없었다. 2008년부터 우리가 겪어왔던 시간들이 자꾸 되살아났다. 건물 완공식으로부터 개관전, 계속되는 전시와 퍼포먼스와 심포지엄들, 매년 백남준의 기일과 생일, 센터와 재단 시스템의 변화, 그 굴곡진 변화가 만드는 역사, 외부 환경의 변화, 바뀌는 정권들, 한국 사회의 크고 작은 역사들이 생각났다. 백남준아트센터라는 기관의 성장과 그동안 우리가 이룩한 것들은 유형의 자산이 결코 아니었다. 도슨트 및 자원 봉사자 커뮤니티, 교육, 작가들, 강사들, 협업자들, 관객들. 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많은 시간 동안 백남준아트센터는 매일 아침 문을 열고 백남준을 비롯한 여러 작가들의 작품에 스위치를 올렸다. 그렇게 보낸 10년의 시간을 축하하고 또 다른 10년을 준비하고자 하는 회의와 브레인스토밍을 통해서 우리가 원하는 개념들을 그러모았다. 래디컬-급진적, 프랙시스-실천, 커먼스-공유지, 오픈-개방, 플랫폼, 참여, 나눔, 변화, 평가, 실험, 공동체, 정치 사회적 환경, 예술에 대한 신뢰, 지속가능성, 대중, 다중, 관객… 우리는 10년 전 처음으로 만든 미션 스테이트먼트였던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그 주어의 자리를 슬쩍 바꾸어 놓았다. 예술 공유지, 백남준.
학예팀과 기획운영팀이 함께 양석원 씨로부터 에어비엔비와 우버로 얼룩진 핑크빛 공유경제(Sharing Economy)에 대한 강의를 같이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데이비드 볼리어의 『공유인으로 사고하라』를 같이 읽었다. 작가이기도 하고 기획자이기도 한 언메이크 랩을 초청하여 ‘공유지’에 대한 연구와 기획의 접근방식에 대해 들었고, 임태훈 교수를 모셔와 시민 테크놀로지에 대해 강의를 듣기도 했다. 뭔가 우리가 하나의 공유지를 점거하고 있는 공동체로 느껴지는 스릴 있는 순간이었다. 공유지라는 모델에 큐레이터뿐 아니라 센터 구성원들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조직이 달라지고 이해가 생기고 미술관이 공유지로 변신할 것 같은 막연한 기대도 했다. 전시의 기획자들과 심포지엄 기획자, 교육과 퍼블릭 프로그램 기획자들이 자주 한 테이블에 모여서 한 가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래디컬 뮤지엄』을 다시 읽었고 백남준아트센터에서 2013년에 열렸던 《러닝 머신(Learning Machine)》 전시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했고, 백남준의 글을 다시 찾았다. ‘공유’라는 말이 주는 첫 느낌이 그러하듯이, 우리는 모든 것을 함께 해야 한다는, 그리고 그럴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 시작했다. 적어도 시작은 그러했던 것 같다.
오늘날 ‘공유’라는 단어는 매우 폭넓게 쓰인다. 공유란 말은 한 사람이 독점하지 않고 여러 사람이 점유할 수 있는 다양한 형식에 대해 실제 경제생활에서부터 이론적인 영역에 이르기까지 매우 너그럽게 사용된다. 넓은 의미에서 무언가를 나누어 쓴다(share)의 의미보다 더 정확하게 ‘공유지’라는 단어에 집중하기 위해서 공유지의 역사를 잠시 돌아보고자 한다. 공유지란 말 그대로 여러 사람이 함께 딛고 서있는 땅, 물, 공기와 같은 자연의 자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권력과 자본이 헤게모니를 잡기 훨씬 이전에 우리가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주고받기 시작한 신뢰의 선물들, 도움들 그리고 같이 다져 나갔던 길과 땅이 공유지였다. 이후 산업혁명 시기의 공유지는 인클로저(enclosure)와 같은 역사를 겪으며 오히려 힘없는 자들의 비극적인 역사로 인식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공유지’라는 말은 경제, 사회, 정치 그리고 새로운 삶의 방식에서 두루 매력적인 말로 사용된다. 공유지는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기술적 바탕 위에서 많은 미래적 가능성을 가진 새로운 도전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전도 유망한 공유지에만 매력을 느꼈던 것은 아니었다.
공유지를 마치 누구나 다 와서 쓸 수 있는 개방된 땅 정도로 생각하고 이름 부르기보다는, ‘커머닝’이라는 보다 능동적인 운동의 개념으로 부를 때 힘이 솟았다. 여러 사람이 다녀서 오솔길을 새로 내는 것을 ‘커머닝’이라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미술관 노동자들에게 직장이 운동의 형태가 되면 안 되는 것인가.
하나의 테이블, 한 권의 책, 한 평의 땅에서 같이 시작했지만 기획자들 각자가 다른 먼 곳을 바라보며 등을 마주 대고 떠나야 하는 때가 다가왔다. 누군가는 연구자들과 이야기를, 누군가는 작가와의 전시를, 누군가는 사람들과의 실험을 향해서 출발했다. 이 실험은 또 다시 갈래를 친다. 공간, 사람, 관점. 데이비드 볼리어는 공유지의 세 가지 요소를 공동체와 자원 그리고 사회적 규약으로 보았지만, 이 규약 대신에 관점의 실험을 벌인 것은 탁월한 일이었다. 관점을 바꿔보고자 하는 실험은 탈학습과 같은 ‘#전환’, 여러 관점을 포용하는 ‘#수집’, 그리고 사람들 간의 관점을 교차시키는 ‘#교환’으로 또 다시 나눠졌다.
우리가 다시 한 테이블에서 머리를 맞대고 오랜 시간을 보내는 일은 적어졌다. 각자가 새로운 공동체를 만났고 서로 다른 시간표를 짰다. 우리의 공유지는 예산에서 시작하여 기대효과로 마무리되는 여러가지 사업이 되었다. 이 사업들은 우리가 10년 동안 그러했듯이 꼭 같이 일하지 않아도 서로가 신뢰하는 가운데 각자 바쁘게 진행된다.
처음부터 막연히 백남준의 생각이 공유지와 연결될 거라고 알고 있었다. 공유지에 대한 생각과 개념이 조금씩 정리되면서 백남준을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열쇠가 되었다. 시작은 백남준의 중요한 글 중 하나인 “글로벌 그루브와 비디오 공동시장”과, 〈비디오 코뮨〉이라는 완벽한 이름을 가진 백남준의 싱글 채널 비디오 작품이었다. 그리고 백남준이 1988년에 쓴 글 “DNA는 인종차별주의가 아니다” 또한 단 한 글자도 덜어낼 수 없는, 예술 공유지에 대한 백남준의 개인적인 고백이다.
“나는 TV로 작업 할수록 신석기 시대가 떠오른다. 왜냐하면 둘 사이에는 놀랄 만한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시간에 바탕을 둔 정보 녹화 시스템에 연결된 기억의 시청각 구조가 바로 그것이다. 하나는 노래를 동반한 무용이며, 다른 하나는 비디오다. (…) 나는 사유재산 발견 이전의 오래된 과거를 생각하는 걸 좋아한다. 그렇다. 비디오아트는 신석기시대 사람들과 공통점이 또 하나 있다. 비디오는 누가 독점할 수 없고, 모두가 쉽게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의 공동재산이다. 비디오는 유일한 작품의 독점에 바탕을 둔 체제로 작동하는 예술세계 사이에서 힘들게 버텨내고 있다. 현금을 내고 사가는 작품, 순전히 과시하고 경쟁하는 작품들로 이루어진 예술세계에서 말이다.”
이 글은 사유재산 이전의 경제 시스템에 주목함으로, 오늘날의 예술이 사회적 신뢰를 잃고 있는 이유를 정확히 짚어준다. 많은 현금을 내고 사가는 작품은 그 현금의 많고 적음에 따라 가치를 부여받고 경쟁과 투기의 시스템에 함몰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유경제는 사유화와 화폐경제 이전의 증여와 선물 경제 시스템에서 자본주의와 다르게 작동하는 사회구조의 가능성을 본다. 우리는 10년 전부터 백남준아트센터의 학술 프로그램을 대표하는 국제 심포지엄을 ‘백남준의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왔다. 심포지엄의 제목을 ‘백남준의 선물’로 지은 것은 그의 예술을 우리 모두가 거저 받고 누리고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선물은 내가 기분 좋게 받을 수 있는 것이지만 반드시 되갚아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즉 등가 교환이나 값을 반드시 치러야 하는 시장경제 논리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또한 ‘백남준의 선물’은 한 사람이 독점하고 사유화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이는 백남준이 예술에 대해서 가졌던 가장 중요하고 변하지 않았던 이념이다. 또한 선물은 호의와 신뢰에서 비롯된 것이며, 선물을 받은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그 선물을 대가없이 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오래 전부터 우리가 더불어 살아왔던 방식이다. 선물에 대한 생각은 전시와 거의 동시에 열리는 심포지엄의 시작이 되었다. 심포지엄은 공공의 제도 아래 세워진 미술관이 공유지가 되기를 꿈꾸는 미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모으고자 했다. 비록 그 시작이 의도치 않게 숨막힘과 죽음, 못 알아들음, 예술의 쓸모없음에서 비롯되었지만 말이다.
백남준은 예술 공유지에 네 가지 기둥을 세우고 그 터를 닦아 놓았다고 볼 수 있는데, 플럭서스(예술의 공동 창작과 소비),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예술가와 기술자 간의 위계 없는 협업), 위성 프로젝트(비디오와 정보기술의 값없는 공유) 그리고 이른바 ‘미디어의 기억’이라고 부르는 백남준의 후기 설치 스타일(옛 미디어 기기부터 최신 기술에 이르기까지 함께 섞어 미디어의 역사를 공유지로 만드는 방식)이 그 네 가지다. 이 공유지에 대한 강력한 지지자이자 협업자인 또 한 명의 예술가 요셉 보이스의 작품을 같이 전시하여 예술이 공동체의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위하여 가야할 길을 보여주고자 했다.
전시가 동시대의 맥락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아트센터에서 교육과 전시 혹은 퍼포먼스 등 어떠한 형태로든 협업했던 작가들 가운데 새로 ‘공유지’라는 말을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작가들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100%의 도시를 만들고(리미니 프로토콜), 불법이긴 하지만 스쾃을 통해 공간을 이웃과 함께 나누었고(파트타임스위트), 도시는 우리가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게임의 보드판이 되었다(블라스트 씨어리). 공유지는 도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모두가 오염시킨 바다와 그 위를 부유하는 컬러풀 쓰레기들이기도 하고(정재철), 온라인상에서 일어나는 공론장 자체이기도 하고(언메이크 랩),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UFO를 시커멓게 가린 포스터를 떠다니는 공간이기도 했다(히만 청). 비물질적인 공유재는 〈임진가와〉와 같이 우리가 공유하고 전승해온 역사가 실린 노랫가락으로 살아남고(남화연), 기억 속 언제나 그곳에 자리 잡고 있었던 〈다다익선〉에 대한 서로 다른 이야기와 생각이 된다(옥인 콜렉티브). 예술가들에게 커머닝은 때로는 작품을 사유화하지 않고 불화를 포용하는 방식으로 조용히 진행되고(다페르튜토 스튜디오), 우리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먼저 듣고 나서 쓰라는 요청을 하고(안규철), 안과 밖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무질서 속에 미끄러지는 오늘의 태양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라고 한다(박이소). 공유지에 대한 여러 접근이 섞여있는 이 전시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묵직한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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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아트센터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