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로는 2019년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와 작가미술장터 등 크고 작은 아트페어의 개막을 맞아 아트페어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들을 다룬 기사를 마련했다. (재)예술경영지원센터 프로젝트 비아(Project ViA)의 기획형 리서치 프로그램을 통해 아트페어를 방문하여 현장을 살피고 관계자들과의 미팅을 진행한 필자들이 해외 아트페어의 다양한 면모들을 기초로 국내 아트페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본다. 그 첫 번째로, 한국화랑협회의 김동현 팀장이 프리즈 아트페어(Frieze Art Fair)를 통해 한국 아트페어의 현황을 진단하고 방향성을 제시한다.
글 김동현
세계 곳곳에는 전세계 미술시장을 선도할 만큼의 권위와 규모를 갖춘 탁월한 국제 아트페어들이 존재한다. 그중 이번 뉴욕 리서치에서 주목한 아트페어는 ‘프리즈 뉴욕 2019(Frieze New York 2019)’로, 한국국제아트페어(키아프 아트 서울, KIAF ART SEOUL)을 기획, 운영하는 기관의 입장에서라면 반드시 집중하여 보아야 할 행사이다. 프리즈 아트페어는 1991년 영국에서 발간한 현대미술 전문 월간지 프리즈 매거진의 발행인 어맨더 샤프(Amanda Sharp)와 매튜 슬로토버(Matthew Slotover)가 영국 출신 아티스트 톰 기들리(Tom Gidley)와 함께 창설한 아트페어로, 2003년 런던에서 그 첫 선을 보였다(124개 갤러리 참가). 이를 계기로 ‘프리즈 뉴욕’이라는 이름 아래 2014년 미국의 랜달스 아일랜드(Randall’s Island)에서 미국 시장에 첫 발을 디뎠으며, 2019년 2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새로운 아트페어를 열며 그 영역을 확장하였다. 또한 프리즈는 ‘프리즈 마스터즈(Frieze Masters)’라는 이름으로 기존의 프리즈 아트페어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작품만을 다루는 페어를 운영한다. 프리즈 마스터즈는 하이엔드 작품만을 거래하는 프리미엄 아트페어로 전세계에서 모인 현대미술 작품, 미술사적인 의미와 가치가 있는 작품뿐 아니라 고대에서 20세기 후반에 이르는 명작을 넓게 아울러 다루고 있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간략하게 한국의 주요 아트페어를 살펴보자. 국내 최초의 아트페어는 1979년 사단법인 한국화랑협회가 개최하고 이에 소속된 80여 개의 미술 관련 업체가 참가한 화랑미술제이며, 올해로 37회(2019년 2월, 111개 회원화랑 참가)를 맞아 명실상부 가장 긴 역사를 가진 국내 아트페어로 자리매김하였다. 한국화랑협회는 한국 미술의 세계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한국국제아트페어(Korea International Art Fair, 이하 '키아프')을 설립하였으며, 이는 국내 최초의 국제 아트페어로 올해 18회(2019년 9월)를 맞는다. 이밖에 국내에서 개최되는 주요 아트페어로는 ‘대구아트페어’(Daegu Art Fair, 대구화랑협회 주최, 2008년부터 개최),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BAMA-Busan Annual Market of Art, 부산화랑협회 주최·주관, 2012년부터 개최), ‘아트부산’(Art Busan, 일반기업 주최, 2012년 출범), ‘아트광주’(Art Gwangju, 광주시 주최) 등이 있고, 그 밖에도 호텔아트페어, 작가 중심의 아트페어, 조형물 중심의 아트페어 등 약 49개가 운영되어(2017년 기준) 그 규모와 내용이 다양하다.
아트페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미술 시장의 흐름을 좌우하고 수익성을 넘어 미술의 방향성과 가능성까지 제시하도록 진화된 대형 아트 마켓의 형태는 마치 이제 막 자리를 잡은 모델인 것 같지만, 앞서 소개한 것과 같이 한국에서도 화랑미술제를 시작으로 이미 40여 년 가까이 유지되어 온 익숙한 시장 구조이다.
미술시장의 보편적인 형태를 제시한 것은 1970년 바이엘러 파운데이션(Beyeler Foundation)의 에른스트 바이엘러(Ernst Beyeler)가 출범한 아트바젤(Art Basel)이다. 아트바젤은 선구적인 아이디어와 함께 아트페어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고, 반 세기 동안 발전해 오며 우리가 떠올리는 ’아트페어’의 형태로 자리잡게 되었다.
한때 키아프가 아시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아트페어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 배경에는 일찍부터 화랑미술제 운영을 통해 숙달된 협회의 노하우와 협회와 갤러리 사이의 긴밀한 관계가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떤가. 인천에서 비행기로 3~4시간 거리에 있는 홍콩에서 거대 기업의 브랜드인 아트바젤 홍콩(Art Basel Hong Kong)이 매년 3월 열리고, 주변 아시아권에서는 상하이 ART021과 웨스트번드 아트&디자인(WEST BUND ART & DESIGN) 등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또한 그동안 저조하던 싱가포르 마켓의 움직임, 자카르타와 타이베이의 약진 등을 기반으로 경쟁력 있는 아트마켓들이 새로 생겨나며 경쟁이 치열해졌다. 게다가 아직 아시아 시장에 들어오지 않은 굴지의 아트페어들도 서울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 진입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으며, 해외 갤러리들도 하나 둘, 서울에 진출하고 있다. 이는 해외 유명 아트페어의 한국 진출이 멀지 않았다는 사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행사를 운영하고 기획하는 주최로서, 시스템과 실력을 갖추어 행사의 퀼리티를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지 못하면 자멸하기 마련이다. 일례로 싱가포르의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Art Stage Singapore)가 그랬고, 그에 앞서 오래된 아트 싱가포르(Art Singapore)는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에 밀려 사라졌다. 2013년 런던에서 야심차게 시작했던 아트13 런던(Art13 London)은 몇 해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았으며, 국내에서도 저조한 움직임을 보이다 끝내 문을 닫는 아트페어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아트페어는 시장이며, 시장에는 시장의 논리가 있다. 시장에 나오는 갤러리들은 장사가 안 되면 참가를 꺼려하는 것이 당연하다. 판매로 이어지지 않았다면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만족스러운 서비스, 의미 있는 컬렉터와 방문객과의 관계 형성으로 인한 지속적인 비전, 또는 최소한 향후 발전 가능성이라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상응하도록 주최 측은 행사의 퀼리티를 적정 수준 이상으로 매년 유지하며 우수한 갤러리를 적극 유치하고, 방문한 고객에게 좋은 작품 구매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대형 갤러리 못지않게 지속적인 발전 가능성과 감각적인 행보를 보이는 중견, 신생 갤러리에 대한 지원과 노력 또한 놓쳐서는 안 된다. 새롭고 신선한 모델의 갤러리도 참가하도록 하여 참가 승인에 불이익이 없게 해야 하며, 행사 주최 측이 제시하는 기준과 규정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행사에 불이익을 준 갤러리가 있다면 다음 해에는 그에 상응하는 제재를 받게 해야 한다. 시장을 지키고, 나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보다 합리적인 선택과 계획적인 집중이 필요하다. 시장은 유동적이고, 시시각각 변한다.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순발력 있게 대응하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도태된다. 그리고 경쟁력과 매력을 잃은 개체는 생태계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자연 소멸된다.
그렇다면 한국의 아트페어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대다수 국내의 기관장, 기획자, 운영자들은 연례행사처럼 해외 유명 페어를 관람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들의 장점을 잘 파악하여 우리만의 강점으로 만들어 도입하고, 현지화하여 혁신을 도모해야 한다. 한국은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지역에서 아트페어가 열린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아트페어들은 비슷한 가치와 이상향을 목표로 두기보다 각자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 발전시켜야 한다. 역사가 있는 국내 중심의 아트페어는 스스로의 역사성을 강조하여 한국 미술의 정체성과 근현대 미술품의 가능성을 재조명하는 기획전을 통해 그 가치를 부각할 수 있다. 또한, 서울의 국제 아트페어는 경쟁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주변국의 해외 아트페어들과 견줄 수 있을 만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해외 주요 갤러리들을 유치하는 데 집중하여 타 해외 아트페어에서 작품을 구입하는 국내 고객들이 국내에서도 만족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지역의 아트페어들은 지역적 특색을 살린 프로그램이나 서비스에 집중해 그 지역 아트페어만이 취할 수 있는 장점을 잘 발전시켜야 하며, 홍보에도 소홀하지 않아야 한다. 지방정부에서 운영하는 아트페어는 지역 작가의 육성과 젊은 작가들의 대도시 이탈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경제적 지원과 더불어 지역 교육 프로그램 등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각기 다른 정체성을 구축하는 행사들은 지속적이고 일관된 홍보 채널을 확보하여 참가 갤러리와 콜렉터에게 안정성 있고 특징 있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나아가 이런 시스템은 하나의 브랜드로서 특정 시기, 특정 지역의 미술 관련 아이콘으로 자리 잡을 수 있으므로 구체적이고 꾸준한 노력을 통해 브랜드 가치의 지속적인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 이는 추후 다양한 후원사와 파트너를 확보하는 데 많은 이점을 가져다 준다.
앞서 말한 것처럼 아트페어는 이미 단순한 미술장터를 넘어 미술시장의 가장 중요한 플랫폼이 되었다. 또한, 아트페어는 미술이 가고자 하는 방향성과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수준으로 진화했으며, 각각에서 파생시킬 수 있는 스토리는 오늘날 급격하게 늘어난 콘텐츠만큼이나 다양해졌다. 아트페어 외에도, 연극, 공연, 영화, 페스티벌 등 다양한 문화행사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요즘 시대에는 단순한 상업 활동을 위한 플랫폼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광장, 정보를 나누고 얻을 수 있는 교류의 허브로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성해야 한다. 아트페어의 토크 프로그램 등 쉽게 접할 수 없는 특별한 강연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기존 아트페어에서는 볼 수 없었던 비엔날레급 특별전, 대형작품의 전시 등을 통해 예술을 향유할 수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은 큰 흐름에 맞춘 공유 매체로서의 기능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미술 산업에서는 각 기관들 간의 긴밀한 협력과 공조가 매우 중요하다. 미술관과 미술관, 미술관과 아트페어, 미술관과 갤러리, 갤러리와 아트페어와 같이 서로 다른 성격의 기관들이 자신들의 영역에서의 아이디어에 갇혀 있지 않고 서로 협업하고 교류해야 한다. 또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도슨트 프로그램, 미술 애호가들을 위한 편의 서비스, 여러 기관의 연계 행사, 주요 인사들의 교류에서 발생하는 시너지 효과 등을 적극 활용하여 자발적, 창의적,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할 것이다. 이에 더해 공무의 개념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예술 장르 자체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함께 체험하고 이해하며 정부 기관의 적극적이고 유연한, 동시에 현실적이고 실질적 지원 방향과 방법을 마련하는 것 역시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이은주, 「국내 최대 아트페어 KIAF 26일 개막..세계 175개 갤러리 출동」, 중앙일보, 2019년 9월 25일
김동현(KIM Dong Hyun)은 서울예술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광고업에 종사하였으며 2009년부터는 이화익갤러리에서 국내 주요 작가의 전시와 젊은 작가의 전시를 기획하였다. 2009년부터 키아프, 아부다비아트, 아트두바이, 아트마이애미, 아트센트럴, 스코프, 아트스테이지싱가폴 등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가하였다. 갤러리 전시기획과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가한 경험을 바탕으로 2018년 아트부산 특별전을 담당하였다. 이후 KIAF ART SEOUL 2018을 시작으로 현재 한국화랑협회 팀장으로 재직 중이며, KIAF ART SEOUL 2019를 준비하며 한국의 국제아트페어 발전과 미술시장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