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행사

컨셉츄얼(Conceptual) 아트페어가 온다 – 디 아더 아트페어(The Other Art Fair) 참관

posted 2019.09.30


아트로는 2019년 한국 국제 아트페어(KIAF)와 작가미술장터의 크고 작은 아트페어의 개막을 맞아 아트페어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들을 다룬 기사를 마련했다. (재)예술경영지원센터 프로젝트 비아(Project ViA)의 기획형 리서치 프로그램을 통해 뉴욕의 아트페어를 방문하여 현장을 살피고 관계자들과의 미팅을 진행한 필자들이 발견한 해외 아트페어의 다양한 면모들을 살피며 한국의 아트페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본다. 이번 글에서는 아트부산의 조윤영 팀장이 작가 중심의 아트페어라는 컨셉을 가지고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릴레이 전시로 운영되고 있는 디 아더 아트페어(The Other Art Fair)의 움직임을 살펴본다.


조윤영


잘 키운 딸 하나가 열 아들 안 부럽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잘 세운 하나의 메인 컨셉트로 아트페어의 경쟁력이자 차별성, 나아가 독창성까지 이끌어내고 있는 페어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스위스 아트바젤(Art Basel)의 위성 페어인 페이퍼 포지션스(Paper Positions)는 종이라는 재료특화 컨셉트로 자신들 만의 틈새 마켓을 키우고 있고, 상하이 포토페어(Photofairs Shanghai)는 높은 세금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의 사진과 프린트 에디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를 6년째 이어가고 있다. 아트페어의 홍수 속에서 명확한 컨셉트로 틈새 시장을 공략하며 매년 조금씩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페어를 주목해 보고자 한다. 컨셉츄얼형 아트페어는 글로벌 대형 페어들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미술계 전반에 걸쳐 고민해야 할 과제로 떠오른 ‘양극화’, ‘획일화’ 현상의 대안적 측면에서 새로운 답안지를 제시할 수 있는 개념이라 본다.


아트부산 역시 규모나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기존의 글로벌 대형 페어의 면모를 갖추고 있고 목표점 역시 메이저 페어로 자리매김 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매해 신생 갤러리, 신규 작가의 유입율은 평균 20~23%의 비율을 유지하고 있는데 작가와 작품을 통해 아트페어의 새로움과 신선함을 보충하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 수치이기도 하다. 자칫 지루해 보일 수 있는 페어의 ‘획일화’를 보완하기 위해 매년 부대 프로그램을 개편하고 특별 전시의 투자도 늘리고 있지만, 작가와 작품을 통해 신선함을 전달하기까지는 노력해 나가야 할 과제들이 많이 남아 있다.


아트부산 2019. ⓒArt Busan.

아트부산 2019. ⓒArt Busan.

국내 미술시장에서도 작가 중심의 개념적인 전시가 새롭게 소개되고 있고 가능성 또한 기대되고 있지만, 여전히 플랫폼의 전달력과 시장성이 약한 실정이고, 작가와 갤러리와의 연결고리 역시 확대되지 못한채 구조적인 아쉬움을 많이 가지고 있다. 국내는 물론 아시아 시장에서도 비슷한 구성과 기획을 가진 페어들이 매년 생겨나고 없어지는 시점에 하나의 차별화된 컨셉트만으로 페어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사례를 통해 운영 방향과 생존전략을 알아보고 다각적으로 접목 시킬 수 있는 시각을 갖추고자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작가 중심의 아트페어라는 컨셉트를 가지고 국제적인 예술 도시에서의 분기별 릴레이 전시라는 운영방식을 진행하고 있는 디 아더 아트페어(The Other Art Fair, 이하 ‘디 아더’)의 움직임은 주목할 만한 리서치 대상 중 하나이다. 국내의유니온아트페어(Union Art fair)또는 작가미술장터와 비교하여 맥락은 비슷하지만 작가 선정방식부터 수익 쉐어의 구조까지 어떤 차별화 전략을 통해 국제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지 그 과정을 직접 알아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메인 파트너 사치아트(Saachi Art)


디 아더의 메인 파트너사인 사치아트(Saatchi Art)는 세계적인 규모로 운영되는 작가 중심의 온라인 플랫폼으로 100개국에서 약 65,000명의 아티스트의 작품을 소개하고 판매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예술에 대한 경계를 낮추는 미술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생태계를 구축한 경험을 발판 삼아 오프라인 시장으로 진입한 디 아더는 사전에 철저한 시장 분석으로 작가와 컬렉터, 중간 매계자인 갤러리의 니즈(Needs)를 명확하게 파악하여 운영방침을 세운 것이 성공의 첫 번째 열쇠이다. 신진 작가는 스스로를 홍보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의 홍보 기회가 필요하였고, 컬렉터는 온라인 홍보를 통해 다소 익숙해진 작가의 작품을 직접 구입하길 원하였으며, 갤러리는 사전 테스트마켓(Test Market)을 통해 잠재적 성장 가능성이 있는 작가를 선점하길 원하는 이 세 가지의 욕구를 현명하게 풀어내는 시장의 가능성을 내다보았다. 사치아트는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플랫폼을 이동시키는 과정에서도 철저하게 컨셉트에 발맞추어 많은 소속 아티스트들과 소통하여 시장을 분석한 뒤 개최 도시를 선정하였다. 작품 판매 시 발생하는 수익 구조 역시 작가 위주로 돌아가는 선구조의 모듈(Module)을 사치아트의 온라인 마켓으로 사전에 충분히 구축한 것도 디 아더 운영의 원동력으로 보여진다.


브루클린 엑스포 센터(Brooklyn Expo Center)에서 열린 디 아더 아트페어 뉴욕(The Other Art Fair New York) 입구 전경. ⓒYounyoung Cho.

브루클린 엑스포 센터(Brooklyn Expo Center)에서 열린 디 아더 아트페어 뉴욕(The Other Art Fair New York) 입구 전경. ⓒYounyoung Cho.


작가 중심적 모듈(Artist-centered Module)


작가 중심의 페어인 만큼 개인 또는 그룹형태의 작가들만 참여가 가능하며, 전문평론가와 미술관계자로 구성된 선발위원회가 서류심사와 사전인터뷰를 통해 110~160명을 선발한다. 디 아더가 지향하는 독립적이고 실험적인 작업을 하는 작가군을 우선적으로 선별하되 매년 각 도시마다 다른 심사위원을 위촉하여 미선정된 작가군에게 열린 기회를 지속적으로 제공한다. 창립자 라이언 스타니어(Ryan Stanier, Founder and General Manager)는 2011년 창립 이후 지금까지 다소 번거로울 수 있는 작가 선별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작가군을 새로이 수혈하기 위한 장치인 동시에 페어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업무는 작가와의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을 이어가는 것이라 강조했다. 출품 작품의 시장가격을 함께 조율하고 결정하는 것 역시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중요 과업 중에 하나로, 선정작가들은 별도의 워크숍을 통해 디스플레이 방식, 마케팅, 홍보의 매뉴얼을 제공받게 된다. 이는 페어장 내에서 전시되는 작가 간 완성도의 편차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운영진의 섬세함과 전문성을 엿볼 수 있었다. 작가 스튜디오나 졸업 전시 등을 방문해 작가를 직접 발굴하는 노력도 끊임없이 진행하는데 약 10~20%의 비율로 작가들이 선정되고 있다. 페어 기간 중 작품이 판매될 경우에 구매자는 디 아더측에 결제를 진행하고, 이후 수입 배분은 디 아더 15%, 작가 85%의 비율로 높은 수익이 작가에게 돌아가는 방식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주최측은 작가들의 부담을 줄이고 순수익을 창출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연구해 오고 있으며 매년 임대료가 적정한 공간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적극적인 온라인 홍보를 통해 저비용&고효율(Low Cost & High Efficiency)을 위한 플랫폼 개발도 동반하고 있다. 특히 페어 종료 후에도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블로그‘캔버스(CANVAS)’를 통해 참여 작가들의 최신 전시 정보나 이벤트를 업데이트하여 장기적인 사후 관리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다.


디 아더 아트페어에 참여한 작가의 전시 정보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는 블로그 캔버스 이미지. 출처: https://canvas.saatchiart.com/category/the-other-art-fair

디 아더 아트페어에 참여한 작가의 전시 정보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는 블로그 캔버스 이미지. 출처: https://canvas.saatchiart.com/category/the-other-art-fair


아티스트 대 소비자간 거래 (A to C Market)


전통적인 갤러리를 통한 판매방식에서 벗어나 예술가들이 직접 관람객, 컬렉터, 미술 관계자와 소통하는 방식은 빠르게 변해가는 소비 흐름에 편승하여 디 아더의 확장과 성장을 만들어 냈다. 예술가들이 생산부터 판매까지 모든 과정에 직접 참여한다는 것이 기존 갤러리의 반대급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지적도 역시 존재한다. 이에 창립자 라이너 스타이너는 ‘갤러리에서 흡수하지 못하는 작가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으며, 그들에게도 시장 진입 기회는 동등하게 제공되어야 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라는 소신을 보이고 있다. 나아가 미술시장 내 경쟁적 구도에서 벗어나 숨겨진 작가를 찾아내는 인큐베이팅(Artists Incubating) 역할에 충실하여 갤러리와 상생하려는 노력에 대해서도 끊임없는 노력을 한다. 국내에서도 작가 중심의 아트 페어 운영에 대한 미술계와 갤러리 관계자들의 우려가 표명된 적이 있다. 디 아더와 같은 접근을 통해 한국 미술시장도 작가 중심의 플랫폼을 지혜롭게 받아들인다면 작품의 실험성과 시장성을 먼저 검증하는 테스트 마켓(Test Market)에서 작가 발굴에 대한 목마름이 한결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디 아더 아트페어 뉴욕 전시장 내 전경. ⓒYounyoung Cho.

디 아더 아트페어 뉴욕 전시장 내 전경. ⓒYounyoung Cho.


아트 시티 - 릴레이 페어 (Art Cities – Relay Fair)


디 아더의 운영 방향 중 또 하나 새로운 점은 ‘새롭게 성장하고 있는 글로벌 아트 시티를 선정, 각 도시마다의 특색과 지역성을 대표하는 신진 작가 발굴하여 전 세계 네트워킹을 구축하는 것‘에 있다. 동시대 신진 작가들의 동참을 적극적으로 이끌어 내어 전체의 파이를 키우고 동일의 컨셉트를 도시별로 접목 시켰을 때 각각 다른 개성의 아트마켓을 만들어지는 것에 대한 실험적인 측면도 내포하고 있다. 디 아더는 올해(2019년) 상반기에 시카고(Chicago, USA)와 뉴욕(New York, USA), 하반기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USA), 런던(London, UK), 시드니(Sidney, Australia), 튜린(Turin, Italy), 브루클린(Brooklyn, USA)의 릴레이 페어를 진행하고 있다. 운영진이 도시를 선정하기에 앞서 도시 자체가 가지는 매력이 무엇인지, 예술가들의 활동 환경은 어떠한지 등을 조사하기 위하여 현지 마케팅팀을 구성하여 도시에 대한 연구를 선행한다. 컬렉터 수요, 갤러리 분포, 지역 미술시장의 흐름, 작가층, 경제 상황 등에 대해서도 사전 조사를 철저히 거친다. 아시아 지역의 여러 도시에 대한 진출도 긍정적으로 모색하고 있지만 언어와 지리적 거리감, 정치적인 이슈 등 고려할 상항이 많은 점이 현실적 문제로 지적되었다. 각 도시마다 보여지는 페어의 성장률, 판매율, 트렌드들은 도시가 가지는 에너지에 따라 다른 방식과 흐름을 보이는데 이를 차이를 비교해 보는 것도 이번 참관의 중요한 포인트가 되었다.


릴레이 형식의 페어 운영은 작가들에게 지리적인 범주를 벗어나 여러 도시에서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전시장과 국경 없는 아트마켓에 진출하여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실제로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디 아더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는 동시에 사치 아트에 진입하는 작가군도 늘어나는 추세이다.



공유 미술 (Share The Art)


직접 방문한 디 아더 뉴욕의 경우 작가와 작가 간의 교류가 무엇보다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는데 서로의 고민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전시장으로 사용된 브루클린 엑스포 센터(Brooklyn Expo Center) 주변에 위치한 미술 기관 관계자들과의 협력을 통해 현장에서 생겨나는 전문가들의 피드백을 리서치 하고 작가와 공유하는 부분 역시 하나의 지역 공동체적인 모습을 띄는데 이 점 역시 참여 예술가들이 가장 높게 평가하는 페어의 장점으로 보여 진다. 디아더에서 젊은 층의 작품 구매자가 유독 많은 점도 공유가 키워드인 시대에 온라인 팬덤을 만들어내는 아티스트들이 등장하였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SNS,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투명하게 노출된 작품 가격 역시 예술품 구입에 대한 문턱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본다.


실제 미술전문 미디어 아트시(Artsy)의 조사에 따르면 밀레니엄 세대는 개인을 하나의 브랜드로 향상시키는 것에 대한 욕구를 예술적 가치를 통해 충족시키고자 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고 이것이 새로운 미술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고 평했다. 좋은 건 나누면 그 가치가 두 배가 되듯이 좋은 작품과 좋은 작가는 공유할수록 그 가치가 올라가기를 희망한다.



끝으로


확실한 컨셉트로 자리매김한 디 아더 아트페어도 작가간의 양극화 현상에 대한 고민을 여전히 안고 있다. 작가별 판매율의 큰 편차도 개선해야 할 숙제이며 작품 가격을 선정함에 있어서도 시장을 고려하지 못한 실수도 곳곳에 보였다. 또한 디 아더 출신 작가가 갤러리로 흡수되는 비율이 높지 않다는 점 역시 풀어나가야 할 숙제로 보인다. 한국에서 선보이고 있는 작가 중심의 페어도 신진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의 기능을 우선적으로 확대하고 작가 선정 방식도 한국 시장에 맞도록 시스템을 개발해야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철저한 시장 조사를 통해 가성비 높은 부스를 제공한다면 테스트 마켓으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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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형석, 「청년작가부터 김환기까지...미술품 '득템의 계절'」, 한겨레, 2019년 9월 25일

조윤영

조윤영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판화과 졸업 후 가나아트, 인사갤러리에서 갤러리스트로 근무하고 노블레스 미디어에서 운영하는 노블레스 컬렉션에서 전시를 담당했다. 2013년부터 아트부산에 합류하여 6회의 전시를 진행, 현재 아트부산의 팀장으로 2020년도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