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행사

퍼폼, 비물질 예술을 향유하는 방법

posted 2019.10.17


인터뷰 백지홍 편집장, 권태현 기자
정리 백지홍 편집장


《PERFORM 2019: Linkin-out》 포스터

《PERFORM 2019: Linkin-out》 포스터

“새로운 형태의 미술 향유 방식을 제안한다.”


‘새로운 미술 향유 방식’이라니, 올해로 4회를 맞이하는 《PERFORM》(이하 《퍼폼》)이 내건 포부가 퍽 흥미롭다. 이번 기획의 제안을 보다 자세히 살펴 보면 ‘예술카페’라는 콘셉트를 만날 수 있다. 관객이 원하는 작품을 대여하면 숙련된 스태프가 테이블로 작품을 서빙한다. 각 작품마다 작가가 걸어놓은 규칙만 지킨다면, 테이블 위의 작품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 된다. 관람객도 운영진도 조금은 낯선 조건에서 총 10일간(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8.27 ~ 8.31 / 일민미술관: 8.31 ~ 9.4) 진행된 《PERFORM 2019: Linkin-out》(이하 《퍼폼 2019》)은 《퍼폼》 사상 최다 관람객이 방문하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4,000명이 넘는 관람객은 《퍼폼 2019》가 제안한 방식의 미술 향유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퍼폼》의 제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행사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퍼폼》은 일반적인 유통방식에 포섭되지 않는 퍼포먼스, 영상 등을 유통하기 위한 모델을 매년 선보여 왔기 때문이다. [미술세계]는 4년째 《퍼폼》을 운영해오고 있는 김웅현 퍼폼 대표와 《퍼폼 2019》의 핵심 기획 ‘Linkin-out (이하 린킨아웃)’을 기획한 이솜이 기획자와 함께 지난 4년간 《퍼폼》의 제안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를 통해 퍼포먼스에서 비물질까지 《퍼폼》이 담론화하고 실행해온 개념들을 함께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일민미술관에서 진행된 《퍼폼 2019: 린킨아웃》

일민미술관에서 진행된 《퍼폼 2019: 린킨아웃》

퍼폼 2019 : 린킨아웃


《퍼폼 2019》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하면 좋겠다. 행사기간 중 장사진을 이뤘는데, 총 관객이 몇 명이었는가?


김웅현 총 방문자 수는 4,000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광주 방문객 수가 200명 정도였고 일민미술관 방문객이 3,800명쯤 되었다. 일민미술관의 평균 대기시간이 30분 정도였고, 마지막 날에는 더 길었다.


이솜이 광주에서는 린킨아웃이 운영되는 테이블이 9개 밖에 없었던 데다가 독립된 공간이어서 로테이션 속도가 더 느렸다. 일민미술관에는 첫날 13개 테이블을 운영하였는데, 관객들이 몰리면서 책상이 점점 늘어나 마지막 날에는 17개가 되었다.


린킨아웃은 《퍼폼 2019》에 앞서 퍼폼플레이스에서 선보인 것으로 알고 있다. 《퍼폼 2019》에서 선보인 버전과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솜이 1회 린킨아웃(퍼폼플레이스, 2019.1.24~2.7)은 영상 기반으로 활동하는 90년대 생 신진작가 11명의 작품으로 꾸린 전시였다. 영상으로만 작품이 제시되는 형태에서 확장하여 만져볼 수 있는 물질을 제공하거나, 영상을 스킵하거나 되감는 등 관객이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기획이었다. 일민미술관과 달리 퍼폼플레이스에서는 테이블이 단 한 개였고 모니터 대신 스크린이 있었다. 관객이 원하는 작품을 주문하면 영상과 함께 영상에서 파생된 오브제, 참조 자료, 데이터 등을 테이블에 서빙하고, 관객은 영상을 재생하는 등 자유롭게 관람하는 형태였다. 린킨아웃은 비물질 예술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다양한 것들을 소개하고자 시작되었지만, 테이블 위 작품이 모니터 속 비물질의 형태로 귀결될 것인지 아닌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테이블을 통해 더 확장된, 그리고 관객과 밀착된 거리에서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상황이 주어졌을 때, 미술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재미있는 시간, 나아가 사건 같은 것들이 고안되는 지점을 함께 나눠 보고자 했다. 작품들을 통해 작가들은 어떤 시간을 제안하고, 또 관객은 어떤 시간을 경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김웅현 1회 린킨아웃은 ‘세트상품’을 만들었던 게 재밌었다. 신진 작가들이다 보니 어떻게 작품을 감상해야 할지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메뉴판 겸 도록을 만들면서 작품들을 묶어서 감상할 수 있는 세트를 만들었다. 일민미술관 전시는 참여 작가가 78명이나 되기 때문에 세트상품을 기획하지는 못했다.


이솜이 세트상품은 작가들의 작업을 보다 주관적으로 소개한 기획이었다. 작업들을 5개의 카테고리로 나눈 후 ‘데자뷰-리 피크닉 세트’, ‘스모크드 1955-6 세트’ 등과 같은 재미있는 이름으로 두 작가의 작품을 함께 소개했다. 전시를 보시고 ‘#연희동맛집’이라는 해쉬태그를 다는 분도 있었다(웃음). 작은 공간에서 원테이블로 진행된 행사임에도 12일간 300여 명이 방문했다. 기다리는 관객도 스크린을 통해 영상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대기에 대한 부담이 일민미술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


린킨아웃 참여작가가 12명에서 78명까지 확장된 계기는 무엇인가?


김웅현 린킨아웃을 《퍼폼》에 포함한 것은 《퍼폼 2017》, 《퍼폼 2018》에서의 ‘데이터팩’1)경험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 고민한 결과였다. 데이터팩은 많은 작가의 아카이브를 보여준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추천 방식으로 많은 작가를 섭외하고자 했다.


이솜이 기획자

이솜이 기획자

참여 작가가 78명으로 늘어난 데 반해, 한 번에 대여할 수 있는 작품 수는 한정되어 관람객들이 공통된 작품을 감상하는 경험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솜이 78명의 꽤 넓은 스펙트럼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한 테이블에서 3개 정도의 작품을 감상하면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한 작품을 대여하면 최대 1시간 30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보장하였는데, 이는 최소한의 질적 경험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고, 대기하는 관객이 많은 상황에서도 지켜진 규칙이었다.


김웅현 전시를 기획할 때 미디어 경험 시 ‘피로도’가 중요한 요소였다. 작품을 어느 정도 감상하면 피로해질까 생각했을 때 최대치로 잡은 게 세 작품이었다. 그리고 작품을 제공하는 스태프가 작가를 대신한 유사 퍼포머가 되어야 했기 때문에, 스태프 한 명이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 역시 3개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관객이 78개의 작품을 다 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작가들의 퍼포먼스가 이뤄지는 ‘쇼케이스’ 뿐만 아니라 전시 형태의 린킨아웃에서도 스태프들이 유사-퍼포머처럼 느껴져 《퍼폼 2019》 의 경험 전체가 퍼포머티브하게 느껴졌다.


이솜이 단순한 스크리닝에 그치는 작가도 있었지만, 어떤 작가는 오마카세 스시집처럼 시간대별로 스태프의 구체적인 행동요령을 설정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박경률 작가의 작업은 테이블에 캔버스와 여러 오브제들을 놓는 방식이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었다. 작가의 퍼포먼스를 가능한 유사하게 모방할 수 있도록 준비한 전담 스태프가 관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했다.


김웅현 스태프들이 유사 퍼포밍을 하려면 지침과 타임테이블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작가별 매뉴얼이 만들어졌다. 흥미로운 사례는 게임을 만드는 정동욱 작가나 김영수 작가 같은 경우다. 보드게임을 진행하기 위해서 게임마스터가 존재해야 했는데, 해당 게임을 배우면서 스태프의 역할이 단순히 작품을 내어놓는 것에서 게임마스터 역할을 하는 유사 퍼포머 형태로 진화했다.


린킨아웃의 경험은 확실히 흥미로웠지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의 수에 명확한 제약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간을 늘려야 할 텐데, 이 경우에는 전문 스태프가 상주해야 한다는 점이 운영상 부담으로 다가올 것 같다. 이와 관련하여 피드백이 있었는가?


김웅현 린킨아웃을 상설로 운영해야 한다는 피드백을 가장 많이 받았다. 하지만 《퍼폼》에서 단발성이 문제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동안의 《퍼폼》은 일종의 제안들이었다. 작가들의 작업을 모은 ‘데이터팩’은 가장 강력한 제안이었고, ‘쇼케이스’는 퍼포먼스라 불리는 비물질 예술을 오롯이 선보일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제한된 조건으로 행사를 치르면서 담론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했다. 올해에는 린킨아웃을 전면으로 내세우기 위해서 토크를 줄였는데, 3회까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토크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도 담론 형성을 위해서였다.


이솜이 《퍼폼 2019》에서는 작품이 하루에 약 300회 정도 대여되었는데, 비록 작품 자체의 영구적인 구매는 아니었지만, 관람객들이 대여권을 구매했다는 점은 시간, 경험, 비물질 예술을 판매하고자 노력했던 《퍼폼》에게 의미 있는 현상이었다. 개인적으로 추후엔 상설로 린킨아웃을 진행하고 싶은데, 이때는 10여 명 정도의 신진 작가를 소개하고, 2~3달 간격으로 그 라인업을 다양하게 로테이션 시키고 싶다.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보다 더 가까이에서, 밀착된 환경에서 소개함으로써 작가들에게는 작품을 보다 깊이 있게 소개할 기회가, 관객에게는 동시대 미술을 이리저리 뜯어보고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김웅현 퍼폼 대표

김웅현 퍼폼 대표

경험을 판매합니다.


1, 2, 3, 4회를 거듭하면서 보였던 《퍼폼》의 제안과 변화들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좋겠다.


김웅현 《퍼폼 2016》은 당시 미술계에서 늘어나던 대체 서사 작업을 하는 작가들의 영향으로 만들어졌다. 서사 작업들은 전시 오프닝이나 작은 이벤트 등에서 곁다리처럼 소비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들을 중심에 놓고 시간을 소비하는 행사를 만들고 싶었다.


작가장터기금을 통해서 행사 운영비를 마련했는데, 김영수, 김미교 기획자와 함께 기획한 1회 《퍼폼》은 장터 느낌은 아니었고 퍼포먼스 ‘쇼케이스’에 가까웠다. 사실 쇼케이스라는 이름도 장터라는 형식에 맞추기 위해 선정한 단어였다. 정금형 작가, 정진화 작가, 조익정 작가 등 새롭게 시작하는 《퍼폼》의 색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작가들을 섭외했다. 첫 행사를 통해 ‘이상한 것을 보여주는 집단’이라는 《퍼폼》의 성격이 규정된 것 같다.


2회 때는 송지현 기획자가 참여하여 보다 영상에 집중했다. 미디어, 영상 작가들을 중심으로 모으되 쇼케이스 형식보다는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인 ‘데이터팩’으로 보여주고, 기존의 쇼케이스는 공연, 무용 베이스 등 한국 예술계에서 활동하는 퍼포머 전반을 폭넓게 다뤄보고자 했다. 그리고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아트선재센터, 갤러리 호아드, 통의동 보안여관으로 공간이 다변화되어 작가들이 자신이 원하는 환경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규모가 확장되었음에도 관객은 줄었다. 《퍼폼 2016》은 《굿-즈》(2015) 와 연달아 이어지는 장터 사업이라는 힘도 있었고, 연말행사 느낌도 있었다면 삼청동의 기성 공간에서 진행된 2회는 형식이 갖춰지면서 오히려 특색이 사라진 면이 있었다. 반면 담론을 활성화했다는 면에서는 《퍼폼 2017》이 중요했다. 안소현 비평가에게 진행을 부탁한 토크 프로그램에 이한범, 김해주, 김선옥 씨가 참여하여 비물질 예술의 ‘생산’, ‘소비’, ‘교환’이라는 주제로 함께 논의했는데, 많은 피드백이 있었고, 나 역시 여러 토크에 초대되기도 했다.


3회에는 다시 김영수씨가 기획자로 참여하여 《퍼폼》의 외연 확장에 초점을 맞췄다. IT 과학자, 타투이스트, 비트코인 전문가와 같은 미술계 외부 인사나, 미술계에 걸쳐있는 음악가 이랑 같은 분을 섭외했다. 데이터팩의 형식도 변화하여 55명의 작가가 제작한 1분짜리 예고편 123개를 보여주었다. 인스타그램 피드의 속도를 고려했고, 2회 행사의 경험도 반영되었다. 예고편을 보고 마음에 든 작품의 번호를 선택하면 작품 정보를 프린트해서 가져가고 작가와 직접 연락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만약 작품이 판매되면 《퍼폼》이 중개했다. 데이터팩의 반응은 2회 차보다 좋았는데, 123편의 예고편을 한편의 작품처럼 보는 분도 있었다. 관객에 따라서 동세대 작가들 사이에 비슷비슷한 구석에 집중하거나, 차이에 집중하기도 했다. 또한 《퍼폼 2018》부터 일민미술관에서 개최되면서 행사가 안정화되고 규모를 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올해 4회 《퍼폼 2019》는 2, 3회 전시에서 많은 피드백을 받은 데이터팩을 메인으로 가져오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데이터팩을 이어받은 린킨아웃을 메인으로 두되 쇼케이스를 통해 관객을 모으고, 이를 린킨아웃으로 자연스럽게 유입되도록 하는 방식으로 기획했다. 2년간 공을 들인 오민 작가와 키라라 음악가가 참여한 첫날에만 약 1,000명이 방문했다.


《굿-즈 2015》이후 탄생한 유통 플랫폼들은 ‘경험’을 강조한다. 《퍼폼》 역시 유사한데, 퍼포먼스라는 장르는 본래 시간을 경험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기도 하다.


김웅현 나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퍼폼》을 운영하며 관객들에게도 경험이란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고, 작가들도 평소에 받을 수 없는 관객의 만족도를 피드백 받을 수 있었다. 여타 운영의 문제점이 있지만 경험을 산다는 개념을 중심으로 한 행사 기획은 확실히 가능하겠다는 감이 온다. 다만 나를 포함해 작가들이 유통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DVD를 보면 영화 외에도 보너스 트랙이 있어서 영화를 다른 방향으로 접속하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퍼폼 2019》에서는 린킨아웃의 테이블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솜이 작가들과 미팅할 때도 가장 먼저 이야기한 것은 테이블에서 보내게 되는 시간, 경험 자체를 고안해 달라는 것이었다. 작가가 고안한 시간을 퍼포머(스태프)를 통해 가능한 그대로 전달하려 했고 관객들도 재미있게 임했다.


이랑의 〈크라우드워크〉 쇼케이스, 《퍼폼 2018》

이랑의 〈크라우드워크〉 쇼케이스, 《퍼폼 2018》

한정된 크기의 테이블이라든가, 상영시간과 같은 구체적인 조건은 작가의 입장에서는 창의력을 이끌어낼 수 있고, 그 과정 자체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관객에게는 전시의 규칙을 적극적으로 익혀야 한다는 점이 어려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웅현 관람객들을 면밀히 관찰해본 결과 린킨아웃의 시스템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반반씩 드러났다. 비물질 예술을 친절하게 작가의 의도대로 설명한다는 부분은 기존의 전시 형태와 다른 면을 감상할 수 있게 하는 긍정적 효과가 있었던 반면, 겪어보지 못한 시스템을 학습하며 관람해야 하는 관람객에게는 다소 어려운 면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린킨아웃의 영상 작품들은 다시보기와 스킵이 가능했지만, 자유롭게 즐기는 관객이 적었다. 안내가 부족했던 탓도 있다. 관람객들은 여러 가지 제약으로 린킨아웃이라는 플랫폼을 경험하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는 경우가 많았고, 작품을 꼼꼼히 즐기는 사람은 평소 작가의 작품을 알고 있는 분들이 많았다. 이 자리를 빌어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이런 부분은 행사가 몇 차례 반복되어 관람객들에게 친숙해지거나, 노래방처럼 개인 공간을 제공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한다. 실제로 광주 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 2관은 셀로 나뉘어 있고 상대적으로 여유로웠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편안하게 감상했다.


이솜이 전시가 끝난 후 몇몇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관객이 매우 가까이에서 작품을 마주할 수 있게 하는 테이블 환경을 통해 지금껏 소개하지 못했던 작업의 이면을 소개할 수 있었다거나, 관객의 반응에 따라 다양한 사건을 파생시킬 수 있어 새로운 작업을 펼치기 좋은 실험적인 공간이었다는 반응이 있었다. 어느 정도 스케일이 필요했던 작가에게는 6×2m 크기의 독립된 방과 같은 환경을 추가적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테이블은 밀착된 거리의 전시 공간을 위해 고안된 것일 뿐, 언제든지 다른 환경으로 대체될 수 있었다.


린킨아웃에서는 경험뿐만 아니라 진짜 작품을 살 수 있는 기회도 제공했다. 작품은 얼마나 판매되었나?


이솜이 20건 정도가 판매되었다. 이번에 기획에서 중요했던 부분 중 하나가 도록에 수록되는 작품 판매 방식이었다. 작가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판매할 수 있을지 직접 준비하라고 했는데, 다양한 방법이 등장했다. 어떤 분은 스태프의 인건비를 고려하여 대여 가격을 구매 가격보다 비싸게 책정하여 판매를 유도하기도 했다.


퍼포먼스란 무엇인가?


근본적인 질문을 드리겠다. 《퍼폼》은 퍼포먼스의 유통방식과 기록에 대해서 말해왔다. 그렇다면 ‘퍼포먼스’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혹시 《퍼폼》을 통해 변화한 부분이 있는가?


김웅현 왜 ‘퍼포먼스’라는 용어를 쓰느냐는 질문은 《퍼폼》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사실 《퍼폼》은 1회부터 4회까지 용어 실험을 해왔다. 1회에는 퍼포먼스를 내세우긴 했지만 상징적인 것이었고, 내용으로는 ‘대체 서사’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다. 게임처럼 작업하는 작가들을 모았다고 하여 ‘게임 서사’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공연 형태로 서사를 꾸리는 사람, 드라마투르그(dramaturg)를 하는 작가들을 모으는 것이 핵심이었다. 신체를 활용한 무용 형태는 아니었고, 뮤지컬처럼 각 잡고 하는 것도 아니었다. 2회에는 ‘라이브 아트’라는 용어를 가지고 나왔다. 뉴욕의 ‘키친(the kitchen)’ 사이트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를 살펴보니 라이브 아트가 통용되고 있었고, 영국에서는 퍼포먼스라는 용어는 쓰지 않고 라이브 아트로 묶어서 설명하는 걸 봤다. 그래서 라이브 아트를 사용해보자고 했는데, 생방송이라 이해하는 분도 있었고, 라이브 퍼포먼스라고 이해하는 분도 있었다. 한국에서 통용되던 단어가 아니다 보니까 오해의 여지가 많았고, 설명을 하다가 행사가 끝난 느낌이 컸다. 3회에는 다시 퍼포먼스를 쓰려고 했는데, ‘비물질’이 보였다. 영상을 제외한 나머지 작업은 물질이 어느 정도씩은 다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따져보면 비물질 예술이라는 단어는 말이 안 된다. 그럼에도 미술씬에서 비물질 예술이라는 단어를 쓸 때는 작가와 감상 자, 기획자 사이에 합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비물질 예술을 정면에 내세우고 그 개념을 조금 더 정리하려고 했다. 퍼포먼스의 기록과 판매가 아니라 비물질 예술의 기록과 판매를 주제로 했다.


오민 작가를 내세운 것도 비물질 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기록되는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밈미우 작가나 키라라 음악가의 작품 역시 주된 주제는 아니었지만 비물질 예술을 기록하는 방식을 엿볼 수 있었다. 린킨아웃에서도 비물질 예술이 테이블 위에 기록의 형식으로 보여지고 판매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했다.


괄호의 〈하던 놈이 해라〉 쇼케이스, 《퍼폼 2016》

괄호의 〈하던 놈이 해라〉 쇼케이스, 《퍼폼 2016》

퍼포먼스와 퍼포먼스 기록의 관계는 흥미로운 주제다.


김웅현 작가들마다 입장이 다른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퍼포먼스를 온전히 기록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생각한다. 오민 작가의 작업은 이전에 선보인 작품의 기록을 가지고 퍼포먼스의 기록에 관한 공연을 새롭게 고안한 것인데, 이를 준비하면서도 퍼포먼스의 기록이 아주 까다롭고 섬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음악의 스코어나 악보, 영상 촬영, 속기 등 기존의 방식을 변형 적용한 기록은 이미 보편적이다. 그것이 행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의 결론이었다. 기록이 되어야 유통과 판매로 이어진다. 이제는 너무 많이 써서 의미가 변질되고 있지만 이 또한 ‘활로 개척’이라 할 수 있다.


《퍼폼 2019: 린킨아웃》 운영진 왼쪽부터 홍보·기술: 정승완, 책임 총괄: 김웅현, 책임 기획: 이솜이, 운영 팀장: 백혜원, 책임 총괄: 박소라, 회계실무: 김보경

《퍼폼 2019: 린킨아웃》 운영진 왼쪽부터 홍보·기술: 정승완, 책임 총괄: 김웅현, 책임 기획: 이솜이, 운영 팀장: 백혜원, 책임 총괄: 박소라, 회계실무: 김보경

퍼포먼스와 그 경험은 비물질인데, 그것을 다시 유통하기 위해 기록물, 오브제, 사진 등의 물질이 등장한다면 비물질이 다시 뒤로 밀리는 것 아닌가? 결국 물질이 유통된다면 부담스럽지 않게 티켓을 구매하고 작가의 퍼포먼스 공연을 자유롭게 본다는 《퍼폼》의 장점은 희석되고, 비물질이라는 개념이 기각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솜이 확실히 내용이 비물질이라도 물질 형태의 작품이 판매되는 경우가 많다. 김정태 작가의 〈PICO〉 같은 작품도 CD케이스 라는 물질에 담아서 판매한다. 파일을 전송하는 식으로 판매하면 관심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뭐라도 손에 잡혀야 한다는 감각이 있는 것 같다. 동시에 손에 잡히는 CD가 유통된다고 해도 그 안에 담긴 데이터가 작품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지, CD라는 물질 자체를 구매한 것이 아니다. 물질의 형태로 잠시 작업의 표피를 싸고 있다고 해서 비물질이 뒤로 밀리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린킨아웃 대여권을 구매하는 것은 콘서트 티켓을 구매하는 것과 상응한다고 생각한다. 콘서트 티켓을 구매한다는 것은 음악을 즐기는 특정한 시간을 구매하는 것이지 않나.


김웅현 《퍼폼》을 통해 비물질 예술 작품들의 친절함을 보여주고자 했다. 관람객의 입장에서 보면 퍼포먼스나 영상작업은 작가가 정한 대로 시간을 일방적으로 소비해야 된다는 강박이 느껴진다. 반대로 작가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뜻대로 시간을 소비하게 만들고 싶은데 전시장이라는 환경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퍼폼》은 관객과 작가의 니즈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형태가 무엇인지 고민한다. 결국에는 비물질 예술을 더 많은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소비자가 없으면 시장을 만들 수 없다. 생산자가 곧 소비자라는 것이 미술계의 가장 큰 딜레마라 생각한다. 미술계 내부에서 우리끼리 돌리는 행사라면 그것이 과연 필요할까. 《퍼폼》에게는 관객 개발이 주요 과제였고, 지금도 관객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테이블을 소개하는 린킨아웃 서버

테이블을 소개하는 린킨아웃 서버

지속가능한 퍼폼


기존의 《퍼폼》은 겨울에 진행되었는데, 올해는 여름에 개최했다. 기금으로 인한 변화인가?


김웅현 기금 일정에 따른 일정 변화가 맞다. 기금은 여러 행사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데, 《퍼폼》 역시 작가장터기금의 형식에 맞춰서 발전해왔다. 작가장터기금이 없었다면 유통 플랫폼을 구조화 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유통에 대한 고민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자생 방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퍼폼》은 일단 기금 의존적인 행사다.


그렇다면 《퍼폼》이라는 플랫폼이 지속가능한 손익분기점을 넘긴 적이 있는가? 없다면 넘길 가능성이 보이는가?


김웅현 지금까지는 넘긴 적이 없다. 지금은 행사 수익이 모두 작가에게 돌아가는 구조이고 도록과 티셔츠 판매 수익만 가져간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구조가 만들어질 가능성은 확실히 있다고 본다. 이미 성공한 플랫폼이 많기 때문이다. 일본의 요코하마 퍼포밍 아트 미팅(Performing Arts Meeting in Yokohama) 《티팸(TPAM)》, 미국의 《퍼포마(PERFORMA)》는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한 예술 행사이면서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플랫폼이다. 《티팸》과 《퍼포마》는 국가 지원금과 국제기금, 민간기업의 협력으로 10년 이상 안정적인 행사를 선보이며 많은 유명 퍼포머들과 프로그램을 탄생시켰다. 《퍼폼》이 지속적으로 개최된다면 두 행사의 모습과 비슷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퍼폼》이 《퍼포마》 모델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의 변화와 시스템이 요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김웅현 첫 번째는 아카이빙이다. 전 세계가 참조하는 《퍼포마》의 아카이브급은 아니더라도, 아시아 미술씬에서 참조하는 아카이브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퍼폼》은 단순히 재밌는 장터 행 사로 보는 분들도 많다. 작가들의 작품이 어떤 식으로 보존되고 활용되는지 책임질 수 있는 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퍼폼》은 진지하게 아카이브에 접근하고자 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아카이브를 열린 플랫폼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모두에게 좋을 것이다. 두 번째는 유통구조 확립이다.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이건 퍼포먼스 플랫폼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획적으로 욕심을 부린다면 에이스 작가들을 모셔오고 싶다. 로레 프로보스트(Laure Prouvost)안네 임호프(Anne Imhof) 같은 예술가는 해외에서 굉장히 유명한데 한국에서는 잘 모르지 않나. 이들을 초대하면 심각한 고민 없이도 행사는 성공할 것이다. 행사 기획에 있어 티켓 파워는 굉장히 중요하다. 앞으로의 《퍼폼》 은 많은 이들과 호흡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려 한다.



1)데이터팩은 퍼포먼스 기록 영상과 영상 작품들을 선보이는 프로그램이다. 《퍼폼 2017》에서는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로 영상을 제공했으며, 《퍼폼 2018》에서는 123개의 예고편을 상영했다.



※ 이 원고는 미술세계 2019년 10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미술세계와 콘텐츠 협약을 맺고 게재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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