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조현대 아트인컬처 기자
부산과 안양, 두 도시에서 도심 공간을 무대로 하는 예술축제가 연달아 개최했다. 《2019 바다미술제-상심의 바다》와 《제6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안양, 함께하는 미래도시》가 각각 9월 28일, 10월 27일에 열린 것. 《2019 바다미술제》는 부산 서남단에 위치한 다대포해수욕장에서 아시아 12개국 출신 20명(팀)의 작품 21점을, 《APAP6》는 안양예술공원 일대와 평촌 중앙공원을 활용해 7개국 47명(팀)의 작품 100여 점을 선보였다. 두 행사 모두 일련의 역사를 갖고 있다. 《바다미술제》는 1987년 처음 개최된 이래 1996년까지 매년 열리다가 이듬해부터 부산비엔날레에 통합 개최, 2011년 다시 독립하여 격년제로 열리고 있다. 《APAP6》의 경우, 2005년 《제1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를 개최하며 총 52점의 작품을 삼성산과 안양천 곳곳에 설치했다. 이를 통해 당시 안양유원지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이 일대를 안양예술공원으로 탈바꿈, APAP의 주된 무대로 활용해 왔다.
이미 도시 속의 숱한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과 대안으로서 제시되어 왔던 공공예술. ‘도시 재생,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 다수 시민의 예술 향유 등의 임무를 부여받거나 스스로 실천했던’ 미술과 관련 행사를 현재 시점에서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우리 사회의 제도가 조금씩 보완됨에 따라 시민 의식이 성숙해져 갈수록 ‘공공’이라는 단어가 요청받는 정의와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 동시대 공공예술은 이러한 요구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을까?
바다, 예술과 삶을 연결하다
<2019 바다미술제>의 주제 ‘상심의 바다’는 돈 깁슨의 명곡 ‘Sea of Heartbreak’의 제목을 그대로 빌려 왔다. 이 곡은 실연의 아픔을 어두운 바다에 비유해 노래한다. 이번 축제를 총괄한 서상호 전시감독은 끊임없이 들이치는 파도에 상심을 씻겨 보내길 바라며 바다와 예술을 조우시켰다. 그는 서문에서 “예술과 삶을 연결시키려는 시대적 요청에 <바다미술제>는 어떻게 응답할 수 있을까”라며 공공예술의 역할을 자문한다. 이번 축제는 ‘환경’과 ‘생태’, 이로부터 파생되는 기후 변화, 자원 낭비, 난민 문제 등 구체적 이슈를 주목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바다 태평양을 공유하는 아시아 국가 출신 작가들로만 전시를 구성했다. 일시적 지속적 관계를 이루며 협업을 이어 왔던 국내외 작가 콜렉티브들이 다수 참여했다는 사실도 눈여겨볼 만하다.
다대포해수욕장 진입로 양 옆 두 그루의 소나무에 샤오-치 차이 & 키미야 요시카와(Hsiao-Chi Tsai & Kimiya Yoshikawa)의 <모호한 부케-한 쌍>이 걸려 있다. 형형색색의 리본들은 나무를 마치 커다란 꽃다발처럼 보이게 한다. 또한 작품은 한 쌍의 수호상으로서 길상을 기원하고, 관람객을 환영한다. 최수환의 <하늘 문>은 사방이 뚫린 철제 2층 구조에 각 층마다 문이 하나씩 나 있는 모습의 설치작품으로, 문을 여닫고 지나가는 행위를 과거-현재-미래가 지속 반복되는 삶의 패턴에 비유한다.
한편 환경 문제를 보다 직접적인 화두로 삼는 작품들이 눈에 띈다. 타이둥 다운아티스트빌리지 & 토코 스튜디오(Taitung Dawn Artist Village & Toko Studio)는 대만 동해안 지역에서 꾸준히 활동해 온 팀이다. 출품작 <해변가에 섬이 생긴다면>은 대나무와 낚싯줄로 만든 돔 형태의 대형 조각으로, 해당 지역 토착민들의 삶와 기억을 엮어낸 섬과 같다. 이곳에서 폐비닐, 천 조각, 폐플라스틱 등으로 생활용품을 만드는 워크숍을 진행한다. 각각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 출신인 카불 & 민티오(Kabul & Mintio)의 <바다가 조각나듯>은 인도네시아 전통 방식으로 제작한 태피스트리 깃발에 다양한 종의 물고기를 수놓아 해양 생태 보존을 위한 각성을 촉구한다. 제주도 출신 조각가 이승수는 해변에 인체 조각을 드문드문 세운 설치작품 <어디로 가야하는가>를 선보였다. 작품의 주재료는 수천 년 전부터 인류가 사용해 왔던 인공 건축 자재인 시멘트. 이를 해양 쓰레기와 혼합해 만든 인간 군상은 삶의 터전을 상실해 가는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묻는다.
최근 기후 변화와 이에 따르는 해수면 상승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해안과 저지대에 형성된 도시들은 이미 실체화된 위협을 마주한다. 홍콩 비영리 예술 단체 아트 투게더 리미티드(Art Together Limited)의 <상심의 웅덩이>는 모래를 1.6m 깊이로 파내고 계단 모양의 나무 구조물을 설치했다. 이곳에서 관객은 높아진 해수면을 간접 체험하고, 모래성이 밀물과 썰물이 오가며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부산 기반 작가 송성진 또한 주변보다 지형이 낮은 곳에 작품을 설치했다. <없으나 있는: 너머>는 각종 재활용품으로 만든 오브제와 환경 문제를 다루는 뉴스 영상을 동시에 보여 준다. 영상은 ‘폐기’와 관련한 이슈를 ‘은폐’하려는 최근의 작태를 여실히 나타낸다. 그는 폐목재로 지은 집 구조의 작품 <1평>을 함께 출품했는데, 갯벌 깊숙이 가져다 놓아 만조 때는 바다에 반쯤 잠긴 집을 멀리서 볼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 인류가 자행한 파괴와 오염이 스스로의 생존 조건을 위협하는 상황을 드러냄과 동시에 이주와 난민 문제까지 나아간다.
분쟁 지역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은 주로 바닷길을 통해 이주를 감행한다. 특히 몇 년 전 시리아 내전을 피하려 올라탄 배가 난파되어 해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소년 쿠르디의 사진은 유럽 사회의 난민 정책 변화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태국 기반의 예술단체 텐터클(Tentacles)은 볏짚을 삼아 만든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에서 부산으로 이주, 정착한 태국인들과 협력해 워크숍을 진행한다. 태국 전통 음식과 노래를 공유하며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 몽골 작가 엥흐볼드 토그미드시레브(Enkhbold Togmidshirev)는 자국에서 직접 공수한 게르와 쇠뿔과 가죽으로 만든 <나의 게르>를 출품했다. 말똥에 불을 지피는 등 실제 유목민 문화에서 비롯한 행위와 재료를 동원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노마드적 삶을 살아야 했던 작가의 근원적 정체성을 드러낸다.
한국작가들이 모여 만든 두 팀은 일시적 콜렉티브를 구성했다. ‘미술회관 속 산토끼가 탬버린을 치네’는 박상호 이은영 정윤주가 결성한 그룹으로, 바퀴를 달아 이동 가능한 조각 시리즈 <움직이는 조각공원>을 선보였다. 이를 통해 공간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도심 속 휴식 공간을 가변적으로 마련한다. 김문기 윤성지 윤희수가 결성한 ‘임시적 작가 협의체’ 임협의 <임협 프로젝트 #1>은 개별 작가의 작품을 유기적으로 배치한 작품이다. 김문기의 <가난한 조각>은 야외에 적합하지 않은 종이 재료의 조각을 아크릴 박스에 봉인해 보여 줌으로써 조각 장르의 가변적 가능성을 엿본다. 윤성지의 <다대포 _ 칠성사이다>는 음료 브랜드 로고가 찍힌 초록색 트레이로 거대한 탑을 쌓아 기업의 메세나와 예술 협업의 변화를 기원하고, 윤희수의 <에코 마린 스플레쉬!>는 다대포 바다 속에서 녹음한 미지의 소리들을 들려 준다.
지금 여기, 내일보다 나은 삶
이번 《APAP6》의 주제와 부제는 각각 ‘공생도시’와 ‘안양 함께하는 미래도시’. 김윤섭 예술감독은 이를 “더불어 나은 삶을 지향한다”고 풀어 설명하는데, 크게 ‘환경적 문화적 사회적 가치’ 등 세 가지 방향성을 염두에 두고 행사를 구성했다. 최근 한국사회는 미세먼지와 관련해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중국발 스모그는 물론 국내 산업 시설에 의한 대기 오염까지 일상에 가장 밀접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출신 디자이너 단 로세하르데(Dann Roosegaarde)가 안양 평촌 중앙공원에 설치한 7m 높이의 <스모그 프리 타워>는 도심 속 거대한 공기 청정기 역할을 도맡는다. 실질적인 공기 정화 효과에 대한 기대는 차치하더라도, 과학 기술과 예술을 융합하려는 시도가 바라봐야 할 긍정적 방향을 가리킨다.
이외의 야외 설치작품들은 모두 안양예술공원 일대에서 만나볼 수 있다. 문주와 천대광은 안양예술공원에 관객이 작품 내부로 직접 들어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공의 장소를 만들어냈다. 조각가 문주의 <지상의 낙원>은 건축가 알바로 시자(Alvaro Siza)가 설계한 안양파빌리온 특유의 돔 구조를 차용해 시각적 통일감을 마련했다. 천대광은 수영장 잔해 시설에 <너의 거실>을 설치했다. 작가가 직접 제작한 테이블과 의자를 놓아 누구든 자신의 거실처럼 머무를 수 있는 장소가 된다. 안양박물관 후원에는 한국의 대표적 여성주의 작가 윤석남의 유기견을 모델로 한 목조 조각 <1025: 사람과 사람없이>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최초로 1,025점을 한 자리에 모아 공개하는 것으로, 사람에 의해 버려진 개들의 모습을 통해 소외받는 생명들과의 공생을 염원한다. 싱가포르 출신 작가 리웬(Lee Wen)은 둥근 도넛 모양의 탁구대에서 여러 사람이 승패 없는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핑퐁 고-라운드>를 통해 다수를 넘나드는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을 시각화한다. 설치미술가이자 사진작가 조르주 루스(Georges Rousse)는 특정 위치와 시야각에서 봤을 때 ‘삶’이라는 글자가 보이는 사방 5m 크기의 정육면체 조각 <안양 2019>를 제작했다. 르네상스 회화에서 바니타스의 상징을 교묘히 숨겨 놓았던 ‘아나모르포시스(anamorphosis)’ 기법을 활용하는 그의 작품은 가장 정확한 위치에서 촬영해 글자가 드러나는 한 장의 사진으로 남게 된다.
리뷰기획전 《지금 여기, APAP》는 1회부터 5회까지의 를 조망하는 아카이브 전시다. 안양박물관 특별전시관 전체를 활용해 1층에 문서 사진 영상 등 기록물 중심의 아카이브를, 2층에는 4명(팀)의 참여작가가 아카이브를 재해석한 신작을 선보인다. 전시 전체를 디자인한 제로랩은 를 통해 자료들을 효과적으로 제시하기 위한 구조물과 오브제를 제작했다. 프로젝트레벨나인의 <문서확장자-사유하는 도큐먼트의 은하계>는 아카이브 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손쉽게 열람할 수 있는 디지털 인터페이스로 작동한다. 서울과학사와 김혜련은 각각 대표작 20점을 3D 프린팅한 <3D 아카이브>와 마찬가지로 대표작들을 안양예술공원에 서식하는 길고양이의 시점으로 바라본 드로잉 애니메이션 영상 <예술공원의 고양이>를 출품했다.
주제전 《내일 보다 나은》은 안양파빌리온 내부 공간을 활용했다. 국내외 7명의 작가가 참여한 전시는 주제 ‘공생도시’가 어떻게 안양이라는 도시에 관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서가활성화 프로젝트>는 파빌리온 내 <무문관>의 서가를 재정비한다. 이한범이 총괄해 최신 관련 출판물을 추가하는 등 오늘날 공공예술에 대한 담론과 실천의 변화를 살핀다. 또한 는 안양 연고 작가 21명(팀)의 작품을 안양예술공원 내 상점 19곳의 업종과 성격을 고려해 매칭, 일상적 소비 공간 속에서 지역 기반의 예술을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말랑말랑한 공공예술을 향해
《2019 바다미술제》와 《APAP6》 모두 학술 프로그램 및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마련해 주제를 심화하고 즐길 거리를 더했다. 《2019 바다미술제》는 ‘아시아의 보이스’를 주제로 하는 국제 학술 컨퍼런스와 서상호 전시감독이 직접 진행하는 현장 토크를 준비했다. 《APAP6》의 총 9개 시민 참여 프로그램은 관객이 창작 과정 및 전시에 직접 개입하며 공공예술에 대해 한층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마련됐다. 프로그램마다 다양한 내용과 특성, 난이도에 따라 참여 시민의 연령층을 구분한 점도 눈에 띈다.
이처럼 미술관을 벗어나 공공장소를 점유해 전시를 선보이고 시민과 관객을 끌어들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두 행사는 ‘공공예술제’의 성격을 공유한다. 또한 지자체 혹은 산하 문화재단 등이 총괄하는 구조로 설립, 지속되어 왔다는 측면에서의 공공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이는 공적 제도 내에서 개최되는 미술 행사 일반이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기본 구조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른바 ‘공공예술축제’는 공공이라는 단어가 포괄하는 서로 다른 영역과 개념이 상충하며 몇 가지 공통적인 한계를 드러내왔다.
우선 이들은 국내외 주요 작가와 작품을 통해 동시대 예술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특정 주제를 제시하는 ‘국제전’을 표방하며, 예술과 사회에 있어서 보다 고차적인 공공성을 지향한다. 반면 지역 주민이 보다 친밀하게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축제로서 다소 대중적인 공공성을 유지해야 하는 숙제도 떠안고 있다.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로서의 공공, 실제 현장과 이해관계 속에 놓인 공공 사이의 간극이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공적 자금을 통해 마련된 예산의 규모, 복잡한 집행 절차와 범위의 제한은 실제 진행 과정에 있어 비효율적인 경직성을 불러온다. 이와 관련해 행사마다 총괄 감독의 선임 이후 본격적으로 축제를 준비했던 기간이 1년이 채 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감독의 충분한 재임 기간을 보장하지 못하는 조건 속에서 매번 공모나 추천을 통해 선임하는 방식을 고수해야 하는 것일까? 장기간 전문가 위원회 주도로 다양한 의견을 모아 가며 일관성과 지속성을 유지하는 행사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한편, 최근 공공예술축제는 지역의 현안과 커뮤니티에 얼마나 깊숙이 개입하고, 예술을 경유해 이에 대한 응답을 내어 놓았는가? 오히려 국지적으로 벌어지는 개별 작가의 작은 프로젝트들이 소기의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행사의 규모와 화제성에만 연연하기보다 긴 시간 해당 지역의 역사와 현안을 연구하고, 지역 커뮤니티와의 적극적인 교류와 소통을 통해 보다 말랑말랑한, 구석구석 보이지 않는 곳까지 가 닿을 수 있는 예술을 펼쳐 내야 하지 않을까?
아트인컬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