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전지영
들어가며
퍼포먼스 아트는 누군가에 의해 소장될 수 있는가? 퍼포먼스는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는가? 퍼포먼스 아트의 소장과 보존에 대한 질문들은 이제 미술 시장에서도 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 본 리서치는 퍼포먼스 아트의 소장과 보존을 둘러싼 이 두 가지 질문을 묻기 위해 계획되었다. 필자는 퍼포먼스 아트를 시각예술의 언어에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최근의 동향을 살피고, 퍼포먼스 작품의 시장성을 타진하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 코첼라 밸리에서 열린 Desert X 비엔날레(2019년 2월 9일~4월 21일)와 스위스 아트 바젤(2019년 6월 19일~21일)을 방문하였다.
지난 몇 년간 한국 미술계에서는 퍼포먼스 미술과 공연예술의 접점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시도가 두드러졌다. 시각예술의 범주에서 행위와 이벤트의 특성을 수용하고 그 경계를 확장하기 위해 무대 밖의 행위, 전시장 밖의 미술이 무엇인지에 대해 심도 있게 질문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제미술계에서도 퍼포먼스는 그 특성인 일회성, 개념성, 실험적인 방법론을 적극 활용하면서 어떻게 퍼포먼스의 한계를 극복할 것일지, 즉 어떻게 퍼포먼스가 독립적인 미술의 매체로 존립하는 동시에 그 구현의 경계를 넓힐 수 있는지에 대해 활발히 논의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독립적인 매체로서의 퍼포먼스 아트가 과연 미술 시장과 상생하는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다각도의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방대해지는 미술시장에서 비물질적인 개념과 순간의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퍼포먼스 작품의 소장과 거래는 활성화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 퍼포먼스 작품들이 제작 및 발표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퍼포먼스 작품이 기관이나 개인에게 소장되는 것이 뉴스화가 될 정도로 흔치 않은 일이었다. 미디어 & 퍼포먼스 부서가 별도로 개설되어 있는 MoMA에서도 미술관의 7만 2천여점의 소장품 중 퍼포먼스 작품이 단 15점인 것은 이러한 사실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최근 기관과 개인이 퍼포먼스 아트를 소장하는 사례가 주목을 받고 있다. MoMA의 미디어 & 퍼포먼스 아트의 수석 큐레이터로 있는 스튜어트 코머(Suart Comer)는 2008년 MoMA의 티노 세갈(Tino Sehgal)의 2003년 작품 <더 키스(The Kiss)>를 MoMA의 첫 번째 퍼포먼스 작품으로 소장하기로 결정했고, 2015년에는 1960년대 뉴욕의 퍼포먼스 아트 신의 핵심작가이기도 한 시모네 포르티(Simone Forti)의 <댄스 구성 (Dance Constructions)> (1960-61) 중 4점을 소장하기로 결정했다.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LA MOCA)의 관장으로 취임한 클라우스 비센바흐(Klaus Biesenbach)는 2019년 미술관의 두 번째 퍼포먼스 작품으로 쉬 젠(Xu Zhen)의 퍼포먼스를 소장하기로 결정하였다. 퍼포먼스 아트가 시각예술의 맥락에 도입되기 시작한 20세기 이후, 나아가 퍼포먼스가 시각예술의 주요한 언어로 자리 잡은 1950년대 이후 퍼포먼스 작품의 소장이 거의 없었다는 점은 퍼포먼스라는 장르를 소장하고 보존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자연을 관람하는 퍼포먼스로서의 Desert X
올해로 2회를 맞은 Desert X는 2개월간 남부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72킬로미터 길이의 사막 지역 코첼라 밸리(Coachella Valley)에서 개최되는 설치미술 비엔날레이다. Desert X는 퍼포먼스 작업을 기반으로 한 다매체적 작가군의 선정과, 자연을 배경으로 한 전시 관람이라는 경험을 퍼포먼스의 일부로 포함하고 재해석한 시도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자연에 설치되는 Desert X의 미술 작품들은 자연스럽게 시각예술의 담론을 떠나 환경문제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졌다. 또한, 엄청난 크기와 규모의 작품들을 제작, 설치할 수 있는 개인 후원가, 이사단의 지원을 받은 Desert X의 대대적인 예산구조는 국내 대다수의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지방자치단체나 정부지원금의 기금이 없이는 구현되기 어려운 환경과는 비교가 되는 체계였다. 이는 정부지원금과 아티스트의 소속 갤러리에서 대부분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와도 차별이 되는 지점이었다.
사람의 출입이 금지된 곳,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에서의 전시는 대자연이 허락한 기회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작가들의 1/3이 전시를 포기하기도 하는 Desert X에는 올해 총 19명의 작가(팀)이 참여했고, 폐건물 등 기존의 건축물을 활용한 것은 물론, 풍력발전소, 호수나 사막의 한 가운데에 작품을 설치하기도 했다.
작품을 관람하는 방식 또한 Desert X가 기획한 독특한 경험적 요소였다. 모든 작품들은 좌표(예: 33.53947, -115.92978)를 지도에 검색해서만 찾아갈 수 있었다. 지도에 좌표를 입력하고 각 작품을 찾으러 다니는 관람의 행위는 마치 서부의 개척자가 된 것 같은 경험을 선사했으며, “사막이 우리의 빈 캔버스다”라는 기획 의도를 체험할 수 있게 한 장치이기도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나타나는 작품들은 사막의 신기루 같았고, 미국 서부 개척정신의 발현이자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미국 사회의 근본인 “아메리칸 드림”으로 보이기도 했다.
스털링 루비(Sterling Ruby)의 와 카라 로메로(Cara Romero)의 은 자연 속에 신기루처럼 나타나는 작품들이었다. 광활한 자연에 설치된 작품들을 마주하는 것은 마치 자연을 무대로 펼치는 미술 작품의 공연을 보는 것 같았다. 샌 하신토 산맥을 따라 차로 달리다 보면 인간을 압도하는 주홍색의 대형 육면체가 신기루처럼 나타난다. 루비의 는 자연 한가운데에 인위적인 ‘시각적’ 구멍을 만들며 시각적 단절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작품이었다. 카라 로메로는 코첼라 밸리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옆의 대형 빌보드에 5개의 사진 작품을 설치하는 를 선보였다. 이렇게 두 작가는 자연을 무대로 미술 작품을 설치해 자연을 ‘관람’하는 행위를 전시의 맥락으로 끌어들였다.
세실리아 벵골리아(Cecilia Bengolea)는 다양한 ‘춤’의 역사를 인류학적 접근방식으로 작업한 작품을 보여주었다. 자연에 바치는 자메이카의 전통 춤을 솔튼해(Salton Sea)의 북쪽 해변에서 퍼포먼스 했던 무대와 관련 조각을 호수 주변에 설치한 벵골리아의 은 춤이라는 행위의 역사, 그것을 ‘지금 이 순간’ 자연에 바치는 염원과 기도로 해석해내는 작가의 의도를 보여준다.
이렇게 Desert X는 기존 미니멀리즘이나 설치-조각 작품이 주는 현상학적 경험을 퍼포먼스의 행위적 특성과 연관시켜 설치와 퍼포먼스의 새로운 연결지점을 찾고자 했다. 이반 아고테(Iván Argote)는 퍼포먼스와 조각, 설치, 회화를 자유롭게 활용하는 작가로 솔튼해의 해변에 콜롬비아 양식의 플랫폼 5개를 설치하는 작업 을 전시했다. 플랫폼에 올라가면 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면이 펼쳐지며 각각의 플랫폼에서는 다른 풍경이 보인다. 이러한 관람 방식은 “시점”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작품의 제목과 같이 관람자의 신체를 환경에 완전히 끌어들이는 대지미술에서 나아가 인간이 자연을 정복해온 역사, 그리고 그것을 체화하고 있는 관람객의 시점을 행위 그 자체로서 지각할 수 있게 한다.
대지미술은 관람객을 압도하는 환경과, 환경 속에 작품을 설치하면서 오는 유일무이한 경험을 주는 것에 그 의미가 있다. 로버트 스미드슨, 월터 드 마리아, 제임스 터렐로 이어지는 20세기 중후반의 대지미술은 이전의 모더니즘 조각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열린 구조 속에서 작품과 풍경을 동시적이고 고립적인 상태에 관람객을 위치시킨다. 그것의 건축적 규모와 열린 구조가 관람자로 하여금 유일무이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Desert X의 작품들은 형식적으로는 대지미술에서 출발하지만 단순히 그 순간의 현상학적 경험이 아닌 땅과 인류의 역사를 퍼포먼스의 작업 방식을 통해 신체로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웠다.
Desert X에서 특히 인상이 깊었던 부분은 자연에 대한 연구를 기반으로 한 작품들이 포함되었다는 점이었다. 스티브 바젯과 크리스 테일러(Steve Badgett & Chris Taylor)의 협업 작품 과 수퍼플렉스(Superflex) 은 수년간의 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은 솔튼해에 설치된 무인 태양열 정찰연구 보트로 솔튼해의 지형적 역사를 탐구하는 작품으로 죽어가는 과거의 바다인 솔튼해를 통해 환경과 생태계의 관계를 살펴보고 있다. 수퍼플렉스의 은 해수면 증가로 약 1만년 뒤 물에 잠길 코첼라밸리 지역을 상상하며 산호초의 모양으로 만든 건축물로 지구온난화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이 작품은 낮에는 사막 위의 산호초 건축물로, 밤에는 3D 매핑 영상작품이 상영되는 무대로 바뀌기도 했다. 자연환경과 상생하는 연구를 시각예술로 승화시킨 이 작품들은 지형적 특수성, 환경문제에 대한 연구, 그리고 미술작품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참여작 중 하나인 낸시 베이커 카일(Nancy Baker Cahill)의 증강현실(AR) 작품도 흥미로웠다. 작가는 AR 프로그램을 이용해 솔튼해 호수 위 하늘과 코첼라 밸리 북부 샌고르고니오 풍력 발전소 3천여 개의 풍력 터빈이 있는 하늘에 AR 작품을 만들었다. 핸드폰에 설치된 앱으로 좌표에 찍힌 장소들를 비춰보면 핸드폰 화면으로 카힐의 작품이 보였다. 이 두 장소에 설치된 카힐의 작품은 물리적 공간에 질문을 던지는 데에서 나아가 특정한 장소, 공간, 시간에 영향을 받는 기존의 퍼포먼스 작품의 경계를 확장시킬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Desert X는 공연예술이 지닌 공간성과 한시성의 한계를 넘고자 한 시도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전시였다. 특히, 설치, 테크놀로지가 퍼포먼스와 만나 퍼포먼스라는 매체를 재매개화하는 과정이 설치작품을 통해 구현된 부분은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고 생각한다. 코첼라 밸리의 사막을 무대 삼아 공연하는 Desert X의 작품들은 작품과 상호관계를 맺는 신체를 단순히 현상학적이고 지각적인 경험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닌, 그 땅의 역사와 사회적 이슈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의 일부로 풀어내고 있었다. 가상현실 등의 디지털 미디어나 연구와 만나 만들어진 작품들도 신체를 통해 자연과 환경을 지각하고 자연과 관계 맺어 온 인간의 역사를 몸으로 경험할 수 있게 만들어져 퍼포먼스 전시의 새로운 형식을 엿볼 수 있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각 프로젝트가 여러 기관, 개인의 후원을 받아 제작된 점, 자연에 설치된 작품들이 지역단체와 기업에 소장이 되는 새로운 장을 마련한 점은 퍼포먼스 미술이 아트페어와 같은 미술시장 외에서도 거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지점이었다.
퍼포먼스의 한계를 시험하다: Desert X와 스위스 아트 바젤 1
메디슨 위스컨신 주립대 College of Letters & Science에서 경제이론을 전공하고,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에서 퍼포먼스에 관한 논문(<플럭서스 퍼포먼스의 비판의식>)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다양한 기관에서 전시기획을 담당 및 보조하였으며, 2019년 현재 아라리오갤러리의 전시팀에 근무하고 있다. 퍼포먼스 아트라는 장르가 동시대의 시각미술과 어떠한 관계를 갖고 발전해 왔으며,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서 자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전시와 메커니즘을 만들어 나가는 데에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