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전지영
퍼포먼스의 한계를 시험하다: Desert X와 스위스 아트 바젤 1
상업 미술시장에서 퍼포먼스 작품이 갖는 의미
아트 바젤 기간 동안 진행되는 모든 프로그램은 바젤과 연계되어 기획되기 때문에, 미술시장이 현재 주목하는 가장 실험적이고 상업적인 미술의 현주소를 살펴볼 수 있다. 특히, 바젤 VIP 프리뷰 기간 동안에는 매일 아침 퍼포먼스 공연이 진행되었다. 바젤 기간 동안 공연되는 퍼포먼스 및 설치 작품들은 모두 상업적으로 거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상업미술 시장의 최전선에서 퍼포먼스와 설치에 대해 어떤 입장과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를 목격하고자 했다.
라인강 옆에 위치한 der Tank라는 곳에서는 Desert X에서도 봤던 세실리아 벵골리아의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환경문제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예술작품의 연구를 후원하고 작품을 소장하는 구조로 진행되는 n.A Project는 올해 자연과 환경 그리고 인간의 관계를 ‘춤’이라는 매개체로 해석해내는 벵골리아를 선정했고, 이는 환경의 이슈에 보다 다양한 관심을 갖고 있는 서구 유럽과 미국의 미술계의 흐름을 보여준다. 이 퍼포먼스는 이슬람 문화의 수피 댄스(Sufi Dance)에서 영감을 받아서 만들어졌다. 퍼포먼스가 진행된 der Tank는 과거 라인강 지역의 연어를 가공하는 공장이었고, 이 전시장에는 라인강 바닥에서 주워온 자갈들이 깔려있었다. 한때는 강물 깊숙한 곳에 있던 자갈들이 육지로 나와 있는 무대 위에서 작가가 물고기에 빙의해 보여주는 퍼포먼스와 잘 어우러졌다. 환경파괴, 해수면 상승, 수산자원 고갈 등의 이슈를 보여주고자 했던 작가는 퍼포먼스의 마지막 부분에는 관람객들에게 수피 댄스를 가르쳐 주고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퍼포먼스가 무대 위에서 작가가 보여주는 안무만이 아닌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으며, 그 행위를 하는 모두가 퍼포머로서 행위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설치와 퍼포먼스의 새로운 연결지점을 찾고자 한 작품으로는 아트 바젤 메인 전시장인 메세플라츠(Messeplatz) 밖에 위치한 벅뮌스터 풀러의 파빌리온에서 진행된 알렉산드라 피리치(Alexandra Pirici)의 가 있었다. 아트 바젤 기간 매일 오후, 4시간 동안 60여명의 댄서들에 의해 진행되는 이 작품을 “수행적인 환경(Performative Environment)”이라고 설명한 작가는 4시간 이상 진행되는 새로운 퍼포먼스 환경을 만들고자 했다. 그의 작품은 안무가의 신체가 만들어내는 환경 그 자체를 지시한다. 작가는 별도의 무대를 만들지 않고 파빌리온 내부 전체가 퍼포머의 무대이자 관람석이 되는 공간을 만들었다. 퍼포머들은 관람객 바로 옆에까지 다가오기도 하는데, 이 예측할 수 없는 댄서와의 거리로 인해 관람객과 퍼포머, 행위자와 피행위자, 개인과 공동체 간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하지만, 작가는 작품이 판매된다면 2017년 베를린에서 처음 공연될 수 있게 도와주었던 당시 참여 퍼포머들에게도 개런티와 아티스트피를 추가적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말해, 퍼포먼스 작품의 소장을 어려워하는 기관, 개인 컬렉터들에게 또 다른 문제점이 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이번 아트 바젤에서는 판매되지 않았다.
퍼포먼스 작품의 시장성에 대해 고찰해 볼 수 있는 또 다른 공연으로는 쿤스트하우스 바젤랜드(Kunsthaus Baselland)에서 진행된 시모네 포르티(Simone Forti)의 퍼포먼스가 있었다. 일상의 행위를 미술의 맥락으로 도입해 기존의 전통적 시각예술의 체제에 대항하고 신체의 의미에 대해 재해석해 보고자 했던 포르티는 1960-70년대 새로운 실험적 미술의 흐름에서 중요한 작가 중 하나이다. 그의 퍼포먼스는 더 이상 포르티에 의해 직접 공연되지 않고, 시모네 포르티 댄스 컴퍼니를 이끄는 안무가들에 의해 진행된다. 작가의 이름을 걸고 만들어진 작품이 지금은 다른 사람의 신체를 통해 전달된 안무가 되는 과정은 퍼포먼스 작품을 대하는 새로운 태도와 시각을 시사한다. 퍼포먼스 작품이 시장성을 갖기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는 작품이 공연되는 시점, 그 순간의 경험을 중요시하는 퍼포먼스 작품의 특성상 작품이 여러 번 되풀이되어 공연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번 새로운 퍼포머들의 신체를 통해 새로운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고, 실제로 행위라는 비물질적 개념이 한 신체에서 다른 신체로 이동 또는 전달(transfer)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준 포르티의 작업은 퍼포먼스 작품의 ‘개념’을 소장하는 미술품 소장의 구조에 전환점을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MoMA에서 소장되어 있기도 한 이번 바젤에서 공연된 포르티의 60년대 초기 퍼포먼스 <댄스 구성 (Dance Constructions)>은 ‘지시문(instruction)’에 따라 지시된 행위를 퍼포먼스 하는 것으로 이뤄진다. 모마에서는 이 퍼포먼스가 구현될 수 있게 하는 작가의 창작 ‘개념’, 지시문, 오브제 (혹은 구조물), 그리고 작가가 작고한 뒤에도 이 작품을 언제든 공연할 수 있는 공연에 대한 저작권을 모두 소장했다. 모마의 이러한 결정은 물리적인 물체를 소장하고, 이 물질을 물물교환 하는 전통적인 소장 구조에서 비물질적인 개념 또한 판매, 소장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쿤스탈 바젤(Kunsthalle Basel)에서는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진행되었던 정금형형의 전시와 퍼포먼스가 열리고 있었다. 약 3달 동안의 전시와 10회의 퍼포먼스가 있었는데, 유럽, 미국 등 서양의 식민 역사와 관련이 있는 일부 동양, 아프리카 작가들이 지배적이었던 아트 바젤 프로그램에 정금형의 작업이 소개되었다는 점은 한국 퍼포먼스 작가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아트 바젤에서도 VR 작품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는데, 이 중에서도 언리미티드 (Unlimited) 섹션에서 보여진 폴 맥카시(Paul McCarthy)의 VR 작품이 인상 깊었다. 라는 이 작품에는 360도도 미국 서부가 배경으로 펼쳐진다. 이 작품에는 총 10개의 버전이 있고, 각 버전마다 두 여성이 관람객을 향해 크고 작게, 중첩되게, 왼쪽 혹은 오른쪽에서, 돌면서, 위 혹은 아래로 관람객을 덮친다. 관람객의 신체를 향해 돌진하는 이들의 움직임과 행동은 실제가 아니지만 관람객에게 무서움과 공포심을 준다. 20명이 동시에 작품을 관람할 수 있게 만들어진 이 작품은 VR 프로젝트의 제작과 전시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코라 컨템포러리(Khora Contemporary)에 의해 이뤄졌으며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전시된 이후 자블루도비츠 컬렉션(Zabludowicz Collection)에 소장되었다. 맥카시의 이 VR 작품은 단순히 더 현실적인 실재를 만들어 내는 것을 넘어 작품에 반응하는 ‘신체의 감각‘이라는 문제에 접근한다. 확장된 시지각적 신체의 경험은 모더니즘 조각의 현상학적 측면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대지미술이나 리처드 세라의 조각같은 경우 물리적 크기와 그것의 존재에 실질적으로 신체가 관여하며 발생하는 경험의 차원을 이야기 하는데, 이 작품 또한 그러한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맥카시의 VR작품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물질과 화면으로 이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공간성에 기반하고 있는 설치와 퍼포먼스가 가상현실의 기술을 통해 재매개될 수 있는 방향을 이 작품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마무리하며
퍼포먼스 아트는 작업실에서 거리로 나오기 시작한 전위적 미술의 역사적 순간들과 그 맥락을 함께한다. 전통적 미술 개념에 대한 저항에 그 근간을 두고 있는 퍼포먼스 아트는 어쩌면 그 아이러니, 그 지적재산이라는 가치를 재화로 환원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거래가 활발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작가들은 필연적으로 재정적인 지원이 필요하고 이러한 상생적인 구조를 만들기 위해 퍼포먼스 아트를 위한 건강한 시장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리서치를 통해 작가의 지적 재산, 즉 비물질적 개념에 크게 기반하고 있는 퍼포먼스 아트가 어떤 방식으로 물리적인 결과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이것이 적절한 금융적 가치로 책정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또한, 한 시대와 세대를 넘어 이 개념이 이어지고 보존되고 새롭게 재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는 점에 의의를 가지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메디슨 위스컨신 주립대 College of Letters & Science에서 경제이론을 전공하고,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에서 퍼포먼스에 관한 논문(<플럭서스 퍼포먼스의 비판의식>)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다양한 기관에서 전시기획을 담당 및 보조하였으며, 2019년 현재 아라리오갤러리의 전시팀에 근무하고 있다. 퍼포먼스 아트라는 장르가 동시대의 시각미술과 어떠한 관계를 갖고 발전해 왔으며,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서 자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전시와 메커니즘을 만들어 나가는 데에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