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행사

예술이 선거에 참여할 때

posted 2020.05.29


진행 조현대 기자


일민미술관에서 《새일꾼 1948–2020: 여러분의 대표를 뽑아 국회로 보내시오》(3. 24~6. 21)가 열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일민미술관이 공동 기획하고, 작가 박혜수가 한국 선거사 아카이브를 재구성했다. 아카이브를 플랫폼 삼은 21명(팀) 작가의 설치, 퍼포먼스, 음악 등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 전시는 미술관의 교육적 기능 및 큐레토리얼의 실천, 그리고 예술(가)의 사회 참여 및 발언 등 가치있는 담론을 제안했다. 기획에 동참한 3명의 관계자와 전시의 막전막후를 점검하는 라운드테이블을 가졌다.


《새일꾼 1948–2020: 여러분의 대표를 뽑아 국회로 보내시오》전 현수막을 내건 일민미술관 외부 전경/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새일꾼 1948–2020: 여러분의 대표를 뽑아 국회로 보내시오》전 현수막을 내건 일민미술관 외부 전경/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새일꾼 1948-2020》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내용을 구성했다. 첫째는 선관위의 아카이브를 박혜수 작가가 재구성한 것으로, 선거 관련 사진과 포스터, 문서, 각종 용품 등의 자료를 보다 입체적으로 제시한 ‘73년 선거사’의 길라잡이였다. 둘째는 참여 작가 21명(팀)이 아카이브를 차용, 재해석하거나 새로운 모티프로 삼은 창작 작품을 선보였다. 이 전시는 컨템퍼러리아트의 문맥에서 두 가지 담론을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미술관의 사회 교육적 역할의 문제고, 또 하나는 정치 현실에 대한 아티스트의 대응 문제다. 결국 이 전시는 “선거는 어떻게 동시대 예술의 플랫폼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다시 말해, 미술관 아카이브 전시의 교육적 방법론, 그리고 예술과 정치가 만나는 ‘사회 참여적 예술’의 면모를 보여줬다. 예술작품의 감상, 수용을 고려한 큐레이토리얼 방법론이 진화하는 가운데, 서구에서는 ‘교육적 전회(educational turn)’라는 개념이 보편화되었다. 교육적 전회란 좁게는 1990~2000년대 미술관에서의 교육과 창조에 대한 논의와 그 큐레토리얼 실천을 일컫는다. 넓게는 1970년대 이후 교육적, 개혁적 예술 활동을 포괄한다. 특히 공공재인 미술관이 교육적 기능을 실천하는 방법론은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기존 전시 틀 내에서의 시도로는 리크릿 티라바니자MoMA에서 학생들과 사회 참여적 작품을 공동 제작했던 (2012)이 그 예다. 또한 교육기관과 함께 강연이나 워크숍 개최, 임시 예술학교 개설 등의 방식이 있다. 이번 전시의 연계프로그램은 아카이브와 작품과는 별도로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를 마련해, 선거와 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한 교육적 기능까지 맡았다. 이 전시는 ‘아카이브 사회극’을 표방한다. 미술관 안으로 다양한 계층의 관객을 끌어들여 그 목소리를 수용하고, 작품이 미술관 밖 광장으로 나가 시민과 함께 호흡하고자 했다. 이번 전시는 예술이 현실 정치인 선거에 직간접으로 개입하고 발언하는 자리였다. 예술(가)의 사회적 실천, 사회 참여 예술(Socially Engaged Art)의 맥락이 관통한다. 오늘날 사회 참여적 예술의 실천은 예술(art)과 행동주의(activism)가 결합된 ‘예술행동주의(Artivism)’에 기반을 둔다. 초기에는 제도권에서 벗어나 그라피티를 그리거나 저항의 현장에 직접 개입하는 방식을 취했다. 특히 다양한 색깔의 ‘콜렉티브(collective)’가 서로 연대하기도 했다. 《새일꾼》전에도 최근 등장한 국내 콜렉티브가 다수 참여했으며, 몇 작품은 소수자 커뮤니티와의 연대를 도모했다. 2000년대 이후 세계의 비엔날레가 그러했듯이, 미술관 또한 ‘교육적 전회’의 시대를 맞이했다. 그 양상은 정치, 사회, 문화 환경의 변화와 함께 변모하고 있다. 하나의 미술관이, 하나의 전시가, 하나의 창작이 예술의 사회적 실천의 창구이자, 수용자에게 유효한 ‘교재’로 기능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새일꾼 1948-2020》은 이 질문에 응답하는 전시였다. (조현대 기자)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최정주(선관위 선거기록보존소 사무관)
조주현(일민미술관 학예실장)
박혜수(작가, 아카이브 구성)


최하늘, 〈한국몽〉, 2020, 혼합재료, 가변크기_ 트랜스젠더, 게이, 미혼모, 이주노동자, 난민 등 소수자 집단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는 상상을 형상화했다.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최하늘, 〈한국몽〉, 2020, 혼합재료, 가변크기_ 트랜스젠더, 게이, 미혼모, 이주노동자, 난민 등 소수자 집단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는 상상을 형상화했다.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 이번 전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제21대 국회의원선거’ 기간에 맞춰 추진되었다. 먼저 준비 과정에 대해 듣고 싶다.


Choi 선관위는 선거철마다 선거의 중요성을 알리고 참여를 독려하는 전시를 개최해왔다. 올해 전시를 준비하면서 기존 사료를 나열해 제시하는 틀을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는 내부 의견이 나왔다. 선관위에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의 퍼실리테이터로 파견되어 함께 준비하던 박혜수 작가가 일민미술관을 추천했다. 많은 유동인구, 미술인의 호감도 등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작년 여름 즈음 일민미술관 측에 제안하면서 본격적인 전시 논의가 시작되었다.


Jo 일민미술관은 수차례 아카이브 전시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동시대적 관점으로 재해석한 경험이 있다. 전시를 제안받고 처음 떠오른 작품은 독일 출신 개념미술가 한스 하케(Hans Haacke)가 뉴욕 MoMA에서 선보였던 (1970)이었다. 당시 인도차이나 분쟁에 개입한 미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중립국 캄보디아에 대규모 폭격을 가해 미국 시민사회의 큰 공분을 샀다. MoMA를 설립한 가문 출신이자 당시 뉴욕 주지사였던 넬슨 록펠러는 재선을 앞두고 닉슨의 결정에 침묵해버렸다. 이에 하케는 관객에게 “록펠러가 닉슨 대통령을 비난하지 않은 사실은 당신이 그에게 투표하지 않을 이유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의견을 구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심지어 MoMA에서 열린 전시에서 말이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사회와 삶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토론의 장을 펼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갈등과 경합의 사회극


— 박혜수 작가가 전시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Park 선관위 관계자를 만나보니, 내부적으로 기존의 전시 방식에 변화를 줘보자는 의식이 굉장히 강했다. 놀라웠다. 공무원 사회가 변화에 대한 의지를 품는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선관위 내 선거기록보존소의 젊은 주무관과 사무관이 변화를 주도해 나가고 있었다. 매력적인 아카이브 자료와 전시 예산까지 마련되어 있으니, 충분히 해볼만 한 일이었다. 우선 몇 가지 약속을 받아냈다. 첫째, ‘작품은 작가들의 것이다.’ 둘째, ‘검열해서는 안 된다.’ 처음부터 못을 박았다. 선관위의 요청은 전시 장소가 광화문 일대였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내가 덧붙인 조건은 ‘기획자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 새로운 전시를 하려면 전문적인 전시기획이 필수적이기 때문이었다. 일민미술관이 가장 적합해 보였다.


천경우, 〈Listener’s Chair〉, 2020 퍼포먼스, 설치.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천경우, 〈Listener’s Chair〉, 2020 퍼포먼스, 설치.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 박 작가가 한국 선거사 아카이브를 재구성했다.


Park 보통 공공 기관의 아카이브 전시는 어떤 목적을 갖고 해석하지 않는다. 자칫 해석 자체가 문제시되니까. 특정 사건에 대한 정치적 입장과 태도가 드러나는 즉시 외부의 공격을 받기 때문이다. 늘 시대순으로 나열될 뿐이다. 재밌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름대로 주제를 세분화했다. 전시장 1층은 ‘애국심’을 고취시켜 투표 참여를 독려했던 한국 선거사 초창기 모습을, 2층은 시대별 선거의 어젠다와 선거 문화를 보여주려 했다. 3층에는 부정선거의 발전사를 펼쳐놓았다. 시대별 정황을 자세히 보여주는 사진 아카이브가 더 나왔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래도 광화문이라는 장소성과 선거 기간의 한복판에 진행하는 시효성이 이를 보완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전시가 미처 들려주지 못한 메시지가 있다면, 관객이 전시를 보고 미술관 밖으로 나서는 순간 저마다의 삶에서 조금씩 들려오지 않을까.


— 모두 ‘코로나19’ 사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 사회의 많은 영역이 그 영향을 체감하고 있듯, 이번 전시 또한 기대했던 효과나 파급력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가?


Choi 국공립 미술기관들이 줄줄이 휴관하는 상황에서 전시를 계획대로 여는 것이 합당한 일인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결국 개최 날짜를 연기하기로 했다. 온라인 전시, VR 제작 등 다양한 채널을 만들어 전시를 체험하게 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Jo 상상조차 못했던 상황이긴 하다. 또한, 광화문 광장의 ‘태극기부대’ 인파가 미술관에 들이닥칠지도 모르는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도 관건이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이때부터 많은 고민을 했다. ‘태극기부대를 전시의 중요한 부분으로 개입시킬 수 있는 예술적 장치가 무엇일까?’ 그들은 화장실을 사용하기 위해 미술관에 들어오려다가, 보안 직원들에게 곧장 쫓겨나기 일쑤다. 그렇게 들어오고 싶었지만 들어올 수 없었던 이곳에서,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정치 이야기를 한다면…? 이번 전시만큼은 반드시 그들의 자리를 마련하고, 그들에게 당당한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계층, 계급에 대한 담론이나 세대 및 이념 갈등, 긴장감을 신체적으로 가시화하고 싶었다. 전시가 표방하는 ‘아카이브형 사회극’이라는 형식 또한 태극기부대의 진입과 이로 인해 벌어질 소동을 상상하며 만들었다.


— ‘아카이브형 사회극’이라는 독특한 합성어가 호기심을 자아낸다. 더 자세히 알려달라.


Jo 굳이 인위적인 상황을 만들지 않더라도 세대, 계층, 입장이 상이한 개개인이 각자 경험한 역사를 바탕으로 서로 대립하고, 충돌하는 상황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했다. 미술관 밖에서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막아버리면 그만이지만, 이곳에 들어온 이상 다른 목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다. 출품작을 예시로 설명하자면, 천경우의 는 광화문 광장에 스피치룸을 설치하고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담아, 전시장 의자에 앉은 ‘경청자’들에게 전달하려 했다. 아쉽게도 지금은 스피치룸을 운영할 수 없어 온라인으로 수집한 미술인과 관객의 목소리로 대신 채웠다. Sasa[44]의 또한 폭넓은 나이대의 관객이 자신의 선거사를 밝힘으로써 자연스러운 세대 간 토론의 장이 마련되길 바랐다. 최하늘의 조각 연작 중앙에 설치된 발언대를 시민의 ‘발화 퍼포먼스’ 무대로 삼는 별도의 프로그램도 진행할 계획이었다. 외에도 공연, 토크, 퍼포먼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지만 아쉽게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매주 새로운 의제를 내걸고 관객이 직접 투표하는 와 은 가장 중요하고 흥미로운 프로그램이다. 이를 통해 관객과 연기자가 함께 상황극을 만들어가며 성적 소수자, 이민자 등 소수 커뮤니티에 대한 현안을 인식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실현 가능한 관련 법안을 상정해보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Park 마침 선거가 치러진 주의 의제는 ‘다수결은 옳고, 곧 민주주의다’였다. 선거 직후 을 통해 사회학자 노명우 교수와 이 의제에 대해 렉처 퍼포먼스를 진행하려 했다. 5월에는 ‘돌봄’을 주제로 젠더 이슈를 심화하려고도 했고. 이렇게 전시장에서 미처 다 풀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보려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종료되는 시점부터 다소 축소된 형태로라도 진행할 예정이다.


· 이미정 〈Getting Rounded, getting rounded〉(왼쪽), 〈Front and bak of the wall〉(오른쪽), 2000, 나무에 아크릴릭.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 이미정 〈Getting Rounded, getting rounded〉(왼쪽), 〈Front and bak of the wall〉(오른쪽), 2000, 나무에 아크릴릭.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 이미정 〈Front and bak of the wall〉(위), 〈Getting Rounded, getting rounded〉(아래), 나무에 아크릴릭, 2020.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 전시를 공동 기획한 두 기관, 그 중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작가. 셋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합의를 요했던 상황이나 부각되었던 쟁점들이 있었을 텐데.


Choi 선관위는 ‘엄정 중립, 공정 관리를 기조로 공직선거를 직접 관리하는 기관’이다. 작가들에게 창작 시 특정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 선전, 반대하는 내용이나, 특정 정당을 연상시키는 색상과 단어 등은 가급적 피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 ‘블랙리스트 사건’이 떠올랐다. 우리의 요청이 창작에 침범하는 행위, 즉 일종의 ‘검열’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걱정도 있었다.


Jo 공직 선거법상 이번 선거에 출마했거나, 현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인을 직간접적으로 다루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이 부분에 대해 작가 대다수가 수긍했다. 다들 우리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민주주의의 룰’에 공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소 우회할지라도, ‘성숙한 민주주의’라는 대의적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예술적 장치를 모색했다.


사회 참여적 예술의 가능성


— 그럼에도 이번 전시가 현실 정치에 개입할 여지를 우려하는 지적, 재구성된 아카이브에서 역사가 왜곡될 가능성을 걱정하는 시각도 존재했다.


Jo 우선 예술과 정치는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정치적 예술이라는 게 있다면 그 역할은 무한한 예술적 서사와 가능성을 통해 현실을 다시 마주하고, 다르게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사회참여적 예술(social engaging art)’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만약 예술이 현실 정치에 대한 교조적 목적을 지닌다면, 이야말로 정치의 도구로 이용되는 것이다. 기획 초반부터 그런 작품은 고려하지 않았다. 정치적 부담감 때문이 아니다. 큐레이터로서 생각하는 정치적 예술 혹은 사회참여적 예술의 기준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예술에 대한 다양한 해석 가능성은 그것을 정치적인 것으로 보이게 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이는 작품을 보고 상상하는 사람의 몫이지, 큐레이터나 미술관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그런 문제는 크게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Park 나는 오히려 현실 정치인들이 《새일꾼》전을 꼭 봤으면 한다. 정치인이라면 마땅히 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 아카이브를 분석하다 보니, 실제로 많은 부정선거가 그 두려움이 낳은 결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전의 선거 결과가 어떤 유의미함을 갖게 되었을 때, 예를 들어 야당의 지지율이 높게 나왔을 때 이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해보려는 목적으로 저질러졌다. 이번 선거에서 자신이 승리했다 하더라도, 다음 선거는 힘들 수도 있겠다는 불안을 느끼고 꼼수를 부렸던 것이다. 그리고 이 부정에 대한 결과는 결국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더라. 권력자에 의해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때마다 국민이 거리로 나서는 일이 반복되었던 것은, 이들이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재구성된 아카이브에서 이 부분이 부각되었으면 했다.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보다는 사람, 국민이라는 존재를 더 조명하고 싶었다.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 선거사는 73년 밖에 되지 않았다. 3·15 총선거가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를 모두 지킨 선거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는 달랐다. 글을 못 읽는 사람이 태반인데 과연 비밀선거가 가능했을까? 95%의 투표율이 기록되었지만 실상은 강요에 의한 유권자 등록이 91%에 달했다. 바꿔 말하면 너무 쉽게 얻어진 투표권이었다. 그래서 국민들은 그 표를 더 쉽게 막걸리나 고무신과 바꾼 것이 아닐까? 만약 어렵게 얻어낸 투표권이었다면? 이후 군부정권을 거치며 많은 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소중한 한 표’에 대한 인식이 고양된 것처럼 말이다.


Jo 덧붙이자면 ‘역사가 사실에 기반한다’는 가정은 성립될 수 없다. 개개인의 미시사는 우리가 사실이라고 배워서 아는 ‘큰 역사’와 항상 다르다. 그런데 역사적 기록에 의거해 정보를 단순 나열한다면? 73년 전 선거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민주적 선거로 역사화되어 우리에게 계속 주입될 수밖에 없다.


놀공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2020, 게임미디어 외 혼합재료, 가변크기.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놀공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2020, 게임미디어 외 혼합재료, 가변크기.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 다시 전시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안규철, Sasa[44], 천경우 등 중진급 작가부터 한솔, 업체eobchae, 최하늘 등 젊은 작가와 미술계 근처 혹은 바깥의 창작자들까지, 폭넓은 참여 명단이 눈에 띈다.


Jo ‘선거’, ‘민주주의’, ‘정치’라는 주제로 나올 법한 빤한 내용을 피하고자 했다. 그리고 선거나 투표가 현대인에게 다분히 일상적 소재라는 점에서,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을 법한’ 이야기를 하는 작가들을 소개했다. 주로 사회적 다양성, 소수자와 관련해 미래 세대의 시각에서 새로운 이슈를 제기하는 이들이다.


— 젊은 작가들이 제안하는 정치적 상상이 흥미롭다. 기존의 제도가 포용하지 못했던 소수자를 전시장에 등장시키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다.


Jo 특히 2층 전시장에 소개된 작품들이 새로운 제도를 흥미롭게 상상한다. 이곳에는 시대별 선거벽보, 선거운동 현장 사진 등 자료가 함께 전시되어 있다. 세상을 호령하던 유력 정치인들의 젊은 시절 모습이 담긴 사진이 나열되어, 1970~80년대를 회고하는 이들에게는 추억의 장소다. 그곳을 1990년대생 작가와 신생 콜렉티브에게 내어주었다. 당시를 경험해보지 않은 세대에게 말이다. 박정희와 김대중의 선거 포스터 옆 커다란 기표소 안으로 북극곰이 들어가 투표하고 있다(이동시 ). 이 작품은 선거에 ‘민심’만 반영할 것이 아니라 ‘동물심’도 반영해보자는 정치적 상상력의 결과물이다. 업체eobchae의 는 디지털 데이터와 물리적으로 결합한 2200년의 인류가 ‘오래 전 사라졌다가 다시 유행하기 시작한 미래의 유성생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소 도발적이기까지 한 이들의 작품은 기성세대에게 ‘다름’을 선입견 없이 바라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1963년부터 1987년까지 치뤄진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 국민투표 등에서 사용된 선거 홍보 포스터.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일을 고지하고 투표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1963년부터 1987년까지 치뤄진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 국민투표 등에서 사용된 선거 홍보 포스터.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일을 고지하고 투표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삶과 예술, ‘선택’의 문제들


— 박 작가에게 이번 전시는 그간 작가로서 가져왔던 주제 의식이 확장되는 장이기도 하다. 작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전에서 선보였던 작품의 핵심 질문은 ‘당신의 우리는 누구인가?’였다. 다시 말해, 우리가 속한 제도가 만들어내는 배타적 집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Park 내 작품은 계속 국가, 제도에 의문을 제기해왔다. 정치인들은 이번 선거의 결과에 대해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소수자가 설 자리가 좁아져 버린 것은 아닐까? 그럼 우리는 여성, 성소수자, 난민 문제 등 소수자 관련 이슈에 어떻게 반응하고 헤쳐 나가야 할까? 이들의 목소리에 보다 세심히 귀 기울여야 한다.


— 선거와 미술, 혹은 민주주의와 동시대예술. 이 둘은 ‘선택’이라는 행위를 공유한다. 선거에서 선택은 향후 몇 년간 우리 삶을 직접 결정하는 일이다. 예술 행위 또한 선택의 과정이 필수적이다. 특히, 요즘은 ‘누구와 함께 연대할 것이냐’가 중요하다. 예술행동주의의 경우, ‘콜렉티브’로 활동하며 사회적·예술적 영향력을 발휘했던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새일꾼》전 또한 선거와 동시대예술을 교차하면서 ‘선택’의 가치를 곱씹어보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Jo 흥미로운 리뷰다. 모든 일상이 선택의 과정이듯, 뒤샹의 말처럼 예술가의 행위도 ‘선택’ 그 자체로 모든 메시지를 전달한다. 특히 현재의 미술은 연대와 협업이 굉장히 중요한 테제다. 어쩌면 예술 자체가 협업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한편, 앞서 내렸던 선택이 빚어낸 상황에서, 그것이 인간관계에 대한 것이든 사물에 대한 것이든,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자본주의에 최적화된 선택을 요구하는 점이 씁쓸하긴 하다. 그래서 한스 하케도 서구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작업을 선보였던 것은 아닐까. 이후에도 우리가 자본주의적 선택을 반복해온 대가로 지금의 팬데믹 상태에 이른 것이기도 하고…. 이번 전시를 통해 관객이 목전에 놓인 선택의 문제를 대할 때 조금이라도 더 멀리 볼 수 있는 안목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Park 전시가 ‘선택’한 방법론을 빌어 말해보자. 《새일꾼》전이 다소 가벼운 게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이를 쟁취하기 위한 역사가 꼭 무겁게만 다뤄야 하는 주제는 아니다. 이후 세대에게 교육적 목적으로 이를 보여줄 때는 더 그렇고. 나는 예술이 삶을 뛰어넘는 특별한 영역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작업을 할 때도 되도록 보편적인 언어로 쉽게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예술가라는 정체성도 마찬가지다. 예술가는 예술뿐만 아니라 사회를 이야기하고, 삶과 철학을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이 예술에 공감할 수 있다. 나아가 예술에 대한 안목을 기르고, 더 좋은 예술을 걸러낼 수 있다. 자기만의 안목이 뚜렷한 관객을 확보한 예술은 그만큼 발전한다. 나도 정신 차리고 작업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기도 한다.


정윤선, 〈광화문체육관-‘부정의 추억’〉, 2020, 혼합재료, 가변크기.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정윤선, 〈광화문체육관-‘부정의 추억’〉, 2020, 혼합재료, 가변크기.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확장된 세계에 적응하기 **


— 21대 국회의원선거도 끝이 났다. 코로나19와 이에 얽힌 외교 관계, 대북 관계, 개헌 등 수많은 정치적 현안이 교차했다. 한편, 미술계 또한 코로나19를 직면하며 수많은 미술관이 임시로 문을 닫거나, 소극적 운영 방식으로 우회하는 등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한국 사회 전반에 균열이 발생했다. 이러한 시국에서 이번 전시의 의의는 무엇일까?


Choi 선거 정국을 지나다 보면 수많은 이슈가 등장하고, 그 이슈들이 선거의 흐름을 만들어간다. 하지만 이런 흐름만 따라가다 보면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 쉽다. 이번 전시는 역사 속 선거들을 살펴보면서 각 선거에서 등장했던 이슈와 그에 따른 결과가 만들어온 대한민국의 궤적을 짚어보게 한다. 이를 통해 유권자들이 보다 이성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지 않았을까?


Park 선거 기간의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큰 의의를 지닌다. 모든 맥락이 완전히 탈색된 화이트큐브보다 시간성과 장소성을 지닌 공간을 좋아한다. 작품과 특정 시공의 의미를 결합해 더 큰 시너지를 내는 편이기도 하고. 이번 전시를 계기로 예술이 미술관 바깥 광장으로 뛰쳐나가 현장의 목소리에 직접 반응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역할을 하길 바란다. 또한 민관이 오랜 협력과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예술 행위를 만들어낼 때 어떤 시너지와 성과를 낼 수 있는지 그 선례로 남았으면 한다.


Jo 코로나 이후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이다.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유럽이나 미국 등 서구 선진국의 헤게모니가 상당 부분 해체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는 가상과 실재를 지금보다도 훨씬 자유롭게 넘나드는 ‘확장된 세계’를 살게 될 것이다. 갑작스러운 일도 아니다. 이미 우리는 확장된 세계를 살고 있거나, 맞이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다. 다만 대대적인 전환의 계기가 없었을 뿐이다. 큐레이터로서 주목하는 것은 이 확장된 세계에 일찍 적응한 예술가들의 형식 실험이다. 변화하는 시스템과 환경에서 신체적 기능을 적응시키고, 사유 방식을 전환하기 위한 연습이 필요한 시기다.


※ 이 원고는 아트인컬처 2020년 5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아트인컬처와 콘텐츠 협약을 맺고 게재하는 글입니다.

조현대

아트인컬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