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지원(더아트로 에디터)
흔히들 짝수 해를 두고 ‘비엔날레의 해’라고 부른다. 짝수 해인 2020년, 한국의 3대 국제 비엔날레 중 광주와 서울은 개막을 다음 해인 2021년으로 연기했고 부산비엔날레만이 일정대로 전시를 개최했다. 비단 비엔날레뿐만 아니라 올해는 다가오는 주말의 일정조차 잡지 못하는 불확실한 한해였다. 비엔날레와 같은 대~~~~규모 전시는 관람객을 맞이하기 최소 1년여 전부터 준비단계에 돌입해야 했지만,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미술을 향유하는 것조차 쉽게 허용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준비를 마무리하였고 개막이 예정되어 있었던 9월 초, 코로나19의 전국적인 확산으로 인하여 전시는 온라인으로 개막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전시가 중반부를 향해갈 무렵 부산현대미술관과 원도심 일대, 영도 등에서 전시를 물리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러시아 작곡가인 모데스트 무소로그스키(Modest Mussorgsky)가 작곡한 《전람회의 그림(Pictures at an Exhibition)》(1874)은 10개의 피아노곡과 5개의 간주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작품은 그의 친구이자 화가인 빅토르 하르트만(Victor Heartmann, 1834-1873)이 남긴 그림 10점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다. 무소르그스키와 하르트만이 활동하던 19세기와 마찬가지로 동시대의 전시라는 이벤트에서 시각예술과 사운드, 텍스트는 별개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전시에서 텍스트는 전시되는 작품 이후에 생산되곤 하는데, 2020부산비엔날레에서는 부산을 주제로 한 10장의 이야기와 5편의 시에서부터 출발했다.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라는 상당히 직설적인 전시명은 이번 비엔날레를 관통하는 주제뿐만 아니라 구조적인 측면까지 예측할 수 있게 해주었다. 11명의 문필가들이 먼저 부산을 방문하여 각자의 문학 작품을 제작했고, 그에 맞는 미술가들의 작품이 전시공간 곳곳에 배치되었으며 뮤지션들이 신곡을 작곡했다. 장르를 불문하고 비엔날레에 참여한 많은 예술가들에게 부산은 창작을 위한 매력적인 도시일 것이다. 부산은 바다를 품고 있는 도시답게, 일찍이 개항을 통해 많은 물자와 사람이 드나들며 교류와 교역이 원활했다. 또한 6.25전쟁을 거치면서는 전국에서 피난민들이 모여들어 국내외의 다양한 문화가 혼종되어 있던 도시이다. 이렇게 부산이 가진 다양한 모더니티의 층위는 이번 비엔날레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작업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었다.
비엔날레의 메인 전시장인 부산현대미술관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벨기에 출신의 듀오 아티스트인 요스 드 그뤼터&헤럴드 타이스의 작품 〈몬도 카네〉가 강렬한 인상을 내뿜고 있었다. 첫 작품을 맞이하자마자 지난해 서울의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야콥 파브리시우스(Jacob Fabricius) 감독이 기획한 전시인 《나는너를중세의미래한다1》이 오버랩되었다. 동시대의 환상과 기괴함, 디스토피아적 묘사를 통해 미래에 대한 서사를 펼쳤던 이 전시에서는 원시적이고 기괴한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드러나며 관람객으로 하여금 예측불허의 시간여행을 제안했다.
부산의 다채로운 레이어를 전시로 풀어낸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에서도 곳곳에 자리 잡은 기괴한 이미지와 소외된 주체들이 눈에 띄었다. 언캐니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을 시작으로 부산현대미술관의 물리적 공간은 한 권의 책을 펼쳐보는 듯한 문학적인 경험을 부여했다. 편혜영, 마크 본 슐레겔, 아멜리아 스미스, 배수아, 이상우, 김숨의 이야기와 김혜순의 시까지 총 7명의 문학가들이 부산을 주제로 만들어낸 텍스트를 따라 시각예술가들의 작품이 펼쳐졌다. 문필가들의 새로운 픽션은 부산이라는 공간을 직, 간접적으로 인용하였으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 다양한 시점을 부여함으로써 관람자가 부산이라는 도시의 현실과 상상, 그리고 역사의 다양한 층위를 넘나드는 경험을 제공했다.
부산현대미술관뿐만 아니라 부산의 원도심과, 항구가 위치한 영도 또한 전시장으로 활용되며 한층 다채로운 관람이 가능했다. 부산의 원도심에 있는 다양한 공간들-또따또가 갤러리, 201, 301, 창, 워크숍, 40계단, 스페이스 닻, (구)한국은행 부산본부, 주차타워, BNK 부산은행 아트시네마-에서는 부산의 지역적 특색과 박솔뫼, 김금희, 안드레스 솔라노의 문학 작품과 시각예술가들의 작품이 어우러져 있었다. 전시장으로 탈바꿈한 영도의 창고에서는 김언수작가의 작품과 예술가들의 작품, 그리고 공간이 서로 시너지를 부여하며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열리는 대규모 미술 전시의 면모를 과시했다. 미술관 바깥에 있는 2020부산비엔날레의 다양한 전시 장소들은 개항에서부터 제국주의, 전쟁과 피난 등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지나온 흔적들을 품고 있었다. 시각예술과 문학을 넘어 도시 자체가 주는 거대한 스토리텔링 속에서 흡사 관찰자 혹은 탐험가가 된 듯이 곳곳을 누비며 전시를 만끽할 수 있었다.
올해는 물리적으로 체험하는 것에 많은 제약이 따른 해였다. 그렇기에 2020부산비엔날레는 전시를 기다리던 미술계 관계자뿐만 아니라 미술을 사랑하는 관람객들에게도 매우 반가운 전시였을 것이다. 미술 전시와 각종 비엔날레, 아트페어 등은 온라인 뷰잉룸으로 대체되었고 실제 작품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경험에 대한 갈망이 증폭되었을 때, 부산비엔날레는 많은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막을 열었다. 무엇보다도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는 부산이라는 도시를 둘러싼 문학작품과 미술작품, 음악 그리고 도보를 통한 여행이라는 체험을 부여했다. 순수 예술과 문화 산업을 연장선상에 놓은 전략적인 접근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전 세계의 사람들의 이동이 어려워진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로컬을 향한 관심이 집중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부산 비엔날레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부산’이라는 지역을 예술이라는 언어를 통해 한 층 더 매력적인 새로운 인상의 도시로 자리매김하도록 만들었다.
2020 부산비엔날레 프리뷰 :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과의 대담(1)
2020 부산비엔날레 프리뷰 :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과의 대담 (2)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한국미술 글로벌 플랫폼 더아트로를 담당하며 플랫폼 관리와 기사 에디팅을 담당하고 있다. 큐레이터학과 예술학을 전공하고 경기도미술관 및 아트스페이스 풀 등에서 전시 업무에 참여했다. 「‘공동체’와 ‘역사적 참조’를 중심으로 살펴본 양혜규 연구」 , 「현대미술이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에 관하여」 등의 논문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