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월간미술 편집부
“404”. 트위터 공식 계정에서 업로드한 트윗 “2020 in one word(2020년을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에 마이크로소프트 엣지가 보낸 멘션이다. (404는 마이크로소프트 엣지 브라우저의 오류 메시지다.) Adobe는 “Ctrl+Z”, 인터넷 화상회의 서비스 Zoom은 “Unstable”로 2020년을 각각 정의했다. 굳이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2020년은 그야말로 키보드를 두들겨 ‘실행취소’하고 싶은 불안정한 오류의 해였다. 미술계 역시 모두의 일상을 파괴한 팬데믹의 여파를 비켜가지 못했다. 대부분의 미술기관은 정부의 지침에 따라 일년 내내 휴관과 짧은 개관을 반복했고 오프라인 아트마켓과 비엔날레 취소 소식도 끊임없이 들려왔다. 소통과 교감이라는 예술의 존립 근거가 위태로워진 상황에서 미술계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VR, 유튜브 등 비대면 서비스로 눈을 돌렸다. 마침내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었지만 2021년 1월 현재 상황으로는 과거의 일상으로 완벽히 돌아가는 길은 요원해 보인다. 팬데믹이 급작스럽게 우리 앞에 놓아둔 미래 속에서 미술계는 2021년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2단계로 상향 조정될 때마다 문을 닫아야 했던 국공립미술관들은 2020년 초 예정했던 전시 일정을 미루거나 해외 작가 전시를 취소했다. 광주비엔날레와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등도 해를 넘겨 2021년으로 개최를 미루었다. 2021년도 2020년과 별반 다르지 않은 ‘위드코로나’ 시대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구미술관의 2021 슬로건 “공감의 미술관, 하이 터치 뮤지엄(High Touch Museum)”이 잘 보여주듯 올해 미술관들은 작년에 본격적으로 시도한 온라인 전시 중계와 트윈미술관 등 비대면 콘텐츠를 이어가며 관람객 소통 창구를 강화하여 치유의 역할과 공존의 방법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21년 전시 기조로 ‘사회적 소통, 융합의 시대정신, 균형과 조화’를 내세우고 코로나19로 급변한 삶 속에서 공존의 가치를 성찰하고, 다원적, 다학제적 융합을 추구한다. 동시에 아날로그와 디지털, 온라인과 오프라인, 실재와 가상현실, 중심과 주변 등의 경계를 허물어나가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박래현, 이승택 등 한국미술계의 걸출한 인물들을 조명한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박수근, 정상화, 최욱경, 황재형 등 다양한 영역의 거장들을 조명하고 MMCA 현대차 시리즈, 올해의 작가상, 젊은 모색 등의 정기전을 개최하여 한국미술의 역동성과 다양성을 보여줄 예정이다. 관별 특성화 전략으로 지역의 문화예술향유권을 확대하는 노력도 이어나간다. 그중에서도 공존을 모색하는 《생태예술: 대지의 시간》 (9~11월, 과천), 《미술원, 함께 사는 법》(7~11월, 청주)과 한국미술사를 열린 눈으로 바라보게 할 《한국미술, 전통과 현대》 (7~10월, 덕수궁) 등이 관점을 넓혀줄 전시로 주목된다.
각 시도미술관들도 급작스럽게 변화한 환경에 맞추어 오프라인과 함께 다양한 채널을 신설하는 한편 관람객들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줄 전시를 소개하기 위해 분주하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연기된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를 9월에 개최하는 한편, ‘트랜스미디어’라는 전시 의제를 걸고 다양한 매체와 장르가 협업하는 전시를 선보인다. 웹툰작가 주호민과 유머 넘치는 민중미술 작가 주재환의 부자(父子)전과 이날치 밴드를 이끈 장영규와 임민욱의 《타이틀매치》도 기대되는 전시다. 코로나19로 관심이 더욱 높아진 지역성에 관한 전시도 눈에 띈다. 각 지역 미술관들은 지역작가를 의무감에 산발적으로 소개하는 것이 아닌 체계적인 아카이브를 통해 지역미술사를 발굴하고 구축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부산시립미술관은 1960~70년대 부산미술에 이어 1980년대 부산 형상미술을 조명하여 한국미술사 내에서 재해석하는 전시를 3월 선보이고 대구미술관도 1920~50년대 대구 근대미술을 조망하는 전시 《때와 땅》을 2월 개최한다.경기도미술관의 《경기아트프로젝트》, 광주시립미술관의 광주미술아카이브전 《강용운 탄생 100년전》, 경남도립미술관의 《지역작가 조망전: 양달석》도 한국미술사를 풍부하게 해줄 전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사립미술관도 다양한 전시를 준비했다. 사립미술관의 경우 예년에 비해 해외 작가 전시 비중이 줄어들었는데, 작년 한 해 코로나19로 해외 작가 입국이 어려워지면서 전시가 취소되거나 연기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일민미술관의 경우 새해 첫 전시로 브라질 상파울루 비데오브라질에서 주최하는 온라인 스크리닝 전시 《Anthropocene Korea×Brazil 2019-2021》을 진행했다. 이외에 불가항력과 같은 미지의 세계인 ‘운명’의 의미를 돌아보는 기획전 등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일 예정이다. 매년 해외 작가 전시를 주요하게 선보이는 아트선재센터는 3월 천제련 개인전을 시작으로 이수경, 제인 진 카이젠의 개인전과 기획전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사립미술관들은 올해 기획전보다는 개인전 개최에 힘을 싣는 모양새다. 고은사진미술관은 아르노 피셔, 이중근, 고성, 안성석 사진전을 준비 중이며, 김종영미술관과 금호미술관, 씨알콜렉티브, 송은아트스페이스 등은 각 기관에서 제정한 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개인전, 기획전, 특별전을 선보인다. OCI미술관은 창작스튜디오 그룹전으로 첫 포문을 열고 신진작가전을 주력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국내 갤러리와 대안공간은 대부분 개인전 위주로 전시를 개최한다. 올해도 주요 갤러리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굵직한 작가 전시가 연이어 열린다. 국제갤러리는 안규철(5월, 부산), 박서보(9월) 개인전을 열고, 갤러리 현대는 박현기(4월), 이강소(6월), 이건용(11월) 개인전을 연다. pkm갤러리는 서승원 개인전과 개관 20주년 기념전이 연말에 예정되어 있다. 이화익갤러리의 황인기(4월) 개인전과 노화랑의 《21세기 전설의 추상회화전》(2월)도 눈여겨볼 만하다. 대안공간은 공간별로 벌이던 프로젝트를 안정감 있게 진행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미술계에 진입하는 신진 작가의 플랫폼 역할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다만 주요 갤러리와 대안공간에서 기획전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는 아무래도 코로나19에 있을 것이다. 그 여파가 올해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이제 해외로 눈을 돌려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영국, 미국, 일본, 중국 통신원들이 선별한 2021년 전시와 그 경향을 살펴보자. 먼저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는 코로나19와 관련한 주제를 급히 다루었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명망 있는 작가의 개인전과 국가의 역사에 흐르는 주요 이슈를 기획전으로 제시했다. 특히 프랑스는 상반기부터 하반기에 걸쳐 대규모 전시를 여럿 예정했다. 심은록 프랑스 통신원은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에서 5월 개최될 《데미안 허스트, 벚꽃》이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의 명성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하는 파리지앵들이 작년부터 기다려온 전시”라고 언급했다. 더불어 “작가의 최근 전시 《사랑의 안과 밖》이 나비 9000여 마리를 죽인 것으로 화제에 오른 것과는 다르게 이번 전시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벚꽃이 신기루처럼 흩날리는 환상적이고 평온한 풍경을 보여줄 것으로 예견되나, 관람객들은 그 안에 놀랄 만큼 충격적인 무언가가 숨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심 통신원의 전언은 전시에 대한 기대감을 더한다. 또한 파리 레알(Les halles) 지역의 구 상업거래소 건물을 개조한 피노 컬렉션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컬렉터 중 한 명인 프랑수아 피노의 소장품 3500여 점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이외에도 퐁피두센터는 올가을, 두 거장의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 ‘거꾸로 된 그림’으로 잘 알려진 독일 신표현주의 화가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와 미국 현대미술의 대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의 전시는 벌써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한편, 박진아 오스트리아 통신원은 오스트리아가 지난해 11월부터 석달째 록다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미술관과 박물관도 (잠정적으로 1월 26일까지)휴관 상태다. 다수의 미술관이 코로나 사태로 인한 불확실성 속에서 올 한 해 전시회 개막 및 폐막 일정을 확정하지 않은 상태이나, 대체로 10월 이후 재개관을 염두에 두고 전시를 준비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고 전했다.
영국과 미국은 각각 록다운과 선거 등으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놓였음에도 하나의 기관에서 여러 개의 전시를 기획하는 등 활발한 행보를 보여주었다.영국왕립미술원은 1월 30일부터 4월 18일까지 《프랜시스 베이컨: 인간과 야수》를 선보이는 동시에 3월 27일부터 8월 22일까지 《데이비드 호크니: 봄의 도착, 노르망디, 2020》을, 이후 9월 25일부터 12월 10일까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삶 이후》를 순차적으로 열 것이라고 밝혔다. 작년 하반기 미술관 직원 고용을 둘러싼 문제들로 질타와 우려의 목소리를 한몸에 받았던 테이트 모던 역시 상반기에는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의 개인전을, 하반기에는 자넬레 무홀리(Zanele Muholi)의 개인전을 계획하고 있다. 미국 미술관들도 유명 작가의 개인전 위주로 전시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카고 미술관에서 열릴 《모호한 기준 연구소: 관습으로 굳어진 제도》는 모든 것이 불분명한 이 시대, “애매모호함을 인증하고 기록 및 보관”하는 목표로 설립된 연구소의 작품으로 ‘기준의 의미’를 재고하게 한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중국과 일본의 경우 다수의 미술기관이 상반기 일정만을 밝히거나, 2020년부터 올해까지 지속 또는 연기된 전시를 다시 준비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마정연 일본 통신원은 교토, 이바라기, 오사카, 니가타, 도쿄 등 주요 지역의 전시 현황을 전하며, 미술계의 활동이 예상보다 더 기운차게 이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또한 마 통신원은 니가타현립근대미술관에서 3월 20일부터 6월 6일까지 열릴 《Viva Video! 구보타 시게코》의 첫 대규모 회고전을 주목할 만한 전시로 꼽았다. 이외에도 코로나19 여파로 연기되어, 올해 7월에서 9월로 일정이 잡힌 《도쿄비엔날레 2020/2021》도 귀추가 주목된다. 중국의 경우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에 걸쳐 진행되는 전시가 많다. 그중에서도 미디어아트와 컴퓨터 기술을 기반으로 한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들이 돋보였다. 특히 상하이 크로노스 아트센터에서 2020년 11월 21일 개막해 올해 5월까지 계속되는 《We=Link: 辺》은 스위스 바젤 전자예술하우스(HeK), 백남준아트센터 등 세계 각국의 미디어 아티스트가 협력하는 온 오프라인 전시로, 모바일로도 쉽게 접근 가능하다.
2020년, 혹은 그 이전부터 계획되었을 전시들이 취소되는 상황에서도 각국 미술계에서 새롭게 준비한 전시들이 올해 우리에게 밀려올 전망이다. 물론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다수의 미술관이 ‘미정’ 또는 ‘변동 가능’ 문구를 붙여 일정을 알리고 있으나, 여러 기관에서 전시가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은 안도감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