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rd JEJU Biennale
2022 제3회 제주비엔날레〈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
2022.11.16~2023.2.12
제주도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외 4곳
jejubiennale.org
기사를 작성하는 지금 이 시간, ‘제주비엔날레’는 한국 현대미술에서 가장 핫한 행사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비엔날레 취재 중 업로드한 인스타그램 사진을 보고 수많은 사람이 내게 “행사가 볼만 한가?”, “관람 시간을 얼마나 잡아야 하나?” 물어오는 걸 보면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듣기만 해도 가슴이 몰랑몰랑해지는 이름 ‘제주도’에서 행사가 치러지는 데다 굵직한 비엔날레가 대부분 끝나 새로운 볼거리를 찾는 시기와 맞물렸고, 또 전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굉장히 오랜만에 다시 치러지는 행사이기 때문에 그만큼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다.
‘제3회 제주비엔날레’는 11월 16일부터 오는 2023년 2월 12일까지 개최되며 16개국 55명(팀)이 참여한다. 제주도립미술관을 필두로 제주현대미술관, 제주국제평화센터, 삼성혈, 가파도 AiR, 미술관옆집 제주 등 총 6개 전시장에 165점의 작품이 선뵌다.
장장 5년 만에 선보이는 ‘제주비엔날레’를 기획한 박남희 예술감독은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Flowing Moon, Embracing Land)’이란 주제를 세웠다. 땅과 달, 인류의 삶에 가장 기본인 그것들을 더듬으며 인류세, 자본세를 얘기해보자는 취지에서 그는 이 비엔날레가 새로운 지질학적 개념이 제기되는 기후위기 시대에 전 지구적 공생을 향한 예술적 실천의 하나가 될 것이란 포부를 드러낸다. 이에 박 감독은 기후 및 다양한 생태 환경이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만든 제주를 자연 공동체 지구를 사유할 장소로 상정하고,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이란 자연 안에서 모든 것이 상호 연결된 세계의 공존 윤리와 관용을 함축한다는 이론을 기획의 바탕에 깔았다.
기획을 극대화시키고자 제주도의 자연 지형과 생태가 인간의 시간과 사건으로 연결된 6곳의 장소가 무대로 선택됐다. 2곳의 주제관과 4곳의 위성전시관은 총 10곳에 달했던 후보지에서 고르고 골라진 곳이다. 우선 제주도립미술관은 자연을 주제로 밀도 있는 작업을 펼쳐온 국내외 33명 작가 작품으로 구성된다. 여성의 삶에 대한 성찰을 퍼포먼스, 비디오, 설치 등 장르를 넘나들며 보여주는 예술가 김수자의〈호흡〉(2016)을 비롯해 30년 넘게 인종, 정체성, 탈식민주의와 디아스포라에 대해 고심해온 가나 작가 존 아캄프라(John Akomfrah)의〈트로피코스(Tropikos)〉(2016)가 관심을 집중시킨다. 강요배는 거의 높이 7m에 달하는 회화〈폭포 속으로〉를 통해 작가 내면에서 재구성된 자연의 심연과 응축된 힘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문경원&전준호의 싱글채널 비디오〈이례적 산책〉(2018-2019)을 국내 그것도 섬에서 대면하는 것은 꽤 신비로운 경험이다. 2012년 ‘카셀 도쿠멘타(Kassel Documenta)’에서 발표되었던〈세상의 저편〉의 연장선이기도 한 이 작품은 버려진 물건을 줍는 주인공을 통해 시대의 불안과 욕망이 드러나는 풍경을 보여준다.
제주현대미술관으로 가는 길목엔 김기대의〈바실리카〉가 놓여 있다. 초기 교회 바실리카 건축의 형태와 유사하게 만든 온실 구조물은 앙상하고 헐거워 보는 이를 집중시킨다. 미술관 안에선 미디어 아티스트 콰욜라(Quayola)의 기계의 눈으로 본 자연을 주제로 한〈산책로(Promenade)〉(2018)와 박형근의〈Fluidic topography〉등을 감상할 수 있다. 지표면을 연구하는 지형학에서 작품 이름을 빌려온 박형근은 오랜 시간 변화가 축적된 제주의 지표면과 인간의 몸이 서로 접촉하는 ‘걷는다’는 행위에 집중한다. 제주의 동굴, 숲, 돌, 용암 단층 등은 지금도 내외부의 접촉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장소를 직접 걷고 눈으로 매만지며 촬영하여 가시적 세계의 이면을 깨닫고자 한다.
제주국제평화센터에서는 제주 바다와 관련된 작품들로 해녀복을 수집하여 공동체의 이해를 확장하는 이승수의〈불턱〉과 ‘탐라순력도’를 재해석한 이이남의 미디어 작업이 놓였고 미술관옆집 제주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설치 미술과 공연을 선보이는 태국 예술가 리크릿 티라바닛(Rirkrit Tiravanija)의 삶의 순환과 공유의 관계를 다루는 작품〈무제 2022〉로 채워졌다.
나머지 두 곳, 삼성혈과 가파도 일대는 장소 그 자체로 카리스마 넘친다. 자칫 공간이 작품을 집어삼킬 수 있겠단 노파심이 들 즈음 자연으로부터 신화로 연결된 세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팅통창(Ting tong Chang)이나 박지혜의 작품이 존재를 과시한다. 박지혜의〈세 개의 문과 하나의 거울〉은 제주만의 독특한 신화적 모티브에서 출발한 영상 작업이다. 그는 삼성혈에 깊이 박힌 탐라국 전설을 현실과 교차시키며 전혀 색다른 시공간을 발생시킨다. 한편 나지막하고 아름다운 가파도엔 작품이 뚝뚝 떨어져 놓였다. 이 작품들을 보려면 어쩔 수 없이 섬을 한 바퀴 돌아야 하는데, 아주 행복한 고통이다. 심승욱, 윤향로, 홍이현숙 등의 되직한 작품은 바다를 둘러싼 섬을 지그시 누르는 듯하다.
인간, 물질, 신화, 역사 등을 공동체로, 그 사이 만남과 떨림, 소통과 공존의 경험을 권하는 ‘제3회 제주비엔날레’는 무엇보다 발을 땅에 딛고 걷는 일과 숨을 크게 들이켜 호흡하는 것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한다.
정일주는 월간 퍼블릭아트 편집장으로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으로 박사과정까지 공부했다. 일간지, 주간지, 격주간지 기자를 두루 거친 그는 멋이 들끓는 미술 월간지에 가장 큰 매력을 느껴 편집장까지 거머쥐었다. <퍼블릭아트 뉴히어로> 전시를 4차례 기획했으며 단행본『컬쳐레터-한국미술에 바란다』를 총괄 기획했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현대자동차 크리에이터 플랫폼 ZER01NE의 아트 섹션 책임 기획자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