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형 큐레이터와 13인의 갤러리스트가 만났다. 갤러리 디렉터로서, 그들의 예술, 삶,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예술가들이 이 시대에 어떠한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질문하고 답했다. 특히 이번 인터뷰는 전시 ⟪다이얼로그⟫의 두 번째 에디션, ⟪마인드 맵⟫ 기획에 큰 영감을 주었다.
데이터기반 숫자에 의존한 상업적인 접근이 아닌, 예술가들 하나하나 다양한 철학적, 인문학적 생각의 뿌리, 그리고 그것들이 구체화되는 과정 역시 너무나 중요하다는 사실에 모두 공감했다. 이대형 큐레이터는 갤러리스트들의 마인드 맵을 추출하여 그들의 통찰력과 철학적 사고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렇게 해서 완성한 “13개의 이너뷰”는 단순한 인터뷰 시리즈를 넘어서, 우리 시대에 공명하는 핵심 신념과 예술적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일종의 여정이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도출한 13명 갤러리스트의 비전과 작가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다 쉽게 현대 미술 작가들의 철학적, 인문학적 고민을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유리의 근본적인 특성을 탐구하기 위해 다양한 스타일과 기술을 사용하여 기존의 경계를 초월하는 작가들에게 특별한 매력을 느낀다. 그 중 최혜숙은 유리 본연의 연약함을 작품에 녹여낸 천재적 시도로 주목 받고 있다. 그녀의 작품은 미묘하고 복잡한 레이어로 구성되며, 각 레이어는 재료의 섬세한 속성을 극대화하며 작가적 역량을 시험한다. 섬세하고 심오한 터치로 완성된 작가의 작품세계는 유리만의 독특한 시각 언어에 기반해 현대 유리 작가들이 추구하는 미학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녀의 작품은 시간을 초월한 은유적 상징언어와 재료와의 친밀한 연결, 그리고 현대 조각에 대한 작가의 철학을 담아내고 있다. 그것은 빛과 형태의 상호작용, 연약함, 아름다움, 심오한 의미의 본질을 포착하는 섬세한 융합의 결과이다. 그래서 보는 사람에게 경외감과 사색의 여운을 선사한다.” - 김효정 (갤러리 스클로 디렉터)
최혜숙은 현재의 일상을 가까이 관찰하며 이를 작가의 시선으로 기록하는 방식을 통해 미래의 과거인 현시대를 표현한다. 현재를 미래의 과거로 설정하는 방식을 통해 일상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물건들을 ‘현대의 유물’로 새롭게 해석하고 재구성하며 미의 본질적 개념과 정의에 관해 질문한다. 이러한 작가의 질문은 현대 소비사회에서 미와 자기만족의 상징으로 수단으로 기능하는 명품이라는 모티프를 작가가 작품의 주재료로 사용하는 유리라는 소재에 투영시킴으로써 보다 구체화된다. 핸드백, 하이힐, 향수 등의 장식품을 유리의 투명하고 반짝이는 물성에 대비시키는 방식을 통해 현재의 시대상을 대표하는 유물로 표현하고 재구성한다.
100년 뒤의 사람들은 자신의 아름다움과 자기만족을 어떻게 표현하고 어떤 것에 가치를 둘 것인지에 관한 작가의 의문은 2019년부터 작가가 시작한 〈유물〉 시리즈의 시작점이었다. 작가는 명품 브랜드들의 핸드백을 반짝이지만 깨지기 쉬운 대비적 물성을 지닌 유리라는 소재를 활용하여 현대의 유물로 제작한다. 특히 작가는 ‘빠뜨 드 베르(Pâte de verre)’ 라는 유리의 기법을 사용해 반투명하고 거친 유리의 형태와 질감을 표현함으로 시간의 흐름 따라 자연스런 부식과 소멸이 발생하는 유물의 정교성을 극대화한다. 그리고 이렇게 탄생한 유물을 박물관에 전시된 듯한 디스플레이를 통해 미래의 과거로서 전시하며 미의 영원성에 대해 성찰한다.
이러한 정의된 미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과, 현재를 미래의 과거로 설정하는 최혜숙의 시선은 조선시대 미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신윤복의 미인도를 작가의 작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다시 한번 확장된다. 작가는 미인도 속 한복을 입은 여인에게 현대의 미로 상징되는 핸드백과 구두를 착용시킨다. 과거의 미의 기준과 현대의 미의 기준을 한 화면 위에 혼합하고 재편하는 과정을 통해 21세기의 미인도를 기록한다. 이렇게 탄생한 〈21세기 버전의 미인도〉 속 한복을 입고 명품 핸드백과 하이힐을 착용한 여인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미학적 이질감의 형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2023년의 미의 기준으로 바라본 이 시각적 이질감이 과연 2123년의 미의 기준에서 어떤 모습으로 비치게 될지, 그것은 관객에게 던져진 미의 시대적 개념과 정의에 대한 작가의 질문이다.
그림1. 최혜숙, 〈21세기로부터의 유물_가방 시리즈7〉, 2021, 유리(가마성형), 36x39x20cm _ Choi Hyesook, A Relic from the Early 21st Century_Purse 7, 2021, Glass, kiln formed, 36x39x20cm
"구름은 신의 수증기로 만든 움직이는 구조물이다,"라고 샤를 보들레르 (1821-1867)가 말했다. 이 시적 메타포는 이동훈의 예술성을 절묘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동훈의 예술은 작가 본인의 본질적인 철학과 세계관에서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것으로, 이 과정은 직관적이며 인위적인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 그의 작품은 이러한 자유를 발산하며, 세심한 관찰과 깊은 사유에서 태어난다. 특히 나무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는 주제에 대한 탐구와 매끄럽게 연결되어, 땅에 뿌리박힌 듯하면서도 하늘에 떠 있는 듯한 아우라의 작품을 가능케 한다. 이처럼 자연스런 자유로움을 불러일으키는 작가만의 능력은 단순한 기술적 기교가 아닌 주제에 대한 깊고 끊임없는 철학적 고민이 밖으로 표현된 결과이다. 따라서 이동훈의 작품을 경험하는 것은 단순한 관찰을 넘어, 단순함과 복잡성, 자연주의와 개념주의로 정의되는 이동훈의 사유의 공간에서 만나게되는 의미의 상호작용이다.” - 이은숙 (갤러리 에스피 디렉터)
이동훈의 작품세계는 동적인 움직임과 정적인 순간의 첨예한 관찰을 바탕으로 한 조각과 회화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의 조각은 화병과 같은 전통적인 정물화에서 출발하여 생명력을 지닌 동식물 형상, 역동적인 K팝 아이돌의 움직임 등 다양한 움직임의 순간을 포착한다. 그리고 이러한 조각들이 지니는 물성과 형태를 전제로 작가는 이를 캔버스 위로 옮겨 그린다. 이처럼 작가는 대상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1차적 행위로서의 조각과 이를 다시 배열하고 복기하는 2차적 행위로서의 회화를 통해 작품을 선보이며 이 두가지를 함께 보여주는 방식으로 작품들을 전시한다.
회화를 전공한 작가는 자신의 표현방식을 조각으로 확장하며, 전통적인 정물부터 현대 한국 대중문화의 아이콘인 아이돌까지, 미술사적 관찰의 대상과 동시대의 아이콘을 모두 포괄하며 복합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다. 또한 움직임이라는 주제의 양 극단에 위치하는 정적인 정물화와 아이돌의 역동적인 안무를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다양성을 부여한다.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나무 조각 시리즈는 나무의 물성을 활용하여 텍스처와 그에 따른 다양한 표현적 특성을 강조한다. 작가는 전기톱과 조각칼을 이용해 식물과 아이돌 안무 동작과 같이 작가가 표현하고자하는 형상으로 원형의 나무를 시각화 하고 그 위에 아크릴로 색을 입혀 회화적 요소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나무조각을 완성한다. 그리고 완성된 나무조각의 파노라마 사진을 찍고, 사진에 전개된 구성을 캔버스 표면에 이식하는 과정을 통해 조각을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회화를 그려낸다. 이렇듯 작가는 회화의 평면성과 조각의 입체성을 교차시키는 행위를 통해 두 장르를 넘나드는 표현방식을 구축한다.
이번 전시에서 이동훈은 나무조각 〈스타티스, 알스트로메리아, 카네이션과 안개꽃〉, 회화 〈스타티스, 알스트로메리아, 카네이션과 안개꽃1〉과 더불어 종이 조각 〈시든 꽃〉과 〈꽃〉을 선보인다. 이는 나무가 아닌 다른 소재로 조각을 확장하고자하는 작가의 새로운 시도이다. 종이의 가볍고 얇은 특성을 활용하여 늘어지는 형태나 접히는 구조 등의 다양한 종이조각의 조형적 가능성을 탐색한다. 작가는 이 종이조각들을 통해 나무와는 다른 물성을 지닌 종이의 특성을 극대화하여 미학적 소재와 형태의 확장을 탐구한다.
그림2. 이동훈, 〈일곱번째 감각〉, 2023, 느룹나무에 아크릴, 180×370×423cm _ Rhee Donghoon, The 7th Sense, 2022, Acrylic on elm, 180×370×423cm
“작가, 장르, 시대를 불문하고 꾸준히 주목받는 작품이 있다. 이러한 작품은 종종 자연과 삶에 대한 심오한 진실을 불러일으키며 현실에 대한 겸손하고 엄숙한 접근을 실천한다. 우리 사회는 특정 시대, 특정공간을 불문하고 밝음과 어두움이 공존해 왔다. 그러나 정직성은 밝은 빛이 어두운 그림자를 감싸 안아 모든 사람이 아름답게 공존하는 사회를 기대한다. 그녀의 꽃 연작들은 그녀의 작품에 대한 나의 이러한 생각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정직성 작가가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가장 겸손하게 실천하는 작가로서 평가받기를 바란다. 그녀의 예술은 삶의 이분법에 대한 알레고리인 빛과 그림자의 본질적인 결합이 가능하다는 것을 시적으로, 시각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 배미애 (갤러리 이배 디렉터)
정직성은 한국의 23년 차 여성 화가이자 세 아이의 엄마이다. 회화의 윤리적∙영적 역할과 역량에 관심을 기울이며 작품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미지의 장으로서의 회화의 중층성에 기반하여 색과 붓질의 수사학적 성격을 실험한다. 지금까지 작가는 미술사 내의 회화 형식들을 차용하면서 동시에 현실의 삶을 표현하는 알레고리 적 회화를 시도해 왔고, 최근에는 일상성과 환상성의 도입을 위해 천 년 전통의 나전칠기 기법이나 사군자 등 한국적 상징을 화면에 적용하여 장소성에 기반한 회화의 외연을 넓히는 시도를 이어오고 있다.
작가는 지난 20여년 간 한국 사회의 평균적인 주거 현실과 노동의 현실을 기하학적 추상의 회화로 표현해 왔다. 2002년부터 제작한 〈연립 주택〉 연작으로 회화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졌고, 〈공사장 추상〉, 〈푸른 기계〉, 〈기계〉 연작 등 도시의 풍경을 특유의 추상적인 필치로 표현한 회화 작품들로 저변을 확장 시켜왔다. 적은 돈으로 세를 얻어야 했기 때문에 마흔세 번 이사를 전전해야 했던 삶의 조건을 서울 달동네 연립주택 지역을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으로 해석한 〈연립 주택〉 연작으로 표현하였다. 긋고 지우는 행위가 강조된 〈공사장 추상〉 연작은 잦은 이사를 겪으면서 경험한 서울의 빠른 재개발 공사장의 해체와 구축 현장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다. 블루칼라 계급의 역동적 삶의 리듬을 추상적으로 반영한 〈푸른 기계〉 연작과 자동차 정비사의 ‘작업장’이라는 공간을 리드미컬한 붓질로 해석한 〈기계〉 연작들은 작가가 마주한 노동자들의 일터가 담겨있다. 이렇듯 작가는 자신의 일상 현실에 철저하게 밀착해 느끼고, 사유하고, 표현하는 과정을 드러낸다.
나아가 정직성은 이러한 작가의 태도를 자연생태의 문제로 확장해 가고 있다. 사계절의 변화와 자연경관의 변화 양상이 미술의 상징적 표현과 어떤 연관관계를 갖는지 탐구하고 회화의 평면성과 사물성의 관점에서 나전칠기 기법을 전용하는 〈현대 자개 회화〉 연작을 2019년부터 발표하고 있다. 작가는 자개가 지닌 물성에 주목하고 이를 본인만의 리드미컬한 표현방식과의 결합해 평면적인 표면에서 빛으로 튀어나와 이미지를 구현하는 방식으로 자개의 추상성을 표현한다. 이러한 자개의 물성과 그것을 활용한 평면적 표현의 가능성에 대한 작가의 탐구는 회화의 확장성을 꾀하는 시도로써 그 예술성을 극대화한다.
그림3. 정직성, 〈202010〉, 2020, 자개, 나무에 삼베, 옻칠마, 120.5×160cm _ Jeong Zik Seong, 202010, 2020, Mother-of-pearl, hemp cloth on wood, natural lacquer, 120.5×160cm
* MIND MAP_갤러리 디렉터 인터뷰 part3로 이어집니다.
이대형은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큐레이팅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2023년 Sundance, MoMA, Guggenheim, V&A에서 상영한 백남준 장편영화
또한 2013년부터 2019년까지 현대자동차 아트디렉터로서 국립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 LACMA, 블룸버그,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등 미술관, 큐레이터, 작가, 평론가 등 다양한 파트너십 및 프로모션 플랫폼을 기획하였다. 현재 인천국제공항 터미널 2 확장 아트프로젝트를 아트 디렉팅하고 있으며, 싱가포르 아트사이언스 미술관 인터네셔널 보드 맴버, 백남준 문화재단, 아트센터 나비의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