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행사

남미 최대의 아트페어 ArteBA와 아르헨티나 미술현장

posted 2017.10.18

아르헨티나에서 개최되는 남미 최대의 현대미술 아트페어 ArteBA 2017의 현장을 찾았다. 올해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프로젝트 비아(Project VIA) 해외 프로그램 참가 지원의 일환으로 선정된 필자가 ArteBA 측이 주최한 6일간의 공식 초청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필자는 올해로 26회를 맞은 ArteBA뿐 아니라, 아르헨티나의 미술관, 갤러리, 대안공간 등 현대미술 현장을 두루 살폈다. 필자가 쉴 새 없이 움직인 4박 5일 동안의 동선을 따라, 아르헨티나의 생생한 미술 현장을 속속들이 살펴본다.




이번 부에노스아이레스 방문은 조금 갑작스레 이루어졌다. 우선 30시간이 넘는 긴 여정과 빡빡한 스케줄, 또 초대받은 arteBA의 일정이 내가 준비하고 있던 아트부산 오픈일과 워낙 가까워 선뜻 결정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또 이번 기회가 아니면 지구 반대편의 그 머나먼 곳을 가볼 기약이 없기에 조금은 무리해 스케줄을 옮겨가며 여행 계획을 세웠다. 일전에 5주나 아르헨티나를 여행한 경험이 있었지만 이과수와 파타고니아의 아름다운 풍광 외에 사실 그 나라를 잘 알지는 못했다. 한때 미국보다 잘살았고, 이태리와 스페인의 이민자들이 주를 이루던 탱고의 나라, 지독한 독재와 여러 차례의 경제 위기가 있었다. 많은 지식인과 예술가들의 끔찍한 수모와 죽음을 겪었으며, 포클랜드 전쟁, 불안한 치안, 광활한 팜파스와 소떼, 특히 아사도와 스테이크, 이 정도가 내가 아는 이 나라의 대략적인 단편들이였다. 또 출신 작가로는 송은아트센터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를 했던 레안드로 에를리치와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토마스 사라세노 정도가 다였다. 적어도 이번 여행 전까진 그랬다.


MALBA에서 전시 중인 General Idea의 Fin de siècle MALBA에서 전시 중인 General Idea의 Fin de siècle

ArteBA 아트페어

4박 8일의 여정의 첫 방문지로 arteBA가 열리는 박람회장 La Rural에 도착했다. 박람회장의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La Rural은 1866년 아르헨티나의 농축 산업을 장려, 발전시키기 위해 만들어져 고풍스럽고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1866-TO CULTIVATE YOUR LAND IS TO SERVE YOUR COUNTRY–2017”이라고 하는 La Rural의 모토는 그 이름 그대로 아르헨티나의 주력 산업과 국가주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주변의 넓은 녹지와 어우러진 거대한 박람회장은 새삼 arteBA의 규모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 arteBA의 플로어 플랜과 프로그램, 구성과 네이밍을 보니 스페인의 ARCO아트바젤을 벤치마킹한 흔적들이 보였다. 사실 나는 아르헨티나의 사회 경제적 문제들로 인해 어떤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이 행사가 벌써 26회를 맞고 있다는 이야기에 조금은 놀랐다.


올해 arteBA는 몇 달 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ARCO의 주빈국으로서의 활동과 베니스 비엔날레 아르헨티나관 작가 클라우디아 폰테스의 전시, 그리고 이번 카셀 도큐멘타의 대표적인 작품인 “금서의 파르테논”을 만든 아르헨티나의 국민작가 마르타 미누힌, 그리고 100억의 예산을 만들어 남부캘리포니아 지역의 미술 기관 48곳에 기부해 만든 “Pacific Standard time: LA/LA” 등으로 훨씬 고무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VIP 홍보를 맡은 갈라는 마르타 미누힌의 딸로 그녀의 이야기가 훨씬 생동감 있게 들렸다. 그녀는 아르헨티나와 주변 남미 미술시장 거래의 60% 정도가 arteBA 주간에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왼쪽) 많은 갤러리와 대안공간이 밀집한 Villa Crespo 지역의 Ruth Benzacar Gallery에서 만난Andrea Galvani의 작품 Death of an image. 오른쪽) artBA 아트페어에 출품된 작품. 여느 아트페어에서 볼 수 있는 장식적이거나 누군가를 흉내 낸 것 같은 작품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왼쪽) 많은 갤러리와 대안공간이 밀집한 Villa Crespo 지역의 Ruth Benzacar Gallery에서 만난Andrea Galvani의 작품 Death of an image.
오른쪽) artBA 아트페어에 출품된 작품. 여느 아트페어에서 볼 수 있는 장식적이거나 누군가를 흉내 낸 것 같은 작품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번에 초대 받은 arteBA의 VIP 프로그램은 버스 3대, 전체 인원으로는 6-70명이 조금 넘어 보이는 각국의 컬렉터, 미술관 보드멤버, 큐레이터, 아트딜러들이 초대됐다. arteBA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각종 미술관과 대안공간 전시, 갤러리, 컬렉션들을 소개, 홍보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모든 기관과 갤러리들은 이 기간을 위해 특별한 전시를 기획하고 샴페인, 와인을 곁들인 케이터링을 준비해 방문한 VIP들을 접대하고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다. 아르헨티나가 멘도자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와이너리와 대농장 팜파스를 배경으로 하는 목축업의 나라이니 준비한 샴페인과 와인, 치즈 등의 양이 매우 많고, 신선하고 훌륭함은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동양인도 한둘 보이긴 했지만 미국에서 온 컬렉터나 미술관 보드였고, 동양에서 온 동양인은 나 하나인 것 같았다.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된 사실은 초대받은 사람들 대부분이 아르헨티나와 어떤 형태로든 관련이 있다는 것이었다. 미술관 보드나 큐레이터는 그 미술관이 라틴아메리카 미술을 소장하거나 보여주는 미술관이고, 컬렉터나 아트 컨설턴트는 북미나 유럽에서 활동하거나 거주하는 남미 출신들이 상당수였다.


La Rural의 거대한 공간에 비해 참가 갤러리들의 수가 그리 많아 보이진 않았지만, 후원기업과 큐레이터들을 통해 섹션을 나누어 그 구성을 살렸다. U-Turn Project by Mercedes Benz는 벤츠가 후원한 섹션으로 Chris Sharp가 해외에서 지원한 갤러리 중 작가와 전시가 중요한 15개를 선정한 섹션으로 멀리 일본과 코소보에서 온 화랑들까지 있었고, Solo Show Zurich은 보험회사 Zurich가 후원해 주요 남미작가들의 개인전 부스를 갤러리를 통해 만드는 섹션이었다. Barrio Joven Chandon 섹션은 샴페인 회사의 후원으로 큐레이터 라울 플로레와 미구엘 로페즈가 선정한 남미의 대안공간 16곳을 초대해 부스를 만들었다. Isla de Ediciones 섹션은 기획자들과 함께 남미의 독립출판과 에디토리얼 프로젝트들을 소개하는 섹션이었고, Dixit는 두 명의 큐레이터가 공동 기획한 특별전과 퍼포먼스로 그 크기가 작은 부스 특별전이 아닌 미술관전시 규모의 쇼였다. 외에도 DELL, HSBC등과 연계한 VIP 라운지와 프로그램 등 많은 부분이 지역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기업들의 지원과 함께 기획됐다. 50여 개의 참여 갤러리와 특별 섹션 부스들, 스폰서 부스들을 더하면 100여 개가 조금 넘는 상대적으로 작거나 중간 규모의 페어 같았지만 거대한 페어 공간과 구성, 부스의 크기 등으로 이를 잘 극복하고 있었다.


기획자들과 함께 남미의 독립출판과 에디토리얼 프로젝트들을 소개하는 arteBA의 Isla de Ediciones 섹션. 기획자들과 함께 남미의 독립출판과 에디토리얼 프로젝트들을 소개하는 arteBA의 Isla de Ediciones 섹션.

수많은 후원기업과 큐레이터, arteBA 보드 멤버들의 오랜 노력으로 페어 전체가 만들어낸 그림은 놀랄 만큼 훌륭했다. 우리나라나 여러 지역의 위성페어에서 볼 수 있는 장식적이거나 누군가를 흉내 낸 것 같은 작품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상당수의 갤러리와 공간들은 조금 거칠지언정 컨템포러리 뮤지엄이나 아트센터에서 볼 수 있을 현대적인 개념미술이 주를 이루었고, 한편으론 스스로의 역사와 사회, 그리고 정체성을 고민한 작품들이 많았다. 아트페어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고민이 많았던 부분인지라 그래도 그 중 장식적인 그림들은 어떤 게 있을까 찾아보았지만 찾은 가장 예쁜 그림이 보테로 정도였으니… 남미 미술에 대한 선입견이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이게 내가 만들고 싶은 페어의 모습이었으리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저녁식사를 8시가 넘어서야 시작하는 이곳 문화에 따라 9시가 넘어서야 마지막 코스로 지역 컬렉터의 집에서 캐주얼 한 디너파티 자리가 있었다. 도착 첫날과 다음 이틀 저녁을 초대받은 컬렉터들의 집을 방문 했는데, 첫날 파티를 호스팅한 중년의 여성 컬렉터는 커다란 브라운페이퍼를 몸에 말아 박스 테이프로 거들을 한 듯 허리를 고정한 오픈 숄더 드레스를 입고 스스로가 퍼포먼스 아티스트가 되어 즐겁게 손님들을 맞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 드레스 자락을 밟고 만질 때 마다 조금씩 찢어지는 것을 유쾌한 농담으로 받아치며 파티의 흥을 돋는 모습은 무척이나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둘째 날은 이태리와 아르헨티나를 다니며 사업을 하는 젊은 사업가 Ludovico 와 Adriana Rocca 부부의 집에 갔는데 고전적인 집의 구조와 장식이 현대적 컬렉션 만들어내는 대비는 유럽과 미국의 어느 컬렉터들 못지않은 감각적이고 역사와 기품이 있는 모습을 자랑했다. 다이닝룸을 둘러싼 Matias Duville의 커미션 페인팅과 거실 천정의 사라세노의 작업은 완벽 이상의 대비와 조화의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왼쪽) 디너파티가 열린 지역 컬렉터의 집 거실 천정에서 발견한 토마스 사라세노의 작품. 오른쪽) 디너파티를 연 여성 컬렉터 호스트가 종이와 박스 테이프로 만든 드레스를 입고 손님을 맞이했다. 왼쪽) 디너파티가 열린 지역 컬렉터의 집 거실 천정에서 발견한 토마스 사라세노의 작품.
오른쪽) 디너파티를 연 여성 컬렉터 호스트가 종이와 박스 테이프로 만든 드레스를 입고 손님을 맞이했다.

갤러리와 대안공간, 미술관들


둘째 날부터는 지역별로 나누어 수많은 갤러리와 대안공간, 미술관들을 방문했다. 30시간이 넘는 여정과 밤낮이 정확히 뒤바뀐 12시간의 시차, 빈틈없이 짜여있는 스케줄, 방문하는 곳마다 조금씩 마시게 되는 샴페인과 와인은 체력을 한계치로 몰아붙이며 차량으로 전시장 사이를 이동하는 잠깐의 시간조차 숙면에 빠지게 했다. 피로에 지친 심신을 이끌고 다니는 투어였지만 매 공간, 전시 하나하나가 너무나 새롭고 흥미로웠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라틴아메리카 미술관(MALBA, Museo de Arte Latinoamericano de Buenos Aires)는 우리나라의 리움과 같은 미술관으로 아르헨티나 사업가 Eduardo Costantini가 그의 컬렉션을 중심으로 설립한 남미의 대표적인 현대미술관이다. 이곳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활동 중인 Agustin Perez Rubio는 한국에도 에르메스 미술상 심사 등으로 두 번 다녀간 적이 있고 국립현대미술관의 마리관장님과도 가깝다며 한국에 대한 관심을 비쳤다. Agustin은 Andrea Giunta 관장과 함께 주제별로 컬렉션을 재구성한 전시 Verboamérica를 기획했다. 이 전시는 아르헨티나를 중심으로 한 라틴 미술을 행동주의(Activism), 파괴 미술(Destructive Art), 군부독재(Military Dictatorship), Madi(아르헨티나 추상미술 그룹),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 성소수자(LGBT) 등의 섹션으로 나누어 아르헨티나의 사회, 문화와 그 역사의 단면들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기획됐다. 또 다른 기획전인 Tiempo Partido는 에이에이 브론슨(AA Bronson), 펠릭스 파츠(Felix Partz), 호르헤 존탈(Jorge Zontal) 3인 작가그룹의 회고 전시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유럽과 북미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작가그룹의 유머러스하고 도발적이며, 팝적인 작업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왼쪽) MAMBA에서 열린 토마스 사라세노의 전시설치 전경 오른쪽) Mariano Molina의 작품 Acercamiento. 왼쪽) MAMBA에서 열린 토마스 사라세노의 전시설치 전경
오른쪽) Mariano Molina의 작품 Acercamiento.

부에노스아이레스 현대예술박물관(MAMBA, Museo de Arte Moderno)에서는 토마스 사라세노의 전시가 커다란 검은색 전시장 가득 쳐놓은 거미줄과 조명으로 드라마틱한 공간을 연출했고, 체험형 극장처럼 공간을 구성한 Diego Bianchid의 전시에서는 복도와 전시 공간에 설치된 수많은 마네킹과 파편들 속에서 이 사회의 은유를 느낄 수 있었다. MAMBA의 바로 옆 부에노스아이레스 현대미술관(MACBA, Museo de Arte Moderno)에서는 아르헨티나의 추상미술을 미니멀한 색면 분할과, 기하학적 추상, 미디어, 조명 설치에 이르기까지 아우르며 보여주는 전시를 하고 있었다.


국립미술관(Museo Bellas Artes)는 18세기 유럽미술부터 인상파에 이르기까지의 미술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이지만, 기획전들을 통해 현대미술 작품도 선보인다. 그 소장품들을 유럽과 북미의 미술관 컬렉션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인상파 모든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소장한 모습은 우리의 현실과는 또 다른 부러운 모습이었다. 현대미술은 세 개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윌리엄 켄트리지(William Kentridge)의 3채널 비디오와 루시오 폰타나(Lucio Fontana)의 전시가 있었고, 음악과 미술, 일러스트와 파인아트를 넘나든 술 솔라르(Xul Solar)의 전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또 국립미술관에서는 부에노스아이레스 한국문화원과의 협업을 통해 임흥순 작가의 위로공단을 전시/상영할 예정으로 임흥순 작가가 설치를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들어와 있었다. 출국 하루 전 금요일 장진상 주 부에노스아이레스 한국문화원장님의 초대로 문화원의 성정연 큐레이터, 임흥순 작가님 부부와 함께 전통 아르헨티나 아사도와 스테이크를 먹으며 아르헨티나의 역사와 사회 문화에 관하여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이 겪은 독재와 억압의 시간이 지금의 현대미술, 개념미술의 뿌리와 밑거름 된 부분은, 우리의 민중미술과 그 이후 개념 미술은 서로 어떠한 점에서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또한 임흥순 작가가 아르헨티나의 독재정권 아래 죽음을 당한 지식인과 예술가, 무고한 시민들의 어머니 모임 대표를 인터뷰하는 약속을 잡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흡사 광주의 역사와도 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갤러리들의 전시들도 미술관 못지않게 너무나 인상적인 것들이 많았다. 물론 초대된 미술관 관계자들과 큐레이터, 컬렉터들을 위해 최고의 라인업을 준비한 결과이겠지만, 실제로 세기 힘들게 많은 갤러리와 대안공간을 다니며 어느 것 하나 지나치게 상업적이거나 장식적으로 보이는 곳이 눈에 띄질 않았다. 갤러리들은 부유층의 거주지역인 리콜레타 주변과, 팔레르모, 그리고 새롭게 주목 받고 있는 빌라 크레스포(Villa Crespo) 지역에 나름의 그룹을 지어 몰려있었다.


빌라 크레스포 지역에서 방문한 노라 피스 갤러리(Nora Fisch Gallery)는 9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한 아르헨티나의 대표적인 여성 액티비스트 예술가 페르난다 라구나(Fernanda Laguna)의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전시 공간을 커다란 종이를 이용해 나누고 비디오를 사이사이에 설치해 지금껏 해온 퍼포먼스들과 아카이브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2층 전시장에는 그녀와 세실리아 팔메이로(Cecilia Palmeiro)가 같이 기획한 Dizzy from the tide라 이름붙인 전시가 각각 다른 곳에서 모아온 페미니즘 운동의 피켓, 플랫카드 등 시위 오브제와 도큐먼트들을 모아 놓은 전시였는데 그 에너지와 힘이 우리나라에도 저런 여성주의 작가가 있던가 하는 질문과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근처의 루스 벤자카 갤러리(Ruth Benzacar Gallery)에서는 거대한 트랙터를 부분적으로 캐스팅해 해체해 놓은 거대한 작업과 오랜 창고나 공장 건물이 갤러리로 바뀐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슬리즈머드 갤러리(Slyzmud Art Gallery)를 지나면서는 길에 세워진 거대한 레미콘이 그 탱크를 돌리고 있고, 돌아가는 시멘트 탱크 위를 제자리에서 천천히 걷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경찰이 안 말리나 할 정도로 약간은 위험해 보이는 길 위의 퍼포먼스는 매들린 홀랜더(Madeline Hollander)의 365라는 작품으로, 슬리즈머드 갤러리의 두 공간 사이 길목에서 벌어지는 장소 특징적 퍼포먼스였다. 레미콘 주변에서는 여섯 명의 퍼포머가 열두 발자국마다 한 번씩 자리에서 스핀을 하며 두 대의 레미콘 사이를 돌고 있었다. 이 외에도 너무나 많은 전시공간과 갤러리들을 다녔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들의 소개로 정리를 마치며, 중미와는 또 다른 남미 미술에 대한 나의 무지와 선입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을 해 보았다.


돌아가는 시멘트 탱크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이 장소특징적 퍼포먼스는 Madeline Hollander의 365라는 작품이다. 돌아가는 시멘트 탱크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이 장소특징적 퍼포먼스는 Madeline Hollander의 365라는 작품이다.

출국일 마지막으로 잠깐 들린 곳은 남미 최대의 아트센터인 커시너(Kirshner)로 옛 중앙우체국 건물을 복합 문화센터로 리노베이션해 다양한 문화기획 교육 공연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곳이었다. 흡사 우리의 아시아 문화전당과도 같은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의 시도로 보였고 그 오래된 건물의 웅장함과 내부의 현대적 리노베이션이 과연 이 나라가 그 수차례의 디폴트를 겪었던 나라인지 다시 한 번 궁금증을 갖게 만들었다. 그 문화적 다양함과 깊이, 그리고 풍부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쉴 틈 없던 4박 5일의 현지 일정을 마치고 다시 비행기에 오르면서 이틀 뒤 서울에 도착, 바로 짐 가방을 다시 챙겨 부산에 가서 설치를 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하니 약 이틀간의 비행시간이 앞으로 한동안 중 가장 마음 편안한 휴식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돌아와 일주일 뒤 아트부산을 나름 무사히 마치고, 며칠 뒤 아트바젤을 시작으로 베니스, 베를린, 카셀, 뮌스터를 도는 엄청난 아트와 정보의 홍수 속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기억들이 조금씩은 흩어지고 잊혔지만 정리한 사진들을 다시 돌아보며 정리하면서 아래 링크를 통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찍은 4백여 이미지와 동영상을 '관련링크'에 공유하니 위의 이야기에 대한 참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변홍철 / 그레이월 대표, 2017아트부산 아트디렉터

서울대학교 조소과와 동 대학원 졸업 후, 뉴욕대학교에서 예술경영 석사를 취득했다. 미디어시티서울,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등 폭넓은 미술기획 경력을 거친 후 2007부터 아트컨설팅 회사를 설립 운영해 오고 있다. 국내외 전시와 아트페어등을 오가며 아트컨설팅을 진행해 왔으며 기업과 작가들을 연결하고 작가들과 다양한 창작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협업 프로젝트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한국 현대미술 디지털 아카이브(akive)의 운영위원과 서울디자인재단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