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현대미술의 ‘떠오르는 허브’. 인도네시아는 미술시장의 탄탄한 내수는 물론 국제 미술계의 이목을 끄는 비엔날레, 젊은 아티스트들이 운영하는 공간들로 인해 활기가 넘친다. 특히 예술에 대한 공적 기금이 척박한 상황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져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운영되고 있는 비영리 공간들의 활동은 매우 특징적이다.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프로젝트비아(Project ViA) 리서치 프로그램을 통해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작가 손혜민이 인도네시아의 아티스트 콜렉티브 스페이스들을 소개한다.
루앙루파(ruangrupa)의 디렉터 아데 데르마완(Ade Darmawan)이 총감독을 맡은 2013년 자카르타비엔날레는 인도네시아와 그 너머에 있는 아티스트 콜렉티브들을 참여 작가로 대거 초청한 전시였다. 주차장을 변형해 만든 전시공간에서 내가 본 많은 작가 그룹들은 참여 작가로 혹은 비엔날레 스텝으로, 또는 그 역할을 번갈아 바꾸어가며 전천후로 일을 하고 있었다. 작가/기획자/테크니션/코디네이터/매니저/마케터 등 비엔날레를 꾸리는데 필요한 담당자들 대부분을 작가와 작가 그룹들이 채우고 있었다.
전시와 그 전시를 꾸리는 사람들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는 서구의 비엔날레의 많은 경우와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왜,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생겼다. 그리고 이 질문은 예술 활동을 위한 공공기금이 거의 전무한 인도네시아 미술계에서 수십 년 간 지속적인 활동을 해온 아티스트 콜렉티브들과 공간들이 어떻게 ‘생존’하고 있는지, 상당부분 공공기금으로만 운영/지원되는 한국 미술계가, 혹은 나 스스로가 이를 통해 생각해 봐야 할 점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인도네시아 현대미술계에서 15년 동안 활발한 활동을 하고있는 자카르타의 루앙루파와 미술교육에 초점을 맞추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세룸, 족자카르타의 새로운 그룹 에이스 하우스 콜렉티브와 만나 그들만의 자생방식과 그 안에서 삶과 예술의 형태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루앙루파(ruangrupa)는 2000년 초 6명의 작가로 구성된 콜렉티브로 시작하여, 현재 40여 명 이상으로 멤버가 늘어나 작가, 큐레이터, 디자이너, 건축가, 역사학자 등의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한다. 15년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그룹이자 공간, 비영리 조직이다. 인도네시아의 전형적인 집형태인 2층 독채를 빌린 루앙루파 공간을 처음 방문했을 때 마치 대학교 동아리방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정리되어 있지 않으나 편안하고, 사람들이 24시간 모여 있으며, 한쪽에선 일을 하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음식을 먹으며 사담을 나눈다.
그들의 주요 관심은 수도 자카르타의 도시 생태와 환경(사회, 경제, 정치적)이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러시 아워는 각종 관광 책자 뿐 아니라 비엔날레 공식 안내서에도 “러시 아워에 약속을 잡지 말라”는 당부가 나와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보통 차로 30분 걸리는 거리를 러시 아워라면 상황에 따라 두 시간 이상 잡아야 하며, 이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다. “우리는 돌아다니며(drifting) 도시에 영감을 받는 식의 시각적 리서치를 한다”는 루앙루파의 예술 활동과 작업은 도시 개발과 재개발 상황의 대도시 공공 공간, 시민, 예술을 연계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자카르타 도시 안에 만들어 내고 있다.
또한 페스티벌 형태의 프로젝트들을 통한 공공 공간의 점유방식은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 낸다. 그것은 단순히 흥미로운 형식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상황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가지고,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노력 때문일 것이다. 그 대표적인 행사로 2004년부터 자카르타의 학생들이 참여해 주도하는 '자카르타 32°C(Jakarta 32°C) 비엔날레'는 전시의 조직 과정, 젊은 작가들의 다양한 실험, 작품에 대한 글쓰기, 전시를 아우른다. 학생들의 포럼, 토의, 영화 상영, 워크숍, 전시와 출판 등의 활동이 포함된 이 비엔날레는 수백 명의 학생들의 참여하여 3000명 이상의 학생과 젊은 관객들이 모였다. 2003년에 시작된 비디오 페스티벌 'OK 비디오(OK Video)'은 영상 워크숍, 영상 프로덕션, 인도네시아 영상 작업 배포, 2000편 이상의 비디오 작업의 수집 등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매번 50여 개의 나라에서 300~500편의 작업이 페스티벌을 위해 수집되고, 5000명 이상의 다양한 국내외 관객이 참여한다. 이 비디오 페스티벌은 비디오에 초점이 맞추어졌던 초기 페스티벌 형태에서 미술, 과학, 미디어, 기술을 망라한 영상매체의 확장된 지점으로 옮겨가고 있다.
오른쪽)RRRec 뮤직 페스티벌
루앙루파는 경영팀, 아카이브와 도큐멘테이션, 아트 랩(Art Lab), 인스트티튜트 루앙루파(Institute ruangrupa(Ir.)), RURU 갤러리, RURU 라디오(radio), RURU 샵(Shop), RURU 콥스(Corps.) 등의 디비전으로 나누어져 마켓운영, 음악 페스티벌, 전시, 잡지 발간, 독립 라디오 채널 운영 등의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다. 루앙루파라는 이름 아래 세부적인 디비전들은 그들이 말하기로는 운영상, 혹은 공식석상 그들의 활동을 대외적으로 정리해서 보여주는 부분이 크다고 말했다. 그 이면은 작가그룹들의 생태가 반영된, 즉 비정형적인 대화, 서로간의 끊임없는 교류, 함께 먹고, 마시고, 일하는 생태임이 짐작이 간다.
그들이 선택한 공간 또한 항상 인도네시아의 전형적인 ‘집’이다. 현재의 공간은 세 번째 이사를 통해 선택한 그들의 집이다. ‘집’이라는 공간 아래 작가들은 먹고, 자고, 일한다. 그들의 경력으로 좀 더 커다란 공간, 더 나아가서는 번듯한 갤러리를 만들어 낼 수도 있으나 ‘집’ 이란 공간을 고집하며 그 안에서 개개인들의 친밀감과 스스럼없는 네트워크를 지향한다. 이것은 루앙루파가 해 온 여러 프로젝트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이다. “일을 하면서 친구를 만들라, 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친구의 일을 내 일처럼 도와주는 것, 그리고 또 다른 친구를 만드는 것, 루앙루파의 네트워크를 간단명료히 설명한 말이다. 인도네시아 지역 사회에서는 '이웃들과 함께 집을 통째로 들어 옮기는 일'이 있는데, 말 그대로 목재집을 통째로 들어 이사를 가는 일을 한다. 나의 터전을 온전히 사람들에게 맡기고 함께 그 짐을 지고 돕는 인도네시아인들의 태도를 ‘고통 로용(Gotong Royong)’의 정신이라고 한다. 고통 로용은 우리의 품앗이와 비슷한 개념인데, 커뮤니티 안에서 함께 일한다라는 뜻이다. 루앙루파 공간 안의 사람들, 전시를 만드는 태도, 15년간 함께 일한 시간들 속에서 현대미술 안에 투영된 고통 로용의 실체를 만나 볼 수 있었다.
2000년대 초기 멤버들은 30대 중반에서 40대에 들어섰고, 루앙루파는 20대의 새로운 멤버들이 디비전과 프로젝트들을 꾸려 나가고 있다. 초기 멤버들이 루앙루파를 거침없는 시행착오의 장으로, 또한 그들의 집(home)으로 여겨 활동을 한 반면 젊은 루앙루파의 세대는 배움의 공간, 사무실, 경험을 위한 장소, 전문적인 예술경력의 장으로도 여기고 있다. 중요한 점은 그들은 이 세대 간의 차이를 배제하기보다 인정하고 총체적인 인도네시아 현대미술 안에 루앙루파의 현재를 유동적으로 반영한다는 점이다. 루앙루파는 자신들의 정체성, 즉 콜렉티브로서의 근간을 지키며 (그것이 그들이 가장 즐겁게 일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지금 여기”를 가장 적합한 그들만의 시각언어로 풀어낸다.
아래쪽) 세룸
세룸(Serrum)은 영어로 번역하면 “share room”이며, 함께 나누는 공간이란 뜻이다. 자카르타 동쪽에 위치한 세룸 공간에서 멤버 시깃 부디 산토소(M Sigit Budi Santoso)와 만났다. 시깃은 세룸의 초기 멤버이자 현재 2015 자카르타비엔날레에서 <대중을 위한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2006년 미술교육대학을 함께 다닌 6명의 멤버들이 세룸을 처음 시작한 뒤 지금은 멤버가 23명 가량 늘어났다. 세룸은 대안적인 예술 교육을 목적으로 한다. ‘공공의 방’ 안에 있는 모두는 각각 선생님이 되고 학생이 된다. ‘배운다’는 개념은 수직적인 것이 아니라 끝없이 수평적이고 평등한 자격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고 가르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세룸은 시각 예술 분야의 여러 프로젝트/워크숍/행사들을 그들의 지향점을 구현하는 하나의 실험장소(Lab)로 작동시킨다. "교육이란 것은 어떤 것이 나올지 모르는 하나의 랩(Lab) 실험장이다" 그 랩 안에서 어떤 것을 배웠는지, 즉 어떤 것을 경험했는지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 경험치는 ‘성공’하는 것 뿐 아니라 ‘실패’를 통해 얻어질 수 있는 것이라 했다.
왜 그들에게 예술 교육의 문제가 중요한 것일까? 세룸의 초기 6명의 멤버들 모두 미술교육대 출신이며, 이 대학은 미술 교사가 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인데, 시깃과 그의 친구들은 제한되고 편파적인 예술교육에 대한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했다. 편파적인 인도네시아 근현대사, 도시 문제, 다양한 매체의 시각예술 교육에 대한 관심은 결국 기존의 시스템에서 구현되지 못하는 점들에 대한 비판과 대안이었다. 그들의 프로젝트 중, 2015년 자카르타비엔날레 교육 프로그램 중의 하나인 "우리의 예술 책Our Art Book"이란 출판물을 현재 진행하고 있다. 이 출판물은 예술을 알고자 하는 청소년과 대중에게 길라잡이가 되며, 1000개의 고등학교에 무료 배포, 온라인으로도 배포될 예정이다. 인도네시아 근대 미술사에 대한 정보와 고등학생/대학생/대중의 수준에 맞는 책을 집필하고자 하며, 예술의 실제적인 방법 등을 포함한다고 했다. 그들의 많은 프로젝트들은 예술교육이 행해지는 대학 캠퍼스와 실제 현대미술 현장의 간극을 좁히며 비판적인 시선으로 끊임없는 실험을 행한다.
오른쪽) 에이스 하우스 콜렉티브 포스터
도시 소음, 교통 혼잡… 한 나라의 수도이기에 큰 규모의 건물과 복잡하게 얽힌 도로를 아우르는 자카르타와 달리, 옛 수도의 아늑한 모습을 지닌 족자카르타에서는 느릿한 속도와 시간이 느껴졌다. 미술공간들도 한 블록 안에서 걸을 수 있는 정도의 거리에 모두 모여 있었다. 이런 용이한 접근성이 각각 미술공간들과의 연계와 함께, 인도네시아 예술 인스티튜트(Indonesian Institute of the Arts) 미술대학을 졸업한 많은 학생작가들이 생활하며 작업하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는 2008년부터 시작된 독립적인 아트페어 <아트 족자(Art Jog)>를 성황리에 이끌어 낼 수 있는 좋은 입지 조건이 되었고, 격년으로 열리는 족자카르타비엔날레는 족자카르타를 인도네시아의 주요한 현대미술 현장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족자카르타에서 만난 콜렉티브들은 다양했다. 십여 년 이상 콜렉티브와 공간을 유지하고 있는 체미티 아트 하우스(Cemeti Art House), 루앙 메스56, 하우스 오브 네츄럴 파이버(House Of Natural Fiber)는 족자카르타의 예술 지도 안에 굳건히 자리매김 하고 있다. 여기에는 루앙 메스56과 같이 하나의 콜렉티브이지만 개인의 작업과 작품성을 존중하는 콜렉티브들이 있는 반면, 에이스 하우스 콜렉티브(Ace House Collective)처럼 멤버의 개인성보다는 프로젝트의 정체성이 전면에 보이는 그룹이 있다.
오른쪽)에이스 하우스 콜렉티브 에이스 마트 간판, 2015
족자카르타의 새로운 콜렉티브에 속하는 에이스 하우스 콜렉티브는 2011년 족자카르타에서 설립된 아티스트 콜렉티브이다. 에이스 하우스 콜렉티브는 2011년 족자카르타비엔날레 연계 행사 프로그램에서 <족자카르타의 서인도 디아스포라에 관한 예술 보고서(Tak Ada Rotan Akar Punjabi)>가 1등을 수상하면서 당시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작가들이 콜렉티브로 발전하게 된 특이한 경우였다. 그들은 주제마다 그들의 정체성을 모의 미술관, 상점, 편의점 등으로 변환시키며 자신들을 모의 공간 안에 투영시켜 일하는 직원, 세일즈맨, DJ 등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끌어 들인다. 공간 없이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다 2014년 처음 족자카르타에 2년 계약의 공간을 열게 되었다. 밤 9시에 찾아간 그들의 공간 앞 주차장에는 축구를 좋아하는 동네 청소년들이 모여 연습을 하고 있었고, 하나 둘씩 모이는 멤버와 친구들은 밤이 깊어가자 15명으로 늘어났다.
2015년 족자비엔날레에서 그들의 작품 <국립예술정화위원회Kosimi Nasional Pemurnian Seni>는 '디톡스'를 주제로 한 비엔날레 자체에 대한 비평 작업이다. 디톡스는 사람의 몸과 기관을 청소하는 과정을 담당하는데 에이스 하우스 콜렉티브는 ‘디톡스’를 사회 안에 미술이 가진 일종의 정화기능으로 전치한다. 그들은 예술이 오늘날 사회를 바라보는 다양하고 복잡한 이슈를 ‘걸러내고 청소하는’ 도구라고 했다. 족자비엔날레 정문에 에이스 하우스 콜렉티브는 그들이 만든 가짜 정문과 통로, 기관을 설립하여 비엔날레로 들어가는 관객들에게 그들이 만든 방에서 눈을 정화하는 아이드롭, 귀청소 등을 하며 비엔날레에 관련된 질문을 묻고 질문지를 작성하도록 한다. 이 작품은 설치 및 퍼포먼스로 구성되었는데, 매일 진행하는 퍼포먼스로 인해 밤늦게 모임을 자주 갖는다고 했다. 새롭게 연 그들의 공간 비용을 충당하느라 각 멤버들의 사비를 모으고, 프린트/그래픽 작업/콜렉티브의 작품들을 팔아서 유지한다고 했다.
어렵게 비용을 모아 만든 그들의 공간에서 중점적인 프로젝트는 다름 아니라 30대 중반의 자신들 보다 더 젊은 작가들을 지원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 그 공간에서 선보이는 작업은 자신들의 작업이 아닌 함께 워크숍을 꾸린 젊은 작가들의 몫이었다. 자신들의 입지를 다지는데 욕심이 날 법도 한데, 그들은 자신들의 윗세대와 지역에서 지원을 받아 성장했는데 자신들도 그것을 환원해야 한다고 했다. 자발적인 그들의 책임감은 근대 인도네시아 미술 이후에 자리 잡은 스튜디오라는 뜻을 가진 ‘상가’(Sanggar, 학생 대 학생, 배움과 토론의 장, 정치적 이념 발현의 장)의 오랜 전통의 연장선이었다. 연대와 지역 네트워크 안에 작업해 온 족자카르타의 작가들의 생태는 정치,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외부의 압박에도 건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듯 보였다.
우리와 너무도 다른 생태, 환경, 조건을 가진 그들을 보며, 내가 정말 잊고 있었던 것이 하나 있었다. '함께 일하는 즐거움'에 대한 것이다. 하나의 쟁점과 선언, 토론, 목적을 위한 모임, 배움, 교류 등의 활동들을 하면서, 그 모든 활동들, 작업들 사이사이에 있는 즐거움을 대의만을 생각하며 종종 잊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정말 대안적인 활동은 그 활동이 즐거워야 가능해진다. 불안정한 정치, 경제 상황, 공공 지원의 부재, 편파적인 교육 시스템은 오히려 그들이 공동체 정신에 기반해 그들만의 단단하고 지속적인 삶의 형식을 만들어냄으로써 현실에 함몰되지 않으며 비판과 즐거움을 함께 동반하는 자산으로 변환되고 있다.
손혜민은 작가로 활동하면서 협업을 통해 다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사소한 조정'은 그 타이틀 아래 손혜민, 존 리어든John Reardon이 주축이 되어 다양한 협업자들과 일하며, 2011년 이래로 지속적으로 미술관, 갤러리, 공공 공간에서 오브제와 이벤트를 만들어 왔다. 대표적인 프로젝트로 "성장교본"은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 속에 정부나 공공기금으로 운영되는 많은 문화예술기관들의 역할이 축소되거나 자국민위주의 문화정책으로 돌아서고 있다면, 그 카테고리 밖에 있는 공간들은 어떤 방식을 취하며 살아남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정부의 정책, 공공기금, 상업성에서 벗어나 운영되고 있는 “작고, 보이지 않는” 공간들을 “보이게 하고”, 각 공간들의 속한 지역의 특수한 정치/경제적 상황을 반영하여 “유기적인 결과물”을 지속적으로 만들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