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작가

릴레이 인터뷰 : 현시원 묻고 주재환 답하다(2)

posted 2012.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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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년 초 첫 개인전 하시고 '현실과 발언' 창립전시가 80년도니까 한참 후네요.

: 그러니까 생업 전선에 다니다가 고등학교 선배인데, 심우성 씨가 한국민속극연구소를 냈어. 내가 조수로 들어간 거지. 거기서 내가 민속학 자료를 많이 조사했어. 도서관에 가서도 하고, 또 문고판을 좀 냈어. 『민학총서』라고 선학들의 저서들, 음악부터 문학, 동학혁명 등 그런 책들을 만들었고. 거기에 문화인들이 많이 드나들잖아. 심우성 선배 동료들 중 출판인이 [독서생활]이라는 월간지 주간을 맡게 되어 나를 쓰게 된 거야. 그래서 출판계에 입문하게 된 거지. 교양지야. 그런데 독자가 별로였고 오래 버티지 못했지. 교열을 보는 게 굉장히 지루한 거야. 외국어니 일본어니 외국어를 많이 알아야해. 나는 꽝이니까 부담스럽잖아. 그래서 이제 옮겨야겠다 하던 때에 [미술과 생활]이라는 월간지가 마포에서 창간이 됐어. 열 권 정도 낸 것 같아. 임영방 박사가 주간이고 편집위원이 성완경, 편집실무가 윤범모. 그리고 편집실장이 황명걸 시인이야. 거기 사람을 하나 뽑는다 그래서 내가 77년도에 취재 기자로 들어간 거야. 그런데 경영난으로 한두 달 만에 문을 닫았어. 그때 미술인들을 다수 알게 된 거야. 자주 만나게 되니까 우리나라 미술계에 불만이 많잖아. 그래서 이제 '현실과 발언'이 만들어지게 된 거지. 성완경 교수와 원동석, 최민, 윤범모, 담론 생산자들의 역할도 컸지.



주재환_밀항자의 웃음_색연필_종이_2000_2009년 재제작_사진 황사라
주재환_밀항자의 웃음_색연필_종이_2000_2009년 재제작_사진 황사라

: 편집자나 기자로 일하시다가 즉석에서 작업하시기도 했나요?

: 그렇지. 그런데 거의 다 없어졌어. 잃어버린 것도 많고 또 고양이가 물어서 없어진 것도 있고 다 찢어지고. 난 관리를 잘 못 해. 그러다 내가 오십 대 되어서 화실을 처음 얻은 거야. 청소년기에 화가 꿈을 꿨는데 50을 넘어서 얼마나 하겠냐. 작가는 생활환경에 따라 작품 성향도 각기 달라지는 것 같아. 내가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다면 이런 거 못 그린다구. 뭔가 억울하고 울분 같은 게 당의정으로 포장되어서 나올 수도 있고, 날 것으로 나올 수도 있고, 그런 게 아닌가 싶어. 살아온 환경이 일제 강점기부터 그렇고 또 가족사가 복잡한 게 있어. 영어로 트라우마인가? 깊이 살점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야. 그걸 청소하는 작업이 아닌가 싶어. 그 물감 찍는 게 가래침 같은 게 아닌가 싶어. 몸의 균형, 마음의 균형을 잡기 위한 일종의 반사작용 같은 느낌. 난 미학이니 이론이니 이런 거하고 체질이 맞지가 않는 거 같아. '현실과 발언'에 들어와서 미술활동을 한 거지. 50대에 들어와서 작업장을 마련했으니 자연히 개인전이 늦어질 수밖에 없잖아. 일산 지하 작업실에서 하고 있는데 대안공간 풀의 황세준, 백지숙, 박찬경이 드나들면서 2000년도에 아트선재에서 개인전을 하게 된 거지. 후배들 덕에 한 거지.


: 첫 작업실을 일산에 마련하신 후에 줄곧 일산에 계시다가 2011년 11월부터 경기창작센터에 계신 거죠.

: 장소도 이런 거 처음 써 보고 조용하고 공기도 좋고 젊은 작가도 많이 만나고 교류하고 상당히 잘 온 거 같애. 그리고 90년대부터 바뀐 거 같은데 전시 기획자 위주로 전시가 이뤄지잖아. 기획자들을 보면 거의 30대, 40대 미술인들이 많이 있는 거 같아. 그 사람들이 같은 동료들이나 후배들에 주목하게 될 거란 말이야. 작가 나이가 50대 넘어가면 기획자들 시야에 들어오기 힘들 거 같아. 상대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소수를 빼놓고는 상당히 소외되지 않나 싶어. 소외되면 의기소침해지고 상당히 우울해지고, 창작의욕도 감퇴되잖아. 그게 필연적인 흐름 같은데 '실버 갤러리' 같은 것도 하나 국가에서 운영을 하든 미술관 부속으로 하든지 해서 노년층들도 주목 좀 해주고 평생 작업한 사람들 위로도 해주고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야. 미술관에서 너무 젊은이 위주로 하지 말고 고령자들도 창작 의지를 주자 이거지.


: 선생님이 관장하시면 어떨까요.

: 어 좋지! 하하. 좋지.


: 예전에 의인 공원도 생각하셨잖아요?

: 어 그거 무슨 이야기냐면 지식인 사회 일각에서 어린이들에게 위인전 읽지 말기 운동이 있었어. 아무나 아인슈타인, 뉴턴이 될 수 없잖아. 광화문에 이순신, 세종대왕 있잖아. 그 기념상 보는 행인들 거의 없다고 봐야지. 보통 사람들이야 먹고 살기 바쁜데. 예를 들면 갑자기 전철에서 떨어진 사람들 구해내잖아. 또 평생 의료봉사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러니까 서민 영웅, 서민 의인, 평생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봉사하는 이도 있고, 평생 모은 돈을 장학금으로 주는 이도 있고, 그런 공원을 하나 만들어서 거기에서 서민 위인들을 보게 하자는 거지. 친근감이 생기고 그게 입력이 되면 자기도 모르게 산 교육이 되지 않냐 싶은 거지. 그런 잔잔한 파문을 가진 공원이 필요하다. 지금은 너무 승자 독식의 1등주의 아니야. 그런 걸 순화시키는 그런 공원을 만들자는 거지.


: 선생님 그런 아이디어 많으시죠?

: 있으면 뭐 하나. 아이디어 실현하려면 배경이 있어야 해. 자기 동창 선배들이 각 요직에 있어야 해. 나 같은 중퇴생이 아이디어 내면 '야 너 누구야' 하니 되지를 않어. 허허. 내가 아르코 미술관에 제안한 게 서울대 병원이랑 전시를 해라. 작가 위주 전시를 파괴하는 전시를 하면 좋겠어. 텔레비 프로그램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오는 많은 취미생활들, 성냥개비로 뭐 만들고 하는 거 있잖아. 그런 거 전시장에서 좀 하란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고급 담론이 얼마나 골 때려. 재미로 작품하는 그런 사람들 다 세금 내는 사람들인데 개방하라 그거야.


: 선생님이 전시 기획하시면 좋겠네요.

: 어디 기회 되면 해봐야지. 공동 기획도 좋고. 좀 파격적이고 신나는 걸 해야 해. 그렇게 외연을 넓혀가야지. 개인전 몇 회, 수상 몇 회 그런 관행을 부셔라 이거지. 좁은 길로만 가서는 안 된다고 봐.



주재환_유령의 임신_검정비닐봉투, 신문지, 입체_2012
주재환_유령의 임신_검정비닐봉투, 신문지, 입체_2012

주재환_사약_캔버스에 아크릴, 청색물감, 종이컵_2012
주재환_사약_캔버스에 아크릴, 청색물감, 종이컵_2012

: 곧 개인전을 하시는데 어떻게 준비하고 계신가요?

: 11월 30일부터 12월 25일까지 관훈갤러리에서 하는데 구작하고 신작을 망라해서 유화, 설치, 포토샵, 사진, 복합재료, 종이작품 이런 것들이 섞인 거지. 거기에 내가 초대한 작가가 있어. 경기창작센터에 있는 작가 4명. 어떤 거냐면 경기창작센터 건너편 선감도 소년원에서 오래 전에 억울하게 죽은 소년들의 넋을 기억하는 김태균 작가의 작품이 있어. 그리고 박은영 작가는 '죽음의 춤'으로 알려진 일본 무용 '부토'를 상영할거야. 중견시인 박시교의 '순혈에 부쳐'도 전시되지. 세 작품이 화음을 내어 일종의 진혼곡을 연출하게 되지. 설치작품에는 이대일 작가가 만든 사운드 아트가 들어갈 것 같아. 손민아 작가는 해외 옥션에서 거래되는 '미친 그림값'에 대한 작품을 낼 거야.


2012년 10월 25일 주재환 작가의 경기창작센터 작업실에는 '내가 자랑할 건 내가 버린 쓰레기뿐'이라는 신작도 놓여있었다. 신문지와 낙엽, 유화 물감과 각종 책들, 그리고 선생님의 벗이 등장하는 신문 한 페이지와 오늘의 메모들도. 몇 년 전부터 주재환 선생님이 하신 말들과 말투를 오래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 인터뷰를 쓰면서 이야기의 뒤에 꼼꼼한 각주를 달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현시원 / 독립큐레이터

독립 큐레이터. 전시를 기획하고 이미지나 미술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