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도피하는 사람이다. 풍경 속에 숨는 사람이다. 세상 거친 이야기가 별로 재미가 없다." 자연으로 숨어들어 하나가 되려는 마음 역시 풍경을 음미하며 시를 읊거나 그림을 그리던 옛 선비들의 자세와 닮아있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는 한국의 진경산수를 그린 겸재 정선이다. 굳이 장르를 구별하자면, 배병우는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이다.
한반도에 인간이 살기 시작하기 전부터, 그러니까 지구가 탄생한 이래로 자연은 늘 거기 있었다. 이 자연을 상찬하고 풍경으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은 풍경에서 새롭게 미적인 가치를 찾아내는 예술가들이 고안해낸 풍경감상법 덕분이다. 동양에서는 시문학과 산수화를 통해서 풍경을 감상하고 예술작품으로 표현하는 오랜 전통이 있었다. 한국의 아름다운 명승지를 여덟 개씩 선정하여 범주화한 ‘관동팔경’이나 ‘단양팔경’ 등의 개념은 풍경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보여준다. 이 명승지들은 많은 선비들에 의해서 시문학으로 예찬되고 그림으로 그려졌다. 조경학자 강영조는 동양의 풍경감상법은 우선 시문학에서 등장하며, 이 “문학적 상상력으로 고안된 풍경 감상의 패턴이 (현실 풍경의) 적절한 지점과 조우하며 탄생”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시문학과 그림들에서는 자연과 인간은 내적인 조화를 이룬다.
1950년 여수 출신인 그는 난개발로 훼손되지 않은, 때묻지 않은 한국의 자연을 보고 자랐다. “내 생태 감수성의 뿌리는 우리나라의 섬과 바다다”라고 그는 말한다. 촉촉하게 젖은 바닷가의 검은 몽돌들을 찍은 사진이나, 먼 안개 속에 사라지는 점점이 떠 있는 다도해는 그의 작품 속에 기록된 아름다운 한국의 풍경이다. 그의 카메라에 포착된 이런 장소는 결코 유명지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사진으로 말미암아 후에 유명해진 장소들이 생겨난다. 배병우는 풍경의 아름다움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한국적 풍경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을 제안한다. 그는 “어릴 적부터 동네 형들과 남해 섬들 사이를 조그만 배로 노 저으며 돌아다녔다”라고 회상한다. 그는 “바다를 벗삼아 뛰어놀던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교감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풍경을 체험하고 바라보는 훈련을 익히고 있었던 것이다.
배병우가 풍경을 찍는 방법은 서양의 풍경화가들과는 다르다. “나의 열정은 사진 ‘자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피사체의 정서와 형태의 아름다움을 찰나의 순간에 기록하는 가능성, 다시 말해서 보이는 것이 일깨우는 기하학을 향한 것이다”라는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말은 서구적 시선의 한 면을 보여준다. 베허 이후의 안드레아 구르스키나 칸디다 회퍼 같은 작가들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사진작가들이 풍경과 자연에서 심도 깊게 읽어낸 것은 ‘기하학’이다. 풍경을 바라보는 이러한 시선은 사실 서구 문화에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피타고라스의 수학 이론과 이를 계승한 중세의 신성기하학의 전통은 자연을 바라보는 서구적인 시선의 원형이 된다. 성경에서 천지창조의 마지막 날의 사건, 즉 “하느님이 이 세계를 만들고 나서 바라보니 아름다웠다”라는 말은 미학의 출발점이 된다.
세계의 외적 아름다움에서 신적인 세계의 내적 등가물을 발견하려는 노력은 비례, 척도, 조화, 균제라는 기하학적 질서의 추구로 발전해나가며 서구의 시각문화에 중요한 영향을 끼쳐왔다. 르네상스의 선원근법은 주체를 인간으로 설정하고 현실 공간에 대한 장악력을 높였지만, 인간은 여전히 세상에서 수학적인 질서와 비례를 찾고 있다는 점에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반면, 동양의 산수화는 원근법의 틀안에서 바라보는 서양화에 비해 훨씬 자유로운 풍경감상법을 담고 있고, 배병우의 사진은 이런 전통과 관련이 있다.
가로의 비율이 긴 파노라마 형식으로 찍은 그의 사진에는 상층의 가지와 밑둥이 생략되고 중심부인 나무기둥들이 화면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거기다가 이 소나무들은 쭉쭉 뻗은 소나무들이 아니라 응축과 상승을 반복하는 뒤틀린 형상을 가지고 있다. 구조적 질서가 아니라 불규칙한 선들의 나열이 화면을 지배하고 있다. 배병우의 소나무 사진들에는 멀리서 숲을 조망하거나 풍경과 나무와의 관계를 고려해서 찍은 사진보다는, 숲 속을 거닐면서 숲 속에서 숲을 찍은 것이 더 많다. 이러한 배병우의 조망점은 동양의 산수화의 주요 개념인 와유(臥遊)를 연상시킨다. 서양의 풍경화가 풍경의 시각적인 전유에 중점을 두는 반면, 동양의 산수화는 단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풍경 속에 들어가 즐기는 와유의 그림이다. 미술 평론가 시바 치게오가 배병우는 “자연을 이미지로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연장선상에서 담아낸다”고 말하는 것도 배병우의 와유적인 풍경체험을 염두에 둔 말이다.
경주의 소나무를 오랫동안 찍고 관찰하면서 그의 인식은 다만 자연을 외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넘어서 한국 문화의 본령에 대한 이해로 이어진다. 인내천(人乃天) 사상은 사람을 곧 하늘이라 귀히 여기는 한국적 휴머니즘의 핵심적인 사상이다. 배병우는 소나무를 인내천 사상과 연관시켜서 설명한다. “인내천(人乃天)하면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의미아닌가. 그럼 사람과 하늘을 잇는 매개는 무엇인가. 나는 소나무라고 생각한다."고 그는 말한다. 이 대목에 이르면 배병우의 소나무는 이제 더 이상 시각적 풍경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한국적 정신 세계를 드러내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이런 정신을 표현할 수 있는 깊은 자연의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서 그가 택한 시간은 이른 새벽이나 흐린 저녁이다. 자연이 깊은 호흡을 하고 있는 시간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빛이 그가 찾아낸 한국미를 담아내는 절정의 순간이다.
존재를 바라보는 철학적이고 초월적인 인식은 그의 종묘 사진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그는 “종묘의 위엄과 장엄함”에 매료되었다. 한국 건축물에 담긴 한국 철학과 미학을 읽어내는 건축학자 김봉렬은 종묘를 “부분과 전체 모두를 지배하는 단순성. 인위적인 장식과 기교와 조작을 배제함으로써 얻어지는 초월적 효과들”을 극대화시킨 건축물이라고 극찬해 마지않는다. 김봉렬은 “한국 건축은 곧 집합이다.”라고 일갈한다. 그의 독창적인 이론인 ‘집합이론’은 건축을 건물의 구조나 형태 자체에서 가치를 찾는 것이 아니다. 방, 건물, 건물군, 영역군이라는 입체적인 분석단위들을 설정하고 각 단위들간의 조합되는 유기적 관계를 통찰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제주도 오름을 찍은 사진 역시 한국적인 미에 대한 오랜 탐구의 결과이다. 그의 사진은 한국 사람이라면 너무나 익숙한 이 풍경들을 한 폭의 수묵화처럼 담아낸다. 그의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듯이 그는 빛의 드라마틱한 대조를 이용한다. 앤절 아담스나 에드워드 웨스턴의 빛이 강력한 빛이 피사체를 꿰뚫어 윤곽을 드라마틱하게 드러내는데 사용한다. 그러나 배병우가 바라보는 것은 개별 사물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분위기이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전경은 어둡고 중경이 가장 밝고 원경은 아득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삼분된 구조는 원근법을 환기시키는 입방체 같은 건축물이 없는 상태에서는 자연의 심원함을 담아내는데 용이하게 사용된다.
어두운 전경과 아득한 원경으로 이루어진 세상은 마치 천자문의 첫대목을 일깨워주는 듯 하다. 우주와 삼라만상의 무한함을 색채의 힘을 빌어 표현했던 “천지현황”을 떠오르게 한다. 제주도 오름을 찍은 사진은 먹의 농담을 이용해 그려낸 듯 깊은 맛이 있다. 경주의 소나무 사진 역시 마찬가지이다. 화면의 전경은 묵직하고 어둡고 오히려 화면의 뒤로 갈수록 밝아진다. 구체적인 것에서 아련하고 먼 것으로 시선이 이동하면서 보는 사람도 육체의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리고 유현한 우주의 일부가 되는 듯한 신비스러운 느낌에 빠져든다. 국리현대미술관 학예사 박영란의 말대로 “자연에 대한 동양적 몰입의 경험을 유발한다. 배병우의 사진은 단순히 사물의 표면을 재현하는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풍경 속에서 사물의 깊이를 들여다보는 명상적인 시선의 산물이다.
이진숙은 서울대학교 독문학과에서 문학전공으로 학사, 석사 학위를 받았다. 모스크바 러시아국립인문대학교 미술사학부에서 말레비치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예술의 전당에서 <러시아 미술과 문학 사이>,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사>를 진행하고 있다. 동덕여자대학교, 연세대학교, 중앙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월간 [톱클래스]에서 ‘이진숙이 만난 우리 시대 미술가’를, [중앙 SUNDAY]에 ‘이진숙의 ART BOOK 깊이 읽기’를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는 국내에 소개가 미진했던 러시아 화가들을 알리는 『러시아 미술사』(민음in 2007)와 한국의 젊은 작가들에 대한 비평집 『미술의 빅뱅』(민음사, 2010), 아트 에세이 『아름다움에 기대다』가 있다. http://blog.daum.net/kmedic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