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문혜진 미술비평가
0.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의 미술 잡지 목차를 살펴보다 보면 눈에 띄는 경향이 하나 있다. 유독 멀티미디어나 비디오아트에 대한 특집이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월간미술]로 한정하더라도 이러한 경향은 명확하다. 일례로 1998년도 7월호는 특집으로 ‘영상시대의 이미지 읽기’에 대한 주요 전문가 3인의 논고를 싣고 있고, 같은 해 10월호와 11월호는 전시초점이라는 표제 아래 《98 도시와 영상: 의식주전》(1998)을 위시한 당시의 주요 비디오 전시들에 대한 심층 리뷰를 다루고 있다.1) 이러한 경향은 2000년대 초반까지 지속되어 2000년 3월호에는 싱글채널 비디오에 대한 두 편의 학술 에세이가, 같은 해 6월호에는 당시 주요 미디어아트 전시에 대한 집중 리뷰가, 9월호에는 MTV 2)시대의 새로운 감성에 대한 대대적인 특집 기사가 수록된다.3) 전시 현장 또한 예외가 아니었던 모양으로, 심상용은 2000년 7월한 월간지에 실린 전시 리뷰 중 젊은 작가의 전시 7개 중 5개가 프로젝션과 영상이미지, 비디오 설치임을 지적한다.4)
이 같은 현상의 배경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자리한다. 근본적으로는 1995년 케이블 방송의 개국과 함께 만개한 영상문화의 강력한 자장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1995년 2월 최초의 음악 전문 방송인 M.net이 개국한 이래, 동아 TV, KMTV, 투니버스, YTN 등이 잇달아 개국하면서 바야흐로 케이블TV 시대가 열린다. 1996년 M.net과 DCN, 캐치원, 매일경제 TV 등이 24시간 방송을 시작하며 영상시대의 개막은 본격화된다.5) 특히 M.net은 개국 당시부터 MTV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1998년 MTV 아시아와의 전략적 제휴, 1999년 국내 최초 24시간 실시간 인터넷 방송 등을 실시하며 젊은 세대의 이미지 감각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감각적, 유희적, 표피적, 즉흥적 같은 수사로 표현되는 이미지 중심의 감성은 기존의 국내 비디오 작업과는 다른 감각으로, 이는 김세진을 비롯해 1990년대 후반 대중문화적 감각을 탑재한 새로운 작업들로 이어진다.
한편, 미술계 내부 변화도 이러한 변화가 가시화되는 데 일조한다. 우선, 《국제 비디오아트전-천년의 미소를 넘어서》(경주 세계문화엑스포, 1998), 《98 도시와 영상:의식주》(이영철 기획, 서울600년 기념관, 1998), 《미디어시티 서울 2000》(http://mediacityseoul.kr/2016/ko/about/mediacity-seoul)(총감독 송미숙, 경희궁 근린공원 외 지하철 13개 역사, 전광판 42개, 2000) 등 굵직한 대형 영상 전시들이 이 시기에 개최된다.6) 특히 미술작가 외 그래픽 디자이너, 건축가, 영화제작자, 사진가 등을 대거 포함시키고, 거친 전시장을 역동적으로 분할하는 과감한 공간 연출로 작품과 작품, 미술과 비미술, 작품과 공간 간의 ‘비선형적 시각 커뮤니케이션’을 창출한 《98 도시와 영상: 의식주전》은 밀레니엄 시대를 앞둔 도시의 감각을 잘 포착한 전시로 향후 영상 작가 및 관련 전시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미술관 외에 지하철 역사와 서울 시내 곳곳의 전광판을 미디어 파사드로 활용한 《미디어시티 서울 2000》 역시 일상화된 미디어의 감각을 체현하는 데 기여했다. 영상 및 뉴미디어를 전문으로 하는 기관이 생기기 시작한 시점도 정확히 이때다. 2000년 국내 최초의 미디어아트 전용 공간을 표방한 일주아트하우스가 문을 열었고, 같은 해 SK 사옥에 아트센터 나비가 재개관하며 영상 및 뉴미디어 작업 붐에 일조한다. 특히 전시장과 미디어 아카이브, 디지털 편집실, 학술 세미나 및 콘퍼런스 공간을 모두 보유하고 있던 일주아트하우스는 2005년 폐관하기까지 비디오아트를 비롯해 실험영화 및 다큐멘터리 영역의 영상 작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 글은 국내 영상작업에 질적 변화가 발생한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중반 사이 비디오아트 신의 전모를 파악하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했다. 장치 자체에 대한 탐색이나 오브제 성격이 강하던 앞 세대와 달리 이 시기의 비디오 작업은 이미지 중심의 영상작업 본연의 미학을 처음으로 추구한다. 비선형적 서사, 파편적 편집, 시간적 변형, 사운드와 이미지의 충돌, 이미지와 텍스트의 불일치 등 오늘날 익숙한 영상작업의 문법은 이 시기에 본격화된다. 시선 / 주체의 분열이나 다층적 서사, 혼성적 신체, 시공간의 교차 같은 개념도 파편적인 비디오의 구조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가로 김태은, 박혜성, 김세진, 박화영, 유비호, 노재운, 홍성민, 김두진, 이윰, 한계륜, 서현석, 장지아, 함양아, 함경아 등을 꼽을 수 있다. 국내 영상문화의 수혜를 몸으로 흡수하거나 유학을 통해 서구권에서 비디오아트를 익힌 이들은 이미지 감각을 체화한 최초의 영상 세대로 강의나 작업을 통해 후속 세대를 양성함으로써 동시대 영상작업의 직접적 선례가 된다.7)
1. 한국 비디오아트사에서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중반의 의미는 ‘싱글채널 비디오’의 태동으로 요약될 수 있다. 국내 비디오아트의 역사는 멀게는 김구림, 박현기가 활동한 1970년대부터 시작되고, 가깝게는 1980년대 말 등장한 이원곤, 오경화, 김재권, 조태병, 육근병을 거쳐 1990년대 초중반 김영진, 김창겸, 김해민, 육태진, 심철웅에 들어 본격화된다고 볼 수 있다.8) 하지만 199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싱글채널 비디오는 활성화되지 못했는데, 여기에는 한국적 맥락이 자리한다. 1980년대 말-1990년대 중반의 한국 비디오아트는 감성 면에서 관념적이고 실존적이었고, 매체적으로는 비디오 설치가 다수였다. 김영진의 영상설치는 그 좋은 예다. 로마시대의 투구나 인도의 불상, 진시황제릉에서 출토된 토우의 두상에 자화상을 투사한 〈위험한 실험〉(1991)이나 마오쩌둥과 레닌, 다윈의 원숭이가 역사적 증거물로 등장하는 〈이성의 시대〉(1992)에서 영상은 역사적 유물과 만나 시공간적 교차를 만들어내는 정적인 장치에 가깝다.9) 간혹 움직임이 있는 경우에도 편집에 의한 영상 자체의 운동보다 장치의 움직임이 더 큰비중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슬라이드 프로젝션의 초점을 기계적으로 조작해 두개골 위에 투사된 자화상 이미지가 흐려졌다 선명해지기를 반복하며 숨을 쉬는 효과를 준 〈아름다운 사건〉(1991)이나, 펌프와 순환장치를 결합해 아크릴 판 위에 떨어지는 물방울을 실시간으로 투사하는 〈액체〉(2002)가 대표적인 예다. 고가구나 오브제를 이용해 복합적인 영상설치를 한 육태진의 경우도 이러한 경향은 명확하다. 계단처럼 만든 선반 위에 계단을 올라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촬영한 영상들을 배치하고 모터를 이용해 움직이게 해 이미지와 오브제의 행위가 일치하도록 한 〈춤추는 계단〉(1994)이나, 대형 터널 안에 투사된 사람의 이미지가 기차소리의 고저에 따라 커졌다 사라짐을 반복하는 〈터널〉(1998)에서 영상과 설치의 비중은 동일하다. 이러한 경향은 일차적으로 긴 영상의 편집이 1990년대 후반만큼 기술적으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개념적이고 조형적인 측면에서는 당시 작가들이 오브제와 설치미술이 부상했던 1980년대 후반 한국미술계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10) 단색조 미술에 대한 반대급부로 등장한 타라, 난지도, 메타복스, 로고스와 파토스 등의 소그룹들은 탈모더니즘을 주창하며 1980년대 말 탈평면 조류를 견인한다. 물론 1990년대 초중반 미디어 작가들은 소그룹 운동 세대보다 후학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직간접적으로 설치가 대세이던 당시 시각언어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역사와 개인, 생성과 소멸, 나와 타자, 순환과 재생 같은 비디오 작업의 주제는 신화, 부재, 초월, 허무 등이 제목으로 자주 등장하는 1980년대 설치미술의 정서적 풍토와 맥이 닿아 있다.
결국, 비디오 조각이나 비디오 설치가 아니라 영상만으로 승부하는 싱글채널 비디오는 1990년대 말이 되어서야 등장한다. 서구 비디오아트의 경우 1970년대 등장 당시부터 싱글 채널이 중심이었음을 생각하면 이러한 상황은 특수하다. 장치나 오브제의 비중이 높던 초기 한국 비디오아트가 내용 중심으로 이행하는 데는 영상문화의 보편화와 외부의 자극이 필요했다. 조선령의 지적처럼, 한국 싱글채널 비디오는 TV로 대표되는 대중적 영상문화의 영향력이 한국 사회에 각인된 1990년대 말 이후에야 진정한 의미에서 수용되고 창작될 수 있었다.11) 그런데 비디오아트가 상업적 TV 문화 범람에 대한 대항의 맥락에서 발생한 미국 상황과 달리, 한국의 싱글채널비디오는 오히려 상업광고 및 대중문화의 내부에서 탄생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서구권에서 교육받은 작가들의 경우를 제외하고, 국내에서 자생적으로 발원한 영상 중심의 작업들은 산업으로서의 광고와 영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대중문화적 감수성을 기반으로 한 1990년대 신예작가들을 소개하는 한 기사는 CF 감독 박명천, 만화가 모해규와 신일섭, 애니메이션 감독 이성강, 전승일을 미술가들과 함께 거론하며12), 영상시대 작가들의 감성을 소개한 또 다른 특집은 사진(이상학), 패션(김성복), 만화(이명석), 영화(김봉석), 대중음악(강헌) 분야의 평론가들을 대거 초대해 넘쳐나는 시각문화의 속도, 기호, 정서를 미술 내부의 변화와 접목시키기를 시도한다.13) 김세진은 이러한 조류를 제일선에서 수용한 대표적인 작가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비디오아트의 루키로 일찍 주목받은 그의 작업은 미술계가 아니라 CF와 영화 등 대중문화 현장에서 출발했고, 그런 까닭에 당시 상업 신의 감각을 가장 첨예하게 표증한다.
2. 김세진이 비디오아트로 진입하게 된 계기는 정규교육이 아닌 독학에 가깝다. 홍익대학교 재학 시절, 전공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작가는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의 속도에 맞는 시각적 표현 방식을 찾아 이런저런 모색을 했다. 건축과 수업을 듣고, 동아리에서 사진을 배우고, 학교 근처 컴퓨터그래픽 학원에서 3D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익히는 등의 방황 끝에 그녀는 친구의 8mm 캠코더를 우연히 접한다.14) 결국 김세진의 졸업 작품은 전공인 동양화와 전혀 관계가 없는 비디오 작업이 된다. 김세진의 첫 비디오 작품인 〈소녀〉(1994)는 서로 연관이 없는 파편적인 흑백 이미지들의 다양한 시각효과가 인상적인 작업이다. 몰핑, 줌아웃, 디졸브, 페이드인, 페이드아웃, 화면 반전, 이미지 합성 등 가능한 온갖 종류의 기법이 동원된 이 작업은 놀랍게도 모든 프레임을 포토샵으로 일일이 수정해 만든 것이다. 여기서 작가의 관심사는 서사나 개념이 아니라 화면이 주는 강렬한 시각 효과다. 흑백의 강한 대비와 언캐니한 분위기는 영감을 받은 마야 데런(Maya Deren)의 〈오후의 올가미(Meshes Of The Afternoon)〉(1943)의 영향이겠지만, 첫 시퀀스의 반복을 통해 심리적인 나선 구조를 만드는 데런과 달리 〈소녀〉는 영상의 구조보다 이미지의 표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당시 작업의 빼어난 이미지 감각을 눈여겨본 3D 디자이너 박영민의 소개로 김세진은 졸업 직후 업계를 선도하던 컴퓨터그래픽회사 비손텍(Bisontec)에서 일하게 된다.15)
1990년 설립되어 1997년까지 지속된 컴퓨터그래픽회사 비손텍은 1990년대 컴퓨터그래픽의 활황을 주도한 전설적인 존재다. 1980년대 후반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한 영화와 상업광고의 특수효과 붐에 힘입어 국내 컴퓨터그래픽 산업은 비약적으로 성장한다. 구형 자동차가 최신형 쏘나타로 전환되는 현대 쏘나타 광고와 금색 글자가 세탁기로 변하는 매직 골드 전자레인지 광고가 비손텍의 작업물인데, 상당한 수준에 달한 몰핑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16) 최첨단 장비가 완비되어 있고 최신 영상 잡지를 비롯해 칸광고제 수상작 컬렉션을 비디오(VHS) 복사본으로 받아볼 수 있는 작업 환경은 김세진에게 고기가 물 만난 것과 같은 상황이었던 듯싶다.17) 1994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비손텍을 비롯해 브이포스트, 이미하우스 등의 컴퓨터그래픽 회사의 특수영상 분과에서 전업 디자이너 혹은 프리랜서로 일하며 작가는 장비에 따라 달라지는 이미지프로세싱의 즐거움에 흠뻑 빠진다.
이 시기 제작한 작업들은 〈소녀〉에서 이어지는 다양한 이미지 효과에 대한 탐닉과 함께 속도감 있는 편집, 경쾌한 감각으로 특징지어진다. 그중 첫 번째 개인전에 출품된 〈너무 가까운〉(1997)과 〈너무 먼〉(1997)은 시청각적 리듬을 다채널로 구현한 세트 작업이다. 깃털을 잡으려는 손이 단속적인 리듬에 맞춰 흔들리는 영상에서 관객은 인물의 팔이 너무 길거나 짧음을 발견한다. 여기서 분절되어 삭제되거나 컴퓨터그래픽으로 늘어난 이미지는 멀거나 가깝다는 개념을 감각적으로 시각화하는 수단이다. 재미난 것은 소프트웨어의 변동에 하드웨어도 반응한다는 점이다. 〈너무 가까운〉의 2채널이 〈너무 먼〉에 이르러 4채널로 늘어나는 상황은 소리와 이미지, 장치가 합치되는 모종의 쾌를 자아낸다. 두 번째 개인전의 출품작 〈역 _ r.e.v.e.r.s.e〉(1998) 역시 컴퓨터그래픽 회사의 전문적 이미지처리 장비의 효과를 십분 활용한 작업이다. 역방향의 리코딩이 가능한 베타캠 장비를 활용해 작가는 비디오로 촬영한 이미지에 갖가지 변형을 가한다. 만화 이미지를 차용해 거울상 이미지를 만들기도 하고, 아이의 꽃신만 제외하고 색을 모두 빼버리기도 하며, 인물의 윤곽을 강조해 애니메이션 효과를 내기도 한다.18) 먹기, 말하기, 울기, 머리 말리기, 성냥 켜기, 그리기 등 평범한 일상의 활동이 역으로 재생되면서 소리와 이미지는 낯설어진다. 이 시기 김세진의 작업들은 개념의 전달을 위해 이미지를 이용하기보다 이미지 자체가 관심사였다. 광고나 애니메이션에서만 접할 수 있던 감각적 이미지, 육체적이고 비서사적이며 직관적인 감성은 기존 미술계에 동시대를 대변하는 새로움의 감각으로 다가왔고, 김세진 자신에게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지 및 사운드의 조합으로 공감각적 서사를 만들어내는 특유의 성향이 형성되는 토대가 된다.
3. 백지숙은 1990년대 후반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경향을 포착하는 한 글에서 포스트 장르이면서 포스트 제도, 포스트 미술인 장르 혼성 공간들에 대해 언급한다. 홍대와 동숭동 일대에 자리한 살, 도마뱀, 황금투구, 언더그라운드, 상수도 등의 클럽은 먹고 마시며 춤추는 가운데 퍼포먼스, 전시회, 시 낭송회, 인디밴드 공연이 함께 어우러지는 문화 혼성의 장이었다. 어어부밴드가 공연을 하기도 하고, 작가 박활민이 아트 시디롬을 배포하기도 하며, 만화가 신일섭이 허벅지밴드와 함께 포르노 - 시 - 퍼포먼스를 펼치는 것이 당시의 아방가르드 문화였다.19) 이런 문화는 1990년대 초 최정화, 김형태, 고낙범 등으로 대표되는 신세대 미술가들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1990년대 후반까지 이어지며 장르를 넘어선 예술가들의 협업을 이끌었다.
김세진 역시 이런 문화의 혜택을 흡수한 적자(嫡子) 중 하나다. 1990년대는 모든 것이 새로 만들어지고 확장되던 시기라 장르 간 이동이 자유로웠고 현장에서 부딪치며 관례를 만들어가곤 했다. 김세진이 몸담았던 CF 및 컴퓨터그래픽 업계의 경우에도 3D 그래픽, 편집, 특수영상, 사운드 파트 간의 이동이 자유로웠고, 각기 분담된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각 팀이 함께 모여 프로젝트를 수행했다고 한다.20) 그렇기에 다매체적 감각을 키우기에 적합한 환경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홍대 출신으로 아방가르드 인디 신에 친숙하기도 했기에 음악과 영화를 접목시키는 것은 그녀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윰 기획으로 여러 문화 장르의 예술가 70여 명이 13개 팀을 이뤄 예술과 대중의 만남을 시도한 《버스 - 데몬스트레이션전》(1999)에서 김세진은 음악가 성기완과 협업한 〈꿈속에서〉(1999)라는 작업을 선보인다. 버스 안에서 잠이 든 한 남자가 꿈속에서 겪는 편집증적 몽환을 형상화한 이작업은 서사가 아니라 이미지 중심으로 전개되는 초기 작업의 특징을 여전히 유지한다. 현실과 가상이 뒤섞이는 혼성적 상태는 빠른 교차편집과 이에 반응해 속도를 더해가는 탁구공 소리로 유도된다. 블러, 몰핑, 핀홀 카메라 효과, 빨리 돌리기, 현란한 카메라워크 등 작업의 화려한 시각 효과는 실상 뮤직비디오의 감각에 다름 아니다.
이후 2001년 영상미디어학과에 진학해 영화 쪽으로 작업을 확장한 것도 장르를 넘나드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당시의 문화 환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10 to 10〉(2001), 〈키드〉(2003-2005) 등 2000년대 초반에 제작한 단편영화에서도 김세진은 음악가 장영규와 함께 작업한다. 영화 작업을 통해 작가는 스크립트(텍스트)를 이미지로 전환하는 방법, 긴 호흡의 영상을 끌고 가는 방식, 영화 제작의 기법을 습득하지만, 각자의 자유로움을 유지하며 따로 또 함께가 가능했던 인디문화의 풍토와 달리 상당한 자본이 관여하는 영화 현장은 작가가 원하는 창조적인 협업이 가능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우기 기법을 통해 촬영 현장에서 소외되는 한 인물이 각기 다르게 기억되는 상황을 그린 〈연선 채에 관하여〉(2005-2006) 이후 작가는 미술계로 돌아온다. 하지만 영화계에서의 경험은 이 시기 작업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다. 2002 광주비엔날레에서 유네스코상(賞)을 수상해 잘알려진 김세진의 초기 대표작 〈기념사진〉(2002)은 영상을 찍기 위해 수없이 반복되는 촬영 절차를 보여준다. 역사는 상징적인 사건 하나로 마치 정지 사진처럼 기억되지만, 그 실체는 기억되지 못한 무수한 사실들이 연이어 있는 연속적이고 동적인 흐름이다. 반복되는 시퀀스는 한편으로는 영화의 제작 방식 차용이고 다른 한편 역사에 대한 작가 나름의 해석이다. 후기작인 〈나이트워치〉(2006), 〈Trans - Lumine - Scence〉(2011) 등에서 엿보이는 이미지 중심의 편집 감각과 〈밤을 위한 낮〉(2014), 〈잠자는 태양〉(2012) 등에서 차용된 영화적 촬영 기법 및 스토리텔링은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 광고와 영화의 상업 신에서 체득한 감각의 발현일 것이다. 이는 김세진 개인의 작업세계를 구축한 계기이기도 하지만, 이 시기 시각문화환경이 반영된 시대의 얼굴이기도 하다.
1 관련 글은 다음과 같다. 이원곤, "몽타주 영상언어의 기초", 1998년 7월; 김원방, "변형 전자매체와 변형의 힘", 1998년 7월; 권중운, "시각 화가의 눈, 카메라의 눈", 1998년 7월; 김현도, "한국 비디오아트가 가야할 길: 최근 비디오 전시들에 대한 비평", 1998년 10월; 박신의, "도시와 영상, 의식주전: 일상의 감성, 리듬, 속도", 1998년 11월.
2 MTV는 ‘Music Television'의 약자로, 1981년 개국한 미국의 음악 전문 케이블 TV다. VJ(video jockey)가 소개하는 뮤직 비디오를 통해 음악산업의 중심을 라디오에서 비디오로 전환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미지시대의 개막, 주류 대중음악의 성향, 시청자의 미학적 감성, 영상 중심의 문화산업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https://ko.wikipedia.org/wiki/MTV
3 조선령, "영상문화의 새로운 소통을 위한 비디오그래피", 2000. 3; 유진상, "싱글채널 비디오, 네트워크 시대의 독립매체", 2000. 3; 이원곤, "미디어아트를 바라보는 네 가지 시선", 2000. 6; 심상용, "뉴미디어시대, MTV적 감성의 예술", 2000. 9; 백지숙, "뮤직비디오와 MTV의 문화적 의미 몇 가지", 2000. 9; 이동연, "MTV 키즈, 이미지를 소비하는 세대", 2000. 9.
4 심상용, 앞의 글, p. 70.
5 차우진, "한국 케이블 방송의 역사", 『매거진 T』, 2007. 4. 5. 현재 이 웹진은 폐간이라 전문은 필자의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https://brunch.co.kr/@woojin/148
6 1996년 서울시 주도로 설립된 《도시와 영상전》은 1999년 3회를 끝으로 《미디어시티 서울》로 개명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7 서현석과 홍성민은 연세대학교와 계원예술대학교 교수로 일하며 제자들을 배출했고, 보직을 갖지 않은 작가들도 작업 활동과 아울러 교편을 잡으며 후배들을 길렀다. 일례로, 동시대 활발히 활동하는 비디오 작가인 안정주, 염지혜, 함혜경은 함양아가 서울대학교, 계원예술대학교 등에서 가르친 제자들이다.
8 이와 관련해 비교적 충실한 정리로 다음을 참조하라. 심철웅, "한국 영상예술의 전개와 현주소", 『월간미술』, 2003. 4, pp. 74-79.
9 민희정, 「한국 미디어아트에 관한 연구: 1969년부터 1999년까지의 영상작품을 중심으로」, 국민대학교 대학원 미술이론 전공 석사학위논문, 2012, pp. 156-157.
10 후자의 경우 민희정, 앞의 논문, p. 164를 참조하라.
11 조선령, 앞의 글, p. 130.
12 실상 이 기사에서 소개되는 다수가 순수미술 작가보다 상업 신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다. 편집부, "집중연구 비디오 세대는 무엇을 그리는가: 90년대 신예작가들의 새로운 감성", 『월간미술』, 1997. 6, pp. 106-113.
13 편집부, "특집: 영상시대 작가들의 젊은 감성", 『월간미술』, 2000. 9, pp. 76-86.
14 http://www.thestream.kr/?p=3284
15 김세진 인터뷰, 2018. 8. 16.
16 http://blog.naver.com/qkreotj00/120156100549
17 김세진 인터뷰, 2018. 8. 16.
18 김준기, "거꾸로 본 일상, 되돌려진 시간", 『가나아트』, 1998. 가을, p. 14.
19 백지숙, "고급미술의 틀을 깨는 이미지 생산자들", 『월간미술』, 1997. 6, p. 119.
20 김세진 인터뷰, 2018. 8. 16.
미술비평가, 번역가, 미술사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