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작가

경계인의 시선과 함양아의 초기 비디오 작업

posted 2019.05.16

새로운 영상문화 도래와 한국 싱글채널 비디오의 태동 Ⅲ


함양아는 유학 시절 1970년대 비디오 작업을 섭렵하고 동시대 작가들의 작업을 가까이에서 접함으로써 기본기를 다졌다. 이후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하지 않았음에도 일정 수준 이상의 작업 완성도와 국제적 감각을 갖추고 국내 영상 관련 주요 전시에도 상당수 참여하면서 1990년대 후반 태동한 한국 싱글채널 비디오의 대표적인 1세대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유학 이후에도 이행적인 삶을 살면서 완전한 내부자도, 외부자도 아닌 이방인의 시선을 이어오고 있다. 한국미술계에서도 경계인의 위치에 머물렀기에 ‘계’의 요구와는 무관한 내적 필연성을 다질 수 있었다.


문혜진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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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아_경계인의 시선과 함양아의 초기 비디오 작업


0. 한국 비디오아트의 역사를 계보적으로 기술할 때 작가 함양아의 자리를 규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상업광고 및 인디문화 신에서 홀로 감각을 익힌 김세진이나 주변 동창들과 감성 및 기술을 공유하며 우연히 동영상의 세계로 이끌린 유비호처럼, 같은 매체를 다루는 선대나 동료 작가들과의 직접적 친연 관계없이 각기 다른 방향에서 개별적이고 특수하게 영상작업에 입문하게 되는 것은 2000년대 이전 비디오 작가들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국내에 정착해 활동한 작가들과 달리 함양아는 반(半)국외자로서 한국에 속하는 것도 그렇다고 속하지 않는 것도 아닌 애매한 거리를 유지해왔다. 1994년 유학을 위해 한국을 떠난 이후 작가는 한 번도 한국에 정착하지 않고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는 이행적 삶을 살고 있다. 비교적 초기 작업으로 분류되는 〈픽셔너리(fiCtionaRy)〉(2002-2003), 〈제주도의 비너스〉(2004), 〈삶 속의 ... 꿈〉(2003-2004)은 한국과 미국에서, 〈트랜짓 라이프〉(2005), 〈기억의 허상들〉(2005), 〈10 to 3〉(2005), 〈공산주의 관광〉(2005)은 중국과 한국에서, 〈랜드, 홈, 시티〉(2006)는 터키와 중국, 네덜란드에서, 〈형용사적 삶〉 연작(2007-2010)은 네덜란드와 서울을 오가며 제작되었다.1) 실제로 1994년 이후 함양아가 국내에 장기 체류한 것은 2002년부터 2003년 사이의 1년 반 남짓에 불과하니2), 이 작가가 국내 비디오아트 신과 어떤 관계를 지니느냐는 모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함양아를 거론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는 1990년대 후반 태동한 한국 싱글채널 비디오의 대표적인 1세대 작가 중 하나로, 지금까지 손꼽히는 국내외 영상 관련 주요 전시에 상당수 참여했다. 청년 작가와 영상작업을 대거 포함시켜 국내 미술계에 시각적 충격을 준 《98 도시와 영상 : 의식주전》(이영철 기획, 서울600년기념관, 1998), 사적 차원과 공적 차원을 가로지르는 신세대 작가들의 패기와 감성을 대변한 《한국현대미술 신세대 흐름: 믹서&쥬서전》(김혜경 기획, 미술회관, 1999)3), 한국의 젊은 미디어 작가들을 미국 미술계에 알리고 매체미술을 통해 비서구 작가에 대한 정형적 기대에서 탈피하고자 한 《Relative Reality -The Korea Media Art Today전》(설원기 · 줄리 월시 기획, 이병희 진행, 월시갤러리, 2003)4) 등이 그 예다. 빠른 속도로 팽창하던 2000년대 초반 한국미술계는 국제적 감각을 갖추고 일정 수준 이상의 작업 완성도를 확보한 젊은 작가를 필요로 했다. 그렇기에 함양아는 비단 영상 전시뿐 아니라 대형 기획전5)에 자주 초대되었고, 물리적 거주 여부와 무관하게 국내 미술계의 동향에서 소외되지 않을 수 있었다. 실상 함양아 자신도 한국미술계와 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1990년대 후반 미술계는 지금과 비교할 수없을 만큼 규모가 작아서 서로 다 알고 지내는 사이였고, 한국 방문 시 주요 전시를 모두 보고 거의 모든 미술계 인사들과 만나곤 했기에 특별한 시차를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6) 함양아가 후배 영상 작가들에게 미친 직접적인 영향은 2002~2004년 한국 체류 당시 서울대와 이화여대, 계원예대에서 가르친 비디오아트 강의겠지만, 간접적이나 훨씬 폭이 넓고 파급력이 큰 영향은 국내 주요 전시에 출품한 작품을 통한 것이다. 쌈지스페이스, 인사미술공간, 아트선재센터, 다음작가상,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올해의 작가상 등 그가 참여한 국내 주요 기관들의 전시는 작업세계의 구축과 확장 및 행보와 관련해 영상 매체에 관심 있는 후학들에게 참조할 수 있는 소수의 표본 사례였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부자이면서 외부자였던 함양아의 독특한 위치가 스스로의 작업 방향 및 한국 영상미술 현장과의 관계를 결정짓는 양상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함양아, 〈치즈〉, 1996-1997. 싱글채널 비디오, 147시간의 녹화.

함양아, 〈치즈〉, 1996-1997. 싱글채널 비디오, 147시간의 녹화.

1. 함양아가 비디오 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일차적으로 시간성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유학 초기 함양아는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세스아트 성향의 작업을 주로 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부패하는 과정을 드러내는 치즈 조각이나 연속적인 과정을 보여주는 시퀀스 사진 등이 그 예다. 유학 시절 제작한 초기 비디오 작업들은 이 같은 관심사를 그대로 계승한다. 일례로 〈치즈〉(1996~1997)는 약 2주간 치즈가 부패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촬영해 실제 치즈 크기로 투사한 작업이다. 치즈의 색과 형태가 변화하는 과정 전체를 편집에 따라 압축적으로도 혹은 있는 그대로도 보여주는 이 작업은 변화의 과정을 체감하기 어렵고 일회성인 설치작업의 한계를 보완하는 비디오 매체의 장점을 잘 보여준다. 비슷한 시기 제작한 〈땅에서는〉(1996) 역시 자연의 대상을 통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삶과 죽음의 순환을 묘사한다. 땅이 물을 빨아들이고 내뿜는 과정을 되감기 기법을 통해 마치 숨 쉬는 것처럼 편집한 이 작업은 단순 기록에 가까운 〈치즈〉보다 시간적 변화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비디오 매체의 특색이 훨씬 두드러진다. 비교적 간단한 작업이지만 〈땅에서는〉은 되감기, 빨리 돌리기, 반복(루핑) 같은 비디오 매체의 기본 언어를 효과적으로 구사한다. 땅이 숨을 쉬는 듯한 연상은 물이 빠지는 장면을 되감고 반복하는 편집에서 유래하는데, 처음에는 일정한 속도로 되감아서 고르게 호흡하는 것처럼 보이던 영상은 뒤로 갈수록 편집 속도가 달라지며 깊은 호흡과 얕은 호흡이 교차하는 생생함을 전달한다. 고정 카메라, 줌인, 줌아웃, 페이드아웃 등 충실히 적용된 비디오의 기법은 촬영 및 편집에 대한 기초교육의 흔적을 드러낸다.


실제로 2000년대 이전 함양아의 초기 작업들은 이미지, 소리, 텍스트, 서사 같은 비디오 매체의 여러 구성 요소들을 실험하며 표현의 언어를 급속히 넓히는 과정을 보여준다. 〈감각의 공간〉(1998)은 자막, 내레이션, 배경음악 및 앰비언스, 음성이나 색의 변조/제거, 몽타주, 스토리텔링 등 기존에는 사용하지 않던 다양한 요소들을 동원하고 있고, 〈그녀의 꿈속에서는〉(1999)에선 데칼코마니식 대칭이나 회전 같은 이미지 실험 외에 반복되면서 변화하는 주인공의 꿈 이야기가 공간의 전이로 드러나는 서사 실험이 시도된다. 이렇듯 비디오 매체의 표현 수단을 원론부터 단계적으로 체화하는 과정은 같은 매체를 다루는 국내 작가들과 차별되는 지점이다. 이렇다 할 정규 교육 없이 이런저런 계기로 비디오를 다루게 된 국내파 작가들은 독학으로 동영상 이미지를 만드는 법을 습득해야 했기에 기초부터 출발해 확장된다기보다 현상적이고 결과 중심적인 경우가 많다. 즉 원하는 시각 효과를 어떻게 하면 구현할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추어 방법을 찾는 사례가 다수였던 것이다. 이와 달리 함양아의 궤적은 이론 및 제작에서 비디오 매체 및 작업 선례에 대한 충분한 정보와 지식이 있었음을 가리킨다. 〈땅에서는〉이나 〈치즈〉는 1970년대 개념적 비디오아트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다. “매순간 관객이 보게 되는 이미지는 멈춰진 듯하며 이는 실제 자연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감지할 수 없는 것과 동일하다”7)는 〈치즈〉의 작업 설명은 정지 화면과 동영상의 관계, 비디오 내부의 시간과 외부 시간의 합치 같은 실시간 비디오의 전통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이들 작업의 방점은 1970년대 구조영화나 비디오아트의 자기참조적인 형식적 탐색이 아니라 과정으로서 시간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체감하게 한다는 데 있다. 작가 역시 한국과 비할 바 없이 풍족했던 환경적 수혜를 인정한다. 비디오 아카이브를 통해 웬만한 1970년대 비디오 작업들을 거의 섭렵할 수 있었고, 게리 힐(Gary Hill)이나 빌 비올라(Bill Viola), 매튜 바니(Matthew Barney), 더그 에이트킨(Doug Aitken) 등 당시 활발하게 활동하던 동시대 비디오 작가들의 작업도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8) 이들의 작업이 함양아의 초기작과 직결되지 않더라도 풍부한 선례를 학습할 수 있었던 환경은 비디오 매체에 대한 문해력을 높이고 기본기를 다지는 토대를 마련해 주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함양아의 지도교수였던 피터 캠퍼스(Peter Campus)와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70년대 개념적 비디오 작업의 대표 작가 중 하나인 그는 감시카메라를 이용한 폐쇄회로 설치로 지각과 인식의 간극을 드러내거나 실재와 허상의 구분을 흐리는 작업을 했다. 〈인터페이스(Interface)〉(1972)에서 관객은 거대한 유리(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이중으로 영사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하나는 거울에 직접 비친 투영 이미지고 다른 하나는 폐쇄회로 카메라에 실시간으로 촬영된 영상이다. 속성이 다른 자신의 모습들이 좌우가 반전된 채 한 화면에 공존하는 것을 목격하는 관객은 마치 유령을 본듯한 기이한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내가 나를 바라보는 상태, 보는 동시에 보이는 대상이 되는 것, 실재와 허상이 섞이는 혼란이다. 실제 공간과 비디오의 재현 공간을 교차시켜 주체의 분열이나 응시의 구조를 다루는 캠퍼스의 작업은 과정의 시간성에 주목하거나 서사 실험이 강한 함양아의 작업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하지만 그는 함양아가 지속적으로 추구해 온 중심 주제(leitmotif)의 구축에 간접적으로 깊은 영향을 끼친 듯하다. 함양아는 종종 자신의 작업을 ‘추상화된 현실(abstract(ed) reality)’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곤 한다.9) 현실세계를 대상으로 하되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재구성하고 추상화해 다른 차원의 실재를 만든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체육관 바닥에서 잠을 자거나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잠〉(2015)은 모티프가 된 세월호 사건에 대한 설명이나 묘사가 아니라, 현재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러 위기 상황을 대면하는 개인의 두려움과 불안을 다룬다.10) 함양아는 자신의 이런 태도가 눈에 보이는 것과 실재가 일치하지 않는 캠퍼스의 지각(perception) 개념과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11) 캠퍼스의 작업에 나타나는 인지 교란은 이미지(허상)를 통해 실재를 추구하는 함양아 특유의 시선과 무대화된 상황 연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입장은 초기에는 비교적 직설적인 형태로 나타나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추상화되어 서사의 구조를 교직하는 방식이나 사태를 바라보는 자세로 반영된다. 실재를 촬영한 영상 속 공간(허상 이미지)과 등장인물의 심리 상태에 따라 만들어진 건축적 구조물(실제 사물)이 교차하는 〈잃어버린 주소〉(2002)는 전자에 해당할 것이고, 환상과 현실이 끊임없이 물고 물리는 양태를 서사 및 영상의 구조로 녹여낸 〈삶 속의 ... 꿈〉, 〈제주도의 비너스〉는 후자에 속할 것이다.


함양아, 〈땅에서는〉,1996. 싱글채널 비디오.

함양아, 〈땅에서는〉,1996. 싱글채널 비디오.

2. 서구 유학을 통해 비디오의 매체 속성을 충분히 배우고 이해할 기회를 가졌다는 것이 비슷한 시기 활동했던 국내파 작가들과 함양아의 차이점이라면, 주제적인 면에서 작가의 초기 관심사나 작업의 전개 양상은 작가의 삶 및 나고 자란 한국 사회의 영향을 보여준다. 내용적으로 함양아의 초기 작업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는 신체적 감각과 유기체의 순환이다. 〈땅에서는〉과 〈치즈〉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삶과 죽음의 순환을 자연의 대상을 통해 드러내고, 〈감각의 공간〉은 오감을 가장 다양하게 활용하는 요리를 통해 신체적 감각과 기억의 문제를 다룬다. 상처에 흐르는 피와 생선의 비릿함을 연결한 〈상처〉(1999) 역시 고통의 감각과 생사를 결부시킨다.12) 생체의 감각, 유기체인 식재료의 다양한 물성, 소화와 소멸, 부패와 죽음 등이 이들 작업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키워드다. 이렇듯 생사라는 근원적 문제와 스스로의 몸으로 느끼는 신체적 감각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일차적으로 유학을 통해 겪은 실존적 고민에서 유래한다. 스스로 생활을 꾸려나가야 하고 내가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직면하는 상황은 자연스럽게 해당 주제로 작가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후 작업의 동인은 사적인 고민보다 조형적이고 사회적인 관심사가 제공한 듯하다.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촉각적 이미지에 대한 관심이 카메라를 통한 클로즈업에서 유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심리적·물리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대상을 다뤘기에 근접한 거리에서 피사체를 찍는 일이 많았고, 이때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 확대되어 보이는 대상의 시각적 이미지가 다른 감각까지 자극하거나 마비시키는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13) 초창기 작업이 “카메라를 통해 이미 존재하는 대상을 기계적으로 재현하면서도 이미지를 만들어간다는 생각이 강했다”14)면, 비디오에 익숙해지면서 역으로 매체의 물리적 속성이 주제를 유도하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소리나 색을 제거해 하나의 감각을 극대화하거나 물성을 지닌 유기체의 다양한 질감을 접사로 강조한 〈감각의 공간〉은 신체적 감각이라는 주제를 비디오의 형식 언어로 효과적으로 풀어낸 대표적인 사례다.


함양아, 〈감각의 공간〉, 1998. 싱글채널 비디오.

함양아, 〈감각의 공간〉, 1998. 싱글채널 비디오.

감각에 대한 관심이 한편으로 매체 특유의 형식에서 유래했다면 다른 한편 이를 추동한 또 다른 강력한 요인은 작가에게 가해진 사회적 압력이다. “감각에 대한 신뢰는 대체 불가능한 개인적 경험에 대한 믿음에서 온 것인데, 스스로 보고 인식한 것이 아닌 기존의 구조, 체계를 의심했기 때문이다”15)라는 작가의 말은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며 불합리한 한국사회의 구조에서 느낀 고립감에서 연유한다. 이성적이거나 구조적인 대서사를 불신하고 이와 대비되는 감각적이고 유연하며 사적이고 개인적인 것에 천착한 초기 작업은 스스로의 몸으로 경험한 것만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 한 개체의 개인적이자 사회적인 반응이다.16) 재미난 점은 억압적인 사회에 대한 반발이나 비판이 작업의 내용이나 접근방식에서 서로 관계가 없는 같은 시기 비디오 작가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전체주의적 문화의 강압을 블랙코미디 풍 패러디로 풍자하는 유비호의 초기 작업들17)은 감각적이고 미래적인 표피 아래 거대 서사에 대한 젊은 세대의 거부감을 내포하고 있다. 심지어 상업광고 신에서 출발해 시각 효과와 편집 리듬 면에서 감각적이기로 손꼽히던 김세진의 경우 역시 이러한 태도에서 예외가 아니다.18) 성향이나 관심사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같은 세대 작가들의 작업에 크건 작건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반영되어 있는 점은 사회적 억압에 저항해 사적이고 감각적인 것을 추구했던 1990년대 청년 작가들이 공유하는 시대적 특질일 것이다.


함양아, 〈픽셔너리 fiCtionaRy〉, 2002-2003. 싱글채널 비디오.

함양아, 〈픽셔너리 fiCtionaRy〉, 2002-2003. 싱글채널 비디오.

3. 사회가 부여하는 대서사를 불신하고 내밀한 감성과 직접적인 감각을 추구하던 함양아의 작업은 2002년경 커다란 전환을 겪는다. 자신을 향하던 시선이 밖을 향하게 된 것이다. 체제를 부정할 때 오는 마찰과 그 과정에서 스스로 느낀 고립감은 문제의 해결을 내가 아닌 구조에서 찾게 만들었다.19) 2002년부터 2004년 시기의 작업들은 눈을 타자로 돌려 사회 속 개인의 소망이 현실과 마주치며 발생하는 환상들을 다룬다. 욕망이 실현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때, 인간은 현실에 적응하거나 또는 저항하거나 그도 아니면 스스로 환상을 만들어 도피하게 된다.20) 작가는 이 세 가지 선택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개인적 · 집단적 환상을 탐색한다. 이때 눈여겨볼 점은 담고자 하는 내용(서사)과 이를 담는 그릇(영상의 구조)의 조응이다. 한 여성의 불안한 심리를 끊임없이 변화하는 내러티브와 순환적인 편집으로 표현한 〈그녀의 꿈속에서는〉처럼 초기 작업에서도 서사에 맞는 형식에 대한 고민은 늘 존재해왔지만, 2002년 이후 작업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훨씬 본격화된다. 장면들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연속적으로 흘러가게 구성된 〈픽셔너리〉의 구조는 독립영화의 제작 과정이라는 소재에 맞게 필름 롤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고안되었다. 왼쪽 채널과 오른쪽 채널이 대칭적 구성을 이루는 〈삶 속의 ... 꿈〉의 3채널 포맷은 사회에서 밀려나 도피와 같은 꿈을 꾸는 인물과 소망을 현실과 조율하며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인물을 대비시키기 위해 착안했다. 세 개의 화면을 수직으로 배열한 〈트랜짓 라이프〉 역시 선상, 선실, 지하층으로 이루어진 배의 물리적 구조를 반영함과 동시에 사회 속 계층 및 자연계의 위계를 암시한다.


함양아, 〈삶 속의 ... 꿈〉, 2003-2004. 3채널 비디오설치.

함양아, 〈삶 속의 ... 꿈〉, 2003-2004. 3채널 비디오설치.

스스로에서 타자로, 그 타자가 사회와 관계 맺는 양상으로 확장된 함양아의 시선은 이후 개인을 통제하는 사회 시스템(〈넌센스 팩토리〉(2010-2013))과 그 일부로서의 미술계(〈형용사적 삶〉), 인간 사회와 자연의 관계(〈황무지 - 사회 안의 - 사회화된 자연〉(2014))로까지 확대된다. 이 과정이 작가 자신의 삶과 붙어 있다는 것이 그의 작업이 지닌 특수성일 것이다. 2002년 이후 함양아가 미국과 한국, 중국, 터키, 네덜란드를 오가며 경계인으로 산 삶의 방식은 이 시기 작업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일차적으로 작가의 육체적 이동이 영상의 직접적인 소재가 되는데, 〈삶 속의 ... 꿈〉이나 〈공산주의 관광〉(2005)처럼 탈것에 직접 올라타 피사체와 함께 이동하거나, 〈트랜짓 라이프〉처럼 탑승 수단 자체를 대상으로 하거나, 〈기억의 허상〉(2005)처럼 여행자로 관찰한 낯선 장소의 이질적 시공간을 찍는 것이 일례다. 그러나 물리적 이동이 단순히 작업의 소재를 제공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고 타자를 바라보는 관점을 결정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삶 속의 ... 꿈〉까지의 작업이 사회 속 ‘개인’에 방점이 있었다면, 레지던시를 위해 중국에 체류하며 다른 삶의 방식을 경험한 2005년 이후의 작업은 각기 다른 사회 체계와 문화의 차이, 이동과 이주 같은 훨씬 포괄적이고 구조적인 쟁점으로 이행한다. 완전히 내부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외부인도 아닌 중간적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함양아의 시선은 늘 거주지를 옮기면서 여러 장소에서 동시에 사는 작가의 실제 삶의 소산이다. 관찰자이자 동시에 화자인 화법이나 사회에서 소외된 대상에 대한 관심 또한 스스로를 이방인이라 간주하는 특유의 삶의 태도와 결부된다. 거주자가 아니었기에 한국미술계에도 경계인이었던 함양아의 이중적 지위는 계(界) 내부에 있던 다른 작가들과 상이한 길을 걷게 만든다. 외부 자극에 민감하고 변화의 속도가 빠른 한국미술계에서 작가는 좋든 싫든 계가 원하는 바에 반응하게 된다. 업계의 유행이나 수요가 젊은 작가의 행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각하면, 한국미술계와 한 발짝 떨어져 있어 계의 요구에 압박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함양아의 위치는 외적 요인과 무관하게 내적 필연성으로 스스로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그런 점에서 함양아의 이행적 삶은 ‘추상화된 현실’을 구축하는 동인이자 토대요 본질이 아닐 수 없다.



1 김선정과 함양아의 인터뷰,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어느 곳에도 속하는", 《함양아》, 사무소(SAMUSO: Space for Contemporary Art), 2011, p. 182.
2 이 시기에도 2003년에는 뉴욕의 레지던시에 참가했다.
3 이 전시는 당시로서는 예외적으로 연령대를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의 작가들로 대폭 낮춰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참여 작가 중향후 중견 작가로 성장한 이들이 많아 미술계의 이목을 끌었다.
4 참여 작가 : 김나영, 김현수, 배영환, 이진경, 임민욱, 정수진, 정연두, 함경아, 함양아, 김수진, 박성환, 이원희, 임정규, 공장 MAFI(공장장 정혜승), 함진. 참여 작가인 김세진, 김준, 김창겸, 박혜성, 장윤성, 장지아, 최종범, 함양아는 당시 주목받던 30대 초중반의 미디어 작가다.
5 대표적인 전시로 《99 여성미술제 - 팥쥐들의 행진》(김홍희, 김선희, 임정희, 오혜주, 백지숙 기획, 예술의 전당 미술관, 1999), 2002 광주비엔날레(총감독 성완경, 2002)를 꼽을 수 있다.
6 필자와 함양아의 인터뷰, 2019년 1월 20일.
7 《98 도시와 영상 : 의식주전》, 서울시립미술관, 1998.
8 필자와 함양아의 인터뷰.
9 《웅얼거리고 일렁거리는 전》 연계 백남준아트센터 아티스트 토크, 2018년 4월 14일.
10 함양아 작가 노트, 2015.
11 필자와 함양아의 인터뷰.
12 이 시기 작가는 감각을 총동원하기 위해 시청각 매체인 영상이 포착하지 못하는 후각을 활용하기도 했다. 《98 도시와 영상 : 의식주전》에서 콩나물을 설치해 비릿한 냄새를 풍기거나, 〈상처〉를 상영하며 비린 향을 전시장에 푼 것이 좋은 예다.
13 김선정과 함양아의 인터뷰, p. 182.
14 위의 인터뷰.
15 위의 인터뷰.
16 필자와 함양아의 인터뷰.
17 2000년에 제작한 일련의 작업인 〈강철태양〉, 〈검은 질주〉, 〈매스 게임〉이 이에 해당한다.
18 시사적 쟁점을 미술교과서의 포맷을 차용해 비튼 초기작 〈학습〉(1995)이 대표적이다. 클린턴과 김영삼의 밀월 관계를 채도 대비로 비꼬거나 남북문제를 태극 문양의 색 혼합으로 비유하는 풍자의 날카로움은 경쾌한 이미지 감각 못지않게 선명하다.
19 필자와 함양아의 인터뷰.
20 김선정과 함양아의 인터뷰, p. 190.



※ 이 원고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시각예술 비평가 - 매체 매칭 지원’을 받아 월간미술 2019년 2월호(409호)에 수록된 것으로,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월간미술과 콘텐츠 협약을 맺고 게재하는 글입니다.

문혜진

미술비평가, 번역가, 미술사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