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세계]의 2019년 5월 표지 작가는 조각을 매체 삼아 전통문화를 현대적 조형으로 풀어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온 강용면(1957-) 작가다. 전라북도 완주의 아원고택에서 개최 중인 작가의 22번째 개인전 《전통을 품다》(4.1-8.31)는 한옥과 작가의 대표작들이 어우러져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감각을 선사하고 있다. 1980년대 작가의 이름을 미술계에 알린 목각 작업부터 2014년 공개되어 근래 강용면 작가를 대표하는 〈현기증〉, 2018년 서울 전시 《응고》(공간41, 8.29-9.9)에 선보인 〈응고〉 연작까지 그의 작품세계 전반을 이번 전시를 통해 만나보자.
글 백지홍 편집장
강용면 작가는 군산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했다. 1991년 전주 얼화랑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22회의 개인전을 개최하고 《부산비엔날레 바다미술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경기도박물관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현재 아리울 조형연구소 대표, 외교통상부 문화외교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1990), '중앙미술대전' 우수상, '전북청년미술상'(1991), '한국일보청년작가초대전' 대상, '자랑스런 전북인 영광의 얼굴 문화예술부분'(1995) 등을 수상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250년 된 한옥을 종남산 산자락 오성마을에 옮겨온 문화 공간 아원고택에서 강용면 작가의 작품 세계를 아우르는 전시가 열린다는 점은 퍽 흥미롭다. 30여 년 조각 작업을 지속해온 강용면의 다채로운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주제 의식이 있다면 전통에 대한 관심이기 때문이다. 실내 갤러리 공간뿐만 아니라 아원고택의 야외 공간 곳곳에 자리 잡은 작가의 작업은 산자락의 곡선, 그리고 한옥 지붕의 곡선과 어우러져 기존에 선보인 적 있는 작업들도 새로운 작업처럼 다가온다. 《전통을 품다》에서 선보인 작업들을 바탕으로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작업 중 목조각 〈역사원년(歷史元年)〉은 강용면 작가의 다채로운 작업들의 뿌리라 할 만하다. 나무를 조금은 투박한 듯 깎아내고 채색한 인물상은 정감 어린 느낌을 준다. 이채색 목조각 연작 〈역사원년〉은 그의 작품세계 초반부를 화려하게 장식한다. 조각에 색을 입히는 시도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동서를 막론한 오랜 전통이다. 그러나 미술교육이 새로이 자리 잡던 시기 한국에서 완성된 조각에 채색하는 것은 일종의 암묵적 기준에서 벗어난, ‘괜한 짓을 해서 다 완성된 작품을 망치는 일’이었다. 꼭두각시 조각의 미감을 재현하기 위해 1980년대 말부터 제작한 〈역사원년〉은 1991년과 1992년 두 차례의 개인전을 통해 강용면이라는 이름을 미술계에 각인시켰고, 이로써 채색 조각에 대한 선입견도 깨졌다.
성완경 평론가는 1994년 금호미술관에서 개최된 《강용면 조각전: 역사원년》(11.25~12.4)에 대해 평한 "민속적 고졸미의 현대적 변용"에서 '한국적 전통에 착안한 작품이되, (중략) 부드럽고도 친근하며 신선한 작품'이라며 세 차례의 개인전을 통해 정립된 그의 목조각을 호평했다. 이러한 호평은 1990년대 내내 지속되어 [월간미술]이 선정하는 젊은 작가에 선정되는가 하면 1990년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1991년 '중앙미술대전' 우수상, 1995년 '제 1회 한국일보 청년작가 초대전' 대상을 수상하고 《98 한국미술 독일순회전》(베를린, 아헨)을 통해 독일연방TV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이는 작가로서 자신이 탐구하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가 존재함을 인정받는 일이었을 것이다.
보다 추상화되고 패턴화된 후반기 목조각 작업이 등장한 2000년 전시의 서문 "溫故知新-강용면 조각展"을 작성한 최두수 작가는 강용면 작가가 '단절된 우리의 전통과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하는 오늘날의 삶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한다고 표현했다. "강용면 세대에 있어서 바로 이 전통과 새로움의 문제는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 특히 민족사의 질곡을 그대로 담고 있는 이 세대들은 남한의 현대사에 있어서 전통이 얼마나 버거웠는지에 대해 몸으로 직접 느낀 세대들인 것이다. 19세기적 사고로 20세기를 살며 두려운 마음으로 21세기를 맞이해야 했던 세대가 바로 강용면 세대였다.”라며 세대론으로 귀결되는 글의 마무리 부분은 더욱 주목할 만하다. 전통에 대한 특정 감각을 세대의 특성이라 말하는 것은 디테일들을 놓칠 위험이 있지만, 실제로 1950~60년대생 미술인들에게서 전통의 문제는 주요 논제로 등장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강용면 작가 역시 2019년 4월 8일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미술의 자존심을 지키고, 우리 사고를 바탕으로 평가해야 문화가 다양해지고 인간의 삶이 풍부해진다고 봅니다.”라고 말하며 ‘우리 것’에 대한 생각이 여전히 작업의 중심에 있음을 밝혔다. 전시의 제목도 《전통을 품다》이지 않는가.
너무나 많이 언급되어 사실상 그 의미가 퇴색되었음에도 ‘전통의 현대화’는 오랫동안 발전시켜온 독자적인 문화와의 극심한 단절을 겪었어야 했던 곳에서는 강한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는 개념이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의 폐허 위에서 서구를 따라 잡기 위해 노력해야 했던 한국은 그 대표적 사례다. 그런데 우리 것 혹은 우리 미술이라고 말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조선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내려오는 전통미술이 큰 의미를 차지할 것이나, 겉으로 보이는 외양적인 면이나 기법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 것 같다. 강용면을 비롯한 작가들이 말하는 우리 것은 보다 ‘정신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강용면 작가가 말하는 우리 것의 의미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파고들어 보자. 그는 창작의 기저에 성장기에 접한 유교 문화와 샤머니즘이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 사회 규율로는 한학(漢學)의 전통이 이어져 왔으며, 일상생활에서는 샤머니즘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는 전북 김제에서 나고 자라, 현재도 전북 군산에서 작업을 이어 가고 있는 그는 좁게는 자신에 몸에 밴 지역의 문화를 작품으로 승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보다 넓게 본다면 그가 표현하려고 하는 ‘우리 것’은 자신에게 익숙한 풍습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전통을 자리 잡게 하는 원동력, 다시 말해 전통이라는 ‘뿌리의 뿌리’인 것이다. 다양한 문화와 전통이 지키고, 전달하고자 한 이 근원적인 정신은 작가의 성장과 함께하였으며 현재의 삶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동시에 사회, 문화의 단절과 급격한 변화 속에 묻혀 버린 것들이기에 전통을 찾아내고 계승하는 작업은 일종의 현대의 고고학이라 부를만한 것이 되었다. 강용면 작가와 같은 이가 없다면 전통 중 일부는 곧 그 존재가 잊힐 것이다. 이 고고학적 작업을 위해 그는 자신에게 가장 강렬한 영감을 주는 고향을 떠나지 않고 작업을 이어왔으리라.
강용면 작가의 작업처럼 전통의 형식과 개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작업들은 개념은 남았지만 형식은 사라진 것, 또는 형식은 남았지만 왜 그러한 형식인지 내용이 사라진 수많은 전통이 적절한 의미를 부여받고 가치를 평가받도록 돕는다. 그의 첫 번째 대표작 〈역사원년〉이 상여를 꾸미는 꼭두각시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미술애호가와 작가들에게 채색 목조각의 아름다움을 다시 바라보게 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그런데 ‘전통의 계승자’라는 측면으로만 강용면 작가의 작품세계를 본다면 금세 어색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관람객의 입장에서 강용면 작가의 작업은 전통보다는 다채로운 변화가 더욱 큰 특징으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채색 목조각을 통해 이름을 알렸지만, 그곳에 머물러 있지는 않았다. 그가 들려주는 이유는 간단하다. “예술가는 시대에 맞춰야 한다.” 여기서 시대에 발맞춘다는 것의 의미란 미술계라는 좁은 분야의 유행에만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 아니라 미술을 둘러싼 사회와 호흡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역사원년〉 연작을 비롯해 보다 직접적으로 전통이 드러난 초기 작업이 등장한 1980년대는 급격한 산업화를 거치며 폐기되고 잊힌 우리 것을 찾는 것이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일종의 당위로서 존재했던 시기였다. 강용면 작가 역시 그러한 흐름에 공감하여 자신의 성장기에 보았던 상여의 전통 조형을 현대미술로 풀어낸 작업을 이어온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작업이 10년을 넘어서면서 과거의 것을 통해 정체성을 찾는 작업의 한계가 명확해졌고, 보다 동시대의 이야기를 담기 위한 변화의 과정이 진행되었다. 시기에 따른 강용면 작가의 작업의 변화가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의 작업 대부분이 작가의 몸보다 큰 스케일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작품이 큰 만큼 그 앞에서 느끼는 진폭 또한 클 수밖에 없다. 사실 기존 작업의 연장선에 있음이 분명한 목조각들도 다양하게 변화되어 왔다. 전형적인 꼭두각시 형상의 조각을 시작으로 패턴화하여 부조 형식으로 변화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작은 조각들이 뭉쳐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고 공중에 매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기존 작업으로부터 급격한 변화를 느끼게 한 것은 역시 나무라는 전통적 소재에서 벗어난 2000년대 초중반 작업부터다. 2004 년 전시에서 선보인 〈온고지신-부처〉와 같은 작품은 부처, 기와 문, 수탉 등의 전통적인 도상을 동으로 된 뼈대에 아크릴판을 이용해 만듦으로써, 비록 주제는 전통적일지라도 그 형상은 완전히 새로운 미감을 전달하게 되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진행된 네 차례의 개인전은 ‘온고지신’이라는 큰 제목은 지속하면서 빛, 나무, 낮춤, 비움이라는 부제를 붙여 다양한 실험을 지속했는데, 2007년 전시 《온고이지신-나무》에 대해 함성언 기획자는 “그간 평단과 관객이 부여한 강용면식 작업에서 탈피된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면서 전기 가마, 자동차용 도장(塗裝) 기계, 아크릴 등 재료와 제작기법에 대해 상세히 논했다. 그만큼 강용면의 변화는 파격적인 것이었고, 전통(正)과 변화(反)의 만남(合)을 기대할만한 것이었다. 이번 아원고택 전시에서는 아크릴 작업을 볼 수는 없었지만, 당시 진행된 변화의 결과 레진과 우레탄, LED 등 확장된 재료의 사용이 오늘날 작업까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전통을 품다》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2018년 전시 《응고》에서 선보인 육중한 부피감과 거친 질감이 인상적인 작업들이다. 레진과 우레탄으로 만든 형상 위에 두껍게 유화를 덧입혀 묵직한 질감을 만들어낸 이 작업들은 이번 전시에서는 한옥과 자연이 마주하는 야외에 설치되어 있다. 실내 전시장에서는 다소 부담스럽게 목소리를 내던 작업도 자연 속에서는 스며들어 어우러진다. 한옥과 자연 속에 자리 잡는다는 점에서 지난 《응고》전은 물론이고, 강용면 작가가 기존에 진행한 야외 설치작업들과도 차이를 일으킨다. 매체의 변화에도 작가가 고집해온 오방색을 기초로 한 강한 색상이 아니었다면 오히려 제 목소리를 못 내었을지 모르겠다.
이번 전시가 기존 대표작들을 엄선하여 선보인 데서 알 수 있듯이 강용면 작가는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면 기존의 작업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이 존재하는 그곳에서 작업의 영역을 넓혀 왔다. 그렇기에 그의 작업세계는 다양한 특성들을 품은 넓은 영역이 되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일상 풍경이자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제의적 역할도 담은 고봉 밥그릇 소재의 작업은 이번 전시에 등장한 마티에르가 강조된 작업 외에도 스테인리스나 꽃 등 다양한 소재와 형태로 변주되어 왔다. 이는 전통의 현대화라는 큰 주제 의식이 작업 전반을 아우르고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응고〉 연작보다 조금 더 이른 시기인 2004년에 시작된 〈현기증〉 연작은 강용면 작가의 근작 중 가장 주목받은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 작업은 나무로 인물상을 조각한다는 점에서 〈역사원년〉과 직접적인 연관을 갖는 작업이다. 고은 시인의 『만인보』에서 영감을 받아, 시에서 묘사된 인물과 자신의 주변 인물들 그리고 언론의 조명을 받는 동시대 인물들의 얼굴을 하나씩 조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10여 년의 세월 동안 작품에는 조금씩 변화가 있었다. 제목이 〈온고지신-얼굴〉, 〈온고지신-만인보〉 등이었을 뿐만 아니라, 작품을 이루는 얼굴 조각들은 채색되어 있어 그 강렬함에도 불구하고 기존 작업의 연장선에서 이해되었다.
〈현기증〉 연작이 독립된 작업으로서 영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14년 전시부터였다. 가장 큰 변화는 얼굴을 칠했던 다양한 색상이 검은색으로 통일되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개별 인물들에 집중되던 작업은 하나의 덩어리로서 인식되기 시작했다. 채색되었을 때보다 어둡고 무거워진 각 인물들은 현실의 무게를 지닌 듯이 보인다. 심상용 평론가는 "공화(共和)의 터에서 움트는 유위(有爲) 의 공동체"에서 이러한 무게감을 '서사적 긴장감'이라 표현했다. 그는 작품을 이루는 각 인물을 민중이라 칭하며, 전체 작품에서는 그들의 민주적 연대를 읽어냈다.
이러한 해석에 설득력을 더하는 것은 작은 요소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제작방식과 각기 다른 사연을 품은 인물상의 조화를 통해서다. 작은 조각 안에 표현된 개별 인물들은 각자의 이야 기를 품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가는 실존 인물의 외양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담아내기 위해서는 하루에 한 작품밖에 제작할 수 없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단순한 형상의 얼굴도 있지만 수백, 수천의 얼굴이 모여 이루는 〈현기증〉은 노동집약적인 작업으로서의 스펙터클 역시 선사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강용면 작가의 2014년 전시를 우수전시로 선정하고 전국 4개 지역의 순회전을 진행하기도 했다. 2015년 개최된 우진문화재단 25주년 기념 강용면 초대전 《사람은 사람 속에서만 사람이다. 세계이다.》(3.19~4.8)는 얼굴뿐만 아니라, 전신상, 한옥 등 검고 작은 요소들이 모여 대형 작업을 만드는 방식의 정점을 보여준 전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작가는 많은 인물이 모인 이 작업에 왜 ‘현기증’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일까. 이 질문에 그는 이 작업이 갈등을 포함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표현한 것이라 답했다. 한정된 사람들을 만나던 과거와 달리 복잡해진 현대 사회에서는 일상 속에서도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복잡한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 현기증을 유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작품을 이루는 이들이 심상용의 해석처럼 평등하고 민주적 관계 속에 있다 해도, 그럴 경우 더욱 현기증을 유발할 것이다. 평등한 사회일수록 획일적이고 폭력적인 기준이 아니라, 각자의 사정에 따라 상대적인 기준을 적용하며 살아야 하니 말이다. 우리는 쉽고 편한 길이 아닌, 다소 어렵지만 옳은 길을 향해 가고 있다.
〈현기증〉이 현대사회를 은유적으로 선보인다면, 이번 전시에서 〈현기증〉의 옆자리에 설치된 〈4월의 눈물〉은 보다 직접적으로 사회 문제를 언급한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자 팽목항을 방문했던 작가는 4년이 지난 2018년에야 덩어리 맺혀진 슬픔의 감정을 흘러내리는 듯한 형상을 표현해냈다. 유사하지만 보다 단순한 형태의 〈응고〉 역시 응어리진 감정을 표현했는데, 각기 아원고택의 실내 전시장과 실외의 수면 위에 설치되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강용면 작가에게 강하고 무거운 감정은 수면에 반사된 거울상까지 볼 때 제대로 파악 가능한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감정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물 위에 떠 있는 듯 보이는 조형물과 같은 것이라 말하고 싶은 것일까. 전통에서 시작해 뿌리를 파고들어 간 강용면의 작업은 인간 심리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가 닿은 듯하다.
조은영 평론가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9년 전시에 대해서 '지역화와 세계화 사이의 절묘한 중심잡기'를 강용면 작가의 현 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 그의 작업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번 전시를 통해 이 질문에 답해보자.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관심은 보편적인 주제 의식에 부합할 것 같다. 그렇다면 지역성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채색 목조각과 같은 초기작업 방식도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기에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문제는 전통적인 재료에서는 고풍스러웠던 표현이 새로운 재료에서는 어색함을 자아내는 등, 전통과 현대가 맞닿는 순간 일부 촌스러운 모습이 연출될 때다. 그러한 지점들을 어떻게 다듬느냐가 시각예술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좌우할 것이다. 잠시 방문한 작업실에는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작업들이 제작되고 있었다. 어쩌면 그 작업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감각을 선보일지 모르겠지만, 전통과 인간에 대한 관심(엄밀히 말해 이 둘은 하나이다.)은 지속될 것이고, 강용면 작가의 작품세계는 넓어질 것이다. 그리고 넓어진 작품 세계는 이번 아원고택에서의 전시처럼 좋은 작업들을 선별하여 조합하는 것을 가능케 할 것이니, 우려보다는 기대가 앞선다.
백지홍은 예술학과 미학을 전공하고 미술전문월간지 『미술세계』에서 2013년부터 기자로, 2016년부터 편집장으로 근무했다. 문화와 예술의 창작만큼이나 그것이 어떻게 유통되고 소비되는지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기획과 비평을 통해 미술에서부터 대중문화까지 아우르고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