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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철 – 층화된 실재와의 즉물적 조우

posted 2019.10.01


문혜진 미술비평


김윤철의 작업은 비가시적 물질과 광자(光子)의 흐름이 이미지로 구현되어 있어 대단한 에너지를 상상하게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에너지는 인간의 감각으로 인지할 수 없는 것이라 물성을 가진 대상으로 파악하기란 어렵다. 김윤철은 바로 그것을 가시적 실제로 구현하려 한다. 그 연장선에서 작업의 내용과 맥락을 견지해왔다. 곧 열리는 그의 개인전 《GLARE》(9.19~11.17,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비인식적 에너지를 확인해 보기 바란다.


김윤철 작가. 사진 박홍순

김윤철 작가. 사진ⓒ 박홍순

김윤철 1970년 태어났다. 추계예대 작곡과와 쾰른매체예술대(Kunsthochschule für Medien Köln) 오디오비주얼매체 전공을 졸업했다. 한국을 비롯해 독일, 슬로베니아, 영국 등지에서 15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또한 국내외 다수의 그룹전과 기획전에 출품했다. 2016 콜라이드 국제상(2016),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장려상(2006), 트랜스미디어알레(2004) 등을 수상했다. 현재 인천에서 작업하고 있다.


얼마 전 영화 〈기생충〉 열풍을 보면서 기묘한 시대착오성을 느꼈다. 그것은 이미 미술사 방법론으로는 구닥다리가 된 도상학이 대중영화 비평에서는 공고히 건재하다는 데서 온 아이러니였다. 동시대 시각문화의 첨병인 영화의 해석에 이미지의 만듦새나 질감이 아니라 영화가 숨겨놓은 상징들을 얼마나 많이 그리고 잘 해독하는지가 영화의 훌륭함을 증명하는 관건이라는 점은 사람들이 이미지를 의미를 담는 그릇으로 보지, 특정한 물성과 형태를 지닌 사물로 보지 않음을 뜻한다.


김윤철이 문제시하는 지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다만 그가 바라보는 것은 언어의 지배를 벗어난 이미지가 아니라 이를 구성하는 근원으로서의 물질이다. 이는 대상의 언어적, 시각적 재현에서 그 육신인 물질 자체로 방점을 옮기는 것을 뜻한다. 쉽게 말하자면 사과 그림에서 사과(의미)나 재현된 형상(이미지)이 아닌 형상의 토대가 되는 물감이라는 물질에 주목하는 것인데, 그린버그 등의 유물론적 추상주의자들이 추구하는 바보다 훨씬 미시적이자 거시적으로 비단 미술을 넘어 세계를 사유하는 방식을 재설정하는 철학하기로서 미술적 실천을 수행하는 것이 김윤철 작업의 독특성일 것이다.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언어로 정의되기 이전의 어떤 것”, “형태로 포착되기 이전의 무엇”, “문화로 포착되기 이전의 차원”이 그가 지향하는 물질성으로, 이는 물질과 개념을 분리하고 대립시키며 위계를 설정해 온 서양철학과 이미지를 재현으로 해석해 온 서구미술의 전제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전복시키는 것이다.


2018년 주영한국문화원에서 열린 김윤철 개인전 〈Dawns, Mine, Crystal〉 전경. ⓒDan Weill, Mark Blower and Artist.

2018년 주영한국문화원에서 열린 김윤철 개인전 《Dawns, Mine, Crystal》 전경. ⓒDan Weill, Mark Blower and Artist.

김윤철에게 물질은 세계와 분리된 것이 아니며, 하나의 대상으로 고정된 것도 아니고, 의식이나 개념과 대립되는 것도 아니다. 이를 위해 그는 매터리얼리티(Mattereality)와 매터링(Mattering) 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각각 ‘물질의 실재’, ‘물질되기’ 정도로 번역되는 이 개념은 물질을 완결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무언가로 보고 실재와 현상을 분리 불가능한 것으로 상정한다. 물질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부분이 아니며 질료(matter)와 그것의 실재(reality)로 분리되지 않은 채 시공간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출렁이고, 얽히며, 서로에게 연루되고, 되어가는” 것이 김윤철이 정의하는 매터리얼리티다. 실상 이런 생각은 가정이 아니라 누구나 경험하는 물리적 진실로, 완결된 것으로 보이는 화학 반응은 잠정적인 동적 평형 상태에 있는 것일 뿐 조건이 변하면 언제든 재개되고 우리의 육신을 비롯한 사물 역시 환경과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며 지속적인 엔트로피의 과정 아래 있다. 물질이란 세계나 관찰자와 분리된 대상이 아니고 그것들과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고 상호침투하는 우주적 연속성의 체계다. 이런 관점은 인간중심적이고 이분법적인 형이상학을 거부하는 여러 서구 사상가와 접점을 지니는데, 브루노 라투어(Bruno Latour)의 행위자-연결망 이론, 퀭탱 메이야수(Quentin Meillassoux)의 사변적 실재론, 질베르 시몽동(Gilbert Simondon)의 능동적 질료 개념이 대표적이다. 그중에서도 김윤철이 강조하는 것은 ‘과정’과 ‘비인간 행위자’ 개념인데, 이는 작업실에서 문자 그대로 무수한 실험 과정을 거쳐 원하는 물성을 발견하는 작가의 작업 방식과 결부된다. 그는 실재란 단순히 물질의 객체가 아닌 과정들로 구성되며 하나의 과정은 또 다른 과정들과의 관계 안에서 규정되기에 실재는 독립적인 개별 질료들의 조각으로 구성될 수 없다는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의 생각에 동의하고, 측정 대상뿐 아니라 관련된 모든 장치 및 관찰 행위까지 행위 주체에 포함시키는 캐런 바라드(Karen Barad)의 사상에 공감한다. 그렇기에 김윤철의 모든 작업은 끊임없이 환경 및 인접한 사물들에 반응하는 진행형이고, 물리적으로도 유체인 경우가 많으며, 출품된 결과물뿐 아니라 원하는 물질을 찾는 작업 과정과 이를 구현하는 하드웨어 장치, 작품이 놓이는 공간과 이에 반응하는 관객까지 모두 사건 행위자로 작업의 일부가 된다. 개념과 언어로 표상되는 세계를 끊임없이 유동하는 물질들의 세계로 전환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언어로 파악되기 이전의 즉물적 물성과 맞닥뜨리게 하는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선보여 잘 알려진 〈Effulge〉(2014)는 생성 중인 원시 우주나 태양의 플라스마 운동을 닮은 유체의 흐름을 통해 금속성의 액체가 지닌 물성을 생생히 현시한다. 그 어떤 구체적 대상도 부재하는 입자 자체의 유동은 실제의 재현이 아니라 실체의 제시로 의미화 작용 이전에 몸으로 체험하는 현상학적인 조우다. 마이크로튜브 설치인 〈Cascade〉(2016-2017)는 튜브와 액체의 굴절률을 동일하게 조정해 액체가 있을 때는 튜브가 보이지 않고 액체가 없거나 하이드로젤이 발생했을 때에만 튜브가 보이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액체의 운동을 가시화한다. 실리콘에 외력을 가해 응력을 발생시키고 재료의 변형에 따른 굴절률 변화가 현란한 색채로 반영되는 최근작 〈Amorph〉(2018) 역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어떤 형상이나 개념이 아닌, 인공적인 염료를 가하지 않은 젤라틴 재료 고유의 색이다.


김윤철, 〈Tubular〉, 2018. PDMS(고분자물질), 마이크로 튜브, 가변설치.

김윤철, 〈Tubular〉, 2018. PDMS(고분자물질), 마이크로 튜브, 가변설치.

이 지점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김윤철이 의도하는 바가 단순히 신소재의 물성 체험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가 추구하는 것이 “물질이 어떤 특정 상태에서 자신만의 사건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새로운 성질의 물질 창안과 그 특질의 경험이 김윤철의 작업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것은 맞으나, 그의 지향이 특정 물성을 지닌 질료 자체라기보다 질료가 끊임없이 계와 상호작용을 하는 내적작용(intra-action)의 상태 창출이기에 그의 작업의 본체는 실체로서의 질료 발명이 아니라 질료와 개념이 통합된 매터링의 실천이다. 그렇기에 비중과 극성이 다른 두 액체가 서로 섞이지 않으며 상하운동을 하는 〈Flare〉(2014)는 단순히 유체의 운동과 그 조형적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시인 노발리스(Novalis)가 “물(추락과 차가움)은 불꽃(상승과 뜨거움)이다”라고 말하는 양존 병립하는 물질의 시적 상상력의 구현이 된다. 신작 〈Coptic Light〉(2019)에서 얇은 하이드로젤 층을 여러 겹 쌓고 잡아당겨 층층이 겹쳐진 색의 아른거림을 만드는 것도 그저 재료 실험이나 추상적 색채 미의 구현이 아니라 실재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고 다른 여러 사건이 쌓여 존재하는 층화된 실재(laminated reality)라는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의 생각을 가시화시키는 실천이다.


그렇다면 각기 다른 물질로 구성된 작품들이 한데 모이고 여러 관람객이 이들을 감상하는 전시야말로 다층적인 “물질적 실재의 망”(작가)이 펼쳐지는 장일 것이다. 곧 열릴 바라캇 컨템포러리의 개인전은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우주에서 날아온 뮤온 입자에 반응해 전시장이라는 장소가 지구 밖과 연결되어 있음이 실체화되고, 나무의 삼투 구조를 모방한 튜브와 펌프의 상호작용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유체의 흐름이 구현되며, 압력으로 틀어져 색이 생긴 하이드로젤의 변이로 물질에 가해진 힘의 상태가 가시화된다. 작품들은 제각기 “변화하는 주체로의 물성”(작가)을 드러내지만 중요한 것은 이질적인 작업들이 공간 속에서 부딪치며 만들어낼 또 다른 에너지와 그것에 반응할 나 자신의 변화다. 우리가 전시를 보는 이유는 작업이 내게 주는 모종의 자극 때문일 텐데 그 에너지의 교환을 가장 근원적인 차원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이 김윤철의 전시다. 이를 가시화하는 작업의 구조에 우연과 의도, 과학과 미학이 어떤 식으로 얽히는지도 현상학적 만남 못지않게 흥미로운 지적 마주침일 것이다.


김윤철, 〈Effluge〉, 2012-2014. 아크릴, 유리, 알루미늄, 포토닉 크리스털, 네오디뮴, 자석, 모터, 마이크로 컨트롤러, 전자기장 발생기, 에어펌프, 410x160cm(가변설치).

김윤철, 〈Effluge〉, 2012-2014. 아크릴, 유리, 알루미늄, 포토닉 크리스털, 네오디뮴, 자석, 모터, 마이크로 컨트롤러, 전자기장 발생기, 에어펌프, 410x160cm(가변설치).


1)김윤철, "매터리얼리티", 『체계와 예술』(박영선 엮음), 이학사, 2017, p. 209.
2)앙리 베르그손, 『물질과 기억』(박종원 옮김), 아카넷, 2005, p. 451.
3)김윤철, 앞의 글, pp. 198-205.
4)김윤철, "김윤철: 물질에 깃든 잠재성을 찾다"(김윤철과 김희영 대담), [SPACE], 2015년 2월, p. 99.
5)김윤철, "액체의 시적 상상력", [아트인컬처], 2017년 10월, p.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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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까지 독학했다…"온갖 것 예술로 만드는 나는 잡종"」, 조선일보, 2019년 10월 9일


※ 이 원고는 월간미술 2019년 9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월간미술과 콘텐츠 협약을 맺고 게재하는 글입니다.

문혜진

미술비평가, 번역가, 미술사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