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작가

박관택 : 기억 사용자 t 의 버퍼링

posted 2020.07.15


김지연 전시기획자, d/p 디렉터


기억1) 사용자2) t3) 의 버퍼링4)


“네 에/그럼그렇게하시죠./아,그럴까요? 네,네네/그럼 혹시 언제쯤괜찮을까요?/네.내일요?네.괜찮을것같긴한데,/그럼, 어떻게할까요? 생각좀 해보시겠어요?”6)


언제든 추가, 전환, 삭제 가능한 사용자 t는 유연하다. 이중부정이 조력하는 그의 사회성은 당위를 획득했으며, 불확실함은 겸손을, 청유는 명령을 지시했다. 언젠가는 상식7)이 되고 말, 파격의 네트에 좀처럼 걸려들지 않는 t는 갖가지 형식을 부여받은 질료들 사이에서 다양한 날짜와 속도를 만끽하는 발췌와 인용의 시간에 걸쳐 있다.
정확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히려 비정확한 표현이다. ‘비정확함은 근사치와 같은 것이 결코 아니며, 오히려 일어나고 있는 중의 것의 정확한 경로’8) 이니, 공간과 시간이 불연속적일 가능성을 외면할 수 없는 t에게 시점時點이 포착한 시공의 기억이란 단지 계기일 뿐이다. 때에 따라 의미 이상의 의미를 분출한다 해도, 연속적이지도, 무한하지도, 동질적이지도, 등방적이지도 않은 우리 삶의 공간에서 메시지는 한발 뒤로 물러나도 좋다.


“아 그건 좀 다른 얘기죠. 네. 지금 당장 답을 드리긴 힘들것같네요./네.네.그쵸.그쵸그쵸 네.맞습니다. 아이고. 잘 알죠, 네네. 네?/제딴에는. 이렇게 말씀드릴수밖에없다는말씀드리는거죠.네/그래도 그걸감안해도,납득이안가는건안가는거니까요. 제입장도/그렇게말씀하실수밖에 없으신상황이신것은 잘알겠습니다”9)


무엇과 ‘더불어’ 기능할 것인가. 유일함은 좀처럼 권위를 내려놓지 않는다. 절대적 보편성은 차이를 억압하고, 배제했던 것을 향한 단상의 조합은 몰입을 방해한다. 잡념의 상태는 가장 기초적인 시각행위에 닿는다. 서사가 되기에는 짧은 단상이 ‘훼손 가능한 견고함’10) 에 기대 펄럭일 때, 이미지 사이의 버퍼링은 세팅된 우연이 좌우하는 매끄러움이다. 속도는 같은 이미지에 다른 감각을 싣는다.


박관택, <루핑(Loop)>, 2019, 종이에 아크릴, 칼로 자르기, 273 x 455 cm

박관택, 〈루핑(Loop)〉, 2019, 종이에 아크릴, 칼로 자르기, 273 x 455 cm

“네.네.네네.아.네네.네.네.네...네 음. 제말은요./하.아 참그렇네요.네?아니그니까,아까부터제말이그말이에요./뭐그렇긴한데꼭그렇게까지해야되나요?아정말요?/제말이그말인데,지금우리같은데요 아.같은말이라구요”11)


작업은 무수한 결정의 연속이지만 결정은 대개 랜덤하다. 결정의 근거를 고민하는 t는 임시 저장 공간 버퍼12) 에 머문다. 결정이 놓친 부스러기들은 직관이 견인한 기술 덕분에 사라지지 않지만, “우리는 그만 썰물이 시작되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13)


“네.그렇죠.그러실수는 있어요.그래도 그건좀/어쩔수없다...원래그렇다라는건좀./그게 이해안가는건아니죠./네.그게당연한것같아요./아 아니요그런건아닌데/아그래요?/네/아그래요?/네”14)


───

1)“기억을 단순히 지나간 약해진 지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지각과는 결정적으로(본성적으로) 다른 것으로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억이란 단순히 과거 지각의 각인과 잔상이 아니라 무한한 과거의 연쇄와 상호 침투로 이루어져 있다. 지속으로서 생동하는 시간에서 과거는 단순히 지나간 현재가 아니며, 현재는 결코 과거와 단절되어 있지는 않다. 현재와 과거는 절대로 동시적이며, 현재란 상호 침투하고 상호 연쇄하는 잠재적 과거의 집적의 선단임에 불과하다. 이러한 식으로 파악된 기억과 지속은 물질과 지각의 차원에 대하여 결정적인 질적 차이를 가지고 있다.” 파리 제8 대학에서 들뢰즈의 지도를 받아 아르토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일본인 우노 구니이치가 베르그송이 말하는 기억과 지속의 특성에 대해 언급한 것을 이정우, 김동선이 이렇게 옮겼다. 『들뢰즈, 유동의 철학』, 37. 2. 기억은 대뇌피질의 감각연합역에 저장되고, 해마는 기억형성에 관여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네이버 지식백과 생명과학대사전』 3. 지각되거나 학습된 인상들을 유지하고 재생하는 정신기능. 프로이트는 과학적 심리학을 위한 프로젝트에서 지각과 기억을 서로 다른 마음의 체계라고 설명했으며, 기억을 경험이 지닌 지속적인 세력이라고 생각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정신분석용어사전』 4. 일상에서 경험한 내용을 머릿속에 저장하고 보존했다가 필요한 시기에 회상하여 인지해 내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교육심리학용어사전』 5. 일반적으로 기억이라고 할 때에는 기억되는 내용과 그것을 환기시키는 작용이 구별되는 경우가 많다. 『네이버 지식백과 현상학사전』 6. 잊지 않고 외워둠. 『네이버 지식백과 라이프성경사전』 7. 기억력이 완전히 멈춘 적은 없었다. 불완전한 상태로 후퇴한다.
2)사람을 부리거나 물건을 쓰는 사람. 2.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에게 그에 대한 보수를 지급하는 사람. 곧 근로자를 고용하는 개인이나 법인. 3.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 『표준국어대사전』
3)T세포가 항원자극을 받아 효과기세포가 되었을 때, 일부의 세포는 정지기에 들어가서 기억T세포가 된다. 기억T세포는 효과기세포가 사멸한 후에도 장기간에 걸쳐 생존한다. 또한 재차 같은 항원과 반응하면, 나이브T세포에 비해 극히 단시간에서 증식을 개시하여 대량의 효과기세포를 유도하는 것으로서 급속 또한 강력한 2차면역응답을 야기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생명과학대사전』
4)제 19번째 정의. 앞 체언이 관형어 구실을 하게 하며, 앞 체언이 뒤 체언의 재료임을 나타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
5)버퍼링은 사전적 의미로 완충, 완화장치의 개념으로 두 개의 매개사이에서 충돌을 완화하는 장치로 설명된다. 동영상 파일이 구현될 때 네트웍의 상황에 따라 끊어짐과 같은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때 버퍼링을 통해 일시적으로 데이터를 기억해 내어 다음 데이터와 원활하게 연결시켜 준다. 『매일경제』 2. 정보의 송수신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정보를 일시적으로 저장하여 처리 속도의 차를 흡수하는 방법. 『IT용어사전』 3. 박관택 개인전 제목 중 하나
6)박관택의 2019년 작품 〈루핑〉(종이에 아크릴채색, 칼로 자르기, 455x273cm) 은 “네 에 그럼그렇게하시죠”로 시작하지만, 그것이 시작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며, 텍스트의 위치와 화면을 대하는 관습에 기대 시작이라고 부른다 해도, 과연‘무엇’의 시작인지 말하기는 애매하다.
7)“상식은 세계에서 가장 잘 팔려나가는 상품이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스스로를 상식이 잘 갖춰진 사람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라고 데카르트가 말했다는 문장을 나무위키가 언급한 것을 재인용한다. 사회의 구성원이 공유하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가치관, 지식, 판단력을 말하는 상식은 인간세상에 적용된다. 그냥 알고 있고, 알고 있어야 할 개념은 옳고 그름에 관계 없으며, 상식과 비상식은 서로 오간다.
8)우노 구니이치가 들뢰즈와 가타리를 쓴다.
9)박관택의 〈루핑〉(2019)
10)박관택에게 연약함과 딱딱함 사이에서 놀고 있는 종이는 가격이 싸고 쉽게 운용할 수 있는 효율적인 재료다. 그는 효율성을 중요시한다.
11)박관택의 〈루핑〉(2019)
12)데이터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전송하는 동안 일시적으로 그 데이터를 보관하는 메모리의 영역. 일시적으로 데이터를 기억한다. 한 작업의 계산과 함께 입/출력을 동시에 수행하는 이 방법은, 프로세스가 데이터를 요구하기도 전에 먼저 입력장치가 데이터를 주기억장치에 복사한다. 입출력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 흐름의 속도 차이를 조정해내고 만다.
13)조셉 콘래드는 암흑의 핵심을 이 문장으로 마무리한다.
14)박관택의 〈루핑〉(2019)


※ 이 원고는 『2019 국립현대미술관 고양 레지던시 입주작가 비평모음집』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자의 동의 아래 게재하는 글입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d/p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