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황재민
증명을 마친 다음 쓰인다고 알려진 근사한 라틴어 약자 ‘Q.E.D.’를 풀어 쓰면 ‘이것은 보여야 할 것이다.’는 뜻이 된다. 이 멋진 기호는 이제 흰색, 혹은 검은색 사각형을 표기하는 것으로 단순화되었지만, 수학적 증명이 종료되었음을 확언하는 표시로서 ‘Q.E.D.’가 갖는 뜻은 인상 깊다; 밝혀진 것은 곧 보여야 한다.
원근법은 보기의 당위에 권위를 부여한다. 원근법적 체계 안에서 작도된 공간은 주관적인 것의 객관화를 달성1) 하고, 외부 세계를 체계화하며 천상의 진리가 머무는 영역을 인간의 영역으로 합리화한다. 그런 한편, 문학 이론가이자 미디어 이론가인 프리드리히 키틀러는 그림에 기하학적 질서를 부여하고, 효과적인 환영 창출의 역할을 부여했던 원근법이 어째서 “항상 이미지를 지배하지 못하고, 잘 정의된 어느 한 시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지배적인 것이 되었”2) 는 지에 관해 물은 적이 있다. 이 질문을 해결하기 위하여 다양한 논증과 역사적 사실이 필요하지만, 요점은 결국 인간이 눈을 가진 몸이라는 사실에 있다. 실재에 잠재된 기하학적 질서를 눈이 즉각적으로 따를 수 없기에 원근법은 역사의 어떤 시점에 이르러 고안되어야만 했다. 원근법은 ‘상징형식’으로 작동하는 한편 망막에 반영된 물리적 실재와 심리에 반영되는 시각적 실재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다.3)
잠시 고개를 돌려, 시각화 과정이 하나의 물리학적 스펙터클처럼 보였던 EHT(Event Horizon Telescope)의 블랙홀 사진에 대해 생각해보자. EHT는 전 지구 6개 지역에 자리 잡은 8기의 전파망원경을 이용해 처녀자리 은하단 중앙 거대은하 M87 중심부에 위치한 블랙홀의 전파 신호를 포착했고, 컴퓨터 알고리즘을 사용하여 해당 정보를 시각화하는 데 성공했다. 앞으로 아주 오랜 시간 블랙홀은 검은 공동을 지닌 오렌지색의 흐릿한 구형 물체로 대표되겠지만, 어째서 전파 신호가 시각화되어야 했는가에 대해서는 질문이 필요하리라 믿는다. 전파에서 감마선에 이르는 전자기 스펙트럼의 파장 영역에서 가시광선의 자리는 협소하다. 하지만 인간의 눈이 전파를 직접 관측할 수 없기에 정보는 필연적으로 친절해질 필요가 있고 그 과정은 많은 시간과 예산을 소모한다. 5천 5백만 광년 떨어진 블랙홀로부터 전파 신호를 포착하는 망원경과 다수의 망원경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그리고 포착된 전파 신호를 역추적해 시각화하는 알고리즘 사이에, 우리가 아는 눈의 역할은 없다. 인간의 눈은 입력 장치의 역할에서 밀려나 기껏해야 검사 장치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이처럼 눈의 위상이 변화한 뒤에도 밝혀진 것은 곧 보여야 한다는 원칙은 유지된다.
박아람은 〈첫 번째 작도연습〉(1st Drawing Exercise, 2014)을 시작으로 퍼포먼스 작업을 지속해왔다. 장소와 환경에 따라 구성에 차이는 있었지만, 골자는 “작도연습”을 위한 지시문을 만들고 참여자들로 하여금 심상을 조형하도록 안내하는 것, 그리고 해당 과정에서 주어진 시공을 다르게 감각할 수 있게끔 이끄는 것에 있었다. 작가는 지난 전시 《롤 앤 맆: 2008~2019 Roll and leaP: 2008~2019》(2019)을 계기로 이와 같은 수행의 방법을 회화 매체의 영역에서 집약하기 시작했고, 2020년에 진행한 개인전 《타임즈 TIMES》 또한 같은 연장선 위에 있다. 박아람은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을 이용해 드로잉하고, 그 구상을 기반 삼아 회화를 만드는데, 표 형식을 자동화해 데이터의 분석과 계산을 용이하게 하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도출된 결과물은 꽤 엄격하고 기하학적인 형태를 가졌다. 하지만 동시에 프로그램 특유의 그리드 구조를 노출하고 있었기에 보는 이는 해당 회화로부터 자동 연산이 작동하고 적용된 논리를 추측할 수 있었다. 이 같은 구조 위에서, 특정 작업은 연산 결과의 주고받음을 통한 영구한 운동을 상상하게끔 했고(〈무한동력〉(Perpetual Motion)), 혹은 기호적 질서를 감각 차원에서 재구성했다(〈타임즈〉(Times)). 두 개로 나뉜 전시 공간에 같은 이름으로, 하지만 다른 크기로 놓인 〈아이-핑거 Eye-Finger〉는 변화한 공간의 축척을 표지하는 오브제였는데, 상상적인 감각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외에도 《타임즈》에는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의 그리드 구조를 따라 제작되었지만 다소 임의적인 구성을 갖는 회화가 두 점 배치되었는데, 재현적인 제목을 갖는 이 두 사례는 전시에 가정된 모종의 논리를 따라 구현된 재현적 실험의 경우처럼 보였다.(〈댐〉(DAM), 그리고 〈계단〉(Stairway)) 《타임즈》에서 회화는 여러 역할과 기능을 포함한다. 이것은 지표(Index)이며, 임의의 법칙을 지니는 체계로서 언어이고, 또한 모종의 수행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스코어(Score)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아가, 이것은 일종의 ‘원근법’이다. 유한성으로부터 무한성을 추측하게끔 이끄는 시각적 가이드라인이라는 점에서, 또 세계, 혹은 시공을 체계화해 보이고 밝히는 프로세스라는 점에서 일종의 원근법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박아람은 작업을 설명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서와 내부 규칙을 내게 건네주었고, EHT가 발행한 블랙홀 사진은 그중 하나였다. 고전적인 원근법은 눈을 입력 장치로 가정한 채 세상을 격자로 구조화하고, 선을 모아 소실점을 만들어내며 환영을 완성한다. 하지만 《타임즈》의 원근법에는 소실점이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무한하게 운동하기에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의 자동화된 격자 위에서, 《타임즈》의 원근법은 소실점을 운동으로 환원한 뒤 평평해지며 동시에 영구해진다. 어쩌면 이 원근법은 변화한 눈의 위상을 가정하는 동시에, 쉽게 소거되지 않는 눈의 집요한 직관을 의식한다. 여전히, 밝혀진 것은 곧 보여야 한다. 하지만 《타임즈》의 수행을 경험으로 체화한 누군가는 영구한 소실점을 따르며 세계를 새로 볼 텐데, 이처럼 보고 또 보는 연쇄 위에서 보기의 무한동력은 창출될 것이고, 원칙은 그렇게 역전될 수 있다; 보인 것은 곧 밝혀질 수 있다.
1)에르빈 파노프스키, 『상징형식으로서의 원근법』, 심철민 옮김, 도서출판 b, 2014, 65p.
2)프리드리히 키틀러, 『광학적 미디어』, 윤원화 옮김, 현실문화, 2011, 81p.
3)에르빈 파노프스키, 위의 책, 13p.
미술평론가. 옛 미디어로서의 미술, 혹은 옛 미디어로 환원되는 미술의 법칙에 대해 관심이 있다. 『호버링 텍스트』(2019)의 편집에 참여했으며 한국의 회화 작가 20인을 인터뷰한 온라인 기획 《Painters by Painters ‘18》(2018)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