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아트월드를 견인할 ‘영 파워’ 아티스트를 뽑았다. 일명, ‘뉴커머즈 77’. 이 매머드 특집에 미술전문가 9인이 추천위원으로 가담했다. 모두 오늘의 한국 미술씬에서 맹활약을 펼치는 30~40대 ‘젊은 기수’다. Art는 이들에게 세 가지 추천 요건을 제시했다. (1) 만 39세 이하, (2) 개인전 1회 이상 개최, (3) Art 2018년 3월호 ‘동시대 미술인’ 참여 작가 제외. 여기, 총 77인의 차세대 미술가가 모였다. 뉴커머즈의 인적 구성은 다음과 같다. 먼저 여성 47인(팀), 남성 29인, 혼성 1팀으로 여성 작가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한국 미술계에 불어닥친 ‘우먼 파워’ 돌풍이 거세다. 연령대로는 1980년대생 50명, 1990년대생 25명. 디지털 네이티브 Y세대의 총집합이다. 지역별 특색도 눈에 띈다. 수도권 작가들은 동시대 매체론 탐구에 총력을 기울이고, 지역 작가들은 사회적 발언과 개인의 욕망을 소리 높여 이야기한다. Art는 뉴커머즈 77명의 작품을 5개의 주요 키워드로 분류했다. 동시대 미술의 키워드와 견주는 비평 작업이다. ‘젊음과 새로움’의 지형을 압축하는 지상전시다.
추천위원
권순우(취미가 대표), 권혁규(독립큐레이터), 남웅(미술평론가), 이동민(대구미술관 큐레이터), 이선(광주 이강하미술관 큐레이터), 정현(서울시립대 교수), 최수연(P21 대표), 홍이지(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 황서미(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네오-조각, 마찰하는 물질들
조각, 오브제, 설치, 퍼포먼스가 입체 조형을 공유하는 가운데 조각 이후의 조각, ‘네오-조각’이란 무엇인가? 젊은 조각가들이 안고 있는 무거운 숙제다. 한국의 젊은 조각가들은 동시대조각의 새로운 범주와 형식을 탐색한다. 에폭시, 라텍스, 스티로폼 등의 산업 재료로 추상조각을 제작하고 냉장고, 에어컨 등의 기성품에서 기념비 형태를 추출해 물질의 생산 구조와 조각의 물질성을 교차 탐구한다. 사물의 유희적 변용과 경쾌한 응용 등 탈모던 ‘전위의 리사이클링’ 경향이 엿보인다. ‘조각성’을 정의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모더니즘 조각의 역사를 인용(appropriation)해 동시대적 형상으로 번안하거나, 평면-조각, 공간-조각의 경계면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조각의 존재 조건을 확장한다. 조각을 인간의 대리물로 내세우는 경향도 뚜렷하다. 분노한 육신으로 매섭게 노려보는 조각은 사회에서 지워진 소수자 존재의 표지다. 달콤하고 깜찍한, 더 가볍고 유동적인 오브제로 ‘장식성’을 부각한 조각 경향도 젊은 작가의 새로운 관심사다.
이유성
이유성은 기존의 사물을 새로운 인상을 지닌 ‘대상’으로 탈바꿈한다. 단단하고 분명한 형태의 오브제를 깎고 절단하고 (재)조형하는 과정은 견고하게 자리 잡은 대상의 인식 체계에 기묘한 균열을 내는 시도. “나는 주로 물질이 가진 외곽선을 뒤틀고 접붙여 내가 느낀 심상과 동세를 직관적으로 그려 나간다.”
현남은 에폭시, 시멘트, 폴리스티렌, 라텍스 등 산업 재료로 조각을 만든다. 그 조각들은 주변 조각과 관계 맺으며 기이한 풍경을 공간에 펼친다. 기존의 조각이 추구했던 단단함 대신 흔들리거나 녹아내리는 모습으로 서 있다. “이는 그가 목도해왔던 현상—불완전한 기억의 파편이 만들어낸 새로운 풍경—을 재현하고 세우기 위한 최선의 지지체다.”(정현)
신민
신문지와 갱지로 만든 피부, 연필과 크레용으로 거칠게 새기거나 점토를 긁어내 만든 눈, 코, 입. 과격한 선과 둔탁한 형상은 여성 희생자와 노동자를 불러낸다. 홀로 서 있되 복수로 읽히는 이들은 폭력적인 세상에 화를 낸다. “작가는 사회의 미적 규준과 성적 대상화를 거부하고 삶과 투쟁이 달라붙어 있는 이들을 모델 삼는다.”(남웅)
정지현
정지현은 일상 오브제에서 조각을 발굴해낸다. 출처가 모호한 파편을 집합, 해체, 조립하는 과정으로 공고한 물질의 질서에서 해방 가능성을 찾는다. 평범한 구조에 얽힌 서사를 추적하면서 익숙한 시스템을 새롭게 시각화한다. 〈타원 본부>는 중랑구 용마폭포공원에 설치된 타원형의 콘크리트 구조 작품.
최고은
최고은은 공장, 도시, 유통망, 재활용 센터에 비치된 물건의 존재 방식을 탐구한다. 현대의 주거 공간을 채우는 가전, 가구, 건축 자재를 변형하고 재배열해 추상적 조각 및 설치작품을 선보인다. 사물의 물성을 극대화해 즉물성을 강조한다. “특정한 이미지로 유통되는 상품 과잉의 상황에서 ‘물질’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최수연)
권현빈
권현빈은 스티로폼, 돌 같이 입자로 구성된 물질에 관심을 둔다. 최근에는 ‘조각 되기’를 고민하며 공백으로만 존재하는 ‘돌의 자태’를 상상한다. “돌은 먼 과거에도 있었고, 먼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중간에서 아직 조각되지 않은 돌을 상상해보곤 한다. (…) 돌은 단지 가만히 서 있음에도, 수많은 가능성과 자국을 만들어내며 진동하고 있는 것만 같다.”
최태훈
최태훈은 제품이 조각이 되는 순간을 제시한다. DIY 가구 웹 사이트의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가구 조립법을 전유해 이종의 오브제를 만들거나, 온라인 정보를 발췌해 오브제를 제작한다. 사물의 부품과 이미지의 단편을 조이고 붙여낸 결과물을 작가는 자소상(self-portrait)이라 명명한다.
장경린
장경린은 인스타그래머블한 이미지가 가진 달콤하고 매끄럽고 환상적인 느낌을 레진, 실리콘, 석고로 재현한다. “본래 음식이자 마케팅 수단이자 누군가의 일상이었을 이미지는 투명한 재료, 명쾌한 형태, 화려한 색상을 지닌 조형으로 부활한다. 그 초현실적 조각물은 누군가의 사진으로 담겨 해시태그를 달고 인스타그램에 재업로드될 것이다.”(정현)
조유나
조유나는 전통적 조각 기법인 부조를 내면 탐구의 방법론으로 치환한다.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현대 사회의 개인과 그로부터 달아나려는 강박증을 말한다. 여러 인물의 시선과 마음이 교차하는 지점을 다양한 재료와 이미지로 형상화한다.
이동훈
이동훈은 통나무를 깎아 정물을 조형한다. 나무의 지름, 물성에 맞춰 전기톱과 끌로 투박하게 만든 조각에 물감을 덧칠한다. 나무 표면의 물감과 힘껏 쳐내린 끌의 자국은 정물의 조각적 형태를 회화적으로 전환한다. 작가는 조각(나무)과 회화(천)의 전통 매체를 ‘페인팅’이라는 행위로 이어 붙인다.
이창운
이창운은 움직이는 조각을 만든다. 되풀이되는 개인의 일상과 경험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반복 작동하는 기계의 속성으로 은유한다. “작가는 개인과 사회의 움직임에 대한 주관적이고 주체적 해석을 조각에 담는다. 작품의 기계적 움직임은 매일 경험하는 삶의 양태다.”(황서미)
김진휘
김진휘는 회화와 조각, 정형과 무정형의 경계를 탐구한다. 회화에서 뻗어 나온 선이 바닥을 침범하고, 평면이 오브제로 놓이며, 화면이 공간 자체가 된다. “내 작업은 양극의 교집합이다. 하나의 정체성으로 수렴되길 거부하는 나는, 반항의 역사다.”
정재범
정재범은 가구디자이너로서 직장 생활을 하다 이스라엘로 유학을 떠났다. 이스라엘 키부츠(자발적 공동체)에서 생활한 경험을 토대로 개인, 사회, 공동체에 관한 작업을 지속해왔다. 최근에는 지리산 자락에서 돌을 모아 자연의 ‘기운’에 내포한 허구를 비튼다.
전우진
전우진의 작업은 사우나와 왁싱 숍 등 위생과 비위생이 교차하는 장소성에 착안한다. 그의 오브제는 촉감각과 은밀한 쾌락의 매개물. “끝없이 분출하는 거품과 액체로 조각적 섹슈얼리티를 초과하는 정동을 형상화한다. 넘치고 젖어들고 섞이고 증발하는 장치들은 신체의 변조이자, 물성에 대한 조형적 개입.”(남웅)
곽인탄
곽인탄은 회화와 조각의 역사를 참조해 조각가로서 자신의 현실을 도출한다. 각기 다른 시공에 존재하는 과거 미술의 특정 부분, 조각에 관한 고해상도 이미지와 영상은 지금 이곳으로 불려오면서 독특한 모습으로 재통합된다.
하지원
하지원은 과거 자신이 제작한 회화작품을 해체해 조각을 만든다. 캔버스이자 작품이었던 나무와 천은 평면을 무한히 변주하며 입체로 재탄생한다. 최근에는 형형색색의 동그란 모양의 나무 조각을 제작 중. “평면을 해체해 입체와 설치로 조합하고, 다시 반복 해체하는 나의 행위는 내적 갈등으로 전달되지 못한 시각적 결과에 대한 부정이다.”
정유진
정유진은 대중매체가 만들어낸 폐허의 풍경을 연출한다. 재난 이후 사라진 인간과 무너진 잔해의 스펙터클은 현실과 픽션 사이 이미지의 원형을 더듬는다. 실제 발생한 물리적, 경제적 재난을 좇는 영상에서는 재난을 가까스로 통과하고 살아가는 사람의 목소리를 빌린다. 동시대에 흘러넘치는 재난 이미지와 실재의 간극을 팽팽히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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