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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회화, 끝나지 않은 ‘평면 미션’ : Newcomers 77 미술전문가 9인이 선정한 한국미술의 영파워

posted 2021.03.24

내일의 아트월드를 견인할 ‘영 파워’ 아티스트를 뽑았다. 일명, ‘뉴커머즈 77’. 이 매머드 특집에 미술전문가 9인이 추천위원으로 가담했다. 모두 오늘의 한국 미술씬에서 맹활약을 펼치는 30~40대 ‘젊은 기수’다. Art는 이들에게 세 가지 추천 요건을 제시했다. (1) 만 39세 이하, (2) 개인전 1회 이상 개최, (3) Art 2018년 3월호 ‘동시대 미술인’ 참여 작가 제외. 여기, 총 77인의 차세대 미술가가 모였다. 뉴커머즈의 인적 구성은 다음과 같다. 먼저 여성 47인(팀), 남성 29인, 혼성 1팀으로 여성 작가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한국 미술계에 불어닥친 ‘우먼 파워’ 돌풍이 거세다. 연령대로는 1980년대생 50명, 1990년대생 25명. 디지털 네이티브 Y세대의 총집합이다. 지역별 특색도 눈에 띈다. 수도권 작가들은 동시대 매체론 탐구에 총력을 기울이고, 지역 작가들은 사회적 발언과 개인의 욕망을 소리 높여 이야기한다. Art는 뉴커머즈 77명의 작품을 5개의 주요 키워드로 분류했다. 동시대 미술의 키워드와 견주는 비평 작업이다. ‘젊음과 새로움’의 지형을 압축하는 지상전시다.

추천위원
권순우(취미가 대표), 권혁규(독립큐레이터), 남웅(미술평론가), 이동민(대구미술관 큐레이터), 이선(광주 이강하미술관 큐레이터), 정현(서울시립대 교수), 최수연(P21 대표), 홍이지(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 황서미(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메타 회화, 끝나지 않은 ‘평면 미션’

한국의 젊은 페인터들은 ‘회화’에 대한 자기 물음으로 고군분투한다. 회화가 회화 자체에 관해 발언하며, 그 존재 방식을 되묻는 방법론을 모색한다. 새로운 내용과 형식 찾기에 몰두했던 과거의 화가와 달리, 한국 동시대 작가는 회화를 둘러싼 메타적 환경을 포섭한다. 그 일부는 지지체, 재료, 도구 등 회화를 구성하는 미디엄까지 페인팅의 조형 영역에서 탐구한다. 캔버스 틀을 자르고 편집해 사각 평면의 한계를 넘어서고 이불, 나뭇가지, 잡초로 화면을 거칠게 비벼 재현의 방법론을 넓히고 있다. 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인 일상을 예민하게 감각하는 작가도 다수다. 납작한 스크린을 화면에 옮겨 동시대 가상 현실을 겹겹의 물질로 번안하거나 가볍고 공허한 미디어 감수성을 포착한다. 표현주의의 후예를 자처한 작가군도 발견된다. 불안한 젊은 내면과 갖가지 욕망을 추상적 구상, 구상적 추상이 기묘하게 뒤섞인 화면으로 분출한다. 이미 정립된 미술사 사조를 혼용한 ‘새로운 구상’이다.

조은솔 〈A Nice Chat〉 캔버스에 아크릴릭 72.7×90.9cm 2020.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조은솔은 자아의 다중성에 관심을 둔다. 그에게 손의 움직임은 현대 사회의 불완전한 소통과 자아의 방황. “실놀이는 타인과 함께 주고받는 행위. 여기서 실은 관계를, 손은 인간을, 손가락은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다중의 자아다. 실놀이를 하는 도중 실의 매듭이 풀어지거나 엉키는 돌발 상황에서는 관계를 재설정하거나 수정해야 한다.”

소민경 〈Evidence Store 〉 리넨에 아크릴릭, 종이, 잉크 73×61cm 2020.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소민경은 맥락에서 떨어져 나온 이미지를 취사선택하고 캔버스에 몽타주하듯 그린다. 이미지의 지지체인 캔버스 틀, 천, 종이의 포개짐, 원본과 복제본이 겹친 상태를 주로 다룬다. 그의 그림은 원본 이미지를 복제해 만든 ‘포장지’. 얇은 종이에 포개진 포장지들은 원본의 질감과 내용을 보호하고, 가리고, 암시한다.

조효리 〈Behind/Ahead〉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릭 145.5×112.1cm 2020.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조효리는 회화의 시공간성을 탐구한다. 그림의 장면, 캔버스 자체의 물성, 화면 너머의 공간을 상상, 조합해 만든 환영의 이미지. “겨울이 끝나갈 무렵 도착한 섬나라엔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다. 거울에 비친 낮의 풍경 뒤로 밤의 풍경이 보였다.” 시공간의 교차를 생각하는 작가는 흩어진 기억을 길 가다 줍듯 그러모아 환영적 표면을 꾸민다.

정희민 〈최초의 인간 1〉 캔버스에 UV 프린트, 유채, 아크릴릭, 젤 130×97cm 2020.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정희민은 디지털 이미지의 특성을 페인팅으로 번안한다. 3D 모델링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가상의 정물을 회화로 옮기는가 하면, 스크린에 일시적으로 존재했다 사라지는 이미지와 텍스트로 화면을 구성하고, 겔 미디엄을 두껍게 발라 레이어를 쌓는다. 그의 작업에는 가벼운 디지털 이미지 이상의 동시대적 멜랑콜리가 있다. 최근에는 장르를 확장해 단단함과 유연함을 오가는 오브제, 촉각적인 영상과 사운드를 실험 중.

유지영 〈Plate XIXX〉 캔버스에 아크릴릭, 유채 200×120×2cm 2018.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유지영은 회화의 조건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관계에 관심을 둔다. 그는 다 쓰고 남은 스티커 용지에 캔버스의 지지체를 비유한다. 작품의 배경이자 바깥 공간인 벽면, 회화의 틀 그리고 이미지에 따른 관습적 조건을 해체하고 재해석해 회화와 비회화 사이를 오간다.

김서울 〈After De Kooning No. 5〉 캔버스에 168가지 색 172×172cm 2017.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김서울은 과거에서 현대에 이르는 회화의 도구, 재료, 기법을 총체적으로 분석한다. 겹겹이 쌓인 얇고 (반)투명한, 절대 무너지지 않을 듯한 그의 회화는 ‘표면의 구축술’이다. “당대의 예술가와 비교하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느리며 겸손한 이 시대착오적 작가는, 오직 회화라는 신만을 진실로 믿으며 과거라는 거푸집 속에 단단하게 굳혀질 정념을 있는 힘껏 쏟아 내고 있다.”(정현)

박현정 〈이미지(90)〉 종이에 아크릴릭, 펜, 수채 70×49cm 2019.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디지털 일러스트레이션처럼 보이는 화면. 박현정의 페인팅에는 벡터화된 디지털 이미지와 손 그림이 위계 없이 뒤섞여 있다. 작가는 실제의 이미지를 스캔하고 벡터화하여 크기, 위치, 색을 변경해 프린트한다. 이후 다시 손 그림과 브러싱으로 화면을 완성한다. 수행적으로 생산되는 평면 세계에는 이미지의 균형과 긴장이 공존한다.

이인성 〈비밀 정원〉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130cm 2017.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이인성은 삶의 흔적을 남기려는 의지에서 작업을 시작한다. 오늘날의 현상, 감각, 사회를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으로 재구성한다. 일상의 소소한 추억, 미술사의 회화적 알레고리로 의식과 무의식의 순간을 화면에 소환한다. 그림 곳곳에 알알이 박혀 있는 형광 주황색 공은 작가의 심리를 함축한 시각적 장치. “주황 공은 삶의 목적을 가리키는 기호, 그 주변은 현대인이 느끼는 치열한 감정.”

김상덕 〈있었는데 없어졌습니다〉 캔버스에 혼합재료 270×610cm 2020.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화면을 자유롭게 제패하는 거친 선, 그림을 간신히 고정하는 청테이프는 젊은 미술인의 불안한 삶을 은유하듯…. 김상덕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모든 순간을 어마어마한 양의 드로잉으로 기록하고, 상상력을 가미해 변형한 후 대형 회화에 옮긴다. 현실에서 분출하기 어려운 욕구, 욕망 감정, 행동, 취향을 반영한 그림은 원초적이면서도 과장되고 때로는 무겁다.

박민하 〈Dream Weather Report〉 캔버스에 유채 25×20.5cm 2017.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박민하는 특정 장면을 빛, 색, 형태 단위로 분할해 추상적으로 기록한다. 작가는 풍경의 범주를 무심코 스치는 일상부터 직접 몸에 닿는 감각까지로 확장한다. 그의 회화에 기본 요소로 등장하는 무형의 빛은 근처에 놓인 다른 형태에 덧씌워져 유기적인 형상으로 드러난다.

우정수 〈Vanishing〉 캔버스에 잉크, 아크릴릭 116.8×91cm 2019.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우정수는 고전과 신화의 모티프를 차용해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고민한다. 알록달록 색채와 귀여운 캐릭터, 단순한 도형이 얽혀 있는 그림은 일견 가벼워 보이지만, 시대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이야기한다. 우정수에게 그림은 ‘문장’이다. “이미지 요소들을 주어, 목적어, 서술어처럼 명확한 구성으로 만들려 했고, 회화적 표현은 문장의 내용보다 외형에 신경 쓰는 미사여구로 보였다.” 최근에는 시트지, 벽지, 패브릭 설치 등 다양한 방식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임노식 〈Sand Sledding Slope 05〉 캔버스에 유채 200×500cm 2020.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임노식은 현실에서 직접 경험하거나 관찰한 상황을 캔버스에 반복적으로 옮긴다. 어릴 적 고향 풍경, 특정 시기의 사람과 장소를 담백하고 잔잔하게 그려내는 표현법이 특징. 작가에게 작업은 그 자체로 무언가를 기록하고 기억하려는 행위의 실천이자 흔적이다. “(회화가)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생각한 것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허찬미 〈구르는 기둥〉 캔버스에 과슈, 장지에 아크릴릭, 과슈 50×60.7cm 2020.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허찬미는 자신의 그림을 페인팅이 아니라 드로잉이라 부른다. 작가는 솜이불, 채집한 잡초, 나뭇가지 등의 재료를 붓 삼아 특정 장소 혹은 그 장소에 도달하기까지의 물리적, 심리적 여정을 그린다. 2019년 작가는 국군보안사령부 부산지구였던 ‘삼일공사’의 폭력을 기억하기 위해 자신의 신체를 덮었던 이불로 그림을 그렸다. “땅에 발 붙이지 못하고 떠도는, 자리 잡지 못한 이야기”가 소멸되지 않도록….

장미 〈Trauma Trickster #1〉 혼합재료 150×303cm 2019.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비둘기를 내쫓기 위해 세워둔 까마귀 모형을 ‘외부인’으로 은유했다. 인권을 위한 열띤 구호 대신 내부인과 외부인이 동일하게 느끼는 사랑, 희망, 증오, 두려움, 공포 등의 감정에 관심을 둔다. 편견으로 가득 찬 타자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서술하고 개인의 감정을 헤아리려는 휴머니즘적 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