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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 내러티브, 작은 이야기의 바다 : Newcomers 77, 미술전문가 9인이 선정한 한국미술의 영파워

posted 2021.05.10

내일의 아트월드를 견인할 ‘영 파워’ 아티스트를 뽑았다. 일명, ‘뉴커머즈 77’. 이 매머드 특집에 미술전문가 9인이 추천위원으로 가담했다. 모두 오늘의 한국 미술씬에서 맹활약을 펼치는 30~40대 ‘젊은 기수’다. Art는 이들에게 세 가지 추천 요건을 제시했다. (1) 만 39세 이하, (2) 개인전 1회 이상 개최, (3) Art 2018년 3월호 ‘동시대 미술인’ 참여 작가 제외. 여기, 총 77인의 차세대 미술가가 모였다. 뉴커머즈의 인적 구성은 다음과 같다. 먼저 여성 47인(팀), 남성 29인, 혼성 1팀으로 여성 작가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한국 미술계에 불어닥친 ‘우먼 파워’ 돌풍이 거세다. 연령대로는 1980년대생 50명, 1990년대생 25명. 디지털 네이티브 Y세대의 총집합이다. 지역별 특색도 눈에 띈다. 수도권 작가들은 동시대 매체론 탐구에 총력을 기울이고, 지역 작가들은 사회적 발언과 개인의 욕망을 소리 높여 이야기한다. Art는 뉴커머즈 77명의 작품을 5개의 주요 키워드로 분류했다. 동시대 미술의 키워드와 견주는 비평 작업이다. ‘젊음과 새로움’의 지형을 압축하는 지상전시다.

추천위원
권순우(취미가 대표), 권혁규(독립큐레이터), 남웅(미술평론가), 이동민(대구미술관 큐레이터), 이선(광주 이강하미술관 큐레이터), 정현(서울시립대 교수), 최수연(P21 대표), 홍이지(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 황서미(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마이크로 내러티브, 작은 이야기의 바다

마이크로 내러티브는 ‘강자의 허구’를 폭로하는 동시대적 스토리텔링 방법론이다. 공고해 보이는 인종, 계급, 사회 제도에 작디작은 소서사의 돌을 던져 허황된 거대서사에 틈을 낸다. 거센 집단 운동의 양상이 아니라, 무수한 개인이 벌이는 각개전투다. 여성과 퀴어는 은밀한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불온하게 치부되던 신체를 가감 없이 드러내며 젠더 평등의 의제를 다룬다. 사회 마이너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가시화해 사각지대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려는 몸짓이다. ‘일상’도 여전히 유효한 키워드다. 평범한 일상에서 느끼는 예민한 감각, 우울한 정서, 존재론적 고민을 미술언어로 해소한다. 자신과 가족의 고통을 승화하는 작업도 있다. 투병의 경험을 힐링 미학으로 고백하거나, 장애인 가족과 사는 어려움을 약자의 서사로 다시 쓴다. 개인의 비밀스럽고 사적인 이야기는 사회적 이슈로 증폭하고 있다.

안초롱 〈Home Decor Collection, before Sunset from Dew〉 접착 시트, 디지털 실사 프린트 2020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안초롱
안초롱은 사진을 구성하는 환경에 관심을 둔다. 인테리어용 장식 사진, 레스토랑 메뉴판 사진, 관광지스러운 책자와 엽서 형식을 전시장에 불러들인다. 사진전의 전형성을 타파하는 시도. “개별 이미지보다 전시장의 작품군을 촬영한 전경 사진 혹은 관객의 관람 인증 사진으로 작가의 의도를 더 확실히 알 수 있다.”(정현)

이민지 〈Sight-lag, 64°02′26.03′′N 16°10′55.62′′W〉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 65×50cm 2017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이민지
이민지는 사진으로 포착할 수 있는 ‘본 것’과 프레임 바깥에 있는 ‘못 본 것’의 경계를 탐구한다. “그는 촬영을 떠나기 전, 스크린에서 장소를 서치하고 첫인상을 미리본다. (…) 서로 다른 이미지와 서로 다른 시각이 서로의 시차를 의심할 때 온라인과 오프라인 그리고 현실과 이미지의 위계는 뒤집어진다.”(박지수)

김설아 〈아홉 개의 검은 구멍, 무너진 음성〉 종이에 먹 150×150cm 2020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김설아
작가는 먼지, 곰팡이, 벌레, 미생물, 단세포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포착한다. 미물을 확대해 존재의 상실과 소멸을 말한다. “모두가 떠난 공간에 남겨진 아주 연약하고 미비한 존재를 섬세하다 못해 치밀한 필치로 구현한다.”(이선)

이옥토 〈What We Came Through 02〉 사진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이옥토
특유의 몽환적인 색감으로 자신과 주변의 인물을 촬영하는 이옥토. 〈What We Came Through〉 시리즈는 코로나19 시기, 완치 이후에도 흉을 남기는 것들을 떠올리며 제작한 신작. “서로의 표정이 관찰되지 않을 때 개인은 개인의 표정을 더 또렷이 감각할까, 아니면 자신의 표정임에도 그 표정을 상상하거나 가늠하게 될까, 팔을 한껏 꺾어 등을 매만져 요철을 확인하는 자세가 자꾸 떠오릅니다.”

황예지 〈몸과 몸 사이〉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 150×112.5cm 2019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황예지
황예지는 스냅 사진으로 여성의 몸과 바이섹슈얼 정체성을 담는다. 〈몸과 몸 사이〉는 여성의 신체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에 맞선 작업. “나의 몸은 단 한 번도 나의 것인 적이 없었다. 너무 커도, 작아도, 무거워도, 가벼워도, 넓어도, 작아도, 얇아도, 두꺼워도 안 됐다.” 작가의 사진은 주변, 외부, 바깥, 젊음을 껴안으며 당연하고 익숙한 체계에서 어긋나는 연대를 키워간다.

이성경 〈또 다른 그림자 1-9〉 장지에 채색, 목탄 190×140cm 2020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이성경
파란 밤, 고요한 숲, 내려앉은 달, 아스라한 그림자…. 이성경의 풍경은 낮은 채도의 물감을 머금은 듯한 서정적인 톤을 띤다. 최근에는 도시의 유리 빌딩에 비친 울렁울렁한 풍경을 목탄으로 재현한다. “나는 내려앉은 어둠을 그리기 위해 한지에 색을 들이고 먼지 같은 목탄으로 그림자를 그린다.”

이의록 〈M87〉 라이트 패널 90×90cm 2020 ⓒ K. Hada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이의록
이의록은 우주 전파 망원경, 관측 천문학 등을 작업의 입구로 삼는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볼 수 없고, 갈 수 없는 세계를 시각 이미지로 전환하는 시간, 노력, 태도를 고찰한다. 미지의 영역을 포착하는 지난한 과정은 창작자 개인과 동시대 이미지에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엄정원 〈Escapeeeee〉 싱글채널 비디오 20분 2018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엄정원
엄정원은 자신을 도구화한 퍼포먼스와 미디어 설치작업을 한다. 최근에는 무언가의 실체를 알고자 하는 욕망을 작업 주제로 끌어오는 중. “보고 있는 대상의 형태가 명확하지 않을 때, 그 대상이 내가 지금껏 알고 있었던 것과 다를 때, 우리는 개인적인 경험의 범위에서 대상의 실체를 상상한다. 어둠 속 물체, 흔들린 사진, 멀리 있는 대상, 우주, 죽음, 미래….”

박세희 〈Space in Between_Bus〉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 80×120cm 2016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박세희
박세희는 ‘비장소(non-place)’를 촬영한다. 환승 구역, 국경, 창문, 커튼 등 장소와 장소, 공간과 공간 사이에 있는 빈틈 어딘가.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는 중간지대에서 작가는 새로운 자유 의지를 탐구한다.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거나 그 모두에 속하는 확장된 개념의 중간 지대. 이 풍경은 개인의 상황이자 크게는 모두의 일상이다.”

홍민키 〈들랑날랑 혼삿길〉 싱글채널 비디오 40분 30초 2021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홍민키
오픈리 게이 아티스트 홍민키. 그는 한국 사회에서 퀴어로 살아가기를 적극 이야기한다. 〈들랑날랑 혼삿길〉은 결혼 적령기의 퀴어들이 마주한 제도적 한계를 시뮬레이션 게임 형식의 다큐멘터리로 풀었다. 커밍아웃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 미션을 펼치고, 대안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하는 삶을 조명한다.

임창곤 〈비어 있는 남자〉 패널에 유채 46.5×76cm 2019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임창곤
임창곤은 여러 개의 패널에 퀴어의 제스처를 가득 채워 전시장에 입체적으로 부착한다. “나는 사람을 그린다. 나는 붉은 것을 본다. 나는 비어 있는 것을 그린다. 나는 못생긴 몸을 본다. 나는 덫 속에 신체를 구겨 넣는다. 신체는 일그러지고 분할된다. 항문을 넓게 벌리고 있거나 붉게 물든 엉덩이를 뽐낸다.”

양승욱 〈Baby Dolls〉 잉크젯 프린트 90×135cm 2015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양승욱 〈Baby Dolls〉 잉크젯 프린트 90×135cm 2015.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양승욱
양승욱은 장난감 호더, 게이 하위문화, 반려동물 등을 포착한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장난감은 대부분 누군가의 손을 탄 구제 상품. 장난감은 서로 맞대어져 유사 성교 자세를 취하거나, 게이 DVD방과 같은 낡고 음습한 공간을 채운다. “그는 이제 전시마다 모아놓은 장난감을 나눠준다고 한다. 수집에서 증여로의 전환은 어떤 사진술을 펼쳐낼까.”(남웅)

이은실 <삶의 풍경> 장지에 수묵 채색 180×488cm 2018.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이은실

이은실은 한지와 먹을 재료로 성과 배설을 적나라하게 표출한다. 그에게 호랑이는 욕망과 금기의 화신. <삶의 풍경>에는 여러 마리의 호랑이, 발기된 남성 성기를 연상시키는 붉은 바위산이 뒤엉켜 있다. 동물적 리비도로 가득찬 '삶의 풍경'.

김자이 〈How to Knit〉 싱글채널 비디오 16분 12초 2017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김자이
김자이는 휴식의 언어를 사유한다. 자신과 타인이 공유하는 휴식의 방식을 리서치로 수집하고, 동시대 휴식이 가진 심미성을 시각화한다. “속도와 경쟁의 사회에서 사람에게 필요한 건 ‘휴식’이다. 쉼 없는 삶을 살아온 나에게 암이라는 병이 찾아왔고, 이후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문지영 〈엄마의 신전 Ⅴ〉 162.2×260.6cm 캔버스에 유채 2020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문지영
장애인 동생과 간절한 엄마를 화면에 담는 문지영. 사회적 약자, 기복 행위, 종교 의지에 대한 이야기로 ‘보통’의 존재를 말한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엄마는 평생 자신을 탓해야 했고, 돌봄 노동으로 늘 쪽잠을 자면서도 집안에 도움이 못 된다며 죄스러워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기도뿐이라서, 이것밖에 할 수 없어서 이리도 매달린다 말했다. 하지만 엄마의 기도에 정작 자신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