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작가

윤두현 : 촉각하는 경험들을 향하여

posted 2021.03.26


김인선


2020년, 코로나19라는 전 지구적 재앙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생명을 위협하는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로 사람 간의 물리적 거리는 점점 멀어졌고, 지역 간 이동은 엄격한 절차로 인하여 쉽지 않다. 이는 미술계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국공립 미술관의 전시와 대형 국제행사가 온라인 전시로 전환되거나 일정을 미루고 있다. 이로 인하여 직접 감각할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이 급격히 위축되었다. 그야말로 ‘물질과 비물질, 가상과 실재, 상상과 현실의 경계’에 서 있는 현실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접한 윤두현 작가의 작업은 의미심장하다. 작가는 최근 몇 년 동안 픽셀의 영역 안에서 들여다본 특정 풍경 이미지를 소재로 삼았다. 이를 종이에 프린트하여 다시 평면과 입체 형식의 물리적 재료로 가공하였다. 이들은 물리적인 공간 안에서 작가의 즉흥적인 감흥에 따라 촉각 가능한 이미지 망으로 구현되었다.


거대한 벽면의 표면 위로 윤두현 작가가 서술해가는 이미지를 보며 생뚱맞게도 나는 선사시대의 벽화를 떠올렸다. 아마 기본 도형들의 조합이 서사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벽면 앞에서 마치 표면의 요철을 따라 사냥감의 실루엣을 추출하여 묘사하였던 선사시대의 그림이 떠올랐을지도. 미술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미술은 이미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한 다양한 탐구와 실험의 연속이었다. 특히 늘 미술사의 첫 페이지에서 소개하는 동굴벽화에는 사냥 전 훈련의 기능을 위하여 가상의 이미지를 향해 창을 던졌던 흔적이 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혹은 당시의 동굴 생활과 수렵 및 전쟁의 일상으로 삶을 영위했던 이들의 모습을 기록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컬러풀하고 리드미컬한 이미지로부터 동굴벽화를 떠올린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것은 윤두현 작가가 사용하는 이미지가 모두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픽셀 집합체로서 형성된 풍경으로부터 기인하기 때문이다.


〈모하비 데이 앤 나이트〉. 2019, 혼합재료, 8채널 비디오, 무음, 3.5 x 20 x 1 m.《젊은모색 2019》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9) 전시 전경. 사진제공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모하비 데이 앤 나이트〉. 2019, 혼합재료, 8채널 비디오, 무음, 3.5 x 20 x 1 m.《젊은모색 2019》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9) 전시 전경. 사진제공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어쩌면 작가가 어릴 때 거주한 동네가 부산의 그린벨트 지역이라 철새도래지 근처로 도심에서는 떨어져 있었다는, 도시 지역이지만 좀 더 자연에 가까웠다는 이야기를 작가로부터 들었을 때의 감흥과 비슷한 느낌일 수도 있겠다. 온라인 환경에 익숙하고 화려한 사이버 세상 속에서 존재하는 색감을 구사하는 이 작가가 자라온 환경은 강 건너의 화려하게 반짝이는 부산 시내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었다. 24시간 불을 밝히고 있는 건너편 도시 풍경과 실재 작가가 자리하고 있었던 자연으로 둘러싸인 지역 사이의 틈은 작가의 작업 과정에서 드러나는 방법론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짐작된다. 멀리서 시각적으로만 체험해 온 작가의 일상은 실재 공간 속 작가의 몸과 작가의 눈, 그리고 의식 사이의 관계의 틈을 드러내는 작업 형식으로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이는 2018년 씨알 콜렉티브 전시공간에서의 개인전에서 입체 조각 형식으로 바닥에 설치한 구조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작품 〈시에라Sierra〉는 디지털 이미지의 요소들을 활용한 입체 구조물을 전시장 공간을 점유하도록 설치하여 물질적으로 오브제화 한 작업이다. 이 나열된 작업이 차지하고 있는 사각 형태의 비율은 16:9이다. 작가는 디지털 이미지와 환경요소 등을 활용하여 이와 대조되는 촉각적인 설치 형식을 구현하였던 것이다.


〈모하비(Mojave)〉(2019), 〈시에라(Sierra)〉(2018), 〈Image Wave〉(2018) 등 윤두현 작가가 가장 최근까지의 프로젝트를 위하여 다루었던 소재는 윈도우나 맥 OS 등 컴퓨터 운영체계에 디폴트로 속해있는 바탕화면 이미지이다. 즉 컴퓨터 시스템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는 이미지의 파편으로 또 다른 현상세계를 구축하는 작업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자연 풍경, 관광 명소 등의 낮 혹은 밤의 스펙타클한 풍경을 촬영한 장면이다.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사용되는 풍경들은 사실 그리 자연스럽지 않다. 우리가 이를 직접 경험하기에는 너무 멀리 존재하는 어느 이국의 풍경이 대부분이고 모니터의 화면은 발광체로서 색감은 더욱 자극적이고 화려하며 인공적이다. 작가는 이들을 이미지 파일로 전환하고, 자신의 감흥에 따라 확대하고, 물리적인 지면으로 인쇄하여 가공한다. 이를 자르기도 하고 접거나 말아서 입체의 형태가 되기도 한다. 이는 주어진 벽면 안에서 다시 재조합되면서 작가의 의식을 따른 서사를 발생시킨다. 특정 사물을 연상시키는 각종 기하학적 선과 모양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즉흥적이면서도 유희적이다. 이어붙인 선들이 하나의 도형을 이루고 그 도형의 모양에서 연상되는 오브제가 다른 오브제, 조형 등에 어떤 사건을 일으키고 그에 따른 결과물이 또 다음 이미지에 영향을 주는 서로 연결되는 서사가 지속하여 만들어진다. 이는 2017년도의 〈Utopia and Paradise〉(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의 작업이기도 하다. 이 프로젝트에서 작가는 인터넷 검색창에서 Utopia와 Paradise를 검색하여 얻을 수 있는 이미지들을 소재로 사용하였다. 이 벽면 설치는 이후 다시 촬영하여 픽셀 이미지로 변환된 후 프린트하여 액자로 재가공하는 과정으로 확장된 형식의 가능성을 현실화한다.


동굴 벽화의 공간감이 없는 평면적 구도와 기호적 표식들이 지시했던 기능이 사라진 이미지는 현재, 시간성이 지닌 동시대의 맥락이 사라진 채 시감각을 자극하는 유희적 대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고유 목적에 따른 기능이 더이상 작동하지 않은 채 유희적 고찰의 매개로 전환되었다는 점은 그의 초기 작업에서 드러난 특정 환경을 다루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윤두현 작가의 초기 작업에서는 기존의 법칙, 기준으로 측량/측정되는 환경의 오류, 어긋남 등을 제시하였다. 작품 〈Untitled:clock, 절단한 시계, 40x30cm〉(2017)는 시계의 초침이 서로 맞물려 작동은 하고 있지만 움직이지 못하여 시간 표기의 오류를 발생시켰다면, 작품 〈Samples of Space, 온도계, 가변설치 (2013)〉는 한 공간 속에서 측정되는 온도가 위치에 따라 다르게 측정되는 현상을 드러냈다. 작가는 Museum of Modern Art(MoMA)에 설치된 온 카와라, 말레비치 등의 유명 페인팅 위에 몰래 조그만 수평계를 올려 수평이 어긋나 있음을 확인하는 사진을 남겼다. 미술품을 설치할 때 필요한 수평의 감각은 측량 도구를 사용하여 확인하는 실제 환경 속 눈의 감각 간의 오차는 명확해진다. 일반화된 지식 혹은 자연현상에서 발견하는 ‘오류’는 심리적으로 불안감을 형성하곤 한다. 허나 이러한 윤두현 작가의 작업들에서 확인했듯 절대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였을 때, 그 오류가 나의 삶에 별 영향을 주지 않고 있다는 인식은 현재의 환경에 안도하게 되며, 나아가 이를 시각적인 유희로서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요소로 전환된다.


〈Mojave day and night series〉, 2019, digital print, 200x54cm, 100x42cm, 200x54cm each. 사진제공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Mojave day and night series〉, 2019, digital print, 200x54cm, 100x42cm, 200x54cm each. 사진제공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작가는 기능을 다 한 폐학교에서 일정 기간 전체 공간을 사용하여 전시를 한 적이 있다. 학교 내부의 조명 역할을 했던 형광등을 잘게 깨뜨려 별모양의 바닥 설치 작업으로 변모시켰고(〈Daed Lights〉, 가변크기, 형광등 2015) 복도 통행로나 드나드는 입구 부분에 폐자재들이 공간을 점유하여 동선을 방해한다(〈Corridor〉, 나무, 가변크기 2015 / 〈Entrance〉, 나무, 가변크기 2015). 2016년도의 프로젝트에서는 화장실이나 세면대 등이 그 고유의 기능이 삭제된 채 이질적 재료가 삽입된 구조물의 일부가 되었다. 기존의 것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다른 관점을 드러내는 태도로 익숙했던 공간 전체를 변주하면서 작가는 건축물 내부를 별개의 세계로 보고 그 속에서 작동해 온 오브제, 구조, 공간의 당연했던 역할을 아무렇지 않게 전복시켰다. 그리고 익숙했던 공간은 사용자가 아닌 새로운 경험자를 위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인간의 적응력은 너무나 빨라서 온라인을 통한 비대면 사회 활동이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이미 직접적이지 않아도 타인의 경험을 흡수하여 자신의 경험처럼 서술하거나 호응하는 문화는 SNS상에서 매우 빠르고 넓게 확산되고 있는 터이다. 현상학적 사유가 어느 단계까지 그 유용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직접 경험하지 않은 현상에 대한 감각적 인식을 시도하는 경향은 또 다른 경험의 일종이 되었다. 하지만 윤두현 작가의 작업에서 드러나듯, 가상과 간접적인 경험은 결국 물리적 형식을 띤 또 다른 환경을 경험케 하는 현상을 만들어낸다. 아주 먼 옛날, 동굴벽화를 그리고 있는 선사시대의 누군가의 상상 또한 곧 실현될 어떤 사건이었듯이.


※ 이 원고는 『2020 국립현대미술관 고양 레지던시 입주작가 비평모음집』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자의 동의 아래 게재하는 글입니다.

김인선 / 윌링앤딜링 대표

김인선은 이화여대 조소과 및 뉴욕 프랫인스티튜트 미술사학과를 석사졸업했다. 1999년 대안공간 루프를 시작으로 광주비엔날레 코디네이터(2001~2), 부산비엔날레 코디네이터(2000)와 공동 큐레이터(2006), 국제갤러리 부디렉터(2003~4),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2005), 대림미술관 학예실장(2006~7), 인터알리아 전시실장(2007~2009)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 윌링앤딜링 전시공간을 운영하고 있다.www.willingndeali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