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작가

이은새 : 진동하는 눈

posted 2021.04.02


김해주


이은새의 그림은 대부분 인물을 담고 있다. 풍경이나 사물은 인물에 비해 비교적 적은 빈도로 등장하거나 배경에 흐릿하게 나타난다. 신문이나 방송의 사건 사고 장면에 기반해서 그렸던 2015년 이전의 그림들이 구체적인 장소와 그 맥락을 드러낸다면 그 이후의 작업들은 주로 인물의 특징이 먼저 드러난다. 신체 비율은 사실적인 구성이기보다 캐릭터처럼 특징적인 부분을 강조, 확대하고 몸의 선들은 특정한 몸짓, 운동의 방향을 캐치하는 속도가 드러난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특히 눈이다. 코는 잘 보이지 않거나 생략되어 있고, 입 역시 뚜렷하지 않다. 입이 뚜렷하게 보일 때는 굳게 다물고 있거나 공격적으로 이빨의 형태를 분명히 보일 때이다. 그러고보니 내가 가장 처음 접한 이은새의 그림도 2015년 굿즈에서 구입한 작은 드로잉인 〈발화여자〉인데 상반신이 불에 휩싸여 (혹은 불로 되어 있어) 형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동그란 두 눈과 눈동자만이 또렷이 살아서 태연하게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As usual at bar〉, 2020, 캔버스에 아크릴과 유화, 90.9 x 72.7 cm.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As usual at bar〉, 2020, 캔버스에 아크릴과 유화, 90.9 x 72.7 cm.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강력한 눈으로 기억나는 또 다른 장면은 〈밤의 괴물들 – 노상방뇨〉(2018)에서 쪼그려 앉아 소변을 보는 여자의 두 눈이다. 다른 얼굴의 세부 묘사는 사라지고 마치 밤의 고양이 같은 두 개의 빛이 정면을 향하고 있는 이 그림에서, 두 눈은 〈ㅗㅗ〉(2016)에서 인물이 치켜 올린 두 개의 가운데 손가락과 비슷한 메세지를 던진다. 〈응시하는 눈〉(2018)이라는 제목도 여러 차례 등장하는 데 코와 이마까지 얼굴의 일부를 화면에 가득 담아 초록색으로 채운 이 그림에서는 흐릿한 눈썹과 안경 너머로 도넛처럼 동그란 눈동자가 팽팽하게 서 있고 〈응시하는 여자〉라는 작업에서는 두 눈동자가 독립적으로 살아 있는 형체처럼 동그란 선으로 그려져 그림 속 형체와 색깔 위에 도드라져 있다. 응시하는 눈의 다양한 형태가 드러나는 것은 2016년의 그림 〈바이킹의 소녀들〉이다. 걸그룹 소녀시대가 바이킹 놀이기구를 타고 있는 사진을 모티브로 그린 이 그림에서도 여덟 명 인물들의 눈동자가 인상적이다. 권태로운 눈에서 부릅뜬 눈까지 사진의 각도상 눈의 방향은 그림에서 사선을 향하고 있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대상에 대해 절대 눌리지 않는 눈, 원하는 눈빛을 보내주지 않겠다는 눈, 싸움을 앞둔 상대를 바라보는 듯한 눈의 스펙트럼이다. 전시 《밤의 괴물들》 (2018)에 소개된 작업들의 인물들 대부분은 눈을 정면으로 하여 화면 밖의 관객을 향하고 있다. 그림을 보는 이, 즉 그림을 응시하는 주체를 다시 응시하며 시선의 권력을 뒤집는 그림의 구조는 보는 이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건다. 마치 브레히트의 소격 효과처럼 화면 밖의 사람을 끌어들이면서 그림은 해당 장면이 전달하고자 하는 도발과 분노 해방의 복합적 감정을 품은 직설 화법을 강화한다. 이 인물들이 여성에 대한 관습적 시선의 방식을 거부하거나 응시의 대상이 되는 것에서 벗어나 강력히 발화하는 눈빛과 포즈를 취하며 말을 건넬 때 나는 스위스의 페미니스트 화가 미리엄 칸(Miriam Cahn)의 그림 속 인물들과의 가상의 연대를 상상했다. 불안정한 이미지와 흩뿌려진 디테일을 통해 성의 파워 게임과 폭력의 복잡성들을 드러내는 그림을 그려온 70대의 화가 미리암 칸이 “분노는 예술의 훌륭한 모토이다(Anger is a very good motor for art)1) ”라고 했던 것을 떠올리면서.


눈은 또한 시선의 권력을 비롯하여 본다는 것 자체의 복합적 문제를 안고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작가는 전시 《Guilty-Image-Colony》(2016)와 그 안의 작업들을 통해 동시대의 다양한 보기의 상황에 대해, 특히 매체를 통해 일어나는 응시의 윤리성에 대해 질문했다. 영화 〈시계태엽장치 오렌지〉(1970)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강제 관람〉 (2016)은 집게로 두 눈을 크게 벌린 장면을 화면 가득 채운 다소 사실적인 형태의 그림이다. 〈시선 이탈〉 (2016)은 핸드폰 화면에 시선을 뺏기고 밝은 빛 아래 간단한 선으로 표현되어 거의 형태가 사라지다시피 한 눈을 그렸고, 〈겹쳐진 눈〉(2016)역시 핸드폰을 바라보는 눈이 그림의 중심에 있다. 그림의 구성 자체에 는 제목이 지칭하는 상황에 대한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인 해석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선 이탈이나 강제 관람의 주제는 일상에서 수없이 일어나는 미디어를 통한 이미지의 강제 노출과 접촉 그리고 이를 통한 무의식적인 훈육을 생각하게 한다. 2016년의 전시에서 응시의 대상을 선택하거나, 일상에서 시선을 조종당하는 문제에 대해서 거론하면서 질문을 시작했다면 2018년의 전시는 그 인물들이 화면 밖을 당당하게 바라보면서 응시를 전복하는 것으로 하나의 맺음을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As usual at bar〉, 2020, 캔버스에 아크릴과 유화, 90.9 x 72.7 cm.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As usual at bar〉, 2020, 캔버스에 아크릴과 유화, 90.9 x 72.7 cm. 사진제공 아트인컬처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에서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재현하는 작업들로 한 번 더 주제에 기반하는 작업을 제시했다면, 최근 갤러리 2에서 열린 전시 《늘 마시던 걸로》(2020)에서는 그림의 형식에 대한 문제로 전환을 시도한다. 전시는 마치 작가가 매일 하는 반복적인 습작의 과정 중 한 단면을 끄집어 온 것처럼 구성되어 있다. 주제나 내용에 집중하기 보다는 드로잉과 회화 및 그 재료를 사용하는 방법론 사이를 탐구하며 그림을 반복한다. 인스타그램 필터를 낀 인물, 음식, 고양이,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엑스 자를 쳐 가며 보낸 한 달 달력의 이미지 등 무척 일상적인 대상들이 대부분 무채색으로 나열된다. 작가는 평소에도 드로잉과 회화 사이를 교차하며 같은 주제를 여러 번 반복해서 다시 그린다고 한다. 이는 그림을 그리는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서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는 상태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토록 일상적인 소재를 그림의 대상으로 선택한다는 것도 하나의 주제 선택의 방식이라는 점과 특정한 색감과 반복적인 배열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 전시는 연습의 방법론을 보여준다는 것 이상을 추측하게 한다.


전시장 한 공간에 각각 181.8x227.3 크기의 캔버스에 담겨 두 가지로 변주되는 〈Laying with Switch 1, 2〉은 단일 작업으로는 전시 내 가장 큰 작업으로 시선을 끈다. 선을 중심으로 표현한 것과 다소 사실적으로 표현한 두 무채색의 그림은 같은 구도를 보여주며 형식적 시도로서 반복을 표시한다. 닌텐도를 손에 쥔 채 다리를 벌리고 가로누운 인물의 눈에 보이는 것은 권태로움이다. 무기력한 눈은 다문 입술과 함께 여전히 주체적이지만 강한 의지는 결여된 복합적인 시선을 드러낸다. 물론 누워있는 몸의 자세와 무채색의 선택이 다양한 색깔 위에 서 있는 인물들의 역동성이 드러난 기존 그림의 화면 구성의 방식과 비교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같은 대상의 이미지로 재귀하는 것은 어떤 기준 삼은 완성을 향한 노력 같은 것이 아니라 진동하는 상태를 붙잡아 가려는 지난한 과정 같은 것이다. “늘 마시던 걸로” 라고 말해 본 적은 없지만, 그 말을 상상했을 때 찾아오는 기이한 안락과 권태의 장면처럼, 반복되는 그림들은 무료한 가운데 흔들리는 감정의 순간을 다룬다. 형식의 반복에서 그리고 그림 속 인물의 두 눈에서 느껴지는 그 진동이 2020년에 많은 이들이 느낄 수 있는 어떤 감정을 포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이은새의 그림들은 급변하는 지난 몇 년간 그 시간대에 있었던 사건들과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연루된 감정을 포착해 왔던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1)“Miriam Cahn on #metoo, discipline, and why she’ll never stop being angry,” Art Basel, https://www.artbasel.com/stories/meet-the-artists-miriam-cahn.


※ 이 원고는 『2020 국립현대미술관 고양 레지던시 입주작가 비평모음집』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자의 동의 아래 게재하는 글입니다.

김해주 / 큐레이터

김해주는 전시 기획자이며 2022년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