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작가

이주리 : 시점, 가치, 냉동 창고

posted 2021.05.25


현시원


1.회화의 생산. 이주리는 회화를 ‘생산한다’. ‘그린다’는 역사적인 동사와 담론 위에 작가는 ‘시점’을 수직적으로 내리꽂는다. 여기에는 스마트폰, 아이패드 등의 미디어가 가져다 온 기술의 측면이 한 축에 있다. 또 회화와 이미지 생산, 미술가로서의 어떤 유토피아를 매우 현실적으로 생각해내는 동시대 작가인 이주리의 시선이 있다. 기술과 시점이라는 두 가지 장치를 가지고 작가는 이미지의 체계, 시스템 너머로 회화를 데리고(함께) 이동한다. 정확히 말해 이주리는 회화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생산한다. 회화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와 오해를 떠나, 이미지라는 가변적이고 변화무쌍한 존재들을 상대함으로써 작가는 현실에 대한 명료한 입장과 대화가능성을 밝히고 또 획득하는 길로 나아간다. 평면 회화로 2000년대 말 작업을 시작한 작가는 자신을 ‘이미지 생산자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힌다. 동시대 이미지의 데이터베이스 안에 생산자, 소비자, 경험자, 관망자 등을 새롭게 구조화하며, 작가는 이미지를 둘러싼 가치의 문제를 질문하는 능동적 작업을 해내고 있다.
왜 능동적인가. 그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의 능동성을 타인, 다른 기술, 맥락에 기대어 지지함으로써 ‘각자 또 같이’ 나가는 형태를 띠는 데서 기인한다.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와 선택과 개입의 방식을 다각도로 비틀면서, 작가는 오늘날 이미지의 생산-제작-유통에 관해 작가의 회화에 대한 입장을 타진한다. 그것을 나는 하나의 실천(acting)이자 동시대 타인과 함께 해나가는 연습(practice)으로 바라본다. 생산의 측면에서 회화/이미지 생산을 위해 자가 제작된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이를 공유한다는 차원에서도 그러하며, 전시를 구축된 데이터와 출력할 공간과의 관계를 결정짓는 시스템으로 바라보며 작가 안성석, 홍진훤, 음악 고우, 텍스트 장서윤 등과 전시와 작업을 제작해내는 과정 또한 그러하다.


이러한 실행/실천의 과정을 발견함과 동시에 지속하는 데 있어 핵심이 되는 것은 ‘선셋 밸리’(2018)라는 이름의 이미지 시뮬레이터 프로그램이(었)다.1) “전통적인 매체로 이러한 오늘날 이미지의 실시간 생산, 유통 구조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2)라는 질문을 던졌던 작가 이주리가 손에 쥐고 있는 이 괴상한 프로그램은 매끈한 아이패드 안에 데이터와 툴로 장착되어있다. 그러나 무엇을(과거의 작가 작업들) 통해 앞으로 무엇이 되려고 하는지 완벽하게 알 수 없는 무한대의 정보값을 가진 괴물과 같은 장치이기도 하다. ‘선셋 밸리’에서 만들어낸 선택들은 예의 타당해 보이는 완결적 선택들로 이뤄지지만 이 프로그램에 의한 ‘랜덤’한 선택들은 역설적이게도 ‘개별적 조합들로 이뤄진 유일무이한’ 결과값들을 도출해낸다. 덩어리에서 개별적인 파편을 추출해내고 이것이 다시 현실로 정박하는 과정들에서 형식(form)이 물질화된다.


《리패키지》 (SeMA창고, 2020) 전시 전경. 사진제공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리패키지》 (SeMA창고, 2020) 전시 전경. 사진제공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2.폼의 결과값_결과가 아닌 결과‘값’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이주리의 작업 행위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스템과 마주한다. 그것은 2020년의 경우 ‘시스템으로서의 전시’다. 세마창고에서 열린 작가의 개인전 《리패키지》(2020년 8월 7일-2020년 9월 6일, 세마창고)은 작가가 가졌던 일련의 과거 전시들을 다시 ‘리패키지’라는 입력값으로 일으켜 세운다. ‘리패키지’는 어쩌면 알리바이이지 않을까? 작가가 관심있는 것은 과거에 검은색으로 제시했던 작가의 내면세계의 일부분이(화면을 가로지르는 어떤 색과 형태) 다른 작업물의 추동체로 작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 그리고 A가 현재의 현실 공간인 B에 달라붙었을 때 무엇이 어떻게 ‘중첩’되고 ‘가동’되는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즉 엔진으로서의 추동체, 불협화음이거나 조력자이거나 동반자이거나 배신자로서의 다른 두 개 이상의 리얼리티가 바로 그것이다.


작가가 ‘전시 데이터’라고 부르는 이 복수의 자료들은 전시되었던 작품뿐 아니라 공간, 기타 맥락, 제반 조건들을 모두 포괄한다. 《리패키지》 전의 전시공간에서 관객이 보게 되는 것은 물론 그가 했던 전시들의 데이터이다. 흔적이나 아카이브가 아니라 데이터 상태로 남은 과거 6번의 전시들은 가상 공간에서 여전히 그때의 시점으로 그때를 살고 있는 냉동상태의 물리적 실체다. 개인전과 기획전을 통틀어 총 여섯 번의 전시를 재료로 삼은 그는 이 전시들을 다시 배치해 Z 축의 좌표로 작동시킨다. X축에 이전의 전시에 선보였던 작업들이 있다면 Y축은 이 작업들에 새 형태를 입히는 또 다른 재료들이다. 둘째로 전시장 바닥에 배치된 번개 표시의 부호는 해당 작품이 자리했던 이전 전시을 알리는 캡션이다. ‘레드썬’을 외치거나 다양한 종교들이 자신만의 결정적 언어들을 가지고 어떤 믿음을 깨우쳤듯이, 번개 모양의 부호는 눈앞의 작업(벽화, 회화, 조명) 등의 특수성이 어떤 하나의 현존에서 파생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진진하다.


3.덩어리와 개별
이주리의 작업에서 회화는 하나의 시스템이며 이를 풀어 헤치거나 묵어내는 특정한 운동이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작가의 작업은 일련의 전시들과 만난다. 이때 전시는 미술제도 안에서 작품들을 보여주고 완결되는 ‘쇼’가 아니라, 유무형의 데이터베이스로 어딘가에 축적되어 있는 것이다. 이 축적된 물질들을 작가는 몇 년 후의 자기 자신, 그리고 협업자들과 공유하며 이 공유의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생산 공정에 돌입한다.


데이빗 조슬릿이 쓴 글 ‘시간을 스코어링하다’는 동시대 회화에서 가장 특정적인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저자의 묘안을 펼친다. 세잔, 뒤샹, 잭슨폴록을 거칠게 통과하며 그려내는 20세기 초 이후 서구회화의 역사와 이미지의 네트워크를 고려하는 데이빗 조슬릿의 관심사가 한 켠에 있다. 조슬릿은 회화와 ‘의심’을 연결시킨 모리스 메를로 퐁티의 세잔에 관한 글에서부터 마르셀 뒤샹의 추측을 대비시키고, 잭슨 폴록과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붓질과 픽처(그림)-되기를 연결시킨다. 이 수많은 연동 끝에 그가 다다르는 것은 오늘날 작가들이 화면 내부가 아닌 외부와 긍정적인 갈등, 마찰, 관계하며 ‘시간을 스코어링한다’는 문장이다. 이 글을 번역하여 시간을 다루는 특정적 매체인 사진이나 비디오가 아닌 ‘회화’와 시간 자체를 연결시켰다는 것에 큰 흥미를 느꼈지만 막상 이 ‘스코어링’이라는 행위를 스스로 가장 많이 깨달았던 순간은 수영을 하면서였다. 수영장의 이끝과 저끝 사이를 오가면서 하나 둘 셋, 어린아이도 다 아는 숫자를 입으로 되내일 때에, 몸이 움직이고 눈이 작동하며 가시적이고도 명시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주리의 회화, 이미지, 생산과 경험도 그렇다. 그는 혼자 화면을 헤엄치는 거대한 고래가 아니라 첨방첨방 다양한 데이터들의 바다를 오가며 이 조각들이 동시대의 무엇과 함께 가거나 대화할 수 있는가를 모색한다. 솔직한 생산가이며 넘겨짚지 않는 이미지의 대화 툴을 가진 작가인 것이다.


1)이 프로그램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볼 필요가 있다. “내 작업의 평면 구성 방식을 해체하면 일종의 규칙이 발견되고, 이를 프로그램화한 것이 선셋 밸리 시뮬레이터다. 이 프로그램은 이미지 생산의 도구이자 그 자체로 작업이다.”(이주리, 2018년)
2)작가의 말, 「한국현대미술의 자리-오늘의 매체 스페셜 대담 김시원, 문이삭, 박민하, 이주리」, 계간 시청각 2호, 시청각, 2018, 47쪽.


현시원 / 독립큐레이터

독립 큐레이터. 전시를 기획하고 이미지나 미술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