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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B 특집 (2) - 미래의 공원을 상상하며, 문경원의 <프라미스 파크>

posted 2021.07.12


광주비엔날레는 광주 정신과 동시대의 다양한 담론을 다루는 작품들을 꾸준히 선보이며 국제 현대미술의 장으로서 역할을 모색해 왔다. 올해로 제 13회를 맞는 광주비엔날레는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Minds Rising, Spirits Tuning)’ 이라는 주제로, 광주 도심 전역에서 39일 동안 진행되었다. 비엔날레전시관, 국립광주박물관, 양림산 호랑가시아트폴리곤, 광주극장, 구 국군광주병원 등에 총 43개국 69명 작가(팀)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에는 다수성(Plurality)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전 지구적인 생활체계와 샤머니즘, 토착 생활양식, 반주류적 사회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동체 의식’을 이야기하는 다수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비엔날레에 참여한 총 11명(팀)의 한국 작가 중, 더 아트로는 3명의 작가를 선정하였다. 광주 비엔날레에 선보인 커미션 신작을 통해 이들의 작업세계를 조망해보고자 한다. 이번 기사에서는 문경원 작가가 2015년부터 진행한 〈프라미스 파크〉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광주비엔날레 커미션으로 제작된 신작 〈프라미스 파크 인 광주〉(2021)를 소개한다.


미래의 공원을 상상하며, 문경원의 <프라미스 파크>


김재석


올해 광주비엔날레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Minds Rising, Sprits Tuning)>에서 관객을 처음 맞은 작품은 문경원의<프라미스 파크 인 광주(Promise Park in Gwangju)>였다. 비엔날레의 공동 예술감독 데프네 아야스와 나타샤 진발라는 제1전시실을 ‘공공성’의 동시대적 개념을 함축한 열린 장소로 대중에게 무료 ‘오픈’했다. 온라인 전시 투어 영상에서 나타샤 진발라는 문경원의 작품이 1층 전시장의 주제와 일맥상통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프라미스 파크 인 광주>가 “다학제적인 공간으로 기능”하며, “(작가는) 신경 과학, 역사가, 과학자 등의 전문가를 초대해, 사회와 지리가 어떻게 우리의 세계관을 정립하는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고 분석했다.


문경원, 프라미스 파크 인 광주, 2021, 카펫, 이미지 광주비엔날레 제공.

문경원, 프라미스 파크 인 광주, 2021, 카펫, 이미지 광주비엔날레 제공.

<프라미스 파크 인 광주>는 가로 세로 7m 60cm의 거대한 정사각형 모양에 1.5cm의 두툼한 두께를 지닌 카펫 형식의 작품이다. 별다른 안내 문구가 없다면, 누군가는 바닥에 깔린 이 작품을 쉽게 지나쳤을 것이다. 카펫의 사방을 천천히 돌며 살피자, 씨줄과 날실이 엮이는 ’직조’가 남긴 특유의 촉감적 질감과 암호와도 같은 패턴들이 조명 각도와 보는 방향에 따라 다채로운 모습을 드러낸다. 군청색과 갈색, 올리브진흙색 등의 비균질적 조합과 위에서 바닥을 내려다보는 조감의 시선 때문에, 작품은 흡사 위성 지도나 군대에서 주로 사용하는 위장용 패턴 혹은 추상 회화의 한 부분을 확대해 보는 느낌을 전한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제목이 지시하는 ‘공원’은 무엇이며, 광주라는 특정 도시와 공원의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일까?


공원, 집단지성이 연대하는 새로운 플랫폼


<프라미스 파크 인 광주>는 광주비엔날레 전시장과 주변 공원에 관한 역사와 도시의 지형 연구에 기초를 두고 있는 작품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경원이 2013년부터 진행 중인 동명의 프로젝트 <프라미스 파크>에 관한 소개가 필요하다.


<프라미스 파크>라는 타이틀의 작품이 처음 선보인 곳은, 2013년 일본 야마구치에 있는 YCAM(Yamaguchi Center For Arts and Media)의 1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 <미술과 집단지성(Art and Collective Intelligence)>에서다. 전시가 제시한 ‘과연 미래에 예술의 역할은 무엇일까?’라는 묵직한 화두에, 작가는 재앙적 자연재해로 폐허가 된 2070년의 가상 사회에서 다시 재생되는 미래의 공원을 담은 2채널 영상 작품으로 응답했다. 작가의 드로잉과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된 상상의 공원과 실제 공원의 모습을 근접 촬영한 영상으로 구성된 작품이었다. 문경원은 공원을 인류의 시대정신이 반영되는 장소로 개념화했으며, 작품의 제작 과정에서 건축가, 조경가, 식물학자 등과 연구를 진행했다. 특정 장소, 대상, 풍경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그곳의 역사를 추적하는 복합적이고 방대한 리서치 작업을 통해, 장소에 얽힌 거대사와 미시사를 유연하게 종횡하는 접근법은 문경원의 이전 작품에서도 확인된다. <경로(Passage)> 연작의 숭례문이나 서울과 평양, <버블톡(Bubble Talk)>의 삼청동 일대 전시장, <박제(Superposition)>(2009)의 옛 기무사, 2010년 갤러리현대의 개인전 <그린하우스(Green House)>에 등장한 온실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종말의 서사를 스토리텔링의 출발점으로 삼고, 예술의 본질적 의미를 다학제적으로 탐구하는 방법론은 전준호 작가와의 공동 프로젝트 <뉴스 프롬 노웨어(News from Nowhere)>(2009~)에서도 발견된다.


<프라미스 파크>가 예술작품으로서 지닌 풍부한 의미와 다층적인 매력, 미래의 실현 가능성에 매료된 YCAM는 작가에게 10여 년에 걸쳐 진행할 장기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그렇게 2013년부터 ‘공원’이라는 일상적 장소를 중심으로 예술가, 건축가, 식물학자, 역사학자, 도시 계획가, 편집자, 연구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대규모 리서치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2015년 YCAM에서 3년간의 연구 결과를 공개하는 리서치 쇼케이스 형식의 개인전 〈Promise Park - Rendering of Future Patterns〉가 열렸다. 전시는 동서양을 대표하는 공원의 계보를 연구 조사해 얻은 아카이브를 시각화한 섹션 ‘파크 아틀라스(Park Atlas)’, 드론 촬영과 컴퓨터 그래픽 합성을 통해 폐허가 된 일본의 근대 산업 시설을 미래의 공중 공원으로 재상상하는 영상 ‘카펫 오브 무빙 이미지(Carpet of Moving Images)’, 3개월 동안 거대한 카펫을 제작해 미술관 중정에 펼쳐 놓는 ‘우븐 카펫(Woven Carpet)’ 등 세 파트로 구성되었다.


문경원, 프라미스 파크 인 광주 (디테일 뷰), 2021, 이미지 광주비엔날레 제공.

문경원, 프라미스 파크 인 광주 (디테일 뷰), 2021, 이미지 광주비엔날레 제공.

주목할 작품(장소)는 카펫이었다. 문경원은 카펫을 <프라미스 파크> 프로젝트의 전 과정을 은유하는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의 플랫폼”으로 제시했다. 도심 속에서 인공 낙원의 도피처가 되는 공원의 역할을, 펼치고 접히며 이동 가능하며 그것이 놓이면서 장소성을 손쉽게 재맥락화하는 카펫의 기능과 연결 지었다. 카펫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만남의 장이자 무대와 같다. 씨실과 날실이 결합하는 직조의 방식은 디지털 시대의 지식과 정보의 연결, 아카이빙을 환기하는 강력한 형식적 언어(방법)가 되었다. 그는 공원의 여러 요소를 패턴의 개념으로 재해석하고, 이를 카펫에 새겨 넣었다. 카펫에 새겨진 장면은 야마구치현 주변의 폐허나 버려진 산업 시설을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을 기초로 콜라주해 만들었으며, 이를 일본의 전통 직물 직조 기법인 니시진오리(西陣織)를 활용해 카펫으로 제작했다. 카펫은 폐허 속에서 싹을 틔우는 이끼들처럼 전시 기간 중 점차 증식하듯 바닥을 덮어갔다. 2016년 5월에는 <프로미스 파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서울에서 리서치와 워크숍 세션이 열렸다. YCAM 바이오랩의 프로그래머를 비롯해, 편집자, 큐레이터, 건축가, 공학자, 음악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향이라는 감각적 매개체를 통해 무의식에 내재된 공원의 상징적 개념을 새롭게 접근하는 토론과 과학실험을 진행했다. 2017년에는 <프라미스 파크>의 연구와 전시의 결과를 집대성한 동명의 책이 발간되었다.


<프라미스 파크 인 광주>, 광주의 역사를 새롭게 직조하다.


올해 광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인 <프라미스 파크 인 광주>는 제목처럼 광주라는 도시의 특수한 역사와 기억에서 출발한다. 광주의 옛 지도나 위성 사진을 참고하여 도시의 풍경을 추상화된 패턴으로 전환하고 이를 대형 카펫으로 직조했다. 비밀스러운 문서의 일부처럼 보이는 이미지 속에는 광주라는 도시를 둘러싼 흥미로운, 그러나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이야기가 촘촘하게 새겨져 있다. 문경원은 작품을 제작하며, 1943년 광주에 처음 조성된 시민공원의 존재, 한국 근대 산업의 출발점이 된 방직 산업의 역사, 1950년대-60년대 광주와 전남 일대의 방직 공장들, 5.18민주화운동을 지나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조성된 광주비엔날레 전시장 주변의 미술관과 공원에 얽힌 사연을 하나둘 발굴했으며, 도시 내외부의 변화를 추적해 갔다. 또한 인지 과학자, 건축가, 지역문화연구자, 점성술 학자 등과 탐구를 병행했다.


문경원은 <프라미스 파크>가 공원을 디자인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 프로젝트에서공원은 “역사와 시간, 장소의 의미와 기억을 담아내는 상징”과 같다. 작가는 말한다. “<프라미스 파크>는 그동안 우리가 지향해왔던 세상에 의문을 제기하며 새로운 플랫폼으로서 공원의 의미를 다시 정의했다. 인류가 만들어낸 문명, 제도, 권력, 그것이 상실케 한 우리의 인식, 실패한 역사 이후 남겨진 것에 대한 연구이자, 상생 가능성의 모색이다.” <프라미스 파크>의 공원은, 오늘도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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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석 / 갤러리현대 디렉터

갤러리현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미술잡지 아트인컬처의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국내외매체에 미술에 관한 글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