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활동하는 재미 한인 작가 이재이는 팬데믹 이후 2021년 5월 16일 일요일, 지하철 24시간 재개통을 기념하는 행사와 5월 21일 금요일, <손으로 만든 현실 (Handcrafted Reality)>이라는 제목의 공공미술 비디오아트를 뉴욕 맨해튼 월스트리트 근처, 웨스트필드 쇼핑센터와 연결되어 있는 풀튼센터 지하철역에서 선보였다. 8월 말까지 지속되는 이 전시는 사기업과 뉴욕시 지하철이 공동 개최한다. 지하 플랫폼, 일 층의 대형 화면, 그리고 돔에 이르는 천장의 곳곳에 티커 화면(ticker displays)을 설치해 매시간 광고 대신 2분짜리 비디오아트가 상영되도록 했다.
인간과 기계의 교류
이재이 작가의 작품은 1990년대 비디오 게임을 연상시키는 친근한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 테트리스 게임이나 마인크래프트 게임의 색감과 디자인이 떠오른다. 크리스피 크림 도넛과 쉐이크쉑 햄버거 가게 등으로 가득 찬 풀튼센터 지하철역 쇼핑몰과 지하철 이용객은 이재이 작가 작품을 보며 디지털 게임과 함께 보낸 유년 시절을 추억하게 된다. 예상치 못한 팬데믹의 출현으로 작품 공개가 일 년 넘게 지연되는 사이, 작가는 사회적 거리 두기 환경에서 가상 현실 혹은 디지털 플랫폼으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직장을 다니고, 여가를 즐기는 현대인의 모습을 레트로 스타일의 비디오 게임이라는 모티브에 투영하였다.
비디오 게임을 일상생활의 일부로 경험하며 자란 아티스트와 엑스 세대는 레트로 비디오 게임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 현대인들은 닌텐도 게임 회사가 제작한 슈퍼마리오, 포켓몬스터, 리니지 등 인기 게임의 캐릭터를 몇 년에 한 번꼴로 만나는 사촌이나 친척보다 훨씬 더 친숙하게 느낀다. 이러한 게임 캐릭터와 그래픽 모티브는 가상 현실에서만 나타나므로 전원을 끄면 순식간에 사라지는 무형의 신기루와 같다. 하지만 게임을 하며 자란 사람은 각 캐릭터의 감정적 특성을 마치 사이버 가족처럼 묘사할 수 있다. 이재이 작가의 <손으로 만든 현실>에 등장하는 파스텔 색상의 귀여운 기하학적 오브제는 가상 현실의 기억 속 인물과도 같다. 작가는 1980~90년대를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녹색의 화면 보호 그래픽이나 초보적인 비디오 게임의 캐릭터를 화면에 녹여냈다. 거대한 모니터 속에는 녹색 배경을 바탕으로 게임 마인크래프트에서와 같이 초원을 달리는 곤충이나 동물을 표현한 동그란 물체가 가득하다. 그러나 작가의 말에 따르면, 컴퓨터 그래픽 같은 풍경도 결국은 인간이 자신의 상상력에 근거해 손으로 빚어낸 산물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작품을 <손으로 만든 현실>로 명명했다.
현재 나이아가라 폭포, 북극곰 등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를 기록한 이재이 작가의 비디오아트가 미국의 유명 컬렉션에서 소장, 전시 중이다. MTA 아트프로그램에는 해마다 수천 명의 작가가 지원하지만 그중 소수만 초대된다. 세라믹 타일이나 유리, 금속공예 등의 작업을 선보인 한인 작가는 다수 있었지만 이렇게 풀튼센터 전체에 수십 개의 디스플레이 모니터를 통해 비디오아트를 선보인 이는 이재이 작가가 처음이다. 그의 작품에는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차용한 팝아트의 영향이 나타나면서도 기계 문명과 인간의 관계를 돌아보는 철학적 고찰이 담겨 있다. 요컨대 그는 사회적으로 격리되어 인간관계의 단절을 경험하는 현대인의 문제에서 더 나아가, 기계와 인간의 교류에서 안정감과 노스탤지어, 신뢰를 느끼는 비인간계의 인간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생활 곳곳에 적용되고, 로봇을 탑재한 가전제품이 즐비하며, 딥 러닝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21세기에 이재이 작가의 작품은 인간 사이의 공감을 말하는 유쾌하면서도 발랄한 프로젝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