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은의 작업은 오늘날의 세계가 당면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 가운데 하나인 ‘자아의 동일성(identification of self)’에 대한 기술(technique)을 다루고 있다. 자아의 동일성이란 한 개인이 자신을 일관되고 통합된 존재로 인지하는 것으로, 동일한 시공간과 좌표, 하나의 불변하는 점으로 파악함으로써 세계 내의 다른 존재들과 자신을 차별적으로 구분해 낼 수 있어야만 한다. 이러한 구분은 역사적인 것으로 르네상스 이후 근대가 출발한 이래 ‘개인(individual)’이라는 개념의 진화 속에서 근대적인 사회적, 정치적, 정신적 구조를 구축하는데 핵심적인 조건이 되어왔다. 자아의 정체성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정의는 그것이 절대적 주체로서 세계 위에 군림한다는 것이며 오늘날 우리는 기술적(technological) 장치들의 발전을 통해 인간이 신의 경지에 이른다고 하는 ‘호모 데우스(Homo Deus)’의 도래에 대해 듣고 있다. 그리고 그것에 반대되는 지점에는 ‘분열(schizophrenia)’, ‘해리(separation)’등과 같은 동일성의 붕괴 내지는 다중화(multiplication)를 의미하는 정신분석적 사태들이 있다. 스스로를 분열된 자아들의 중첩으로 인식하는 사태에 대한 다양한 서사들, 예컨대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와 같은 다중인격에 대한 이야기들은 적극적으로 그러한 상태에 몰입시키는 약물이나 최면술과 같은 기술을 매개로 차용해왔다. 수없이 많은 기술적 장치와 경로들을 통해 다중적 자아를 정상성으로 인식하는 지금의 세계는 더 이상 이러한 약물, 마법, 최면, 중독과 같은 방법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개인 내부의 분열과 타자성은 일반적인 것이 되었으며, 수많은 채널과 장소(site) 간 이루어지는 순간적이고 반복적인 전환(transfer) 못지않게 동시에 모든 곳에 존재하면서 모든 방향으로 응시하고자 하는 욕망은 보편적인 것이 되었다.
이성은은 기면병(narcolepsy)을 앓고 있다고 한다. 스스로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잠이 드는 이 증상으로 인해 자신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잠이 들 것인지에 대해 항상 의식하고 대처해야 하는 생활이 일상화되었다. 가장 특이한 점은 작가 스스로 잠이 든 상태에서 자신이 잠이 들었는지 아닌지에 대해 확인하는 기술을 스스로 터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기술 가운데는 거울과 같은 특정한 사물을 찾아서 자신을 비춰 본다든지 하는 일들이 포함된다. 꿈을 꾸면서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자각몽(lucid dream)’의 경우 이러한 동기를 더욱 활발하게 할 뿐 아니라 일종의 ‘반-명암(chiaroscuro)’상태에서 자아를 인식하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작가는 자신을 일종의 대상으로 분리시켜 바라보는 시선을 작품의 주제로 삼았으며 그 첫 번째 작품이 2012년에 제작한〈자기자신과 악수하기〉이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후 자신의 실존적 상황에 비추어 예술적 실천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그가 처음으로 시도한 것은 오큘러스 리프트(oculus rift)와 웹캠(webcam)을 이용해 자신을 거울처럼 바라보게 하는 고글이었다. 자신을 마주 보는 대상으로 설정해놓고 일상에서 끊임없이 관찰할 수 있게 해주는 이 장치를 통해 그는 자신을 강박적으로 자각하게 만드는 기면증의 구조를 작품으로 옮겨 놓았다. 이러한 작업은 그 뒤에 제작한〈3인칭으로 살기〉(2015)를 통해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조로 이어졌다. 자신이 자신을 여러 각도에서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따라다니는 이 작업은 흡사 유체이탈이나 셀프-스토킹(self-stalking)과 같은 독특한 서사구조를 떠올린다. 물론 이러한 현상들은 모두 사후세계 혹은 유령과 같은 가상적 존재의 시선을 연상시킬 뿐 아니라 자신을 타자로 응시하는 가운데 함께 생활을 영위하는 수호천사나 초월적 존재의 관점을 떠올리기도 한다. 2015년에 이성은은 ‘다빈치 아이디어 공모’에서 선정된 뒤, ‘다빈치 크레에이티브 2015’(금천예술공장)에서〈가상현실에서의 죽음〉을 제작, 전시하였다. 이 작품은 임사체험처럼 이제 막 병원에서 사망한 사람의 시선으로 그를 애통해하는 가족들을 바라보는 상황을 가상현실(VR)로 경험하도록 한 작품이다.
본격적인 레지던시 활동과 다른 예술가들과 함께 하는 창작 공동체를 경험하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예술적 맥락에서 평가할만한 작업들을 제작하였다.〈에테리얼-지극히 가볍고 여린〉(2017)은 기금을 지원받아 전시의 연출적 상황을 극대화하기 위해 커다란 로봇을 제작되었다. 로봇의 시점으로 뒤에서 고글 착용자의 목을 조르려고 하는 동작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2018년 작〈동시에 일어나는 것들〉에서는 자신의 모습을 3D로 제작하여 고글 착용자가 다가가면 무너져 내리는 VR 작업을 보여주었다. 카프카(Franz Kafka)의 소설 ‘변신’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변신〉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3인칭 고글을 쓰고 생활하는 일종의 생활 퍼포먼스 작업이다. 그는 자신을 관찰하는 3인칭 시점으로 자신을 관찰하면서 신체 외부에 존재하는 눈을 가지고 생활하는데 결국 적응하게 된다. 이 작품을 통해 관객은 흡사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There are more things」라는 단편을 떠올리는, 눈이 바깥에 달린 이상한 신체를 지닌 괴물로 변한 자아를 경험하는 작가의 일상을 보게 된다. 작가가 인용한 라마찬드란(Ramachandran)의 ‘환상사지’라는 개념은 이러한 작업의 주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 작업에 따르면, 자신의 신체를 잃은 전상자의 뇌가 마치 그 신체가 계속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과 유사하게, 존재하지 않는 신체의 구조를 뇌에 훈련시켜 그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느끼도록 하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세계의 가상성에 대한 이론은 칸트(Immanuel Kant)의 구성적 판단에 이론으로부터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의 ‘확실성’에 대한 논리적 추구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한 이론적 가능성으로 이어진다.〈무경계 명상 자동차〉(2018)에서는 자신이 자각몽을 꾸는 동안 그것이 꿈이라는 상황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신호가 무엇일까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자신의 의지와 반대로 진행되는 상황을 발견하는 방법을 작업으로 기획한 것이다. 뇌파 감지기를 착용한 관객은 무선 자동차를 움직이려고 하면 자동차가 정지하고, 정지시키려고 하면 자동차가 움직이는 장치를 통해,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전개되는 작가의 꿈 속을 경험을 하게 된다. ‘각성제’라는 의미의〈모다피닐〉(2018)은 스캐너를 휴대하고 다니면서 불특정한 공간을 촬영한 작업으로, 특히 거울이 양쪽에 달린 엘리베이터를 찍으면서 수없이 많은 공간들이 증식하는 경우에 이르러 원래 들어왔던 엘리베이터를 찾는 퍼포먼스로 이어졌다. 여기서도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다양한 실험들이 이어진다.〈시뮬레이션 우주 버그 측정 장치〉(2018)는 현실세계를 일종의 가상적 프로그램으로 상정하고 그것에 내재하고 있을 버그를 찾는 게임을 작업으로 다룬 것이다. 이 작업은 의사-물리학적 현상을 제시하여 그것으로 상위 차원에 존재하는 ‘프로그래머’의 주의를 끈다고 하는 ‘N+1차원 세계관’의 서사를 보여준다.
이성은은 지난 몇 년간 자신이 지닌 기면병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세계의 가상성과 비-가시적 주체의 의지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지는 흥미진진한 서사의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특이점 및 초-인간성에 대한 전망과 더불어 새로운 기술적 범주 전환으로 인한 인류사적 전기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 이러한 예술적 시도가 함축하고 있는 의의는 매우 크다고 하겠다. 이성은의 작업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더불어 커다란 격려가 주어지길 바란다.
유진상은 서울대학교 서양화과, 프랑스 파리고등장식 미술학교, 국립파리1대학과 8대학 D.E.A를 졸업했다. 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이며, 《제 2회 공장미술제》(옛 샘표식품 공장, 서울, 2000), 《제 7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 비엔날레》(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12), 《2013 대구미디어아트페스티벌: 우주보다 더 좋은》(대구예술발전소, 대구, 2013), 《실험적예술프로젝트 2014: 수퍼 로맨틱스》(대구예술발전소, 2014) 등을 감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