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득은 수묵화와 그 미학을 당대적 어휘로 구현하는 일에 평생을 바친 작가다. 그에게 지필묵은 작업의 통로이자 목표다.
“그냥 흔들리다 문득...”1)
어느 개인전 도록에 쓰인 이 경구는 김호득 작업의 화두다. 그에게 수묵화는 ‘그냥 흔들리다 문득’ 그리는 그림 즉 정중동(靜中動) 혹은 동중정(動中靜)의 순간을 그리는 그림이다. 분방한 붓의 움직임, 다양한 먹의 농담, 여러 소재와 방법들 사이에서 흔들리다 문득 정지한 어느 순간 그려낸 그림인 것이다. 그의 작업은 그 과정 자체가, 나아가 그 변화의 추이까지도 수묵 미학의 요체를 드러낸다.
그의 1990년대 그림들을 주목하게 되는 것은 이러한 미학의 정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폭포나 계곡, 산을 그린 일종의 풍경화인 이 그림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외양, 그것을 그리는 화가의 움직임, 이에 따라 흐르는 먹의 동세가 문득 멈춘 순간을 현시한다. 이는 또한 흔들리는 당대 한국화의 향방을 문득 제안하는 그림이기도 하다. 이 그림들에 1990년대 미술의 주요 자리를 할애하는 이유는 수묵화라는 전통 기법을 동시대 것으로 번안한다는 쉽지 않은 길에 섬광 같은 답을 주기 때문이다.
당대 우리 미술가들에게 주어진 과제 즉 전통과 현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이 김호득에게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는 수묵화를 평생 작업으로 선택한 순간부터 이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힘차고 거친 혹은 날아갈 듯 가벼운 붓질, 깊고 묵직하게 혹은 얇고 부드럽게 스며드는 발묵 효과, 그리고 이러한 묵법과 함께 담채 기법이 교차하는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그림들은 수묵화의 경계를 확장하려는 작가 의지의 소산이다.
풍경과 인물, 화조 등 회화의 모든 소재를 포용하면서 지속된 이 실험은 1990년대로 이어져 김호득 특유의 양식으로 집약된다. 다양한 기법과 재료, 형식 사이에서 ‘흔들리던’ 그의 실험이 한 작가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표상하는 시각기호로서 ‘문득’ 부상하게 된 것이다. 갈필과 윤필, 담묵과 농묵을 넘나드는 원숙한 필치들로 이루어진 이 시기 그림들은 전통 필묵법을 계승한 수묵화이자 제스처 흔적으로 이루어진 액션 페인팅이며, 눈에 보이는 자연에 심상을 투영한 신표현주의 풍경화다. 그가 1990년대 미술을 만든 한 작가라면 이처럼 동시대 요구에 부응하는 개인 양식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다.
주로 산이나 폭포, 계곡을 그린 이 그림들에서 자연은 멀리서 관조하는 대상이 아니라 가까이에서 촉지하는 대상, 나아가 그것과 하나 되는 기운생동의 원리가 된다. 따라서 산세를 그린 필치가 물줄기로, 바위로, 심지어 인체로도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물의 외형보다는 이를 가로지르는 보이지 않는 기운, 그것을 드러내는 필묵 효과가 요체가 되는 이런 그림들에서 무엇을 그렸는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물아일체를 지향하는 수묵화 전통에서 구상과 추상은 다른 것이 아님을, 따라서 그러한 구분 자체가 무의미한 것임을 이 시기 그림들은 보다 명확하게 현시하는 것이다.
1990년대의 전형적인 작업, 즉 자연의 외형을 빌려 그 원리를 구현하는 방법은 1990년대 후반을 지나면서 또 다른 국면으로 전개된다. 외적 대상에서 내적 주체로, 그 존재의 원리로 작업의 축이 이동하면서 관조적인 추상화면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1997년(학고재, 금호미술관)과 1998년(시공갤러리)의 개인전은 그 변화를 감지하게 하는 좋은 지침이다.
1997년 전시는 그동안의 풍경 소재들을 그대로 취하면서도 이를 좀 더 가까이에서 포착함으로써 붓의 놀림을 전면에 부각한 작품들로 이루어졌다. 투박한 광목에 그린 이 그림들에서 빠르고 경쾌하게 움직이거나 수직으로 힘차게 내리꽂히는 붓질들, 이에 따라 깊숙이 스미거나 가볍게 스치기도 하고, 뚝뚝 떨어지거나 날카롭게 삐치기도 하는 다양한 먹의 효과는 그 자체가 시선을 끌어들인다. 그림의 소재보다 그리는 과정이 부각되는 것인데, 여기서 작가의 관심이 객관적 대상에서 주관적 인지의 세계로 옮겨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바람’과 같은 보이지 않는 자연을 그리게 된 것이 그 증거가 될 것인데, 이는 ‘바람’ 주제로 열린 1998년 전시를 통해 가시화된다. 1996년부터 그린 바람 그림이 1997년 전시를 통해 소개되고 1998년 전시에서는 전체 공간으로 확장된 것이다.
작가가 본격적인 ‘설치’를 시도한 이 전시는 바람 즉 자연의 움직임을 공간 전체를 통해 구현한 예다. 우선 포장지나 하드보드지에 검은 안료를 뿌리고 문질러 그린 그림들을 나열한 벽면은 바람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일종의 회화적 설치다. 한편, 공기의 움직임을 형상화한, 벽에서 살짝 띄워 건 그림들, 천장에서 열 지어 늘어뜨린 아래쪽 반만 먹물로 물들인 화선지들, 그리고 바닥에 흩어진 먹물 적신 종이뭉치들로 이루어진 공간은 공기의 유동을 오감으로 감지하게 하는 건축적 설치다. 흑과 백, 허와 실이 서로 조응하면서 조용히 흔들리는 그 공간은 자연의 움직임과 이를 통괄하는 음양 원리를 체감하게 하는 현장이다. 이 전시를 통해 김호득은 수묵 원리를 공간적으로 구현한 독특한 설치의 영역을 연 셈이다.
이후 그의 작업은 보이지 않는 자연의 원리를 탐구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데, 이는 2002년 개인전(일민미술관)을 통해 구체화된다. 1999년의〈바람〉, 1999~2000년의〈바람에서〉, 그리고 2001년의〈흔들림-문득〉으로 이어지는 전시작들은 작가의 시선이 외적 자연에서 내적 원리의 세계로 옮아왔음을 지시한다. 함께 전시된, 넓은 붓으로 화면을 먹으로 가득 채운〈흔들림, 문득-사이〉(2002)는 반복과 일획, 비움과 채움이 동전의 양면임을 드러낸다.
특히〈흔들림-문득〉이라는 제목이 붙은 ‘점찍기’ 작품들은 그의 작업이 일종의 수행, 즉 “그리지 않고 하는”22) 것이 되었음을 확인하게 한다. 같은 듯 다르게 반복되는 점들은 작가 주체가 자연에 조응하면서 호흡하는 순간순간을, 간간이 드러나는 빈 공간은 그 호흡이 문득 멈추는 여백의 상태 혹은 깨달음의 시간을 지시한다. 그러나 다시 반복되는 점들처럼 그 백색의 시간은 다시 미지의 시간에 그 반복의 연쇄에 묻힌다. 점찍기는 그리기이자 지우기다. 그리는 것이 지우는 것이 되고 지우는 것이 그리는 것이 되는, 형태가 여백을 만들고 여백이 다시 형태를 만드는 상응관계의 연쇄, 이는 또 다른 기운생동의 예다. 일필휘지에서 무위적인 반복으로 작업의 방법은 달라졌으나 자연의 원리에 조응하려는 작가 의도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영원이 곧 찰나이며 우주가 곧 들풀과 다름이 없다는 생각. 그걸 작품으로 실천해보고 싶었다.”3)
점찍기 작업에 대한 작가의 설명이다. 그는 점을 찍어감으로써 시공을 넘나들며 순환하는 자연의 섭리에 다가가고자 했다. 붓 혹은 손가락, 주먹 쥔 손 등으로 찍어가는 그 점들을 그는 “획이며 기(氣)”라고 했다. 그것들은 자연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고 또한 문득 멈추는 “마음의 결”이자4) 그 결을 따라 드러나는 자연의 원리다. 하루에 12시간씩 3일이 걸리는 이 지난한 작업은 자연에 조응하려는 수신(修身) 행위와 다름없다.
이렇게 김호득의 작업은 자연의 외형에서 그 원리로 나아가면서 2000년대로 진입한다. 그는 점찍기 작업을 2004년까지 지속하다가 2005년 1년 동안 뉴욕에 체류하면서 이를 멈추고 다시 이전의 과감하고 즉흥적인 필치로 돌아간다. 붓을 휘두르는 투사에서 조용히 점을 찍어가는 도인이 되었던 그가 다시 투사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이전과는 달리 구체적인 형상보다는 다양한 필묵의 운용 그 자체를 부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한편 나무토막이나 종이 반죽으로 입체형상을 만드는 등 새로운 방법 또한 시도하는데 여기서도 필묵이 출발점이 되는 것은 변함이 없다.
이런 작업들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요소가 빠르고 힘찬 붓질에 실린 문자의 형상이다. 그가 이미 1990년대 초에 시도한 문자의 조형화를 2000년대 작업에서 더 적극적으로 구사하게 된 것인데, 이는 서화일치의 전통을 환기하면서 그가 수묵 미학의 계승자임을 다시 확인하게 한다. 김호득의 그림에서 글씨는 조형적 구성요소이자 언어적 의미다. 특히 글씨의 형태와 의미가 어우러지면서 만들어내는 특유의 해학은 수묵화뿐 아니라 민화를 아우르는 우리 미술의 전통을 환기한다.
그는 1990년대 말에 시작한 설치 또한 지속하고 있다. 반 혹은 전체를 검게 물들인, 혹은 물들이지 않은 한지들을 열 지어 걸거나 계단처럼 높이 차이를 두어 걸기도 하고 그 아래에 먹물 수조를 배치하거나 수면에 조명을 비추는 등 다양한 설치 방법은 수묵 미학을 공간화하려는 작가 의지의 결과물이다. 설치 공간에서는 한지를 수조에 떨어뜨리거나 작가가 먹물 속에 들어가는 등의 행위가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이는 먹이라는 수묵화 재료와 일필휘지라는 행위의 미학이 퍼포먼스라는 당대적 표현방법과 만난 예가 될 것이다.
이처럼, 김호득의 전 작업은 수묵 미학으로 수렴된다. 먹과 한지뿐 아니라 담채, 아크릴, 과슈, 안료가루, 광목, 인쇄용지 등 그가 사용한 재료들은 결국 수묵화의 여러 얼굴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회화뿐 아니라 조각과 오브제, 설치와 퍼포먼스를 아우르는 폭넓은 작업 영역 또한 수묵 미학의 확장을 위한 것이다. 그는 다양한 재료와 방법을 아우르면서 수묵 전통이 당대에 살아 있게 하기 위해 전 생애를 헌신했다.
그의 작업에서 전통은 섬처럼 떠 있거나 형체 없이 용해된 과거의 유산이 아니다. 그것은 당대 어휘로 구현되는 살아 있는 유전자다. 자유로운 붓질로 가득한 그의 그림은 수묵화의 기운생동의 필치가 표현주의 혹은 추상미술의 주관적인 붓놀림을 통해 환생한 것이다. 짧은 필치를 반복한 그의 점찍기 작업은 전통 산수화의 반복적인 준법과 단색 화가들의 무위적인 반복 행위를 같은 흐름으로 이어준다. 한편, 한지를 족자처럼 늘어뜨린 설치,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작가의 퍼포먼스는 예술과 삶이 하나로 어우러진 사대부 공간, 그 속에서 글씨를 쓰고 난을 치는 문인화가의 몸짓에 닿아 있다.
“우리 이 땅의 얼굴이 보이게 하고 싶다”5)
이 말처럼, 김호득에게 전통의 현대화라는 과제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이 땅에 사는 우리의 얼굴 즉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다. 동양화보다 ‘우리 그림’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 그에게 “우리 그림 그리기”는 “우리 문화의 살길”6)이다. 그리고 우리 그림은 단순히 전통적인 그림이 아니라 전통과 현대가 하나로 이어지는 그림이다.
동시대에 부응하는 전통을 세우는 것이 김호득의 목표인데. 이를 위해 그는 새로운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우리 그림’, 그것은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그냥 흔들리다 문득’ 멈춘 순간 만나게 되는 어떤 것이라고. 그러니 계속 흔들리라고.
1)김호득, 《흔들림, 문득》, 일민미술관, 2002, p.44.
2)정헌이,〈문득 흔들리다〉, 앞 책, p.27.
3)김호득, 김복기(대담),〈‘문득’, 일필휘지로 돌아오다〉, 《Art in Culture》, 2008년 7월, p.138.
4)김현숙,〈마음을 앓으며 거꾸로 가기〉, 《오늘의 미술가를 말하다》, 학고재, 2010, pp.315~316.
5)김호득,〈작가의 발언: 위기의식과 미술 속에서의 자유〉, 《공간》, 1990년 4월, p.155.
6)김호득,〈21세기 한국화의 미래는 밝다〉, 《Art in Culture》, 2000년 1월, p.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