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에서 매순간 주변과 대상을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대부분은 합의된 규칙 안에서 주변을 관조하는 중간자와 같다. 이곳 현실 무대에서 살아 남으려면 꽤나 집요한 지구력과 근력이 필요할 것이다. 지나치게 올곧고 딱딱하면 한 순간에 부러질 수 있듯, 고무같은 말랑말랑함을 유지하면서 우리 자신을 알맞게 조형한다는 것은 냉소적 시선의 귀엽게 봐줄만한 현실판 ‘프랑켄슈타인’이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오류와 부정의 중심에 서있는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되는 우리의 신체가 사유의 대상이 되어 발생하는 오류 그 자체와 마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설 『프랑켄슈타인, 혹은 근대의 프로메테우스(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1817)를 원작으로 두었던 영화 《프랑켄슈타인》(1939), 이 둘은 물질문명에 대한 이야기와 그에 대한 파국이 주요 골자를 이루지만,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이 탄생시킨 무명인 ‘괴물(monster)’의 존재에 대한 시선을 주축으로 두고 현정윤의 근래 작업들을 훑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소설의 저자였던 메리 셸리(Mary Shelley, 1797-1851)가 만들어낸 괴물이라 칭하는 기형적인 대상은 인간의 경계 이면에 있는 ‘부정된 존재’ 그 자체이자 ‘부정될 가능성’이라는 대상에 대한 정당성과 그 상태이다. 특히, 소설의 부제에 등장하는 프로메테우스는 흙을 빚어 인간을 만들어낸 창조자의 역할과 동시에,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대가로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벌을 받았다. 서사의 신화적 관점은 문명의 인식 속에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충돌과 전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공포와 소외로 묘사된 기이한 신체와 존재 자체의 오류는 현정윤이 지속적으로 이어온 한 갈래의 신체 조각들에 대한 잠재적 태도와 유사하다. 그의 작업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신체의 문맥에서 경계의 침해를 다양한 조각적 방식으로 구현하되, 가장 원초적인 기술과 날 것의 형태를 기형적으로 변형함으로써 스스로의 혼성적 존재에 주목한다.
현정윤의 초기 작업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대상의 존재와 공간 사이에 누락된 애착 관계의 틈을 공간적 규율과 질서를 중심으로 변화되고 파생된 생각들로 구축해 나갔다. 그는 존재감을 발산하는 대상의 주변을 ‘점유하는 상태’ 자체에 주목하면서, 〈안짱다리의 역사〉(2014)를 기점으로 애착 관계를 기형적인 신체로 옮겨간다. 시멘트로 캐스팅한 네 점의 수직적 형태는 후천적으로 안짱다리가 진행되는 과정을 신체와 미리 쓰여진 규칙의 도시 공간을 상상하며 만들었던 신체 조각으로 사물과 신체의 관계성에 대해 상상하도록 한다. 점점 넓어지는 안짱다리 사이의 공간을 캐스팅된 하나의 실루엣 덩어리의 조각은 스스로가 독립적인 화자가 되지만, 작가는 그 이후에 다양한 설치 작업들을 진행하면서 전시 Walking on tiptoes (2018, 주영한국문화원, 런던)부터 조각 전후의 주변 상황을 관조하는 연극적인 형태의 조각적 서사를 설정하기 시작한다. 예컨대, 까치발을 들고 걷는다는 신체적 행동(〈I see you from here〉, 2018)으로 인해 발현되는 모양새가 우리가 걷게 될 바닥이 그리 견고하지 않을 것을 상상하게 되는 공간과 신체의 관계를 대변하는 것이 일례이다. 작가가 구현하는 조각에 대한 상황 설정은 조각을 화자로 자립시키면서 존재의 유무를 가늠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성을 구체적으로 가시화하지 않고, 주변부의 부산물(〈These will be the days〉, 2018)과 흔적에 주목한다. 여기에 따라오는 주변부라는 시간의 감각은 대상을 둘러싼 비가시적인 상황을 작가 특유의 유쾌하고 ‘웃-픈’ 시나리오로 구성해 조각적 형태로 다소 고집스럽게 등장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신체를 공간 밖의 또 다른 신체, 혹은 동세의 구현 방식으로부터 그 존재를 분리시키는 작가의 도전에 경계를 흐리는 전략적 장치를 개입시킴으로써, 사물과 미묘하게 포개어지는 새로운 동세와 상황으로 존재의 정당성을 보장하고 있다.
신체의 일부를 떼어낸 듯한 조각은 재스모나이트와 실리콘, 석고 등에 스킨 색의 안료를 조색해 살덩이를 연상케 한다. 현정윤에게 조색과 도색의 개념은 신체의 일부를 표현하기 위한 물성 외에 강제로 변형시킨 스테인레스 파이프 위에 회화적인 방식으로 표면을 도장하여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한다. 작가가 〈Mama never told me how my dreams will be shattered〉(2017)부터 〈On my knees〉(2019)까지 매끈하게 도색을 했다면, 근래에 〈운동화 끈〉(2021)에서 회화적 명암 처리가 두드러져 조각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한다. 이와 더불어, 2019년까지 탈구된 신체 연작(〈On my way〉 1, 2, 2019)은 기형적인 신체 조각이 주체적인 존재였다면, 점차 대상에 제갈을 물리듯이 이질적인 물리적 장치를 개입시키므로 주체성을 시각적으로 무력화 한다. 각각의 조각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으나 속박의 형태로 제갈을 물린 방식은 조각 자체에 탑재되어 있어 스스로가 자유롭지 않은 조각을 보여준다. 대개, 등장하는 조각적 덩어리와 그것을 감싸고 통제하는 틀을 자물쇠와 체인, 라텍스 등 선적인 형태의 도구로서 사용하여 제어하는 역할을 하고, 여기서 발생하는 미묘한 긴장관계는 주체와 객체, 질료와 형태 사이의 비생산적인 변증법을 페티쉬적으로 묘사한다. 이처럼, 차갑고 날카로운 장치를 통해 대상을 의식적으로 통제하고 속박하려는 현정윤의 조각에 대한 가학적인 태도는, 그로 인해 변형되는 물성의 아슬아슬한 팽창과 압축의 순간을 포착하는데 있다. 어떤 순간적인 모양새를 만들기 위해 사실상 굉장히 고단한 직조의 과정이 긴 시간 축적되는데 조각적 실천에 대한 가학적인 수행으로 쾌감이 동반된다. 유사 반복의 제작 과정에서 현정윤이 고집하는 몸짓들은 두려움, 불안, 모면, 회피, 그리고 혐오 등과 같은 자신을 관철하는 태도로 귀결된다. 그러므로 그의 손은 손끝으로 그 대상을 건드려가며 원하는 방향과 원하지 않는 양쪽 방향을 오가면서 형태의 윤곽을 따라가고, 물성의 중량감을 헤아리며, 덩어리의 구조를 숙고하여 제 역할을 파악해 나가도록 한다.
〈내가 너의 곁에 살았다는 걸〉(2020)에서 작가가 개인의 생존을 도모하고 이어가기에 주변의 재난 상황을 제대로 애도할 수 없었던 ‘울며 겨자 먹기’의 심정을 담아, 쌍의 방식으로 출구 없는 디스토피아의 명확했던 무대 구조에 천착한다. 열악한 지지체가 조각 전체를 받치고 있는 인위적인 무대를 섬뜩하게 보여줬다면, 최근작은 신체와 욕망, 자기 부정에 가까운 보다 실제적인 조각적 실천에 주목한다. 특히, 2021년에 제작한 근작들은 각자의 역할 놀이를 하고 있는 조각들로 두드러지면서, 작가 자신이 파악하고자 하는 대상 자체에 관심이 있다기 보다, 어떤 관심사를 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장애물로서의 대상에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운동성이 동반되는 아크로바틱의 상황 전후의 신체적 상태가 공간과 결부되는 상황이 하나의 방식일 것이다. 각각의 조각은 독립적으로 공간을 점유하고 있지만, 행위에 대한 자의성을 부각시키면서 개별적으로 조각의 긴장감을 지속한다. 조각의 전신상, 와상, 흉상, 좌상의 형태로 기형적인 모호한 신체 이미지를 직조하는 근작에서 일군의 작업들은 유동적 재료의 사용으로 신체를 대변하는 매트릭스를 표현한다. 실제로 작가는 물구나무 서기를 하고 있거나(〈물구나무 요가〉, 2021) 훌라후프를 돌리는 몸 동세(〈훌라후프 퀸〉, 2021)와 운동화 끈을 머리 끝까지 팽팽하게 두르고 어떤 반동을 쥐고 있는 자세(〈운동화 끈〉, 2021), 무릎을 꿇고 있거나 팔짱을 끼는 동작(〈중간보스〉, 2021), 폴 댄스의 순간(〈폴 댄스〉, 2021) 등에서 조각적 형태를 참조한다. 그는 몸 동작이라는 행위에 사물 장치를 개입시킴으로써 장치의 구조와 모양에 맞춰 대상을 속박하는 페티쉬적인 태도에 주목한다. 재스모나이트, 레진, 스티로폼의 화학적으로 말랑하고 부드러운 덩어리 재질의 사용과 PVC 파이프, 파이프 클램프, 체인, 스테인레스 스틸 등의 차갑고 날카로운 소재의 사용 간에 이질적인 조합은 조각을 사물로의 관념과 미묘하게 버무려져 고착화되고 히스테리적인 무대를 구현한다.
현정윤이 대상을 뚫고 이면에 존재하는 레이어의 구조를 상상하거나 덩어리의 내부를 상상하는 것은 마치 고기 덩어리로 보이는 거죽의 내장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과 같다. 〈물구나무 요가〉의 레진 조각은 신체를 거꾸로 한 동작을 오래 취하면서 피가 쏠리는 느낌을 주기 위해 색 안료를 만들어서 섞어서 점토를 직조해 나가는 것과 같다. 피부색 레진이 주는 신체적 특성의 표현은 점액성의 신체 일부를 구사했던 과거 여성의 속성을 통해 남근적 형태의 신체 언어에 대한 저항의 태도와 사뭇 다르다. 덩어리를 점령하고, 통제하고, 그것을 내주기 위한 현정윤의 유머는 조각적 형식을 개별적 ‘스탠딩 코미디’의 방식으로 조각이라는 매체가 담고 있는 자의적이고, 조각이 완성되기까지의 전후에 틈을 비집고 들어가 일사분란하게 연극적인 무대를 구사한다. 조각으로서 존재하는 방식은 곳곳에 분산된 조각들 각각이 일인 무대가 되어 “장소가 아닌(non-place)” 태도로 존재한다. 이는 크라우스(Rosalind E. Krauss, 1941)가 ‘부정성’으로 존재하는 조각이라 지칭했던 것처럼, 신체도 아닌 부정의 부정으로서의 긍정에 도달하는 것과 같다. 탈구와 접합을 오가는 조각들은 신체와 사물의 양방향성을 동시적으로 부정하여 이에 만족하는 결과를 복합체의 긍정성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하여 작가는 장소가 누락된 신체 조각에게 익명의 캐릭터를 부여하고, 백일몽의 영역으로부터 물성의 암호들을 불러내어 수수께끼 같은 상황을 연출해낸다. 이로써, 신체에 가해진 욕망의 시선보다 오류를 그대로 포착하려는 현정윤의 태도는 유기적인 전체로서의 신체에 대한 믿음을 거부하게 된다.
현정윤이 살덩이에 ‘보철(prosthesis)’을 침투하는 형식은 우생학적 존재에 역행하는 원시적인 형태에 주목하도록 유도하고 인간의 열등한 취약점을 극대화하므로, 무엇이 진실이고 허구인지를 스스로에게 초래한 결과를 목도하도록 한다. 그는 하이브리드한 외형이 주는 언캐니(uncanny)의 형태와 물성을 통해 차이와 정체성을 재분배하고, 그 틈에 존재하는 공명과 개입의 패턴 속에서 사회적 리얼리티의 우스꽝스러운 산물에 주목한다. 덩어리와 구조의 뒤바뀐 관계는 끊임없이 작가의 손에 의해 직조되고, 다듬고, 수정되면서 만들어진 형상으로 무엇이 대상을 왜곡시킨 주범이었는지 역할을 모호하게 한다. 이와 같은 형태는 어떤 욕망 생산의 분열적 시스템을 연상하게 하며 우스꽝스러운 블랙 코미디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가는 대상에 강약의 반동을 주면서 조각에 무너짐과 통제에 기인한 미묘한 균형의 순간을 찾으려 하면서 동시에, 아슬아슬하게 지탱하고 있는 기준점을 둔 거대한 조각들은 서로 기대어진 아크로바틱의 장면들을 구현해낸다. 이처럼, 현정윤의 손이 닿는 범위 안에서 덩어리를 직조하는 것은 그가 만들어낸 일인 무대의 시나리오에서 작은 세계를 붙잡고, 이해하고, 그것으로 뭔가를 이뤄낼 수 없는 어떤 모순된 지점을 반영하는 것과 같다. 작가의 두 손이 만들어낸 산물은 곧 자기 자신을 관찰하려는 노력과 관계되기도 하는데, 이같은 지점은 조각을 매개한 또 다른 신체이자, 대상을 더듬고 만지고 깎는 소조와 직조가 교차되는 조각적 실천과 같다. 그의 조각은 공통적으로 인간 신체와 결합되는 이물질 혹은 타자와의 관계를 변증법적 종합으로 이끌면서 “살아있는 사체(living dead)”로서 무대의 마지막, ‘커튼콜(Curtain-Call)’ 직전에 숨어있다 등장하는 것과 같다. 나아가, 커튼콜 이면에는 대상을 기묘하게 통제하는 희열을 물질화 하면서, 주체를 교란시키는 응시자인 현정윤이 은폐되어 있던 자신의 이질적 타자와 위태롭게 대면하고, 동시에 기이한 방식으로 분열하는 반복적인 무대 위의 인사일 것으로 상상해 본다.
추성아는 독립 기획자로 다수의 기획과 글쓰기를 해왔다. 기획자는 회화와 조각의 매체가 갖고 있는 양면성에 대한 탐구와 동세대 작가들의 매체적 태도를 문학, 영화, 음악 등의 소재를 가져와 풀어낸다. 김주리 개인전 《0개의 기둥》(TINC, 2022), 《접히고-펼쳐진》(성곡미술관, 2022), 《The Prequel》(플랫폼엘, 2022), 《COLD PITCH》(BB&M갤러리, 2022), 《프라임 모뉴먼트》(N/A, 2021), 《백현진: 퍼블릭 은신(隱身)》(로얄엑스, 2021), 제 8회 아마도기획상 《Shadowland》(아마도예술공간, 2021), 《스나크: 붙잡는 순간 사라지는 것들》(갤러리2, 2021), 《휘슬러》(갤러리 ERD, 2020), 《BGA Offline Showcase: PHYSICAL》(갤러리 팩토리2, 2020), 조혜진 개인전 《옆에서 본 모양: 참조의 기술》(d/p, 2019), 《사물들: 조각적 시도》(두산갤러리, 2017), 이희준 개인전 《Interior nor Exterior: Prototype》(기고자, 2016) 등 다수의 전시를 기획했으며 “페리지 팀프로젝트 2022”에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