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의 평면
삼차원 공간에 놓인 한 정점(定點)에서 일정한 거리에 위치한 점들의 자취, 그리고 이 자취를 경계로 하는 입체를 우리는 구(sphere)라고 정의한다. 양팔 가득 안기는 둥그런 물체를 상상해보자. 이 물체는 고무 재질로 만들어진 풍선 같은 것이다. 짐볼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얇은 막 안은 텅 비어있고, 공기로 가득하다. 내부의 공기 밀도가 높아질수록 물체는 모든 표면의 정점에서 일정한 구에 가까워진다. 양팔로 꽉 끌어안거나, 위에 올라타 앉으면 탄성과 반작용에 따라 눌리고 회복하기를 반복할 것이다.
인간은 현실에서 완벽한 구를 구현하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해왔다. 가장 실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도 친숙한 물체는 축구공이 아닐까. 가장 처음 동물의 장기를 부풀려서 사용했던 축구공은 현재 최소한의 패턴으로 구성되어 공기 저항을 줄이고, 외부 충격(shooting)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된 단계까지 발전하였다. 검은색의 오각형과 흰색의 육각형을 조합하여 축구공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구의 형태가 꽤 인위적이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 내부에 공기를 주입해야만 정점에서 일정한 거리가 확보되어 구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이를 위해서는 탄성을 지닌 재료가 필수적이다. 적당한 신축성과 일시적으로 압축한 공기의 밀도가 구의 형태를 유지하게 만든다.
2018년 원앤제이 갤러리에서 진행한 《아크로바틱 코스모스》에서 윤지영은 〈구의 전개도는 없다〉 연작을 전시한다. 이 작업은 바닥에 놓인 실리콘 조각과 벽에 걸린 주형틀, 그리고 컴퓨터 그래픽 영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의 전개도를 상상하는 것은 입체를 평면의 조합으로 분해하려는 시도이다. 작가는 구뿐만 아니라 인체, 원기둥, 정육면체 등 유기체와 기하학적 형태 모두를 면의 조합으로 치환한다. 이 면들은 당연하게도 본래의 형태를 실현하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물리적인 힘이 작동하는 현실 안에서 (평)면은 애초에 구조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이 다시금 상기된다. 부재를 경유하여 구조를 말하는 것, 다시 말해 평면이 입체가 되기 위해서는 면을 지지할 수 있는 구조(support)가 필요하며, 이 구조가 〈구의 전개도는 없다〉(2018)의 존재 조건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조건을 상실하여 바닥으로 흘러내린 〈구의 전개도는 없다〉의 실리콘 조각들은 스스로 품고 있는 잠재적 형태, 즉 구, 인체, 원기둥, 정육면체 등을 구현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의도적인 실패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완전한 형태가 아니라 구의 전개도가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환기해주면서까지 직립이 불가능한 조각(면)을 제시하는데, 이는 입체와 평면 두 속성을 평면으로 치환한 전개도 형태를 하고 있다. 구의 전개도를 만들기 위해 작가가 활용하는 방식은 경위선망(graticule)이다. 지구본을 떠올려보자. 인간은 적도를 기준으로 북반구와 남반구를 나누고, 경도와 위도를 도입하여 굴곡진 그리드 체계(grid-system)를 세계에 씌웠다. 입체는 그리드 체계를 통해 여러 개의 원으로 나뉘게 된다. 구의 어디를 잘라도 단면은 원이 되기 때문에 구는 수많은 원의 집합이다. 작가는 구를 위에서 바라보며 케이크를 자르듯 면을 나눈다. 이때 중요한 조건이 추가되는데, 구의 표면이 신축성을 가진 유연한 존재라는 점이다. 이 가정이 작동해야만 잘린 입체는 바닥에 평평하게 놓일 수 있게 된다. 조각의 재료가 실리콘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신축성과 탄성을 지닌 실리콘은 입체와 평면 사이를 조율하는 존재로서 기능한다.
평면의 조각
같은 해 《장르 알레고리―조각적》(토탈미술관, 서울, 2018)에 참여한 윤지영은 〈한 모서리의 길이가 약 15cm인 나무 입방체는 어떤 것들의 음각을 숨긴 석고가 되었다〉(2018)를 선보인다. 전시는 동시대 조각가들의 작품이 조각적(the sculptural)으로 분기되는 상황 안에서 각자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질문한다. 작가는 조각을 ‘조각적’이라는 모호한 수사로 덮어버리는 현재의 분위기 속에서 조각가로서 작품을 제작하는 태도와 형식을 ‘조각’으로 시각화한다. 다음 해인 2019년 원앤제이 갤러리에서 열린 단체전 《We Don’t Really Die》에서도 동일한 작품을 출품하였는데, 뤼크 베송(Luc BESSON, 1959-)의 영화 〈루시〉(2014)의 주인공 대사로부터 시작한 이 전시가 다루는 주제는 “물질의 비물질성”이었다.
두 전시가 조각과 조각가의 존재 관계를 질문하는 상황에서 작가는 얼굴 없는 ‘자소상’을 선보인다. 우선 작품 제목 ‘한 모서리의 길이가 약 15cm인 나무 입방체는 어떤 것들의 음각을 숨긴 석고가 되었다’를 살펴보자. 꽤 구체적인 서술을 통해 조각의 외형을 상상해 볼 수 있다. 각 모서리 길이가 대략 15cm인 육면체가 있고, 석고로 제작되었을 것이다. 석고는 형태를 주조하는 데 있어 주조 틀(거푸집)로 사용되는데, 어떤 것들의 음각을 숨겼다는 것은 이 물체가 주조 틀인 동시에 주조되어 나온 결과물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숨겼을까? 이 조각이 얼굴 없는 자소상, 그러니까 신체의 ‘외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역설적으로 신체의 특정한 부분이 숨겨졌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조각과 함께 구성된 3점의 프린팅 이미지가 그 단서로 역할 한다. 흑백의 흔적으로 출력된 이미지(방사선 비파괴 검사 사진)에는 신체의 일부인 ‘귀’와 ‘하트♥’ 형태가 보인다. 여권 사진을 찍을 때 반드시 드러내어야 하며, 한의학에서 오장육부를 관장하는 기관으로 취급되는 ‘귀’는 한 인물의 특징인 동시에 전부이기도 하다. 작가는 자신의 귀를 캐스팅하여 주조 틀을 만들고, 이를 다시 밀랍(천연 비즈왁스)으로 주조하였다. 밀랍의 오브제는 15cm³ 체적의 큐브에 담긴 후, 형태를 빌려주고 나서는 외부로 녹아내린다. 바위에 담긴 용암이 흘러나와 동굴이 되는 것처럼 큐브에는 ‘귀’로 추정되는 음각의 공간이 남겨진다. 이 과정은 작가가 주로 사용하는 주형 만들기(mold-making/casting) 기법으로 조각을 제작하는 과정에 대한 직접적인 구현이자, 보이지만(석고 큐브) 보이지 않는 것(귀)을 동시에 드러내고자 하는 조각가로서의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귀와 나란히 놓여 있는 ‘하트♥’는 특정한 대상(작가 본인)과의 관계 속에 있기보다는 관습적인 차원에 존재한다. 하트는 시각적 유사성이 없음에도 심장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되며, 이는 곧 좋아하는 감정이나 사랑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기호로 작동한다. 그렇다면 왜 굳이 하트를 가져왔을까? 작가의 심장을 지시하는 것일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하트 모양과 작가 사이에는 어떠한 교집합도 없다. 하지만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은 관계망으로 설정하여 보고자 한다. 조각- 하트-작가, 이 삼각형 구도 안에서 하트는 자신의 작동방식을 지시하는 동시에 그 자체로 조각과 작가를 매개한다. 작가가 조각을 하게 되는 이유, 조각가로서의 태도, 조각이 작동하는 방식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기호적인 것과 기표적인 것 사이에서 물리적으로 작동했던 조각의 주술적 힘-근원까지 떠올리게 된다. 조각의 기원이자 조각가로서 태도와 맞물리는 지점에 귀와 하트는 자소상의 구조로 놓인다.
〈한 모서리의 길이가 약 15cm인 나무 입방체는 어떤 것들의 음각을 숨긴 석고가 되었다〉는 주형 만들기 기법을 주로 사용하는 작가가 자신의 조각적 태도와 조각의 물질성을 보여주는 데 있어 군더더기 없는 작품처럼 보인다. 캐스팅으로 대상의 면을 모사할 수는 있지만, 대상을 채우고 있는 내부 속성까지 주조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실을 한계로 받아들이면서 내부를 빈 상태로 두지 않고, 자유롭게 구성하는 모습이 조각가로서의 문제의식과 연결된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작품 제목을 통해 작품의 외형을 충분히 설명하면서 사진 이미지를 함께 제시하여 입방체의 내부를 분명하게 지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작품을 관람하는 이들이 마주하는 것은 무표정한 석고 덩어리뿐이다. 게다가 강화 석고를 사용한 것은 혹시 모를 물리적 충격에도 쉽게 내부를 보여주지 않을 것이라는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평면에서 입체, 입체에서 평면, 이 모든 것을 조각으로 성립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평면조차 하나의 구조로 여기고, 입체에서 또 하나의 구조(내부-외부)를 구축하는 데 있다. 작가는 여기에 출발점을 두어 구조의 속성을 배태하고 있는 재료를 활용한다. 잠재적 형태를 담고 있는 전개도의 펼침과 닫힘 사이를 교차하며 재료를 통해 형성된 구조로 윤지영의 조각은 존재한다.
송하영은 서울에 위치한 전시공간 ONEROOM의 공동 디렉터이다. 《Yellow Blues__》(원앤제이 갤러리, 서울, 2021), 《Roll cake》(ONEROOM, 서울, 2019), 《Afterimage》(ONEROOM, 서울, 2017) 등의 전시를 기획하였으며, 한국 미술 생태계에서 작가 연구와 아카이브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문제 의식 아래 작가의 개별 작품과 참여 전시를 중심으로 인터뷰하고, 문서로 기록하여 전시로 공개하는 프로젝트 《ONE-PIECE》(2018–)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