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
이진실 선생님께.
높이 쌓이다 쓰러진 자료들, 미루고 미루다 몰린 마감(이 글을 포함해서)에 한숨을 내쉬며 무심코 집어든 소설책의 첫머리에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난 독서 중이야! 방해받고 싶지 않다고!” 이 독자는 주로 세계의 안정성을 지탱하는 규칙적인 노동을 하면서 틈틈이 책에 한눈을 파는 인물이라는 설정입니다. 이 경우 생업은 그 자체로 각별히 빠져들 만한 일은 아니라, 노동하지 않는 시간과 그 시간에 선택한 자율 활동은 달콤하기 그지없을 테죠. 저는 나름대로 창의적인 일을 하고 있지만, 어쩐지 ‘방해하지 말라고’하는 외침에 속 시원하게 대리만족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빠져들고 싶은 일이 글쓰기일 때도 많지만, 이 글에서 선생님께 건네고 싶은 화두가 깊이 생각하면 꽤나 속 쓰린 터라 첫 운을 떼는 게 몹시 지연되고 말았습니다.
선생님과의 첫 만남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고립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제가 시무룩하게 “요즘 고립되어 있어요.”라고 말하자 선생님은 눈을 빛내며 “그게 제일 부러워요”라고 대꾸하셨죠. 이어서 우리는 최근의 유명한 콜렉티브의 실패에 관해서도 몇 마디를 나눴지만 아주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어요. 돌아오는 길에 우리가 각자 ‘고립’을 두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더 들여다보고 싶어졌습니다. 따져보면 고립이라는 말은 제 상황에 그리 맞지는 않아요. 대학이나 미술관에 속하지 않고 제멋대로 지내는 프리랜서, 읽고 쓰는 일의 근본적인 고독함, 별 일 없이 심심한 게 당연한 일상. 여러모로 직접 선택한 홀로 있음에 대해, 고립이라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끼얹을 수는 없죠. 그런데 습관적인 투정에 불과할 말을 긍정적인 맥락에서 받아주시니, 제 무의식을 살펴보게 되더라고요.
2014년에 신생공간 현상을 조망하며 인정투쟁이나 패권주의와 구분되는 정치적 연대를 강조하는 글을 쓴 적이 있어요. (「우리들의 공동체, 독립과 고립의 경계에서 - 신생 공간과 프로젝트 그룹의 문화정치학」, 컨템포러리아트저널, vol.20, 2015) 당시에 저는 다소 배타적인 저의 소속 기관에서 만나볼 수 없던 젊고 진지한 작가들과 교류하는 프로젝트 그룹 활동을 하면서 꽤나 고무되어 있었고, 이후에도 형태와 강도가 다른 다양한 콜렉티브 경험을 해왔어요. 종종 만족할 만한 성취와 의의가 있었지만,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과 주변의 눈에 띄는 파행들을 목도하며 요즘에는 연대의 비전보다 몰락에 압도된 듯합니다. 아마도 ‘고립’이라는 말에는 저의 직간접 경험의 실패와 실망감이 묻어있을 겁니다.
선생님께 ‘고립’이라는 단어가 반갑게 들렸던 이유는 뭘까요? 제가 두서없이 제 상념을 늘어놓았듯 전혀 다른 방향이라도 상관없이 자유롭게, 그러나 비평가이자 기획자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생각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고립에 관한 답장]
김정현 선생님께.
선생님 편지를 받고, 제 책상에 위태롭게 쌓인 책들을 한번 쳐다보았습니다. 사실 그 더미들에는 무심코 집어들 만한 소설책이란 없고, 글감을 위한 레퍼런스들로 쌓아놓으면서 절반도 채 읽지 못한 이론서들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고백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고립이 부럽다”는, 여러 오해의 소지가 있을 법한 저의 이상한 부러움을 여러 결을 통해 생각해봐주셔서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무엇보다 이것이 우리의 화두가 될 수 있다는 점 또한 다소 의외이면서도 기쁩니다. 어찌 보면 선생님이 이야기한 ‘구속되지 않음’과 ‘글쓰는 일의 근본적인 고독함’이야말로 제가 비평가라는 이름에서 기대한 가장 근사한 지점일 겁니다. 때문에 선생님의 고민 섞인 ‘고립’이라는 말을, 원숙한 비평가 특유의 여유와 독립적 근성으로 여긴 나머지, ‘자발적 고립’이라 멋대로 오독하지 않았나 하는 걱정도 듭니다. 조금 쓸데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요즘 저는 주변의 어떤 ‘비평가’들이 미술계라는 이 장—도저히 경계와 두께를 가늠할 수 없는 이 이상한 업계—에서 잠시라도 자신이 ‘보이지 않는’ 상태를 극도로 두려워하는 듯 끊임없이 말을 발신하고, 자기의 비평적 주제와 글을 예고/공표하는 파라노이드 현상을 목도하곤 합니다. 그다지 넓지 않은 이 욕망의 경주장에서 화제의 선점 혹은 비평의 ‘파이’가 아니라, 오롯한 자신의 노선을 만들어나가자면, 오히려 ‘고립’이란 필수불가결한 문지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한 번도 얼굴을 맞대고 깊이 이야기 나눠보지 못한 사이임에도, 저는 우리가 비슷한 ‘어정쩡함’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대단한 학문적 성취보다 현장에서의 유의미한 작업과 실천들을 건져내고 싶다는 욕망, 또 가끔 그러한 실천을 도모해보는 큐레토리얼적 시도, 그리고 미술계 내에 콜렉티브나 연대에 대한 기대가 없지 않지만 그 ‘연합’의 기대마저 한 번 타올랐다 소진되는 상태…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어정쩡함을 구성하고 있지 않은가 싶은 거죠. 함께 보내주신 2015년도의 글 〈‘우리들’의 공동체, 독립과 고립의 경제에서-신생 공간과 프로젝트 그룹의 문화정치학〉을 천천히 읽어보았습니다. 교역소, 반지하, 커먼센터, 시청각 등 신생공간들이, 또 이곳들을 거점삼아 등장한 작가, 큐레이터들이 ‘한국 현대미술의 세대교체’라는 기대감으로 부상했던 시기를 떠올려봅니다. 이러한 역동을 타고 등장한 ‘세대론’ 혹은 ‘새로운 시대 인식’이라는 화두 이면에 어떤 역학이 작동하고 있는지 밝혀보려 했던 선생님의 글에서 새삼스러운 감회는 물론, 동시대의 기시감 또한 밀려왔습니다. 선생님이 글에서 지적하신 것처럼, 당시 부상했던 세대론은 정확히 세대의 문제라기보다 자본의 배분과 생존의 문제였습니다. 또 그러한 문제제기 방식이 과거의 미술처럼 제도에 저항하는 아방가르드 전략이나 근본적인 변혁 노선이 아니라, 지극히 신자유주의적 태도를 지닌 미시집단적 ‘욕망’으로 발현되지 않았는가 하는 물음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편으로 선생님은 당시 패권이 아니라 연대를, 경합이 아니라 소통을 추구하면서 ‘애매하고 모호한 경계’에서 서성이는 창작자들을 주목하고 이들에 대한 자그마한 기대를 풀어놓았더군요. 선생님이 쓰신 글을 인용하자면, 이들은 “기록되거나 기억되지 않고 고립되어 버리기 십상”입니다. 어쩌면 그 우려는 반쯤은 실현되어버린 듯하고 변함없이 진행 중인 것도 같습니다.
결국, 우리가 이야기하는 ‘고립’이 지니는 공포의 실체는 외로움이라기보다 잊혀짐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신, 글쓰는 이에게 특권적인 하나의 위안이 있다면, 오늘의 고립을 훗날의 잊혀짐에 저항하는 지렛대로 쓸 수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2021년 서울의 미술은 벅찰 정도로 빠른 호흡으로 전개되고 무수한 난반사들로 눈이 부십니다. 소셜미디어에는 전시나 작업 이야기뿐 아니라, 미술을 둘러싼 인적, 담론적 인정투쟁이 들끓곤 하죠. 근래 페미니즘은 그러한 전장을 달궜던 중요한 연통관이었고요. 하지만 굳건해진 지각변동을 체감하기보다는 다시 막다른 골목을 맞닥뜨릴 거라는 불안이 떠나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편지를 받고, 제가 원하는 고립의 실체는 무엇일까 다시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상처와 실망으로 연대에 대한 희망을 차갑게 식혀버리는 것, 혹은 성가시고 부대끼는 윤리적 질문과 요구로부터 도망치는 것? 단연코 그런 것은 아니었다고 말하진 못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교류 혹은 연대라는 이름으로 소진되는 에너지, 오히려 베이는 상처를 고만 싸매고 싶은 바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건 역시 잊혀짐과 사라짐을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 또한 필요한 일이겠지요.
제2의 페미니즘 물결이 일어났던 70년대 미국, 리 로자노(Lee Lozano)라는 작가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60년대 말부터 회화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그녀는 개념미술로 전향하는데, 그 개념적 작업들이란 자신을 예술계로부터 철회시키는 프로젝트였습니다. 70년대 초부터 그녀가 자궁경부암으로 생을 마감한 1999년까지 일생 동안 진행된 프로젝트 〈드롭아웃 피스Dropout Piece〉는 상업화된 화랑 시스템을 거부하는 ‘파업’으로서 시작해 별볼일 없는 일상적 행위에 ‘작업(piece)’이라 이름 붙이면서 ‘저자성’을 훼손하다 못해, 종국에는 예술계에서 완전히 종적을 감추는 탈퇴를 감행합니다. 뒤샹이 미술계의 야망적 노선을 마다하고 수 십년간 체스를 두고 다녔다지만, 그런 ‘제스처’와 비교될 수 없는 로자노의 ‘예술 파업’은 〈여성 보이콧(women boycott)〉 작업에서 극단적인 관계 단절, 자기 말살로 치닫습니다. 1971년 8월 로자노는 당시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예술가 루시 리파드의 편지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는 것을 시작으로, 여자들과 일절 말하지 않기를 선언하죠. 페미니즘의 물결이 여성이라는 구획 안에서의 공동체적 유토피아를 약속할 때, 그 소속감을 거부한 ‘어리석은’ 그녀의 기획은 어떤 ‘고립’을 원했던 것이었을까요. 내부자에서 외부자로 자신을 밀어내는 저 고집스런 기행에서 그녀의 예술은—노동도 상품도 야망도 유토피아도 아닌—무엇이었을까요.
* 리 로자노에 대한 온라인 자료는 〈OFF〉 매거진에서 뚜이부치의 글에서 상세히 확인하실 수 있으며 (https://off-magazine.net/TEXT/feminismArtContradiction.html) 다음 기사에서도 대략의 소개를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https://timeline.com/lee-lozano-boycott-women-20d7e892e6b)
김정현은 미술비평가다. 비평과 창작이 서로 개입하는 방식에 관심을 갖고 글을 써왔다. 2015년 동시대 퍼포먼스 예술에 관한 글로 제1회 SeMA-하나 평론상을 수상했다. 독립 큐레이터, 드라마터그, 퍼포먼스 연구자로 《몸짓말》(2021) 아카이브, 《하나의 사건/마지막 공룡》(2020), 《아무것도 바꾸지 마라》(2016-2020), 《퍼포먼스 연대기》(2017) 등을 기획했다.
이진실은 학부에서는 정치학을, 대학원에서는 독일 현대 철학을 연구하고, 발터 벤야민의 언어 이론에 대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13년부터 미술비평 작업을 해왔으며, 2017년 전시 《리드마이립스》(성지은 공동기획)를 시작으로 《살림》(2018), 《미러의미러의미러》(2018), 《Between the lines》(아그라파소사이어티 공동 기획, 2019)를 기획했다. 2019년부터 ‘아그라파소사이어티’라는 큐레이토리얼에 디토리얼 콜렉티브를 꾸려 웹진 《세미나》를 발간, 동료들과 페미니즘에 기반한 시각 문화 예술 비평의 지형을 확장시켜보고자 리서치와 여러 에디토리얼 형식을 실험해보고 있다. 2019년 SeMA 하나평론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