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시티서울2016(9. 1~11. 20)의 예술감독 백지숙은 전시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예술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에 주목했다고 말한다. 전시 제목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는 예술가들이 창안한 허구적 예술 언어를 비유하고 있다. 올해는 서울 시내 곳곳에 위치한 네 곳의 미술관 전관을 활용, 비엔날레가 열리기 전부터 출판,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기존 비엔날레와 차별화된 방식을 취했다.
전시제목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는 일본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집 《이십억 광년의 고독(1952)》에 실린 시의 한 줄에서 따온 표현이다. 이 시집에서 다니카와는 화성인의 존재에 대한 자신의 신념, 혹은 상상을 표현한다. 이 구절은 다니카와가 만들어낸 것으로 일본어 단어에서 파생되었지만 아무 의미 없는 어구이다. 시인이 자기 나름의 화성언어를 발명해낸 것처럼,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를 만들어 내거나 언어를 해체하고 새 언어를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동시대 예술가들을 화성인 같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이런 언어들이 허구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실험하는 예술가, 혹은 미지의 존재 또는 인식할 수 없는 존재와 대화를 시도하는 예술가들과 협업하고 싶었다.
이번 비엔날레의 출발점 중 하나는 과학소설이나 사변소설(speculative fiction)의 상상력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와는 다른 것, 이질적인 것 또는 미발견된 존재를 상상하는 것이다. 이번에 작가 선정을 하면서 이런 허구적 언어를 독자적인 방식으로 응용하고 있는 예술가들을 찾았다. 하지만 과학소설이 실제로 흥미를 주는 장르는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동시대 예술 자체가 이미 과학소설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우리는 과거나 기억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많은 역사관과 견해를 발견하게 되었다. 서울 그리고 한국사회 전반이 예전과는 다른 발전단계를 밟고 있고 성장은 눈에 띄게 둔화되고 있으므로, 이제 미래에 관해 말한다는 것이 더욱 더 진보적인 일이 되었다. 일례로 1980년대에 민중예술운동은 과거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정치 자체가 날로 보수적인 성향을 띠므로 동시대 예술의 언어는 과거를 향하지 않고 미래를 추구하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이번 전시에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북서울미술관, 남서울생활미술관, 난지창작미술스튜디오 네 곳이 모두 사용되는데 이는 유례없는 일이다. 이렇게 결정한 이유는 거대도시로서의 서울이 갖춘 여러 다양한 도시적 환경을 활용하기 위해서이다. 아울러 전시라는 경계 너머로 맥락을 확장하기 위하여 출판 및 워크샵 같은 비엔날레 사전 행사도 기획했다.
<그런가요(Could Be)>라는 제목의 비정기 출판물 네 권이 비엔날레 개막 전에 출간된다. 이와 같은 기획을 한 이유는 비엔날레의 전체 일정을 확장하기 위함일 뿐 아니라 이번 전시 자체가 언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다 언어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가능케 해줄 매개체이자 미디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기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는 길예경, 게이코 세이(Keiko Sei), 치무렝가(Chimurenga), 미구엘 로페즈(Miguel Lopez), 이 네 명의 편집자와 각 편집자와 협업하는 작가들을 초빙했다. 이들은 각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언어의 여러 다른 측면을 강조하게 될 것이다.
북서울미술관과 남서울생활미술관에서는 8월에 ‘여름 캠프’가 열릴 예정이다. 이들 캠프는 공동체적 학습을 통해 창의성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재생성 되거나 재조정되는지에 중점을 둔다. 두 미술관에서 열리는 워크숍은 작가들이 진행하는데, 하나는 최태훈의 ‘불확실한 학교(Uncertainty School)’이고 다른 하나는 함양아의 ‘더 빌리지(The Village)’다. ‘불확실한 학교’에는 장애인이나 장애인 작가들이 초청된다. 이번 여름 캠프의 중요한 질문 중 하나가 “정상(normalcies)”이라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더 빌리지’ 워크숍에서는 예술 교육자들 혹은 예술 중재자들을 초청하여 그들이 어떻게 교육 방법을 재창조하는지를 알아본다. 캠프 수료 후 각 참석자들은 비엔날레 기간 동안 각자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하게 된다.
이번에 참가하는 총 61인(팀)의 작가 중에는 우리가 새롭게 위촉한 작품 18점 뿐 아니라 부분적으로 지원하는 작가의 작품들도 있다. 그 중 하나를 예로 들면 한국의 여성 작가 두 명으로 구성된 그룹 ‘파트 타임 스위트(Part Time Suite)’의 작품이 있다. 이들은 ‘나를 기다려, 추락하는 비행선에서’에서 많은 이들이 그 존재조차 몰랐지만, 1970년대부터 한강 여의도대로 바로 아래에 있었던 군사시설인 지하벙커를 촬영했다. 작가들은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이 강한 그 장소를 공연예술에 활용하고 가상현실(VR)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하여 미래를 위한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이들이 채택한 과학기술과 방법을 통해 이런 개념을 생각할 때 우리가 미디어의 역할에 대해 얼마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1980년대 민중예술운동은 예술과 사회가 어떻게 다각적으로 연관될 수 있는지에 질문을 제기한 중요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 이후로 모든 것이 급변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앞에는 아주 취약하고 막연한 미래가 펼쳐져 있다. 그러므로 그저 단순한 환상이 아닌 우리가 만들어갈 수 있는 좀 더 구체적인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좀 더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미래를 탈식민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가능한 것의 리얼리즘(the realism of the possible)”을 표현할 잠재력을 가진 언어에 특히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여기서 “가능한 것”이란 생소한 것, 혹은 그저 미지의 존재인 우리의 미래일 수 있다.
※ 이 글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와 홍콩 미술전문지 ‘아트 아시아 퍼시픽(ArtAsiaPacific)’의 협력으로 발행되었으며, 아트 아시아 퍼시픽의 특별부록 ‘한국 비엔날레(Biennales in Korea, No.100, Sep/Oct 2016)’에 먼저 수록되었다.
HG 마스터스(HG Masters)는 홍콩 아트아시아퍼시픽(ArtAsiaPacific)의 선임 에디터다. 아트아시아퍼시픽에서 2008년부터 매년 초 53개국의 현대미술을 리뷰하는 연감호(Almanac) 편집을 담당해 왔다. 예일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2011년 앤디워홀재단이 미술평론가에게 수여하는 기금(Andy Warhol Foundation Creative Capital Arts Writers Grant)에 선정되었다.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