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한국미술 해외진출 전략 컨퍼런스 '아트북과 카탈로그 레조네의 현재 : 연구ㆍ출판ㆍ디지타이징과 아카이빙' (2016. 1. 22~24,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멀티플렉스홀 외)이 열렸다. 미국 카탈로그 레조네 학회(CRSA)가 (재)예술경영지원세터와 공동으로 기획한 이 커퍼런스는 아시아 최초로 열린 '카탈로그 레조네'와 '아트북'에 대한 국제적 논의의 장이었다. 컨퍼런스의 세션 모더레이터 및 워크숍 발표자로 참여한 수잔 쿡 CRSA 프로그램 디렉터를 인터뷰했다.오랜 시간 미술관과 학계를 넘나들며 '카탈로그 레조네' 연구에 매진해온 수잔 쿡. 그가 생각하는 디지털 시대, 카탈로그 레조네의 의미와 가치를 들어본다.
휘트니미술관 재직 당시 "American Century"전(1999)을 기획했다. 20세기 미국미술의 역사를 망라하는 전시로, 수백 명에 달하는 작가들의 온갖 장르의 작업이 포함됐다. 리서치를 매우 폭넓게 진행했는데도, 전시를 마치고 나자 개별 작가나 특정 미술 사조에 대해 더욱 면밀하게 조사할 부분이 있음을 느꼈다. 이 과정에서 모든 디테일에 초점을 맞추고 철저한 리서치를 수행해야 하는 카탈로그 레조네 작업의 매력을 발견하게 됐다.
CRSA는 카탈로그 레조네 연구자들이 연구 작업을 독립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정보를 공유하고 전문적인 조언을 제공한다. 연구자들의 네트워킹, 토론, 질의의 장이기도 하다. 카탈로그 레조네 작업은 매우 오랜 시간이 소요되며, 대부분 적은 수의 인원이 진행한다. 때로는 1명이 모든 작업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환경에 있는 연구자들이 서로 교류하며 동기 부여를 할 수 있도록 하며, 궁극적으로 연구자 스스로 카탈로그 레조네 연구자 모임을 만들고, 컨퍼런스 등의 행사를 개최할 수 있도록 돕는다. 컨퍼런스는 전문 연구자 뿐 아니라 미술관, 갤러리스트, 일반 대중 모두에게 카탈로그 레조네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 있다. CRSA는 자체 학술 컨퍼런스 및 패널 디스커션 개최에서부터 뉴스레터 발행, 온라인 블로그 운영까지 다양한 업무를 진행한다.
이번 컨퍼런스는 CRSA가 아시아의 미술기관과 처음으로 협력한 사례이기도 하다. 한국의 미술관 큐레이터, 학자, 대학 교수, 미술사가를 꿈꾸는 학생 등 다양한 이들과 만나 카탈로그 레조네에 대한 전문 지식을 공유하게 된 데에 굉장히 큰 보람을 느꼈다. 이번 행사를 통해서 한국에서 자국의 예술적 자산과 현대 미술가에 대해서 전문적인 기록을 시작하려는 열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뿐만 아니라, 한국 아트마켓의 성장과 함께 글로벌 아트마켓에서 한국미술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아티스트 아카이브와 카탈로그 레조네의 필요성이 더욱 더 시급해졌다.
카탈로그 레조네는 해당 작가에 대해서 새로운 리서치를 시작할 때 필수적인 도구이다. 작가의 작업적 성취 전반을 온전히 연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며, 작가에 관한 전시, 출판, 저술 등 다방면의 활동에 쓰인다. 미술관에서 출판하는 전시 도록, 소장품 도록 등의 카탈로그에서는 기본적으로 작품 도판, 캡션, 소장자 등을 표기할 뿐이지만, 한 작가의 카탈로그 레조네는 이 모든 정보를 포함함과 동시에, 작가의 전 생애에 걸친 작품 전체를 설명해 주는 훌륭한 텍스트이다. 전작의 개별 전시 히스토리, 작업을 다룬 특정한 글, 작품 소장자의 변천사 등을 모두 수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 수준의 학문적 리서치와 작품의 진위 감정을 위해서 중요한 자료이다. 뿐만 아니라 카탈로그 레조네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사람들이 그 작가를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생각함으로써 작가의 작업이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역할도 한다.
모든 카탈로그 레조네 프로젝트는 제작에 수년이 걸린다.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수십 년이 소요 되는 경우도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예산 지원이 가능한지,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 여부를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해당 작가의 작업을 카탈로그 레조네로 만드는 데 대한 명확한 스테이트먼트를 만드는 것이 좋다. 이 과정에서 다른 모든 출판물과 마찬가지로 그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학자, 콜렉터, 일반 대중 중에서) 어떤 독자를 생각하고 만드는가? 업데이트에 있어서 시간과 금전적 자원을 어느 정도 투자할 수 있는가? 이것에 대한 답변이 종이 출판 혹은 디지털 출판의 형식을 결정하게 할 것이다. 다음에는 프로젝트의 범위를 결정한다. 해당 작가의 작업 중 한 가지 매체만을 다룰 것인가, 그가 작업한 모든 매체를 다룰 것인가?
이것이 정해지고 나면, 작가의 작품 리스트를 만든다. 작업의 도판을 구비하고, 제목, 재료, 사이즈, 제작 년도, 현재 소유자를 표기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그러고 나서 전시 기록, 출판물 및 기사 기록 등을 모은다. 이제는 이러한 문서들로부터 한 작업의 ‘전기(biography)’를 만들어 나간다. 각 작업이 어디에서 전시되었는지, 그리고 작업의 소유주는 어떻게 변천했는지 등을 꼼꼼히 기입한다. 전시 기록 외에도 갤러리나 미술관이 보유한 기록, 신문 등이 수록한 역사적 기록 등을 통해서 한 작품의 이력을 구성해 나간다. 작품 재료 및 제작 방식에 대한 과학적 조사도 포함된다. 이 모든 과정은 각지의 도서관 및 콜렉션 방문, 전문가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
좋은 리서처는 좋은 탐정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카탈로그 레조네 리서처는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매우 많은 공을 들여서 ‘모든’ 작업의 ‘모든’ 사실을 밝혀내야 한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지식과 지식 사이의 갭을 채워 넣는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항상 증명을 해내야 하고, 사실에 기반한 다양한 소스를 찾아내야 한다. 세부 리서치를 하다 보면 소요되는 시간은 정말로 상상 이상이다. 생각해 보라. 수 천 점에 이르는 작품의 전시 기록을 각각 찾아야 하는데, 한 작품의 전시 기록이 20여 개에 이른다. 사실 확인을 하거나 해당 작품과 관련된 기사 한 개를 찾기 위해서 하루 종일을 보낼 수도 있다. 실제로 작업을 해보지 않고서는 이러한 어려움을 알기 어렵다. 미국의 미술관들도 최근에 이르러서야 조금씩 이 고충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해당 작가의 작업 비전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비로소 이 작업을 가능하게 한다. 작가에 대한 꾸준하고 체계적인 리서치가 필요하다.
종이와 디지털 카탈로그 레조네는 모두 중요한 가치를 유지할 테지만, 미래에는 아무래도 디지털 쪽에 좀 더 우위가 있지 않을까 싶다. 더욱 많은 독자들이 어디에서든지 접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디지털 카탈로그 레조네는 이미지 및 동영상 자료를 폭넓게 수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한 작품에 대한 여러 장의 사진과 영상은 물론 작가의 작업 과정 및 전시장 전경을 담은 영상, 작가의 음성 인터뷰 등등. 뿐만 아니라, 많은 현대 미술가들은 더 이상 한 장르에 국한된 작업이 아닌 다양한 장르를 융합하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사운드나 퍼포먼스 등 종이 매체에 담을 수 없는 비물질적인 작업 또한 다수이기 때문에, 디지털 카탈로그 레조네가 이러한 작업의 전체를 효과적으로 담을 수 있도록 도울 것으로 예상한다.
종이 카탈로그 레조네는 고품질로 제작된 책의 물성과 아름다움에 가치를 두는 독자들에게 언제까지고 사랑받을 것이다. 책의 중요한 미덕은 고정된 포맷 안에서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미술 작품의 진위 감정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이유다. 종이 카탈로그 레조네는 그 자체로 역사적인 연구물이 될 수 있다. 디지털 카탈로그 레조네는 정보를 수정하고 업데이트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모든 카탈로그 레조네의 필자나 관련 기관이 영원토록 정보를 업데이트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트인컬처》 기자. 미술 현장의 이야기를 한글과 영어로 기록 중. 《ArtReview Asia》 《a.m. post》 등에 기고. 《Korean Art: The Power of Now》 (Thames & Hudson, 2014) 출판 어시스턴트, '이병복: 3막 3장' (아르코미술관, 2013), 'Re-designing the East' (토탈미술관, 2013) 전시 코디네이터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