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미술전문가

알리아 스와스티카 2015 족자비엔날레 감독

posted 2015.04.09

“이때까지의 현대미술사는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집중되어 온 매우 서구중심적인 방식의 서술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국제주의에 새로운 성명을 내걸고, 동남아시아와 인도, 아프리카와 남미를 포함한 모든 지역들을 연결시키고자 한다. 아랍 지역 역시 식민주의 역사, 국제 정세에서 지형적 상황과 관련하여 인도네시아와 많은 공통점을 지닌 중요한 지역이다. 2022년 적도 시리즈 컨퍼런스에서 논의될 내용을 예상해본다면, 적도 시리즈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 즉 현대미술 아트씬의 새로운 지형도를 그리는 제안이 되지 않을까 한다.”




알리아 스와스티카(Alia Swastika)/2015 족자비엔날레 감독족자카르타(Yogyakarta)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큐레이터로 체메티 아트 하우스(Cemeti Art House)의 아티스틱 매니저와 [수라트](SURAT, Cemeti 미술재단 미술잡지)의 편집인을 역임했다. 2008년부터 현재까지 아르크 갤러리(Ark Galerie)의 디렉터로 활약하고 있다. 2011년 족자비엔날레와 2012년 광주비엔날레 공동 감독으로 활동했으며 2012 아트 두바이(Art Dubai)의 마커 프로그램(Marker Program)에서 인도네시아 작가들을 소개했다. “과거, 그 잊혀진 시간”(2007-2008, 암스테르담, 자카르타, 세마랑, 상하이, 싱가포르)과 “마니페스토: 7인의 인도네시아 작가들의 새로운 미학”(2010, 싱가포르 현대미술관) 및 에코 누그로호, 틴틴 울리아, 비모 암발라 바양, 좀펫 쿠스비다난토의 개인전을 기획했다. 2013년에는 SOAP(Study on Art Practices)를 설립하여 젊은 연구자들과 함께 인도네시아 현대미술의 아카이빙, 리서치, 출판 활동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적도 시리즈가 그리고픈 새로운 아트 지형도

미술계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듣고 싶다. 대학에서 정치사회학을 전공했는데 어떤 경로로 미술계에 입문하게 되었나?


학생 시절 전시를 보러 다니기 시작하면서 인도네시아 현대미술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가 글 쓰는 일부터 시작했다. 체메티 아트 재단(Cemeti Art Foundation)에서 발간하는 [수라트(SURAT)] 라는 매체의 뉴스레터 편집인으로 미술계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2년 후에 체메티 아트 하우스(Cemeti Art House)에 지원해 아티스틱 매니저로 활동하면서 큐레이터의 일에 대해 배웠다. 작가들과 소통하며 체메티 아트 하우스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전시를 관리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큐레이터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인도네시아 현대미술사에서 체메티 아트 하우스라는 공간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아티스틱 매니저로 근무할 당시의 상황과 진행했던 주요 프로젝트들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


1998년의 개혁 이후 인도네시아는 새로운 정치적 상황을 맞았다. 내가 체메티의 큐레이터로 일하기 시작했을 당시가 30여 년간의 독재정치가 막을 내리고 표현의 자유가 허락된 첫 시기였다. 1998년 이전에는 예술적 표현에 대한 정부의 검열과 규제가 심했었다.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이루어지면서, 우리 세대 미술계 내부에서는 다른 사회운동들과의 다양한 협업이 이루어졌다. 매달 다른 전시가 진행되었고, 내 역할과 책임은 큐레이팅 자체라기보다는 협동 큐레이팅(collective curating), 관리에 가까웠다.



2008년부터는 아르크 갤러리(Ark Galerie)에서 일해오고 있다. 아르크 갤러리만의 특징과 비전이 있다면 무엇인가?


아르크는 비영리 공간으로서 인도네시아 미술계에 젊고 실험적인 작가들을 소개하는 것을 기본 미션으로 한다. 2007년 아르크가 설립될 당시 자카르타의 대부분의 갤러리들은 상업적인 성격이 강해서 새롭고 실험적인 작품들보다는 전통적인 작품들을 주로 선보였다. 그래서 우리는 더 실험적인 작업을 하는 작가들과 일하기 시작했고, 비디오를 비롯한 뉴미디어 설치작품과 인터액티브한 전시들을 보여주면서 인도네시아 아트씬의 다양성과 진보를 추구하고자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갤러리 공간을 미술계 종사자들의 허브로 발전시키고자 노력중이다. 2013년에 자카르타에서 족자카르타로 공간을 이전하면서 교육 프로그램에도 신경 쓰고 있다. 매 전시마다 학생들을 초청하여 다양한 주제에 대해 예술가들과 토론을 벌이는 장을 마련하거나 작품에 대해 배울 수 있도록 직접 전시 투어를 진행하기도 한다.



현재 갤러리 디렉터와 족자비엔날레 감독을 겸하고 있는데, 다른 성격의 두 가지 일을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두 가지 일이 많이 다른 건 아니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비엔날레 일을 할 땐 정부를 상대해야 하기에 관료주의적 상황을 다뤄야 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는 것이다. 특히, 인도네시아 내에는 예술 공간과 같은 기관을 위한 정부의 예산이나 지원이 전무하기 때문에 갤러리 운영 때에는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 많았다. 경영면에서도 작은 기관인 갤러리와 달리 비엔날레는 큰 규모의 예산을 운용하는 만큼 다른 방식의 경영방법이 필요하다. 또한, 비엔날레는 공공을 위한 행사이기 때문에 대중과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여러 그룹의 사람들에게 나 자신이 더 오픈되어야 하는 면이 있다.


ⓒ 더아트로ⓒ 더아트로

올해 족자비엔날레는 2011년부터 시작한 적도 시리즈(Equator Series)의 세 번째 회이다. 지금까지 국제 아트씬에서 중심에 서지 못했던 지역들과 협업하여 풀어내는 비엔날레 프로젝트는 굉장히 필요하고 시기적절하다고 본다. 1회 인도와 2회 아랍 국가들과의 프로젝트에서 어떤 성과들을 얻었나?


적도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얻은 가장 큰 성과는 우리가 국제 미술계를 이야기할 때 보통 포함되지 않았던 변방의 지역 작가들과 많은 교류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보통 인도네시아 작가들이 레시던시에 참가할 때 대부분이 유럽, 호주, 미국 등지로 가는데 적도시리즈를 통해서 인도와 아랍 지역의 작가들을 초청하고, 인도네시아 작가들을 해당 국가로 보낼 수 있었다는 점은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프로젝트를 통해 비슷한 역사와 많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는 ‘비중심적’ 지역들과 교류하고 협업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외부적으로 얻은 성과는 적도 시리즈로 인해서 족자비엔날레가 국제 미술계로부터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된 것이다.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이 프로젝트가 지역 사회에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본다.



이번 적도 시리즈는 나이지리아와 파트너로 진행하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 중 나이지리아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세 번째 적도 시리즈 권역으로 서아프리카를 먼저 설정하고 한 나라에 포커스 하고자 했는데, 그 중에서 나이지리아가 역동적인 아트씬이 존재하는 곳이라 생각하여 택하게 되었다. 라고스 현대미술센터(CCA Lagos, the Center for Contemporary Art)와 같은 기관들의 활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나이지리아 출신의 좋은 작가들에 주목해왔다. 현재 나이지리아가 국제 미술계로부터 관심과 주목을 받는 시기이기도 하여 그 아트씬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깊이 들어가는 노력을 기울이는 일이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올해 비엔날레의 주제에 대해 얘기해 주었으면 한다.


정식 타이틀은 아니지만 “Staging Conflicts, Hacking Harmony(갈등의 표면화, 조화에 균열내기)” 를 주제로 작업하고 있다. 사실 이 주제는 라고스에 한 달 동안 머무르면서 나이지리아의 전반적인 정치·사회적 상황을 리서치를 하고 있던 한 큐레이터의 관찰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그는 인도네시아와 나이지리아 사이의 큰 유사점을 발견했는데, 두 사회가 매우 창의적으로 사회적 혼란을 부정적인 방식이 아닌 외려 긍정적인 발전의 일부분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이 주제가 탄생하게 되었다. 나이지리아와 인도네시아의 사회는 아직 정돈되지 않은 만큼 내부에 많은 갈등이 존재하고, 무질서하고 혼돈스러운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어떻게 민주적인 삶을 강화시키고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 탐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적도 시리즈 10년 프로젝트가 끝나고 2022년에는 시리즈를 마감하는 컨퍼런스가 개최된다. 상상해 볼 때, 그 컨퍼런스에서는 어떤 논의가 이루어질 것 같은가? 이 시리즈를 통해서 족자비엔날레가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사실 심포지엄은 격년으로 개최해오고 있다. 예를 들어, 2011년에 비엔날레가 있으면 2012년에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식이다. 2022년에 있을 컨퍼런스는 10년간의 적도 시리즈를 종합하는 것이 될 것이기에 아직 그 내용에 대해서 논의한 바는 없지만, 적도 시리즈를 통해 그린 새로운 아트 지형을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예상해본다. 이때까지의 현대미술사는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집중되어 온 매우 서구중심적인 방식의 서술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국제주의에 새로운 성명을 내걸고, 동남아시아와 인도, 아프리카와 남미를 포함한 모든 지역들을 연결시키고자 한다. 아랍 지역 역시 식민주의 역사, 국제 정세에서 지형적 상황과 관련하여 인도네시아와 많은 공통점을 지닌 중요한 지역이다. 2022년 적도 시리즈 컨퍼런스에서 논의될 내용을 예상해본다면, 적도 시리즈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 즉 현대미술 아트씬의 새로운 지형도를 그리는 제안이 되지 않을까 한다.


ⓒ 더아트로ⓒ 더아트로

인도네시아의 작가들이 가진 특징과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많은 인도네시아 작가들이 전통에 기반을 두거나 관련된 작업을 하고 있다. 현재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여전히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전통에 대해 관찰하거나, 질문을 던지거나, 비평적인 응답을 한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전통에 속해있다고 느끼고 있다. 내 생각에 이러한 부분이 인도네시아 현대미술의 하나의 특징이 되는 것 같다. 다수의 예술가들이 모더니티와 전통 사이의 긴장 관계에 대해서 논의하고 정치적 행동주의와 그들의 예술적 작업을 연결시키려 하고 있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 일환으로 많은 작가들이 이러한 단체의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이, 인도네시아 내에 미술관이나 정부 기관 같은 현대미술 기반 시설이 없기 때문에, 많은 작가들이 이러한 인프라를 개발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즉, 언제든 행동주의의 일부가 되고자 하는 용기와 경향이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이 다른 국가들과 차별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을 통한 작가들의 국제 교류는 활발한 편인가?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한국만큼은 아니다. 한국은 국제 교류가 활발하다.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 내에서는 아직 공동체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것들이 많아서 몇몇 레지던시 공간들이 있기는 하지만 기관이라고 볼 수는 없다.



미술계에서 꼭 이루고 싶은 드림 프로젝트가 있다면?


드림 프로젝트라고 한다면 미술관을 여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소유한 미술관이라기보다, 족자카르타에 현대미술관을 세우는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고 싶다. 정부와 함께 진행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크고 인정받는 미술관들이 많은 나라에서는 미술관 하나를 세운다고 미술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겠지만, 족자카르타처럼 미술관이 전혀 없는 곳에선 대중에게 예술을 소개할 수 있는 미술관 하나를 갖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예술이 아직 일반적이거나 익숙지 않은 지금의 상황에서 규모도 작고 실험적인 전시를 선보이는 갤러리로 대중을 불러들이는 일은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예술에 대해 공공 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미술관과 같은 기관이 있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질문이 되겠다. 국제미술계에서 아시아 여성 큐레이터로 활동하는 것은 어떠한가?


여성이라는 점에 대해서, 또는 아시아인이라는 점에 대해서 특별한 전략을 취해왔던 적은 없다. 하지만 내 배경으로 인한 다른 특징이 있다는 점은 잘 알고 있다. 인도네시아, 특히 족자카르타는 독특한 아트씬이 펼쳐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딱히 정체성 전투의 일부가 되고 싶지는 않다. 물론 정체성이 자신의 생각을 대변하는 상황도 있겠지만, 내 정체성을 나의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고 싶진 않은 것 같다. 그저 내가 아시아의 인도네시아 출신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대하고 있을 뿐이다.

오명언 / 더아트로 에디터

더아트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