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희: 아시아 중심도시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는 있었지만 그것을 직결시키려는 의도보다는 1990년대가 한국 현대미술의 획기적인 변화의 시대였던 것만큼 아시아가 변화한 시대였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신생 비엔날레가 모두 아시아 지역에서 생겨나는 등 90년대의 아시아 현상은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다고 봐요. 당시 이미 아시아에 대한 열망들이 있어서, 내가 아시아를 주제로 한다는 것에 대한 특별한 의미부여를 하는 느낌은 못 받았어요. 하지만 내가 아시아인기 때문에 아시아 중심적인 사고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가 달라지고 있다, 아시아의 정체성이 변하고 있다는 시각에서 아시아를 다루겠다는 의미였어요. 사실 아시아 큐레이터로서 어떻게 아시아의 차이를 만들어낼 것인가의 고민이 있었고, 아시아 정체성의 비고정성을 개념화하기 위해 ‘루트(뿌리 root)’와 ‘루트(길 route)’라는 두 개의 장을 설정했어요. 부인할 수 없는 아시아 전통으로 ‘뿌리’와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길’을 통해 하나의 정체성과 또 하나의 정체성이 포개어진, 이중의 정체성이 아시아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죠. 최근 박찬경 감독이 내년 ‘서울 국제 미디어아트 비엔날레’를 준비하면서 다시 아시아를 담론의 중심에 놓았어요. 서울시립미술관이 비전으로 삼고 있는 포스트 뮤지엄은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현대 미술관의 비전으로서 유효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만큼 양면의 정체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가 중요한 관건이지요.
김홍희: 2008년이었죠. 2007년 경기도미술관 디렉터를 맡고 다음 해 쌈지를 접었죠. 쌈지의 비즈니스가 어려워지기도 했지만, 그보다 큰 이유는 10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그래서 더 이상 끄집어내는 것은 동어반복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지 않으면 쌈지는 생명력을 잃는다는 판단이 컸어요. 마침 경기도미술관에서 경기창작센터를 구상하게 되었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를 공공 레지던시인 경기창작센터에서 찾고 미술관이 변화할 수 있는 견인차로 삼자는 생각을 했어요.
김홍희: 많이 제도화됐죠. 하지만 저는 지금을 새로운 레지던시 시대로 보고 싶어요. 지난 10년간 대안공간들이 많은 일들을 해왔지만 운영 자금 조달에 너무 지쳐 있었어요. 노무현 정권에서 이명박 정권으로 넘어가면서 지원이 반으로 줄었어요. 현실적으로 대안공간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너무 어려운 상황에 이르게 된 거죠. 이것을 다시 살릴 수 있는 방법은 형태를 변경해 공공기관의 기본 예산을 가지고 있는 제도권의 미술관에서 대안적 기능을 강화하는 방법이 있겠죠.
김홍희: 저의 비전은 포스트 뮤지엄이지만 경영철학은 양손잡이 철학이에요. 기존 공무원 조직의 안정성과 미술관의 역사를 존중하고, 동시에 수장의 혁신성을 합치는 양손잡이여야 혁신성이 실현되지, 아무리 애써도 이 혁신성에 지지를 받지 못하면 일이 진행되지 않아요. 공무원의 행정력, 안정을 기하는 측면과 예술의 혁신적인 양면을 수렴하여 그 충돌을 조정하는 것이죠. 양손잡이, 글로컬(Glocal), 정통성과 대안성을 아우르기 등 공공기관의 전시기획은 이러한 양면성의 조율과 관계가 깊어요.
김홍희: 관장이 혁신성을 가지려면 독립큐레이터 마인드, 즉 독립이자 대안으로서 미술 문화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그래서 저는 독립큐레이터 출신이 제도권 기관장으로 가는 것에 대해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요. 공무원 같은 관장보다는 독립큐레이터 같은 관장이 미술관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죠.
김홍희: 기존 미술관이 비판받는 것은 백인 남성 중심, 엘리트 중심, 부유층과 권력층을 위한 기관이라는 것 때문이죠. 일반 사람들이 다가가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에요. 노약자, 장애인들을 포함하여 사람 중심의 미술관으로 가는 것이 포스트 미술관이에요. 콜렉션 자체의 미학적, 자산적 가치보다 그것이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어 삶에 영향을 미치고 질을 향상시켜줄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중심이에요. 전시도 마찬가지죠. 거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어요. 하나는 공공 미술관에서 시민을 끌어들이는 동시에 그들의 미감을 끌어 올려주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기 때문에 수준 있는 전시를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작품과 관객 사이에 소통의 매개 장치를 발달시켜야 한다는 것이죠. 캡션, 해제, 도슨트 등을 미술관에서 관행적으로 하는 것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실행해야 해요. 또한 제2세계, 제3세계 미술을 소개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스칸디나비아, 아프리카, 아랍, 남미를 초점에 두는 전시를 계획하면서 탈장르적인, 즉 디자인, 건축, 패션 전시를 구상하고 있어요.
김홍희: 어떻게 초청되었는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다만 선정위원 중 아시아인이 참여했다는 건 한국과 아시아의 위상을 반영한다고 봐요. 참여하면서 크게 느낀 바는 도큐멘타가 1955년에 시작해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도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은 진지한 선정 과정과 제도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8명의 국적이 다른 큐레이터와 관장이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서, 각자 리서치를 통해 추천하는 4~5명을 모아 30, 40명의 기본 풀을 만들어요. 이것을 다시 압축하고 그 리스트에 대한 리서치와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등 선정에 4~5번의 과정과 격렬한 토론을 거쳐요. 스스로 아시아권을 대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무엇보다 유럽중심주의에서 탈피할 것을 강조했는데 아시아권 후보는 다 탈락했어요. 서구 유럽 중심을 벗어나는 것이 아직 유럽 동구, 아프리카와 남미 정도로 한정되어 있는 것 같아요. 이제는 아시아권 감독이 도큐멘타를 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지만, 한편 축척된 경험이 객관적으로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앞으로 한국과 아시아에서 어떤 큐레이터가 도큐멘타를 할 수 있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김해주는 전시 기획자이며 2022년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