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미술전문가

홍콩 파라사이트 디렉터 코스민 코스티나& 코스타리카 테오레티카 객원 디렉터 인티 게레로

posted 2013.11.06

"서구의 헤게모니적 모더니티 담론은 변화해야 하고 앞으로도 변화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회적 모델이 전후 서구에서 형성되어 그 중심 담론을 지배하고 있는 까닭에 비서구권 세계의 장점들이 그 앞에 서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이러한 모더니티의 죽음을 목격하고 새로운 것을 재창출해야 하는 역사적인 순간과 과정에 있다. 사실 좀 늦은 감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이를 둘러싼 내러티브와 문화가 따라올 것이다."




코스민 코스티나(Cosmin Costinas)/홍콩 파라사이트(Para/site) 디렉터코스민 코스티나는 루마니아 출신으로 현재 홍콩 파라/사이트의 디렉터를 맡고 있다. 네덜란드 BAK의 큐레이터, 2010년 우랄 비엔날레 공동큐레이터, 도큐멘타12 매거진의 에디터를 역임했다. 주요 전시로는 〈Taiping Tianguo: A History of Possible Encounters: Ai Weiwei, Frog King Kwok, Tehching Hsieh, and Martin Wong in New York〉(Para/site, 2012), 〈Spacecraft Icarus 13. Narratives of Progress from Elsewhere〉(BAK, 2011), 〈In the middle of things〉(BAK, 2011), 〈I, the Undersigned〉(런던 Institute of International Visual Arts –룬트 Lunds konsthall –프라하 tranzit+display –슈트트가르트 Wurttembergischer Kunstverein 순회전, 2010-2011) 등이 있다.
인티 게레로(Inti Guerrero)/코스타리카 테오레티카(TEOR/éTica) 객원 디렉터콜롬비아 출신의 큐레이터 인티 게레로는 현재 코스타리카의 비영리기관인 테오레티카의 객원 디렉터를 맡고 있으며, 이탈리아 튜린 Collection Fondazione Sandretto Re Rebaudengo의 레지던스 큐레이터, 네덜란드 De Appel's Curatorial Programme의 큐레이토리얼 펠로우를 역임하고, [Afterall], [Ramona], [Art Nexus], [Arteria] 등 유럽과 남미의 미술전문지에 기고하고 있다. 주요 기획 전시로는 〈Men Amongst the Ruins〉(TEOR/Tica, 2013), 〈Kadist. Pathways into a collection〉(Minsheng Art Museum, 2012), 〈The City of the Naked Man〉(Museu de Arte Moderna de So Paulo, 2010) 등이 있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글로벌

왼쪽부터 김현진, 인티 게레로, 코스민 코스티나왼쪽부터 김현진, 인티 게레로, 코스민 코스티나

김현진: 코스민 코스티나, 당신이 디렉터로 있는 파라사이트는 서울과 다양한 교류가 이루어지는 기관이다. 규모는 작지만 자율적인 운영 체제를 지니고 있고 담론 지향적 국제교류와 홍콩 및 아시아 지역의 국제적 개방성을 이끌어 온 홍콩의 중요한 예술 플랫폼이라고 생각한다. 유럽과 아시아 기관의 미술 현장을 경험하면서 느낀 전시 기획의 환경, 시스템의 차이는 무엇인가?

코스민 코스티나(이하 코스민): 많은 차이가 있다. 우선 유럽에는 아시아보다 다양한 방식을 지닌 기관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내가 일한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의 BAK(basis voor actuele kunst)는 여러 면에서 아주 특수한 기관으로, 관람객의 반응과 외부 펀딩과 관련하여 관료주의적 결정에 전혀 개의치 않는 유연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파라사이트의 경우 홍콩의 첫 동시대미술 기관이라는 역사적 의식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이곳은 디렉터 한 사람의 의지로 좌지우지될 수 있는 기관이 아니며, 이러한 존재 방식은 기관에 매우 건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홍콩 미술계는 정부가 세운 기관들의 구조나 전통이 명확히 세워져 있지 않아 기관이 위치한 생태계의 관계도를 항상 주시해야 하는 비상업적 공간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홍콩은 매우 상업적인 지역이어서, 그 상업적 풍경에 둘러싸인 이 파라사이트라는 작은 허브가 상업문화의 대항문화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이 홍콩 내 파라사이트의 위치라고 생각한다. 한 사회에서 기관의 의미가 계속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파라사이트는 앞으로 더 강력한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김현진: 현재 홍콩의 M+(M Plus) 같은 대형 미술관은 시작부터 글로벌한 미술 지형의 관계를 상정한 미술관으로 준비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의 파라사이트가 가진 의미나 역할이 축소되거나 그 주도적 위상이 달라질 것에 대해 우려하지는 않는가?

코스민: 홍콩에는 파라사이트를 지지하는 동료들이 많이 있다. 앞으로도 홍콩의 아트 신에서 중요한 허브로 기능할 것이다. M+는 분명 파라사이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리소스이지만 한계 또한 분명하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파라사이트는 홍콩 내에서 어떤 타 기관에도 비견할 수 없는 담론을 형성하고 큐레이토리얼 모델과 예술적 생산을 이끌어갈 것이다. 홍콩 정부도 동시대 미술 신의 지지와 구축에 대한 미션에 관심을 두고 있으나 이전까지 대안적 조합들에 대한 지원이 부족했음을 인정한 바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번에 정부 지원에서 배제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최근 파라사이트는 그간 홍콩 정부로부터 지원받던 예산의 상당 부분을 삭감당했다). 아트 신의 다른 차원들을 전개하는 것에 대한 파라사이트의 공헌을 고려한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하는 프로그램은 충분히 공기관적 역할과 미션을 수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앞으로 사적 지원에 더 의존하여 이 일을 해나가야 한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김현진: 인티 게레로, 당신은 코스타리카 기관의 객원 디렉터로 홍콩과 산호세를 오가며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중앙아메리카 지역은 아직 한국에게 다소 낯설고 문화 현장의 교류도 많지 않은 상황이다. 당신이 속한 테오레티카(TEOR/éTica)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아울러 지역과 관련된 당신의 접근이나 시각을 얘기해달라.

인티 게레로(이하 인티): 테오레티카(TEOR/éTica)는 코스타리카에서 지정학적 지역주의 정체성이 형성되던 시점인 90년대 말(1999년) 설립된 동시대 미술의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 맥락으로 보면, 중앙아메리카에서 벌어진 여러 내전은 경제적 이익을 위해 CIA에 의해 후원된 전쟁과 공산주의 사이의 긴장 관계를 부추겼다. 이 복잡한 내전적 사안은 결국 90년대에 종식되는데, 그 과정에서 코스타리카는 평화를 유지하며 안정적으로 지역을 관리해내어 중립국이 되었다. 테오레티카 역시 그 이념을 이어 받아 중앙아메리카의 동시대 미술과 사고를 형성하는 중심 기관으로 신뢰를 받고 있다. 나의 이상과 시도는 국제주의를 그 지역에서 시작하는 것이며, 이것은 글로벌 코즈모폴리터니즘(global-cosmopolitanism)과는 다르다. 매우 구체적인 지역부터 교류를 시작하고 문화 교류를 이끌어내 더 넓고 글로벌하게 울려 퍼지는 인류적 경험의 연계를 형성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라틴아메리카의 동시대 미술에 대한 개념을 매핑(mapping)하기 위한 수많은 전시가 있었고, 외부로 순회된 서베이(survey)형 전시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중 어느 전시도 라틴아메리카의 동시대미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제껏 엘 살바도르, 코스타리카, 남 멕시코 지역과 콜롬비아는 라틴아메리카의 담론에 포함된 적이 없었다. 테오레티카는 일반적인 전시 형식보다 이러한 지역적 비가시성에 응답하고자 하는 곳이다. 산호세로부터 연계된 국제적 네트워크를 통해 많은 중앙아메리카의 작가들을 소개함으로써 관계자들을 테오레티카로 방문하게 만들었다. 이곳은 중앙아메리카에서 미술과 이념을 이루어내는 데 있어 가장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곳이다. 기관 이름 또한 스페인어의 이론이라는 ‘theoria’와 윤리라는 뜻의 ‘ethics’의 합성어이다.


김현진: 각각 유럽과 남미 출신으로 홍콩에서 일하게 된 이유와 동기가 궁금하다. 또 큐레이토리얼 관점에서 홍콩의 동시대미술 현장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코스민: 홍콩으로 오게 된 것은 상황보다 우연이었다. 왜 아시아인지보다 왜 꼭 유럽일 필요가 없었는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겠다. 나는 세계를 서구 유럽 중심의 헤게모니적 관점에서 벗어나 지리적, 문화적 복합성에 기반을 두어 이해하고자 노력해왔다. 내가 헤게모니적 우위에 있는 지역 출신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루마니아에서 태어나고 자라 큐레이터로 일하기 시작했고, 필연적으로 타자화된 위치에서 국제적인 큐레이터로 자리를 잡았다. 피해자로서의 타자화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큐레이터로서 나의 위치는 동시대미술 현장에서 일하는 동료들이나 일종의 국제 시스템 내의 대응관계와 같은 복잡한 것으로부터 새겨진 것이다. 때로 이점이 있는 위치이기는 하나, 필연적으로 어디에 종속된 것은 아니다. 그저 하나의 조건일 뿐이다. 굳이 이런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동시대미술 현장에서 성장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내 위치나 관점의 국제성을 당연시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내가 아시아로 온 것은 마지막 콘서트에 가고자 하는 충동이나 시도에 의한 것이었다. 아시아는 지금까지 서구 안에서 구조적이지 않은 세계 중 가장 영향력 있는 곳이고 그런 면에서 헤게모니적 담론을 변화시킬 충분한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지금 여기 있는 것 아닐까? 현재 유럽을 보면 사회 전반적으로 미래에 대한 믿음보다 경제, 사회적 위기에 대한 비통함이 더 지배적이다. 하지만 아시아의 분위기는 조금 상반되지 않나 싶다. 전반적으로 성장에 대한 정서와 잠재력, 그리고 내일에 대한 긍정주의가 깔려있음을 느낀다. 물론 이러한 많은 부분이 경제 시스템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우리가 구가해 볼 잠재성이 있지 않을까?


인티: 나는 이 질문을 내가 동시대미술 현장에서 충분히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가겠다. 나는 이것이 차이에 대한 화해의 제스처라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부분들로부터 등장하는 사고에 대한 일종의 쇼케이스, 예를 들면 비엔날레와 같은 것들 또한 그 결과일 수 있겠다. 세계 여기저기를 돌며 전시를 할 때마다 나는 매번 ‘왜 이 전시를 이 장소에서 하는가’에 대한 이해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내가 전개하는 큐레이터십은 지역적 역사에서 비롯된 국제적 특정성을 수반하는데, 실제로 타자의 상황에서 생각하도록 하는 구체적인 지역의 경험에 집중하고 그 깊이를 더해보려 노력한다. 홍콩은 여러 정치적 경험들을 수용할 수 있는 글로벌한 도시로서 세계를 바라보기에 흥미로운 장소다. 그렇기에 일반화된 아시아가 아닌 구체적인 홍콩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김현진: 파라사이트에서 두 사람이 공동 기획한 《역병의 해 일지》전에 대해 얘기해보자. 사스(SARS)가 유행했던 시기 홍콩에서 일어난 질병과 타자 배척의 상징적 증후들을 다루는 홍콩에 헌사된 전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코스민: 우선, 이 전시는 일반적으로 우리 두 사람이 일하는 방식이자 파라사이트의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방식을 띠고 있다. 전시 아이디어는 홍콩의 동시대 역사 안에서 홍콩을 정의할 수 있는 결정적 사건들, 그리고 스토리를 보고자 하는 역사학적 관점으로 접근했다. 2003년이라는 이 특정한 해를 조사하면서 우리는 홍콩의 구조를 정의하는 여러 가지 일들의 결합과 사건들을 관찰했다. 결국 이 전시의 전제는 2003년을 홍콩이 중국 본토에 반환된 1997년과 병행하는 해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반환의 첫 결과는 영토 내에서의 다툼이었다. 그리고 전염병 사스(SARS)로 인한 위기와 대중적 아이콘이던 장국영의 자살이라는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우리는 전시 제목을 《역병의 해 일지. 공포, 유령, 반란, 사스, 장국영, 그리고 홍콩 이야기 A Journal of Plague Year. Fear, Ghost, Rebels, SARS, Leslie and the Hong Kong Story》라고 지었다. 이 제목은 ‘일지(Journal)’라는 방법론으로부터 가져왔는데, 일지는 주어진 시간의 프레임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중 우선적으로 언급되어야 할 것을 담고 공유하는 리스트와 같기 때문이다. 우리의 제안은 이 두 사건이 서로를 잠재한다는 것인데, 사스라는 전염병으로 인한 절대적인 침체의 광경은 그 특정 시기 장국영의 매우 연극적인 죽음에 의해 강화되었다.
우리는 특히 질병, 차별과 배제와 연관되는 상황, 감염, 오염과 타자, 인종의 공포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보고자 했다. 그것이 1894년 홍콩에서 발생한 흑사병이다. 실제로 1994년, 옛 중국의 항구였던 파라사이트 근처 한 마을이 유럽과 여타 지역의 많은 사람들을 사망에 이르게 한 흑사병의 진원지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본능적으로 현재 황색주의(yellow Peril)로 알려진 아시아인에 대한 공포와 망상으로 이어졌다. 황색주의는 19세기 말에서 1차 세계대전까지 서구세계 내 가장 큰 공포로, 일종의 존재론적 위협으로 여겨졌다. 이것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재현되었는데 일본의 제국주의적 힘의 부상이나 많은 인구의 중국인에 대한 공포도 포함된다. 이러한 내용은 홍콩에서 역병에 대한 발견 과정에서 잠재되어 있거나 강화되어 있던 징후였다. 즉 질병과 전염병, 그리고 타자에 대한 공포 사이의 결합이 홍콩에 대한 이야기로 진술되었고, 이것이 바로 전시를 지배하는 맥락이었다.


《역병의 해 일지. 공포, 유령, 반란, 사스, 장국영, 그리고 홍콩 이야기》전 설치 전경《역병의 해 일지. 공포, 유령, 반란, 사스, 장국영, 그리고 홍콩 이야기》전 설치 전경

김현진: 모던, 포스트모던 담론이 1세계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면 오늘날에는 1세계 밖에서 진행되거나 구성되며 이행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당신들의 전시는 이러한 글로벌 모더니티에서 비롯하여 다양한 지역성을 관찰하고 풍요로운 담론을 생산하는 방식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코스민: 그렇다. 이 서구의 헤게모니적 모더니티 담론은 변화해야하고 앞으로 변화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회적 모델이 전후 서구에서 형성되어 지배되고 있는 까닭에 비서구권 세계의 좋은 부분들이 그 앞에 서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이러한 모더니티의 죽음을 목격하고 새로운 것을 재창출해야 하는 역사적 순간과 과정에 있다. 사실 좀 늦은 감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이를 둘러싼 내러티브와 문화가 따라올 것이다.


인티: 당신이 질문한 모더니티에 대해 생각하자니, 싱가폴의 큐레이터 데이비드 테(David The)의 말이 떠오른다. 그는 주체가 어떻게 예술에서의 동시대성이라는 개념을 동시대적 차이의 등장으로 연관하는지를 조명했다. 그가 말하기를, 동시대성은 60년대 개념미술의 경험으로부터 등장하는데 이 “동시대 속의 존재(being in the contemporary)”라는 개념은 큐레이터를 탄생시키게 되었다. 개념미술이 시작되던 그 역사의 지점을 더 깊게 파내려가기 위해 노력하는 기관의 맥락들을 볼 수 있다. 어쩌면 동시대가 필연적으로 개념주의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우리 전시로 돌아가 말해본다면, 우리가 동시대성을 이해하는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는 19세기에 발생한 어떤 것, 흑사병이다. 흑사병이라는 지점을 유럽과 미국에서 발생한 모든 인종차별적 재현의 문제로 끌어들임으로써 말이다. 이러한 종류의 레퍼런스들이 온전히 미술사적 맥락에서 사고되는 것이 내가 선호하는 작업 관점이다.


김현진: 나 역시 당신의 관점에 동의한다. 모던과 포스트모던 담론이 1세계로부터 형성되고 그 해체까지 주도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 서구사회는 오히려 부상하는 3세계 시장에 강력한 영향을 받고 그 주도권을 빼앗기는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자신들의 선형적인 사회 모델에 3세계의 사회 구도와 관계하거나 수용하면서 문화 수용 흐름의 구도도 한층 복잡하게 변화하고 있다. 즉, 우리는 이제 새로운 수평적 풍요를 위해 각자가 자리한 곳에서 발견되는 현상과 관점, 그 잠재된 영역으로부터 글로벌이라는 지점을 어떻게 복합적이고 흥미로운 전복적 내러티브들로 형성해 나갈 수 있는지 생각하고 움직여야 할 것이다. 오늘 당신들이 들려준 관점들 또한 그러한 명확한 입장 위에서 시도하고 있는 진지한 큐레이토리얼 프랙티스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고 생각한다.

김현진 / 일민미술관 학예실장

일민미술관 학예실장으로 재직 중이며 1999년부터 루프, 쌈지스페이스, 아트선재센터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를 거쳐 네덜란드 반아베미술관, 인사미술공간(IASmedia), 계원예술대학 내 갤러리27 에서 초청연구원과 객원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2005이스탄불비엔날레 큐레이토리얼 어시스턴트, 2008 광주비엔날레 공동큐레이터를 역임했다. 주요 전시로는 《탁월한 협업자들》, 일민미술관(서울, 2013), 《플레이타임-에피스테메의 대기실》, 문화역서울284(서울, 2012), 《시선의 반격》, 두산갤러리(서울, 2009)/L’appartement22(Rabat, 2010), 《우발적 공동체》, 계원 갤러리27(의왕시, 2007), 《십 년만 부탁합니다-이주요 위탁 프로젝트》, 계원 갤러리27(의왕시, 2007), 《사동 30-양혜규》(인천, 2007), 《Plug-In#3-밝힐 수 없는 군중들》, 반아베 미술관(Eindhoven, 2006) 등이 있고, 저서로는 [정서영-큰 것, 작은 것, 넓적한 것의 속도](현실문화, 서울, 2012), [Inter-views] (Bigaku Shuppan, 도쿄, 2011), [가오시창- The Other There](Timezone8, 베이징, 2009), 이주요(사무소, 서울, 2008)/(다른북스, 서울, 2008), 양혜규-사동30번지(Wien Verlag, 베를린, 2007), 돌로레스 지니와 후안 마이다간(Sala Rekade, 빌바오, 2007) 등의 도록에 글을 기고하거나 편집, 출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