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미술전문가

릴레이 인터뷰 : 양아치-김희진 꿈의 대화

posted 2013.03.28

더아트로는 시각예술 인사를 아우르며 그들의 활동과 시각을 알아보는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정용국→이대범→현시원→주재환→김남수→양아치→김희진으로 이어지는 릴레이 인터뷰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역할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뒤바뀐다. 다음 인터뷰의 상황까지 고려해가며 인터뷰 대상을 선정해야 하는 이 코너는 시각예술계 인사들의 인맥과 관심사에 따라 다음 주인공이 누가 될지 예측할 수 없다. 인터뷰이와 인터뷰어간의 긴밀한 관계속에서 나오는 진솔한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김희진/(사)아트 스페이스 풀 대표현 비영리 전문에술사단법인 아트 스페이스 풀의 대표이자 복합문화공간 꿀의 기획실장으로 전시, 출판, 지역 프로젝트, 국제교류 등의 기획을 총괄하고 있다. 1999년부터 미디어 시티 서울, 아트선재센터를 거쳐 2005-2009년까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과 아르코미술관에서 국제교류 담당 큐레이터를 역임했다. 공동연구랩, 토론워크숍, 작품 프로덕션 및 프리젠테이션, 출판이 연동된 기획에서 미술창작인의 작업 과정에서 발원되는 지식생산, 미술이 제시할 수 있는 사회적 제안과 대안가치들, 지역 현실에 기초한 창작언어 발굴에 관심이 있다. 주요 기획 프로젝트로는 《Dongducheon : A Walk to Remember, A Walk to Envision》(2007-08), 《Unconquered : Critical Visions from South Korea》(2009), 《John Bock : 2 handbags in a pickle》(2008, Arko Art Center & IAS, Seoul), 《Thought is made in the mouth》(2006), 《Day of Confidence》(2010), 《김용익 프로젝트》(2011) 등이 있다. 글로벌 기획 협업 네트워크인 뮤지엄 애즈 허브의 기획 파트너이며, 다수의 글로벌 현대미술 이니셔티브에 기획자문위원 및 기고, 발표자로 활동하였다.



대안은 입구인가? 아니면 출구인가?

배양아치(이하 양): 선생님께 대안은 입구인가요, 아니면 출구였나요?

김희진(이하 김): 당연히 입구입니다. 근래 대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대부분 위기론, 생존론에 치여 결국 내수화되고, 도구화, 시장 제도화 되었다고 봅니다. 저는 그 부분이 싫어서 감히 인문학적, 철학적, 인류학적 차원까지 확장시켜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신가치로서 대안은 항상 유효한 입구라고 봅니다.


: 그렇다면, 그 입구의 세계는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요?

: 실질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새로움의 전통? 대안의 전통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대적, 자의적 기준으로 많이 있어는 왔지만 정리되지 않은 것을 역사화하고 이론화하는, 적어도 문예의 환경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적, 이론적 인식이 있어야합니다. 그리고 새로움의 전통을 상상해봐야 합니다. 로젠버그(Harold Rosenberg)는 ‘사유의 순환 과정’이라는 말을 했는데, 사유의 순환 과정을 통해 어떤 연속체를 확보해야 합니다. 그리고 할 포스터(Hal Foster)가 이야기한 실패한 아방가르드처럼, 실패가 아니라 지연되는 것처럼, 많은 질문을 통해 지연될 수 있는 것처럼 새로움의 전통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죠.


김희진 디렉터와 양아치 작가와의 대담, 대안공간 풀

: 그런 새로움의 전통이 가능한 것이었나요?

: 저는 지식층 안에서 가능하다고 봅니다. 예전에는 고전적인 비평의 형태에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소위 '옥토버(October) 군단' 이라고 하는 이들을 살펴보니 미술 비평은 죽은 것이 아니라 새롭게 대체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동안 우리나라 비평이 죽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들을 보고 나니 ‘죽은 것이 아니었구나! 비평의 형질 변화로 다양한 방식의 글쓰기를 역사 인식을 가지고 한다면 많은 일들을 전개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만 비평을 쓰는 사람들이 인식하는 조건, 인지하는 능력, 이런 시간적인 성숙도를 동반했어야 하는 것인데 절대 시간이 짧았고 그것을 분석하는 시간이 급했다고 봐요. 이제 이 문제들이 슬슬 풀려가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하고 그래도 다른 아시아 지역에 비해 비교적 건강히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요.


: 제너럴 매거진도 말씀하신 사례로 볼 수 있을까요?(http://generalmagazine.org/gm/)

: 그게 아주 재미난 사례인 게, 비평의 폼(form)을 아직도 예전의 전위예술 군단이 행사하는 공인(Public figure)으로서의 비평, 그 자체로 장르인 ‘아트 크리티시즘’ 을 복원시키고 싶어하는 분들이 발언을 원했죠. 여기에서 제일 먼저 짚어야할 것은 “비평의 형태가 무엇인가?” 우리가 쓰고 있는 폼의 변화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를 들면 작가론도 대화로 나온다는 것, 프레임이 바뀌어 간다는 것이 공유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데 누군가 헤게모니를 쥐고 그것을 평가하고 미적 기준을 세운다 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거예요. 똑같은 거예요. 옛날이나... 비평의 형태가 변했다는 것을 제일 먼저 공유했어야 해요. 이건 언어가 변화하는 과정이잖아요?


: 공유 못할 걸요.

: 그렇겠죠? (하하하) 그런데 그분들이 글의 수사, 논리, 과학적 검증 등 순수주의 논쟁으로 가져간 거죠. 자발적 의도가 부족하다, 연구 리서치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이쪽에서는 이건 지적 패권이다 라는 등의 반응이 나오고... 제너럴 매거진이 아직 존속하는데 상정하고 싶었던 가설의 형이 있고, 또 그 형은 많이 진화했는데... 그런데 궁극적으로는 모양새가 달랐을 뿐 시도한 것은 같았다고 봐요.


제너럴매거진은 미술 작가, 비평가, 큐레이터, 이론가 등 30여 명의 필자가 참여하는 비영리 사이트로, 동시대 미술작품, 전시회와 큐레이팅, 미술제동 등 동시대 미술의 여러 문제들을 필자들이 릴레이식으로 글을 이어가는 월 단위 포럼이다. http://generalmagazine.org/gm/제너럴매거진은 미술 작가, 비평가, 큐레이터, 이론가 등 30여 명의 필자가 참여하는 비영리 사이트로, 동시대 미술작품, 전시회와 큐레이팅, 미술제동 등 동시대 미술의 여러 문제들을 필자들이 릴레이식으로 글을 이어가는 월 단위 포럼이다. http://generalmagazine.org/gm/

: 그렇다면, 그간에 선생님이 언급해온 ‘말하는 무대’가 그런 것이 될 수 있을까요?

: 그렇죠. 그리고 그것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비평가뿐만 아니라 작가들도 같이 하기 때문에 내용도 그렇지만 말의 형식 자체가 다분화되어야 해요. 그렇다면 작가들이 하는 작업의 형태와 직결된, 혹은 가장 어려운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직관까지도 언명, 번역할 수 있는 비평, 이런 걸 담아내지 않는다면 노련한 수사법을 구사하는 비평은 몇 개 나오지 않을 겁니다. 이런 것들을 포용하고 이론화하는 작업까지 진행되어야 될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본인은 번역자입니까, 편집자입니까?

: 요즘에는 번역이라는 단어에 대한 해석도 다양하지만 자기 틀에 넣고 예를 들듯이 작가들을 배열하는 것을 일차적인 행위로 본다면, 그걸 누가 좋아하겠어요? (하하하) 잘 읽기, 잘 정리하기, 그런 것이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는 거기서 잘 멈춰지지는 않구요. 음... 돌 던지기? 그런 류의 작업을 좋아해요. 그런데 그런 것은 직관에 의해 움직일 때가 많아요. 그리고 자원의 한계가 있는 가운데 어떤 생각을 하고 행위를 하는 것이 좋더라구요. 소위 아티스트 큐레이터 기질이... 창의적인 것이 좋고, 그런 욕망이 있어요.


: ‘글로컬(Glocal)’이라는 것에 관심이 있으신 것 같아요.

: 글로컬 지점은 성문화된, 명문화된 명제를 입증해주는 논리는 별로 하고 싶지는 않아요. 스탠다드된 명제가 다 적용될 것이라고 믿지도 않으면서 컸구요. 엄브렐러처럼 이렇게 씌워진 명제에 삐긋하는 것도 내놔야한다. 이런 것들을 이론화해나가는 과정에서 동서고금을 다 털어놔야 해요. 그래서 저는 요즘 선사시대 자료를 읽어요. 내 안에 이국주의를 걷어내고 내가 느낀 것들에 대해 최대한 인류학적으로 알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그런 지점을 갖고 어떤 특수한 지역성도 아닌데 이렇게 느끼는 것을 굉장히 서투르게나마 글로벌에 계속 균열을 가해 다분, 다양, 유동, 유기, 그러니깐 다원적으로 만들어야한다는 거예요.


: 그럼, 분산되어 있는 이슈들 사이에서 어떤 유사점을 발견해서 그것을 전시, 포럼, 아카이브 등으로 전개할 수 있을까요?

: 어떤 작가에게 질문한 게 생각나는데요. “어떤 기승전결이나 주제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기호적인 작업을 하시는데, 관통하는 서사의 구조가 있다고 보시는지?“ 라는 질문을 드린 적이 있어요. 물론 없다고 하시겠지만, (하하하) 그런데 뭔가 있겠지만 이걸 서사라고 붙이기는 싫다고 하실 게 뻔했어요.
글쎄... 저도 이것은 굉장히 교묘하게 풀어야한다고 생각해요. 어쩔 수 없이 지식 리더들이 있다고 보거든요. 그들이 촉매제 역할, 가이드가 될 수 있다고 봐요. 지식 리더, 지적 리더들은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 던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시에 개개인들은 모를수록 좋은 것 같아요. (하하하) 이게 불편할 수 있잖아요. 굉장히 반감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헤게모니라고 생각하는 입장을 봤어요.


: 등대를 자처하는 리더를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그런 건가요?

: 그렇죠. 그리고 저는 그들의 말 속에서 역사를 봐요. 데리다와 같은 사람들은 포스트모던 끝자락에는 어떻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벌써 하잖아요. 그 지점에 있는 거는 같은데요. 제도비평, 공간, 주체 모두 아직 충분히 이야기 안됐고, 역사에 대한 해석도 아직도 경직되어 있고, 아직도 후기 모더니즘적인 것이 강하게 같이 있어요. 그럼 지금은 데리다가 말한 것처럼 완전한 산포상태는 아닌가보다, 아직 우리는 포스트모던 시대를 계속 지내야 하나보다 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지각을 형성케 하는 조건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 그 지형에 대한 아직도 자원이 남아 있나요?

: 저는 양작가의 복숭아에도 신기했다니깐요. (하하하) 그 지형에 대한 텍스트가 제대로 전개되지 못했지만 연극적인 부분은 충분한 것 같고 대신 언어의식을 동반해서 보는 시각이 여전히 부족하고 그것이 디자인적인 작업으로 너무 많이 등장했다는 점, 텍스츄얼 아트(textual art)를 충분히 못하고 그냥 타이포(typo)로 간 점이 굉장히 아쉬워요. 또 하나는 materiality(물성)을 보는 것, 우리는 아직 후기 모더니즘 극복을 머터리얼(material)로 하고 있어요. 형식주의 극복을 형식으로 한다구요. 저번에 정서영 선생님 글에서 보니 누가 ‘형의 정치학’ 이라고 그랬대요. 그래서 이걸 비주얼 아트, 시각 매체 연구, 문화 정치 연구 이렇게 놓칠게 아니라 오히려 형식주의 장에 들어가서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봐요. 막말로 그린버그를 죽이는 작업을 더 그린버그와 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머터리얼을 많이 쓰는 작가들을 궁금하게 쳐다보고 있어요.


: 그 전제를 두고 봐야할 작가들이 있나요?

: 우리나라에서 보면 결국 그린버그 논쟁으로 가는 거 아니에요? 순수주의 아니면 미니멀적인 방식으로.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사실주의군단 속에서... 구상조각을 안하는 사람들 중에서 아직 충분히 가능성을 보지 못했던 것 아닌가.. 그런 지점이 있어요. 그리고 앙포르멜, 앙뎅팡당, 이 부분이 형식주의 안에서 다시 읽으면서 연결해 봐야하지 않는가라는 이야기를 옛날에 김범 작가님하고도 했어요. 하여간 텍스트의 사용에 대한 예민함이 너무 서사로 들어가는 것 같은데, 아직도 언어의 해체를 더 가지고 놀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 그런 언어의 해체라는 무대에 올릴 괴물들이 있으세요?

: 없진 않아요. 제가 가까이서 보고 있는 작가들은 충분히 재미있어요.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의 지표를 잡아주는 상대가 없어서 그렇지, 역량들이 다 있어요. 특히 리듬감들이 좋고 비트들이 좋아요. 또, 미술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구사도가 세련되게 정제됐고 그걸 이론화할 수 있는 역사인식도 있어서 그들과 그것을 언어의 형식으로 만들어 갈수 있는 짝을 맺어주고 싶어요.


: 울고 있는 작가들에게 위로하는 편이세요?

: 그런데 그 울음이 다 달라요. 그리고 저는 같이 붙잡고 우는 스타일은 아니예요. 근데 그 아픔은 느껴요. 하지만 눈물은 나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결단으로 바로 가는 편이예요. 울음의 종류가 뭐다. 그러면 아휴.. 이러고 나면, 주먹 쥐고 일어서가 돼요.


: 일어서든가요?

: 어쩔 땐, 오! 오! 이러면서 일어나요. (하하하)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경우에는 어쩔 땐, 찡찡대지마!! 끌고 나가기도 하구요. 아니면 더 울고 나와!!! 하구요. 어쨌든 저는 그걸 반응을 해줘요. 모르는 척 해주는 것이 아니라, 다 반응을 해줘요.


: 그동안 활동해 오면서 옳은 큐레이터와 옳지 않은 큐레이터에 대한 판단과 기준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 기본이 부족한 큐레이터, 일종의 예의 문제인데 기본적인 항목들을 정리하지 않고 밀어 붙인다든지, 악습이 당연하다는 식으로 작가들을 대하고 일을 진행시키는 마인드가 잘못된 큐레이터들이 있죠. 그 다음으로는 스스로 큐레이터가 먼저인지, 작가가 먼저인지 헷갈려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즉, 큐레이터가 작가에게 서비스하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이 직업이 존재하는 근거인 미술에 대한 절대적인 존경이 필요해요. 그래서 저는 이 일의 중앙부를 차지하는 것은 작가여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과거에는 제 목소리가 강했던 것 같은데 굉장히 반성하는 바예요. 작가들이 이야기하는 비전을 이해하지 못하면, 자기가 죽도록 공부하라는 이야기죠. 미.술.을 잊어버리는 큐레이터, 너무 싫어요.


: 꿀풀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 꿀풀은 기획자가 제가 아니라 참여자, 기여자 중심이길 바랬죠. 그런데 이게 별로 방법론적으로 새로울 것이 없었어요. 저는 이것이 지난 5년 동안 엄청난 토목주의, 보여주기, 스펙타클 경쟁, 거기다가 노출쇼를 하고 있었던 상황에 대한 문화적 반란이었다고 봐요. 올해 4월 15일에는 다 털고 나와야하는데 최근까지도 계속 전시 문의가 들어와요. 이런 걸 보면서 우리가 제공하고 있는 수많은 공간들이 과연 뭐란 말인가? 동시에 우리에게 자발, 자기주도로 사용하는 공간이 있는가? 라는 질문도 생기구요. 그러면서도 이것이 우리의 아방가르드들 중에 하나였나 보다. 그리고 제도비평의 한 모습이었나 보다 라고 받아들이고 있어요. 하지만 아쉬움도 있어요. 저는 그것이 기능적인 것까지 자율적으로 잘 돌아가기를 바랐어요. 작가가 자율적인 방식으로 제안하고, 자신의 프로토콜을 실험해보고, 심지어 유통 시장도 만들어 보고, 사람도 끌어오고, 프로모션도 해보고... 1인 페어들에 각축장이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몰아치는 개발의 속도가 빨라서인지 보여주기에 많이 치중하게 됐어요. 결국엔 전시의 각축이 됐어요.


: 그럼 꿀풀은 입구도, 출구도 아니었네요?

: 저희끼리는 그래요. 그냥, 눈물, 콧물, 정액, 땀 다 갖다 놓은 것 같아요. (하하하) 이 시기에 쏟아버릴 수 있는 촌스러운 눈물도 흘려보고, 땀도 흘리고, 구질구질한 콧물도 흘려보고, 애욕도 들끓고, 생활 모습 그대로 막 쏟아 진 곳 아닌가? 그렇게 생각해요.


대안공간 풀 외관과 전시 장면대안공간 풀 외관과 전시 장면

: 마지막 질문인데요. 풀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선 보인 ‘긍지의 날’이 있었는데요.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무엇을 긍지할 만한가요?

: 처음으로 한 프로젝트인데요. 당시 생각해보면 사람이 제일 중요한데 사람들이 다 빠져 나갔어요. 뜨거운 열정, 신념도 냉각되고 지치고, 그런 게 너무 보여서 싫었어요. 사람이 뜻을 가져야지 아니면 뭐 하러 살아요? 모두 점 조직이지만, 어떤 날에는 형을 갖출 수가 있어요. 그리고 본의 아니게 지적 리더들이 생겨요. 그런데 그런 리더들에게 적어도 존중심은 아니더라도 희한하게도 수치심을 줘요. 그래서 저는 그런 시도들이 긍지의 자원이였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런 힘들을 가지고, 갈 곳을 끌어가면 되는거 아니냐. 그걸 적극 긍정하는... 실패조차 긍정하는... 그리고 그걸 끌고가는 형태 제안을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집을 가꾸고 싶었어요. 집이 엉망이면 어떻게 하겠어요? 청소하고 다듬잖아요? 화분도 가져다 놓고, 사과나무도 심고... 그걸 하고 싶었어요. 작가들이 여기에서 실패도 긍정하고 우리가 세웠던 아젠다를 생각해서 다시 대청소를 하고 준비할 수 있게. 생각해보면 의의는 대단할 것 같지만 집 꾸리는 것과 같아요. 집, 정원, 뒷마당, 벤치 그리고 앨범처럼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살림살이를 정리해서 벼룩시장에 내놓듯이 기금전도 했어요. 그런 식으로 정리하는 과정이였어요. 그게 제 큐레이팅의 시작이기도 해요.


긍지의 날_ 2010.04.16.-05.30 대안공간 풀긍지의 날_ 2010.04.16.-05.30 대안공간 풀

양아치 / 작가

미들 코리아 트롤로지(2008~2009), 이젠 . 우린 . 충분히 . 그럼에도 . 불구하고 . 당당한 . 신세계인이다(2010), 밝은 비둘기 현숙씨(2010), 영화, 라운드, 스무우스, 진실로 애리스토크래틱이다(2011), 미래에서 온 두 번째 부인(2011), 달콤하고 신 매실이 능히 갈증을 해결해 줄 것이다(2012), 뼈와 살이 타는 밤(2012), 칠보시(2012)를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