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현재 아시아 지역의 큐레이터들이 자신의 지역 미술을 위한 외교관이나 징검다리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많은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아시아 지역의 큐레이터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어 엄청나게 다양한 예술적 실천들에 대해 명확하게 발언할 수 있어야 하며, 해당 지역의 구체적인 사회, 정치, 문화, 그리고 역사적 맥락들이 서구에서 예술발전의 모델들이 구상해왔던 것을 넘어서 어떤 모습을 갖춰왔느지에 대해 숙고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탄 분 후이(이하 탄): 싱가포르미술관은 현시대의 예술창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현대미술관입니다. 싱가포르비엔날레는 싱가포르 내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현대미술 전시이며, 2013년 10월에 열리는 다음 전시는 동남아시아와 아시아 지역에 주목하여 진행될 것입니다.
http://singart.com
탄: 아시아 지역, 특히 중국, 일본, 한국과 같은 동아시아에서 진행되는 대부분의 비엔날레들은 서구의 대규모 비엔날레 방식을 채택하여 구성되었고, 따라서 전 세계의 작가들 중에서도 특히 서양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함으로써 비엔날레가 열리는 도시와 미술계를 국제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전략은 최근의 경제적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비엔날레들은 (다른 많은 문화적 기관들과 문화 행사들처럼) 전시가 열리는 도시나 지역과의 연계라는 점에서 지속적 개최의 정당성을 계속하여 부여받고 있습니다. 정체성에 관한 이슈는 특정 비엔날레가 특정 도시에 적합하도록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점에서 현재에는 확실히 적절한 것입니다. 2013년 싱가포르비엔날레를 위한 저의 제안은 정체성과 연계성에 관한 이 이슈들에 부응하려는 하나의 구체적 시도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 즉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아시아에서의 구체적 예술적 실천들을 명확하게 표현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타지역 출신의 큐레이터는 알기 어려운 지역미술계의 특성을 해당 지역 출신의 큐레이터들의 지식을 이용하도록 제안함으로써 그 속에 녹아드는 독특한 현상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탄: 싱가포르미술관의 소장품 정책은 우리가 서구나 일본, 또는 한국 등의 미술관들보다 훨씬 늦게 작품을 수집하고 전시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대한 실천적 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미술관은 우리 주변 지역에 초점을 맞추기로 결정했는데, 그곳들은 지형학적으로나 문화적 친밀감 덕택에 다른 미술관들에 비하면 우리가 더욱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탄: 저는 현재 아시아 지역의 큐레이터들이 자신의 지역 미술을 위한 외교관이나 징검다리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많은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아시아 지역의 큐레이터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어 엄청나게 다양한 예술적 실천들에 대해 명확하게 발언할 수 있어야 하며, 해당 지역의 구체적인 사회, 정치, 문화, 그리고 역사적 맥락들이 서구에서 예술발전의 모델들이 구상해왔던 것을 넘어서 어떤 모습을 갖춰왔는지에 대해 숙고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큐레이터들에게 현재 가장 큰 도전은 관객들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을 확신시키는 것인데, 왜냐하면 아시아의 현대미술은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서 관객들이 때로는 이 변화들을 따라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많은 미술관 관람객들이 여전히 유화만 미술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따라서 비디오 아트나 설치, 혹은 행위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우리가 기획하는 각각의 전시들은, ‘어려운’ 미술에 대한 관객의 지식과 그것을 이해하는 그들의 능력을 단계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하는 교육적 장치들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은 교육 담당자들에게 떠넘길 문제가 아니며, 큐레이팅은 이것을 전시 자체에서 구축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예술가들의 관심을 관람객들의 공유된 관심 속으로 옮기기 위한 방법을 찾을 필요가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했을 때에만 관객을 우리나 작가들과 오랜 기간에 걸쳐서 함께 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지요.
탄: 제가 한국 현대미술에 대해 피상적으로 접했을 때는, 한국의 역사, 전통, 그리고 장인 정신의 특정 관점들을 재고하는 작가들이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지역적 이슈들을 다루는 예술은 글로벌하지 못하거나 국제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그릇된 인식입니다. 실제로는 특수한 맥락을 지닌 예술이 무력화되고 감정 없는 국제 양식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이지요. 저는 그러한 국제 양식의 시대는 끝났다고 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임민욱이나 함경아 같은 작가들이 매우 흥미롭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의 큐레이터들은 이러한 작가들의 예술이 작업 속에서 완전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그 안에 담겨있는 맥락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탄: 이러한 프로젝트들은 상대적으로 노출의 기회가 적었던 한국 현대미술과 작가들에게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이러한 프로젝트가 보다 젊은 신진 작가들에 대한 소개를 지속적으로 넓혀가기를 희망합니다.
탄: [Curating in Asia]는 구성과 내용이 잘 조직된 우수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성 큐레이터들과 신진 큐레이터들을 모두 만날 수 있었던 기회는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좋았던 점 중의 하나였으며, 국내 레지던시 기관들을 방문하여 작가들의 스튜디오를 둘러보고 작가들을 직접 만난 일은 제가 접할 기회가 없었던 작가들을 소개해주어 유용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정말이지 계속되어야 하며, 저는 이것이 적어도 향후 3년 동안은 지속되어 이 큐레이터 그룹을 떠올리게 하는 연속성이 만들어져 우리가 함께 지속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보편적 교류 기획을 찾아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이것이 결실을 맺기까지는 몇 년의 시간이 더 걸리겠지요. 그러나 그 결과는 기존의 일시적 교류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성신여대 조소과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예술기획전공)을 졸업했다. 원서갤러리(1997-1999), 갤러리현대(2000-2005), (사)한국사립미술관협회(2007- 2009)에서 다양한 전시 및 행사를 기획했고, 2010년부터 현재까지 사비나미술관 전시팀장을 맡고 있다. 사비나미술관은 주로 과학, 수학, 의학, 심리학, 건축 등 타 학문 분야와의 융복합 전시 및 동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전시를 개최한다. 사비나미술관에서 기획한 주요 전시로는 2009년 《Double Act》, 2010년《네오센스: 新감각, 일루전에서 3D까지》,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관찰하기》, 2012년《소셜아트@예술, 소통방식의 변화》, 《BRAIN-뇌 안의 나》등이 있다.